▲ 함영철 펄어비스 전략기획실장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함영철 펄어비스 전략기획실장은 다음 아고라 및 TV팟 기획, 운영에서부터 다음게임 '검은사막'의 PM을 지나, 현재 펄어비스의 전략기획실 실장으로 글로벌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본 강연을 통해 함영철 실장은 2014년 정식 출시 이후 1년여 만에 글로벌 런칭에 성공한 MMORPG '검은사막'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오픈 이후 주춤했던 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다음 시절 검은사막 한국 서비스 계약부터 라이브까지 책임졌던 PM으로서의 경험담을 들려주고자 한다.

함영철 펄어비스 전략기획실장은 7일 진행된 IGC 둘째 날 행사에서 '검은사막 투쟁기: 서막'이라는 주제로 연단에 섰다. 지난 2014년 12월 정식 서비스를 실시한 '검은사막'은 발표회부터 세상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오픈 초기 세 종류의 큼지막한 버그로 인해 다소 좋지 않은 인상으로 오픈 초기를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검은사막은 일본을 시작으로 러시아 진출, 최근에는 북미,유럽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이어가며 글로벌 순항을 이어가고 있는데, 과연 오픈 초기의 '태풍'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함영철 실장이 설명하는 '검은사막 투쟁기', 그 서막을 정리해 봤다.


■ 강연주제: "검은사막 투쟁기: 서막"



⊙ 왜 '검은사막 투쟁기'인가?

투쟁기 = 어떤 대상을 이기거나 극복하기 위한 싸움에 관한 내용을 적은 기록

함영철 실장은 본 강연의 제목을 '검은사막 투쟁기'라고 지은 이유에 대대 설명하기에 앞서, 투쟁기의 사전적인 의미를 소개했다. 2010년 펄어비스가 설립된 뒤, 온라인 MMORPG '검은사막'을 발표할 당시 게임 시장은 MMORPG에게 그다지 우호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 해 즈음부터 모바일게임시장이 떠오르면서 힘들었던 점이 너무도 많았고, 그런 점들을 차차 극복했기 때문에 지금의 '검은사막'이 있을 수 있었다고 함영철 실장은 전했다.

그와 함께, 지난 2012년 9월 당시 김대일 PD의 인터뷰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당시 김대일 PD는 '검은사막 이후 작품도 구상 중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은 없다는 각오로 만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겠나?" 라고 대답했다. 함영철 실장은 "다음이 없다는 각오로 만들어야 한다"는 문구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검은사막이 한창 개발되던 2011년~2014년 당시는 모바일게임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유저들도 많이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모바일게임으로 넘어갔지만, 그만큼 개발자들 또한 모바일게임 시장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때문에 2010년 9월에 설립된 '신생 회사' 펄어비스로서는 온라인 MMORPG를 개발한다는 이유로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았다.

또한 당시는 모바일게임이 떠오르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한국의 온라인 MMORPG가 그 자신감을 서서히 잃어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해외로 진출한 국산 MMORPG들은 그럴싸한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유저들은 '무늬만 다른' 여러 MMORPG들에게 빠르게 지쳐가기 시작했다.

퍼블리싱을 담당하기로 한 다음게임(현 카카오게임즈)로서도 큰 고민이 있었다. 바로 퍼블리셔로는 처음으로 서비스를 하게 될 대작 타이틀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도 여러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해오던 다음게임이었지만, 검은사막만큼 스케일이 큰 게임을 서비스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검은사막'이 걸어온 길


시작부터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했던 개발사 펄어비스와 다음게임은 어떻게 '검은사막'을 출시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함영철 실장은 '검은사막'이 개발을 시작한 당시부터 몇 차례의 테스트를 거쳐 정식 오픈을 하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2010년 9월 펄어비스가 설립된 이후, '검은사막'의 본격적인 개발은 이듬해인 2011년 2월부터 진행됐다.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최초의 게임 콘셉트 문서 중 일부로, 이 콘셉트 문서는 당시여러 투자자를 물색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름은 가려져 있지만 김대일 대표의 전 작품들로부터의 계승 요소와 함께 현실성 강화, 오픈월드 등 검은사막의 최초 구상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초 기획 단계부터 염두에 두었던 것 중 가장 큰 점은 바로 '현실적인 그래픽'이었다. 당시에도 존재하던 여러 MMORPG와 그래픽적인 차별성을 둬야만 했고, 국내 흥행은 물론 글로벌 진출을 위해서도 이러한 차별성은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함영철 실장에 의하면 당시에는 실제로 "너무 리얼하다"는 이유로 계약하기를 꺼린 퍼블리셔도 있었다고 한다. 현실적인 그래픽 외에 전투, 생활, 탐험 등 개별 콘텐츠의 글로벌 수준화 또한 '검은사막'개발 초기부터 염두에 두었던 요소들이다.


파트너와의 만남, 그리고 호흡 맞추기

2012년 12월 '검은사막' 제작발표회가 있고 난 후, 당시 다음게임은 자사에서는 전무후무하던 기록으로 약 4일여 만에 퍼블리싱을 하고자 결정하게 된다. 함영철 실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오랜 기간 검토한 뒤 퍼블리싱을 결정한 게임들은 오히려 이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제작발표회 이후 약 4일 만에 개발사-퍼블리셔 관계가 된 다음게임과 펄어비스가 서로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는 이렇다. 먼저, 앞서 설명했듯 시대가 모바일게임으로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좋지 않았고, 퍼블리셔인 다음의 입장에서도 게임사업에 처음 뛰어드는 어려운 입장이었다. 때문에 서로에 대한 존중이 이뤄질 수 있었고, 이는 곧 R&R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함영철 실장은 이러한 상호 간의 존중이 퍼블리셔인 다음이 당시 '검은사막'이 밝혔던 여러 오픈 스펙들, 이를테면 게임 내에 순간이동 기능이 전혀 없이 장거리를 직접 이동해야 한다거나, 1:1 거래 금지와 같은 요소들을 과감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각자의 역할, 개발사는 게임을 잘 만들어야 하는 것이 역할이었다면 퍼블리셔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주 사소한 실수조차도 유저들을 실망시키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함영철 실장은 추가로 퍼블리셔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 '당당함'을 들었다. 여러 가지 실수와 사고들은 아무리 조심해도 언제가 한 번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때마다 퍼블리셔가 크게 위축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유저들에게 사과할 부분은 사과하며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도록 당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며 각자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 펄어비스와 다음게임. 이제 '검은사막'의 서비스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서로 호흡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 이유는 펄어비스가 아주 독자적인 개발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임의 일반적인 업데이트 과정은 기획서에서 시작한다. 개발사가 업데이트 내용이 담긴 기획서를 퍼블리셔에게 보내주면, 퍼블리셔는 기획서를 토대로 업데이트 내용을 파악하고, 추후 만들어진 빌드를 통해 테스트를 거쳐 업데이트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펄어비스는 기획서보다 빌드를 먼저 만드는 쪽을 택했다. 모든 인력이 작업자들로 구성된 펄어비스이기에 기획서에 일일이 업데이트 내용을 기록하는 것보다 업데이트 내용이 모두 반영되어 있는 빌드를 먼저 만드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기획서보다 새로운 빌드가 먼저 도착하게 되면, 퍼블리셔 입장에서 업데이트 요소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새 빌드를 테스팅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퍼블리셔 구성원들 또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수 있었고, 이러한 호흡이 계속되어 현재 검은사막이 보여주고 있는 엄청난 업데이트 속도의 근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2013년 첫 번째 CBT

▲ 첫 CBT는 핵심 시스템 검증을 위해 이루어졌다

첫 CBT의 목표는 게임의 핵심 시스템을 검증하고, 안정성을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또한, 제작 발표회부터 이어진 유저들의 기대감을 관리할 필요도 있었다. 5천 명만 모집하는 CBT에 약 15만 명의 유저가 신청을 한 것으로 당시 유저들의 기대가 얼마나 높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첫 번째 CBT 결과는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CBT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약 80%의 유저가 만족한다는 답변을 남겼고, 약 7일 동안 진행된 테스트에서 총 4회 점검, 총 점검시간은 30분을 기록할 정도의 안정성을 입증할 수 있었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대로 호흡을 맞춘 다음게임과 펄어비스는 CBT 기간 중에도 매일같이 업데이트를 계속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으로는 CBT 기간 중에는 BJ들의 방송을 금지했었다는 것인데, 함영철 실장은 이에 대해 특정 길드가 BJ의 인기를 등에 업고 주도권을 잡는 현상을 여러 게임에서 목격했고, '검은사막'은 그런 게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CBT기간 중 BJ들의 방송을 금지했다고 설명했다.


2014년, 길었던 2차 CBT

▲ 20일동안 계속된 2차 CBT, 업데이트도 매일 이뤄졌다

당시 계획은 2차 CBT 이후 바로 오픈베타를 실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20일이라는 기간 동안 게임을 보다 완벽하게 하기 위한 CBT가 진행되었다. 당초 계획되었던 날보다 약 2달 미뤄진 4월에 2차 CBT가 진행되었지만, 이 당시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비롯해 게임 내 그래픽 퀄리티가 1차 CBT에 비해 눈에 띄게 발전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픽의 발전 뿐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CBT에 참여할 수 있는 베타키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진행했으며, 1차 CBT와 마찬가지로 테스트가 진행되는 20일 내내 매일같이 업데이트 강행군을 계속했다.


예정에 없었던 파이널 테스트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생활형 콘텐츠를 비롯해, 2차 CBT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미완성 요소들에 대한 점검을 위해 파이널 테스트가 한차례 더 실시되었다. 이 때부터 검은사막 월드라고 불리는 채널 구조에 대한 테스트가 진행되었으며, 오픈 후 마케팅 준비를 위해 '검은사막은 이런 게임이다' 라는 특징들을 몇가지 정의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구체화된 '검은사막'의 정의는 '3D 논타겟팅 액션 MMORPG',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심리스 오픈월드' 등이었다.


⊙ 오픈과 함께 불어닥친 태풍, 그 이후...

당시 펄어비스 인원 70명, 다음게임(현 카카오게임즈) 60명 인원의 배수진 프로젝트였던 '검은사막', 세 차례의 사전 테스트를 통해 유저들의 기대감은 더없이 높았고, 오픈을 얼마 안 남기고 생성된 사전 캐릭터 생성 숫자가 30만 명을 기록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게다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검은사막이 오픈하기로 되어있던 당시를 앞뒤로 신작 게임들이 거의 출시되지 않았기에 게임에 사활을 걸었던 펄어비스와 다음게임의 부담은 계속 늘어만 갔다.

▲ 당시 기사 제목들만 봐도 얼마나 부담을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다

▲ 해당 만평은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대망의 오픈 베타를 실시한 '검은사막', 결과가 어땠는지는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모두 알고 있다. 함영철 실장은 당시 인벤에 올라온 만평 한 장과 함께 오픈과 함께 불어닥친 태풍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당시 태풍은 크게 세 가지 버그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거세게 불어닥쳤고, 그 결과로 오픈과 동시에 유저들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함영철 실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오픈 태풍이 불어닥치는 와중에 꿋꿋하게 버티고, 연달아 발생한 버그에 대해서 정면 돌파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게임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존재하는 버그를 고치는 업데이트를 우선하느냐 신규 콘텐츠 도입을 우선하느냐의 문제는 아주 중요한데, 특히 오픈 초기부터 게임 밸런스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버그가 발견된 '검은사막'의 경우는 더더욱 빠른 업데이트 속도가 절실했다. 물론, CBT부터 이를 학습해온 개발사와 퍼블리셔에게는 자신이 있었고, '검은사막'은 오픈 한 달여 만에 신규 지역 및 신규 캐릭터를 매달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5개월 뒤, '검은사막'은 일본을 시작으로 러시아 등 글로벌 진출에 나서게 된다. 일본에서는 한국과 다르지 않은 빌드로 런칭, 프로모션 영상 및 독자 의상, 보다 강화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이벤트를 통해 지역화에 도전했으며,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사람들은 어려운 게임을 좋아한다"는 통설을 믿고 현지에 맞게 밸런스를 조절한 빌드로 오픈하게 되지만 현재는 한국과 동일한 빌드로 서비스되고 있다.

올해 초인 2016년 3월에는 유럽과 북미 지역에 대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독자적인 로고를 제작해 사용했고, 한국에서는 버스, TV 등 매체를 통한 광고를 진행했다면, 북미·유럽 지역에서는 온라인 마케팅에 집중했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오픈 태풍'에 시달렸지만 이후에 성공적으로 안착, 다시 반등하는 지표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 무엇을, 어떻게 극복했나

오픈 초기의 거센 태풍 앞에서 정면으로 버티는 것을 선택했던 '검은사막'은 현재 해외에서는MMORPG.com 위클리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 온라인게임 순위에서도 꾸준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검은사막'이 걸어온 길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무엇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살펴볼 차례. 함영철 실장은 당시 극복해야만 했던 세 가지 요인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계속해 나갔다.


가장 처음 위협적이었던 모바일 게임시장의 성장과 관련해, 펄어비스의 고민은 당시에도 "최고 퀄리티의 PC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는 것" 이었다. 이는 오픈 이후에도 현재 진행중인 고민으로, 다행이었던 것은 개발 단계부터 오픈 이후까지 핵심 인력의 이탈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온라인게임 포화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게임의 유니크함을 추구했고, 그래픽적인 차별성 및 콘텐츠를 다양하게 설계하는 것 모두 이러한 고민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매주 압도적인 업데이트 속도를 자랑하는 개발력은 자리에 모여 바로바로 의사를 소통하고 빌드에 바로 반영해 문서 쓰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형태의 펄어비스만의 독자적인 개발 프로세스에서 나온다. 함영철 실장은 이러한 개발 프로세스가 구축되기까지 상당히 많은 공이 들었으며, 지금도 계속 개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밖에도 당초 예정된 개발 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과 1:1 거래를 금지하는 등의 치열한 고민들이 있었기에 당시 저물어가던 온라인 MMORPG 시장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함영철 실장은 덧붙였다.


퍼블리셔인 다음게임의 입장에서는 '검은사막'이 처음 서비스해보는 대작 MMORPG라는 점에서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검은사막을 자신의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서비스를 준비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한 전담 팀을 창설한 이후 지금까지 핵심 인력의 이탈이 없었다. 함영철 실장은 당시 검은사막 서비스에 투입된 인력은 약 60여 명으로, 사업/마케팅/운영/QA/기술/웹서비스 등으로 나눠진 조직이 호흡을 맞춰 서비스를 진행해야 했는데도 모두 좁은 사무실에서 생활하다 보니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퍼블리셔의 입장에서는 개발사인 펄어비스의 주요 콘셉트를 흔들지 않고, 그들의 개발 프로세스를 존중, 수용했던 것 또한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요소로 작용했다. 마찬가지로 계획과 실행의 단계가 항상 변경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유연한 자세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함영철 실장은 오픈 이후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유저층과 싸워야 했던 고난의 라이브에 대한 극복방안으로 선택했던 것은 빠른 속도의 업데이트, 그리고 '개념 운영'이었다고 전했다.

업데이트의 경우 위에서도 언급했듯 부족한 부분만 고쳐나가서도, 또는 새로운 콘텐츠만 추가해서도 안됐다. 결국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버티면서 두 가지 모두를 해나가는 작업이었고, 개발 단계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두 회사였기에 지금과 같은 빠른 업데이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유저들이 말하는 운영이란 사실상 모든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버그를 고치는것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추가하는 것, 이벤트와 공지, 마케팅 및 고객문의 답변 등 이 중 한군데에서만 실수를 해도 운영을 제대로 못 한다는 소리를 듣게 일쑤다. 또 한가지 주의해야 하는 것은 서비스하는 입장에서 하는 행동이 어떤 유저층들에게는 반가운 일일 수 있지만 다른 유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실수를 몇 번 해도 너무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운영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 결국, 핵심은 책임지고 버티는 것


라이브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책임지고 버티면서 게임을 끌어올리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회사와 동료들 모두가 함께 버티는 것이 중요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실수 또한 겪어야 했다. 그렇지만 정면으로 부딪히고 버텨낼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검은사막이 존재할 수 있었지 않을까.

프레젠테이션 마지막, 그는 '존버 정신'이라는 큼지막한 문구와 함께 강연을 마무리했다.

▲ XX게 버티는 정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