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국정진 PD는 우노게임소프트에서 개발실장을 맡았으며, 이후 레드덕에서 A.V.A의 개발실장을 역임, 현재는 제페토에서 배틀카니발 PD로 활동하고 있다.

프로젝트 개발 코드명 S.O.W라는 이름 아래 개발을 시작한 배틀카니발은 현재 러시아와 계약을 맺고 다음 달에 CBT, OBT를 실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국정진 PD는 익명 SNS인 블라인드에서 본인들은 '출시를 2번이나 연기한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도 안하는 사람들', '주말근무 했다고 대체 휴가를 요구하는 사람들', '능력 없는 리더 때문에 팀 분위기도 좋지 않은' 그런 사람들로 불렸다고 한다.

외부 시선대로 이들을 평가하자면 그야말로 오합지졸이 따로 없지만 국정진 PD와 배틀카니발 개발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4년을 버틴 끝에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 강연주제: FPS게임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기 - 배틀카니발의 도전



⊙ 새로운 컨셉만으론 뭔가 부족해!

국정진 PD는 세계의 각종 FPS 대회를 오프라인 현장에서 직접 관람할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몇몇 대회를 제외하면 현장에서 많은 수의 관객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이름난 FPS 슈퍼스타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의구심이 생겼다. '왜 FPS 대회에 사람이 많이 오지 않을까?', '왜 한국에서는 임요환이나 홍진호같은 스타 플레이어가 나타나지 않을까?'. 선수들의 플레이를 뒤에서 지켜보면 분명히 재미가 있지만 TV로 볼 때는 그 재미가 반감되곤 한다. 이는 FPS의 태생적 한계인 1인칭 화면, 그리고 빠른 게임 전개라는 요소가 보는 재미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 탓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의 흐름을 잘 서사할 수 있고 활약 장면을 잘 묘사할 수 있다면, 보는 것도 재미있는 FPS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 끝에 '보는 것이 재미있는 FPS'라는, 신작의 첫 번째 컨셉을 잡게 됐다.


두 번째 컨셉은 '칭찬하는 FPS'였다.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 등장하는 '등가교환의 법칙'을 예시로 든 국정진 PD는 온라인 FPS는 PVP 게임이기에 지극히 공평하기 때문에 한 명이 기쁘면 한 명이 슬플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에게 1킬의 성취감은 곧 상대 팀에겐 1데스의 박탈감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기쁜 사람은 더 기쁘게 해주고, 슬픈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기로 했다. 특히 위기에 빠진 아군을 구조했을 때 이를 잘 알려주면 유저들 사이에서 자연스런 칭찬 문화가 정착되면서 긍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오가지 않을까 기대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컨셉은 '만지고 싶고 가지고 싶은 캐릭터'다. 타 FPS 게임들의 캐릭터도 아트적으로 잘 만들어진 캐릭터지만 한 데 모아놓고 보면 누가 어느 게임의 캐릭터인지 구별이 힘들었다. 그래서 아트 디자이너에게 위와 같은 요구를 했고, 6개월의 시간이 지난 끝에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액션 영화를 봐도 군복을 입고 총을 쏘는 영화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듯이 굳이 군복에 집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런 3가지 컨셉을 잡고 2년을 개발했으나, 게임이 팔리지 않아 1년 6개월을 더 개발해야 했다. 왜 그들은 2년이란 시간을 투자하고도 서비스를 할 수 없었을까?

국정진 PD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고백했다. 첫째로 일정 견적을 잘못 냈다는 것이다. 2년 내에 오픈시키겠다고 말을 했고, 프로젝트 초기엔 이에 대해 항상 낙관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의 벽을 느끼게 됐다. 기존 FPS 게임을 5년 서비스 하느라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는 것이다.

또, 내용 전달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했다. 3가지 컨셉을 잡고 게임 개발을 했으나 셋 중 무엇 하나 게임의 핵심 플레이에 대한 내용은 없이 게임의 껍데기를 어떻게 다르게 전달할까에 대한 고민만 있었다. 게임은 그 무엇보다 핵심 플레이가 제일 중요하고, 유저들에게 새로운 플레이를 제공받지 못하면 외면받기 마련인데 그 점을 간과했다.


셋째로 프로젝트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기존과는 다른 개발 방법론을 가지고 개발을 하고 싶어서 애자일과 매트릭스 조직 구조를 흉내내기로 했다. 처음부터 잘 짜여진 기획보다는 일단 만들고 빠르게 수정하는 것을 목표로 뒀다. 사운드&타격감, 게임품질, 3:3모드 개발 라인 등 여러 라인을 만든 뒤 약간의 권한과 무한한 책임을 지는 라인 리더를 두었지만 처음에 곧잘 굴러가는 듯했던 조직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정확한 목표를 정하지 않았고 빠른 개발을 위해 기획을 최대한 가볍게 한 채 코딩을 하다보니 임시 코드를 많이 넣어서 개발이 점점 더 느려졌다. 취지는 좋았으나 구성원의 경험이 부족해 실패한 사례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많은 문제가 있었으나 이제는 서비스를 눈앞에 두고 있다.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을까?


⊙ 실패한 첫 도전, 그들은 거기서 무엇을 배웠나

우선 이미 성공을 경험해 본 회사로부터의 지원이었다. 국정진 PD는 제페토의 사장은 게임 개발의 형식이나 팀 운영 등에 대해서는 기준을 갖고 조언을 하지만, 게임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며 완전한 자율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자율적인 개발을 보장한 대신 근무 태도에 대해서 매우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기에 개발자들의 업무 집중도가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뚝심있는 오너 하에서 개발자들이 자율을 보장받고 자사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게임인 포인트블랭크 측으로부터 조언을 얻은 것이 큰 도움으로 다가왔다.

▲ 마치 '쉬엄쉬엄해라'라고 말하는 어머니를 둔 기분이었다고...

두 번째는 유저친화적 개발이다. 무언가를 지키려고 하기보다 유저에게 맞추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다. 특색있는 캐릭터를 만들었으나 그걸 보고 사람들이 품었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1년 반의 시간을 들여 캐릭터마다 개성을 부여했다. 자기가 만든 결과물을 눈으로 직접 보는 도그 푸딩(Dog-Fooding)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전까지의 개발자는 유저들과는 조금 격리된 존재였고, 그렇기에 유저들이 자신이 만든 게임을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볼 기회가 적었다는 것이다. 유저들을 직접 불러 게임을 시켜보고, 개발자가 1:1로 붙어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 지켜보게 하는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물론 추후 퍼블리셔를 통해 게임 플레이 리포트를 받긴 하지만, 정리된 리포트를 받는 것과 개발자의 눈앞에서 유저들이 직접 플레이를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물론 유저친화적 개발이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한기에 초기 컨셉을 그대로 유지하되, 이를 확정 및 수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당부했다.

세 번째로 개발자들의 욕망을 녹여내는 것이다. 자율(Autonomy), 숙련(Mastery), 목적(Purpose)이라는 AMP 프레임워크 속에 개발자들의 솔직한 욕망을 투영했다. 자율보다는 자기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하고자 하는 욕망, 숙련보다는 그 결정된 것을 더 잘하고 싶은 욕망, 단순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것에 기여하고자하는 욕망. 국정진 PD와 동료 개발자들은 배틀카니발에 그 욕망을 녹여내기로 했다.


그 결과 아티스트들이 더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고정관념을 깨고 적 캐릭터에는 빨간 테두리를 두르게 됐다. 캐릭터마다 키도, 체형도, HP도 다르고 저마다의 전용 근접, 보조, 투척무기를 제공했으며 쉬프트 키를 눌렀을 때 누군가는 걷고 누군가는 뛰게 됐다. 경영진의 개입이 최소화됐기에 가능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마지막은 사람이었다. 모두가 그만두어도 끝까지 프로젝트를 위해 달릴 사람,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는 사람, 프로젝트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 의미가 적어보이는 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 해놓는 사람, 아주 약간의 것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배경아트팀은 유료화 컨텐츠의 양을 늘리기 위해 6개월 이상 맵을 안 만들고 수십 종류의 총기를 만들었으나 아무도 이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서로 간에 믿음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였기에 프로젝트는 첫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 살아남기 위해선 도전하고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국정진 PD에게는 여전히 고민거리가 많다. 과연 유저들이 오픈 후 이 게임을 좋아해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개발 모드에서 서비스 모드로 변경해야 하는데 어떤 개발 구조를 갖춰야 새롭과 완성도 높은 컨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지금까지 지키려고 했던 문화들이 과연 정답인지에 대한 고민까지. 그간 한 사람의 컨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피드백을 중요하게 보지만 여론에 따라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 효율보다는 효과를 중시했지만 서비스를 하게되면 어느 정도의 효율도 갖춰야한다는 점 등이 그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국정진 PD는 자신의 실패 사례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면서 '본인처럼 되지 않으려면' 현재가 아니라 개발이 끝났을 때의 시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미래에 대한 통찰, 안정된 공식을 뿌리치고 도전하고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기존의 것을 개량하는 수준에서 머무른다면 훨씬 큰 자본과 물량을 지닌 중국 게임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서 끝없이 쏟아질 중국의 게임들과 생존 경쟁을 벌여야하는 국내 게임 시장은 허황된 장밋빛 미래보다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털어놓은 국정진 PD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질의응답

1년 6개월 가량 계약이 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계약을 하게 된 계기는?

= 사업 측면과 개발 측면을 봐야한다. 사업 측면에서는 계약 및 세일즈를 담당하는 사람이 열심히 뛰었다. 개발 측면에서는 게임을 했을 때 내가 예상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그런 면에서 부족했던 것을 채우게 되면서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캐릭터 관련해서 오버워치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오버워치와의 차이점이라면?

= 아이디어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 오버워치에서는 데스를 보여주지 않는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려는 의도였다고 본다. 단 1데미지만 줘도 킬 기여가 뜨기 때문에 그런 점은 우리 게임보다 잘 풀었다고 본다. 다만 출발점이 달랐다. 같은 1인칭 FPS 게임이지만 오버워치는 퀘이크에서 시작한 하이퍼FPS고 배틀카니발은 카스에서 시작한 밀리터리 FPS다. 비슷한 부분은 분명히 있지만 출발점이 다르다고 본다.


총기류 유료화 모델을 했을 때, 1인칭 게임이라 본인이 외형을 잘 보기가 힘들텐데 이 점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 컨텐츠의 매력도를 높이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말했듯이 1인칭이라 내 무기가 잘 안보이지만 대신 게임을 시작할 때 첫 화면에서 캐릭터들이 멀뚱멀뚱 서 있기보다 다양한 액션을 주면서 총기류도 눈에 잘 띄게 했다. 캐릭터의 매력도를 높이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목소리였던 것 같다. 캐릭터마다 국적이 달라서 거기에 맞는 성우를 고용해서 녹음을 했다. 이로 인한 유저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다. 총기 관련해서는 던졌다 받는 등 다른 애니메이션, 사운드, 이펙트 등을 추가해 상품성을 높이고자 했다.


캐릭터마다 쉬프트 키의 작용이 다르다고 했는데, 유저들 입장에서 뛰고 싶었는데 갑자기 걷게되면 당황하지 않을까?

= 어떤 캐릭터는 쉬프트가 걷기고, 어떤 건 뛰기다. 그래서 일부 캐릭터는 '사플'을 못한다. 유저들에게 선택권을 넘기고 싶었다. 좋아하는 캐릭터와 총기를 직접 고르는 것이다.


보는 게 즐거운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그걸 게임에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는지?

= 전황을 알 수 있는 뷰를 전달하려고 했다. 탑뷰와는 다른 방식을 택했는데, 개인적으로 모든 FPS 게임중 우리가 만든 관전 화면이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최종점까지 도달하진 못했다. 이해를 쉽게 도와주는 단계까지는 왔고, 아직 묘사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