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ROOL 공동 창업자 마크 플러리(Marc Flu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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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폭력'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내세우면서 지난해 가장 주목받은 인디 게임 중 하나로 자리잡은 '썸퍼'. 이 게임은 락밴드 등의 리듬 게임으로 유명한 '하모닉스'를 다니던 두 개발자가 큰 마음을 먹고 인디 선언을 한 지 7년 만에 개발을 완료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7년이라는 세월동안 게임 하나만을 위해, 그것도 인디 게임을 위해 시간을 바친다는 것은 어떻게 봐도 '무모하다'는 이야기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 하지만, 어쩌면 오히려 그러한 시간이 걸렸기에 '썸퍼'가 출시 이후 각종 수상과 함께 85점 이상의 높은 메타크리틱 점수를 받으며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은 것이 더욱 의미를 갖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GDC 2017 첫날 진행된 인디 게임 서밋 코너에서는 드룰(DROOL)의 공동창업자인 마크 플러리(Marc Flurry)가 강단에 올라 '썸퍼'를 개발하는 7년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7년이라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오신다고? 이들이 썸퍼를 개발하기 시작한 2009년에는 요즘은 안 쓰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든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아주 생소했던 시절이었다.


■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 원대했던 그들의 첫 번째 목표


2009년,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들의 손으로 게임을 개발해보고 싶은 두 개발자가 하모닉스에서 퇴사하기를 결심한다. 이 두 개발자의 이름은 브라이언과 마크로, 브라이언은 그간 게임 개발자로 활동하면서 이펙트 아티스트로서의 경험은 있엇지만, 아트 디렉션을 해 본 경험은 없었다. '라이트닝 볼트'라는 노이즈 락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하긴 했지만, 온전히 게임을 위한 음악을 창작해본 경험은 또 없었다.

이펙트 아티스트였던 브라이언과 달리 프로그래머인 마크의 경우, C/C++를 사용하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6년의 경험이 있었으나, 회사 안에서 그가 담당하던 것은 메뉴나 UI를 짜고 프로그래밍하는 것 뿐이었다. 그밖에 3D 연산이나 그래픽 쪽으로는 지극히 제한된 지식만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날 강단의 오른 마크는 이렇게 자신과 브라이언의 당시 배경을 설명하며, 2009년 브라이언과 함께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했을 당시의 목표들을 하나하나 언급하기 시작했다. 가장 첫 번째 목표는 게임을 개발하는데 사용할 자체 엔진을 만드는 것이었다. 상용 엔진을 구매해 개발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 마크는 자체 엔진을 만들지 못하면 게임 개발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은 어떤 회사에도 휘둘리지 않는 자신들만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회사에 소속되어 메뉴/UI같은 게임의 일정 부분만 담당했던 마크로서는 자체 엔진 개발과 더불어 또 하나의 큰 목표였던 셈이다.

세번째는 2009년 가장 최신 콘솔기기였던 XBOX360으로 게임을 출시하는 것. 게임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하면 1~2년 안에는 출시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마크는 당시는 VR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방대한(?) 목표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한 두 사람. 하지만, 강연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 '썸퍼'의 개발은 목표한 바를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게임을 개발하면서 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확인할 수도, 처음 기획했던 바와 다른 방향으로 나가면서 길을 잃어보기도 했다던 마크는 이어 '썸퍼'의 콘셉트 아트 구상 단계부터 차근차근 설명해나가기 시작했다.



■ 2008년에서 2009년 - '썸퍼'의 콘셉트 구상, 프로토타입 개발 단계

▲ 게임 속 보스로 등장하는 '크랙헤드'의 초기 스케치

하나의 조이스틱과 단 하나의 버튼으로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구상하는것부터, 전체적인 콘셉 아트를 구상하는 데 까지는 아트와 오디오를 담당한 브라이언의 역할이 컸다. 마크는 브라이언과 그의 유능한 친구가 함께 '썸퍼'의 콘셉트를 담은 스케치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당시에는 맵을 큐브로 구성하자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콘셉트를 스케치하는 과정에서 최초에 결정된 사항 중 하나는 플레이어가 조종하게 될 주인공을 딱정벌레로 하자는 것. 우주선이나 비행기 등 다양한 모양을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왜인지 와 닿지 않았고, 이때부터 게임이 출시되는 그날까지 주인공 기체는 딱정벌레로 정해졌다는 것이 마크의 설명이다. 또한, 마지막 보스 중 하나로 나타나는 기괴한 얼굴 모양(두 개발자들은 이 몬스터의 이름을 '크랙헤드'라고 부르기로 했다)또한 초기 구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모습으로 실제 게임에 적용됐다.

마크는 이후 2009년 경에 프로그래머로서 합류했고, 브라이언과 그의 친구가 디자인한 콘셉트에 따라 초기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앞서 설명했듯 초창기 프로토타입은 픽셀 형태의 게임으로 기획, 개발되었고, 당시에는 바닥의 큐브를 한칸 한칸 이동하는 방식의 리듬게임으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3D관련 지식이 전무했던 마크였기에 프로토타입 또한 처음에는 선으로만 이루어진 벡터 그래픽같은 모양을 띌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래도 굴하지 않고 하나 하나 3D 관련 지식을 배워가면서 프로토타입 개발에 열중했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선으로만 이뤄진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면 그 다음에는 텍스쳐를 입히고, 셰이더를 더해가며 천천히 개발해 나가는 한편 프로그래머로서의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간 것이다.

기술적인 경험이 전무했던 상태에서 하는 게임 개발인데다, 하나하나 스스로 배워가면서 해야하는 길이었기에 마크는 종종 계속 자신에게 되물었다고 전했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게임이 흥미로운가?' 라고.

▲ 그리드 배경을 활용한 '썸퍼'의 초기 구상

▲ 초기 구상을 토대로 3D로 표현한 프로토타입



■ 2009년에서 2014년 - 게임 플레이 개선하기

  • 커브 문제 개선하기

    2009년까지 개발에 열중했던 초기 콘셉트는 그리드 타일 위에서 90도로 회전해가며 앞으로 진행하는 방식의 게임. 당시 둘은 이 방식의 게임 플레이가 여타 리듬게임과 차별화되는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체력이 지속적으로 내려가는 상태에서 주위에 있는 노트를 먹어 회복해 나가는 방식의 리듬 게임으로 기획했는데, 여러 번 시도해본 결과 이런 방식의 리듬게임이 과연 흥미로울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이 둘은 약 1년동안 구상했던 그리드 방식의 게임플레이 아이디어를 모두 버리기로 결정한다.

    그리드를 버린 이후 선택한 것은 직선형 방식. 마크는 다시 한번 프로토타입을 제작했고, 이번에는 여타 리듬게임과 같이 몰입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반대로 특별한 차이점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던 브라이언과 마크는 커브 구간이 다른 리듬게임과 차이를 갖게 할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90도로 꺾어지는 것 보다는 조금 더 부드럽게, 그리고 여기에 플레이어가 반응하도록 하면서 좀 더 복잡한 요소를 추가할 수 있도록 구상하게 되었다.

    ▲ 그리드 방식에서 벗어나니, 발목을 잡게 된 커브 문제

    그렇게 시간을 흘러 2011년, 마크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당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마크는 개발과정에 있어서 서로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없음이 가장 컸다고 설명했다. 마크가 거주하던 서울과 브라이언이 위치한 미국의 시차는 약 14시간, 상대방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버그가 일어난 부분을 설명하고 고치는 방법은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크는 자체 엔진에 오브젝트마다 URL을 설정해서 손쉽게 고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전했다. 게임 개발 중 버그를 발견하면 언제나 서로에게 링크를 전달하고, 에디터를 이용해 고칠 수 있도록 함으로써 14시간의 시차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마크는 설명했다.

    다시 디자인 이야기로 돌아와서, 여기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커브구간의 회전이었다. 프로토타입대로 90도 회전을 줄 경우 게임이 매우 어색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도를 좁혀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구상해야만 했다. 마크는 턴을 해결하기 위해서 블록형 기반 맵의 음악적 박자는 그대로 가져가면서, 블록 하나하나의 길이를 늘리고 커브를 추가하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커브의 느낌을 좀 더 살리기 위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방지턱을 추가해 부딪히는 효과를 적용한 것도 특징이다. 마크는 이러한 요소들이 썸퍼에 독특한 분위기를 더한다고 덧붙였다.

    ▲ 각 블록을 늘리고 유연한 커브를 주는 방향으로 재구성했다

    ▲ 그렇게 완성된 '썸퍼'의 독특한 커브 요소

  • 비주얼 개선을 위한 후처리 작업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커브와 회전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는, 게임을 더욱 흥미롭게 보이도록 하는 데 신경을 써야만 했다. 이날 마크는 "모든 게임은 처음 봤을 때 흥미로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방법으로든 게임이 흥미롭게 보이게 할 수 있지만, 썸퍼의 경우는 비주얼을 보강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후처리 기법들을 사용해야만 했다. 먼저, 블루 효과를 화면 전체적으로 적용해 크롬 느낌의 딱정벌레의 광원 효과를 더욱 풍부하게 했고, 큐빅 디스토션(Cubic distortion) 효과를 적용해 화면을 전체적으로 왜곡시켰다. 이를 통해서 화면 중앙에 있는 딱정벌레의 왜곡이 두드러지면서 속도감을 더욱 살려낼 수 있었다는 것이 마크의 설명이다. 그밖에 모든 장면에 걸쳐 색감을 조정하거나 하는 것들이 게임의 전체적인 느낌에 변화를 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비네팅 효과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가장자리 부분을 조금 어둡게 함으로써 시선이 중앙에 집중되도록 적용했고, 노이즈 비네팅을 추가로 적용해 배경이 너무 어둡게 보이는 것을 일정 부분 수정할 수 있었다.

    ▲ 후처리 작업을 거친 후 '썸퍼'의 모습


    ■ 2015년에서 2016년 - VR을 향한 과감한(?) 도전



    멀리 돌아온 것처럼 느껴지지만, 커브 문제와 일정 수준의 비주얼을 갖추고 나니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마크. '내가 뭔가를 하고 있고, 그 길이 완전히 잘못되지는 않았다'는 느낌과, 처음부터 차근차근 스스로 여기까지 왔다는 두 가지 느낌을 받은 그는 프로그래머로서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개발을 계속해오면서 게임에 VR 모드를 추가하리라는 생각은 초기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2015년이 되면서 온 세상은 VR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고, 수많은 매체들이 VR의 장밋빛 미래에 대한 예측을 했으나, 그 이면에는 멀미를 일으킨다는 단점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마크는 당시는 회상하며 자신 또한 '썸퍼'를 VR로 즐긴다면 멀미를 일으킬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런 와중에, 마크는 중국에서 개최된 GDC 차이나 2015에 참가해 한 강연을 듣게 된다. '멀미를 최소화하는 VR게임 디자인하기'라는 제목을 가진 강연이었는데, 이 강연을 통해 마크는 속도의 변화를 느끼지 않으면 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기차를 타고 있을 때 멀미를 잘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 3일간의 VR 개발 마라톤이 벌어진 마크의 사무실

    그 강연으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마크는 마침 브라이언이 한국에 방문해 있던 3일을 활용해 VR버전 '썸퍼'를 개발하는데 열중한다. 먼저 고민한 것은 VR에서의 시야각으로, 모니터로는 약 150도 정도의 시야각으로 표시되지만 VR에서는 헤드셋의 렌즈에 대해 결정되는 수가 많기에 100도로 설정했다. 시야각을 좁히면서 스케일을 두 배로 표현한 것도 VR을 위한 특징 중 하나다. 이 때문에 VR에서는 실제로 느끼는 것 보다 게임이 2배 이상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이 마크의 설명이다.

    딱정벌레의 크기나, 보스 몬스터의 크기를 VR에 맞춰 새롭게 설정하는 것 또한 중요했다. 딱정벌레의 크기가 너무 클 경우 게임플레이 화면을 가리게 될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보스 몬스터의 크기 또한 기존보다 4배 정도 키워서 플레이어가 VR의 특징을 십분 활용해 위로 올려다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주의를 기울였다. 그 결과, VR버전 '썸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고, PS VR 런칭 타이틀로서 출시되는 영광 또한 누릴 수 있었다.

    ▲ 위를 올려다볼 수 있도록 보스의 크기를 4배 정도 확대했다



    ■ 외부 QA없는 게임 개발, 큰 힘이 되어준 각종 게임쇼들


    마지막으로 마크는 외부 QA 없이 '썸퍼'를 개발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요소를 끝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7년동안 하나부터 열까지 '썸퍼'를 개발해오면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계기로 마크는 먼저 20회 이상 각종 게임쇼에서 참가했던 경험을 설명했다. 비록 외부 QA는 없었지만, 여러 게임쇼를 참여함으로써 직접 유저들에게 '썸퍼'를 선보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매우 값진 경험이라고 설명한 그는 이를 통해 게임에서 보이던 여러 이슈들을 점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밖에 소니의 지원을 받아 플레이스테이션4의 키오스크 데모를 배치했던 것과 PS VR관련 컨설팅을 활용한 것도 게임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는 꿈 하나로 시작해 7년이라는 시간 끝에 '썸퍼'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마크와 브라이언. 마크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앞으로 다시는 하지 않을 일"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했지만, 게임을 개발하는 시간 동안 얻은 값진 경험은 무엇으로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또, 아직 '썸퍼'에게는 HTC 바이브와 오큘러스를 지원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고, 그밖에 잔여 버그와 고객지원에 대한 고민도 아직 남아있다. 마크와 브라이언, 이들의 도전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