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엑스엘게임즈 조용래 기획팀장


'당신이 만들어 가는 MMORPG'라는 슬로건과 함께 2013년 1월 OBT를 시작한 아키에이지가 어느덧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최근 온라인 게임 시장이 다소 주춤하는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성장해 나가고 있는데요.

이렇게 오랜 시간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는 게임이라면 장르를 불문하고 고민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 어떤 새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해 줄 것인지, 혹은 오랜 시간 유지되던 콘텐츠에 변화를 주는 등 유지 보수할 거리가 산더미죠.

새집도 5년 정도 쓰면 낡고 상처난 벽지를 새로 도배하거나 어디 한군데 삐걱거리는 부분을 수리하잖아요?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들어간 노력 이상으로 유저들에게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5일 판교에서 개최된 NDC 2017에 강연자로 나선 아키에이지 '조용래 기획팀장'을 통해서는 라이브 서비스 5년 차에 접어든 아키에이지의 업데이트 방향이나 실제로 어떻게 반영해 왔는지에 대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라이브 서비스가 오래 이뤄진 게임을 '종합 병원에 입원한 환자'로, 라이브 업데이트를 준비하는 사람을 '종합 병원의 의사'로 알기 쉽게 비유해서인지 마치 일기를 듣는 듯한 편안한 분위기였던 강연 내용을 정리해 봤습니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2007년 엑스엘게임즈에 입사해서 2012년까지 아키에이지를 개발한 후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서비스에 앞서 휴식차 꽃보다 청춘에서 유명한 라오스를 갔다 왔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 강남역 퍼포먼스도 했었는데 기억하시는 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당시 건강 검진도 함께 했는데 충격적이게도 대장암 2기, 암 진단을 받았어요.

가족력에 암으로 사망하신 분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수술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왼쪽 눈은 녹내장 때문에 시력이 좋지 않은 상태인데 이게 뾰족한 완치 방법이 없지만, 현재까지도 관련 약을 꾸준하게 먹고 있어서인지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쯤 되니 NDC 강연인데 무슨 슬프게 병원 이야기만 하냐고 의문을 가지실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몸 상태가 안 좋은 건 사실이지만,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수술이나 치료로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의 강연도 아키에이지와 개발자에 대한 이야기를 환자와 의사 관계처럼 병원에 빗대어 이어 가보려고 합니다.


라이브 업데이트에 있어서 중요한 4가지 요소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인식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아키에이지에 대입해 본다면 문제점 파악 단계겠죠?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이 급작스럽게 암이나 백혈병처럼 무거운 병명을 의사로부터 통보받기도 하는데 대부분 첫 반응은 "선생님, 검사가 잘못된 거 아닌가요?", "제가 그럴 리 없습니다. 이렇게 건강한데요?" 정도죠.

보통은 쉽게 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힘들어지기 마련입니다. 이제 5년 차에 접어든 아키에이지 역시 수많은 업데이트가 있었지만, 유저분들이 모두 환영했던 건 아닙니다. 마음에 드는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별로인 부분도 분명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런 요소들을 실제 게임 내 수치/통계 자료나 반응, 유저들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하여 '이 부분이 잘못되었구나' 혹은 '이 부분을 고쳐야겠구나'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으로 환자, 즉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증상에 따라 대응 방법이나 정확한 시기를 결정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개발에 투입되는 인력이나 시간 등 리소스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게 급한지, 급하다면 바로 치료를 할지 아니면 조금 여유를 두고 지연 치료를 할지를 결정해야 하죠.

전쟁에서 보면 부상병에 대해 바로 수술이나 중대한 조치를 해야 하는 경우, 혹은 간단한 응급치료 후 경과에 따라 후속 조치를 하는 경우로 나뉘는데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여기에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며, 업데이트나 패치 내용에 대해서는 유저들과 공유하여 공감대를 형상하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실제 업데이트는 어떻게 반영되었나?

제가 기획팀장이 된 후 가장 먼저 '우리'부터 진단을 했습니다.

우선 기획팀을 봤을 때 유연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서로 간 이름이 아닌 닉네임으로 부르도록 바꿨습니다. 다른 회사에서도 많이 채택하고 있는 형태인데, 이 닉네임 제도를 도입했을 때 사실 팀원들의 반발이 심했어요.

하지만 서로 간의 커뮤니티와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건 정말 필요한 요소라 단행을 한 부분이고 지금은 크게 어색하지 않은데요. 일례로 과거 모 항공사에는 추락이나 연착 등 사고가 잦았습니다. 원인을 파악해보니 부기장이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기장이나 상급자에게 정확하게 의견을 전달해야 하는데, 사관학교 출신 선후배 관계다 보니 그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결국 원활하지 않은 의사소통이 사고로 이어진 셈이죠.

그리고 기획팀에는 약 20명 정도의 팀원들이 있는데, 기존에는 다른 콘텐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어서 개선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공유하는 자리도 만들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실제 아키에이지 내 업데이트나 패치는 반년 이상 장기적으로 나타날 결과를 보고 이뤄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현재'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생기기도 합니다.

실제 사례로 설명해 드리면 작년 여름 신규 종족과 능력 추가 등 '오키드나의 증오' 업데이트가 있었습니다. 당시 서비스 3년 반 정도가 된 시점으로 새로운 유저를 유치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기 때문에 환자에 대한 파악이 먼저 이뤄졌죠.

대표적으로 유저들이 떠난 이유를 살펴보니 기존에는 생활 콘텐츠를 즐기는 유저를 약 1/4 정도로 봤고 나머진 PVP를 즐기는 육식유저로 봤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와 플레이패턴 등 정확한 진단 후 99%를 초식유저라고 정의를 내렸고, 이 중에서 일부는 PVP 콘텐츠도 함께 즐기는 유저라고 판단했습니다.

즉, 신규 유저들이 정착하거나 기존 유저들이 꾸준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패치 방향이라던가 보완할 콘텐츠 개선 등 바로 수술이 이뤄져야 할 부분이었죠.


▲ 녹색은 초식, 파란색은 육식 유저를 뜻한다


그래서 당시 신규 캐릭터는 30레벨까지 빠르게 레벨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고, 이탈률이나 플레이 지속 사항을 체크했습니다. 기존 종족 유저들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복귀 회원과 신규 회원님들이 플레이한 드워프와 워본의 이탈률은 실제로 줄었습니다.

여기에 증오 능력과 대가 시스템이 추가되었고, 관련해서는 업데이트 후 간담회나 아미고를 통해서 유저분들에게 관련 소식 대부분 공유 드렸습니다. 가끔은 글보다 영상이 주목도가 높고 이해도 쉽다고 판단해 같은 내용을 영상으로 찍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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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초창기 노동력 시스템은 아키에이지 후발 주자들이 선발 주자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목적으로 제공된 것인데, 생산에서 제작까지 모두 혼자 가능하도록 해주던 요소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부 노동력 회복 아이템에 재사용 대기 시간을 두는 등 제한이 이뤄졌습니다.

당시 노동력이 무한에 가깝게 제공되면서 생활점수가 마치 쓰진 않아도 어느샌가 엄청나게 불어나 있는 포인트처럼 쌓여 있었고, 이후 패치를 통해 이를 소비할만한 요소를 도입, 개선을 했습니다. 모니터링을 해 보니 지렁이가 제법 비싸게 팔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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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경제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던 무역은 조금 더 여유를 두고 진행해도 될만한 요소로 분류되어 간단한 패치 후 2017년 1월 태초 업데이트를 통해 본격적인 개선이 이뤄졌습니다.

사실 아키에이지에서 무역으로 인한 금화 생성량은 당시 전체의 60%에 해당할 정도였는데, 특별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으나 다른 콘텐츠에 비해 너무 편중되고 있다고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보고 시스템 개편이 진행되었으며, 지금은 40% 수준까지 감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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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비가 파괴되면 게임 자체를 접거나, 해당 요소로 스트레스를 받는 유저들을 위해 확률을 개선했죠. 그 결과 업데이트 전후로 강화 시도수는 거의 비슷했지만, 성공 확률이 높아지고 실패율이 줄어들었습니다.

이와 함께 아이템 제작 역시 개편했는데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뭔가 목표를 부여했습니다. 초반에는 오키드나의 증오보다 제작 재료가 과했거나 변경된 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저조한 편이었지만, 최근 밸런스 패치 이후에는 그래프가 역전되어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 업데이트를 기점으로 한 강화, 제작 관련 수치 변화(클릭 시 확대)


추가로 아키에이지의 레이드는 대규모 세력 전쟁을 할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그만큼 보상이나 플레이 형식이 일반 사냥과는 차별화되어 있는데요. 유저들이 많이 접속하거나 뜸해지는 시간을 파악하여 해당 시간에 관련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조정을 했죠. 특히 관련해서는 2017년 중반에 특정 세력이 독점하는 현상 등 개선이 이뤄질 예정입니다.



유저들과의 소통은 강조하지 않아도 중요한 요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유저들과의 소통은 업데이트 방향을 결정하거나 개선점들을 체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서비스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감사하게도 게임 내에서 인연을 맺고 실제 결혼하는 유저들이 많더라고요. 가능하면 유저들의 결혼식에는 꾸준하게 참석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하객으로 아키에이지를 플레이하던 유저분들이 찾아오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순천, 청주 등 참 많이 다녀온 거 같습니다.

당장 기억에 남는 건 청주 결혼식에서 하객 한 분이 자동차 뒤집기 기술에 대한 의견을 주셔서 월요일에 출근해 "당장 잘 뒤집히게 만들어"라고 지시하기도 했죠. 지스타도 단순하게 참관만 하러 갔는데 레비아탄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신 분도 있었는데, 이런 의견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공식 홈페이지나 커뮤니티에서 유저들이 남겨주신 의견도 빼먹지 않고 체크하고 있습니다. 구릿빛 초승돌이랑 업그레이드에서 누락된 부분도 빠르게 수정될 겁니다.





지금의 아키에이지, 그리고 앞으로의 아키에이지

가끔 어떤 기획팀장이 되고 싶은지, 롤 모델이 누군지 물어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박원순 서울 시장이라고 답하곤 합니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마세요.

SNS에 올라온 것에 대한 피드백, 경로를 따지지 않고 개선점들을 반영해 보겠다는 부분 때문인데요. 물론 서울시 공무원들은 하나하나 피드백을 줘야 하니 불편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시민들이 실제로 어떤 것들을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지 빠르게 체크할 수 있겠죠.

화제를 좀 바꿔서 예전부터 집에 키우던 새가 있는데, 처음 모습은 약간 별 볼 일 없었는데 애정을 주고 관리를 잘하다 보니 지금은 훨씬 예쁘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바다에서 뛰어놀던 귀여운 조용래가 커서 똑같은 모습으로 지금 이 자리에 있네요. 아키에이지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노력하고, 보완해 간다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약간 뜬금없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게임 기획자의 발표인데 강연 중 이런 이야기를 한 건 "이제 아키에이지 업데이트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아키다워지는 업데이트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라는 글을 쓰기 위해 가져 왔는데요. 제가 회사와 노예 계약을 한 건 아니지만, 아키에이지가 서비스되는 동안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강연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현장 Q&A

여러 나라에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각국과의 커뮤니티는 어떻게 진행하나?

해외 서비스를 담당하는 분들이 있다. 현지화와 PM 업무를 보는데, 전투 밸런스 패치 시 해외 특정 데이터를 요청하기도 하고 퍼블리셔에서 주기도 한다. 물론 나라별로 차이가 있지만, 받은 의견은 반영을 고려해 본다.


퍼블리셔와의 반발이나 견해차는 없는지?

견해차가 있긴 한데 아마도 나라마다 MMORPG를 즐기는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이 가장 큰 차이를 보여주는데 던전앤파이터 같은 종류를 좋아하는 거 같고, 일부 콘텐츠는 안된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유저들의 피드백 성향은 어떤가?

커뮤니티에는 부정적인 피드백이 많이 올라온다. 일반적으로 만족하는 분들 보다는 아쉬운 점이 있는 분들이 실제로 적기 때문이다.

다만, 피드백은 유저 동향과 데이터, 실제 플레이 체감 등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북미는 어떤 업데이트까지 진행되었나?

오키드나의 증오 업데이트 후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신규 유저의 수가 궁금하다

태초 업데이트 시 신규 유저가 많이 유입되었는데, 여기서 신규 유저란 실제로 아키에이지를 경험해 보지 않은 인원을 말한다.

넥슨 채널링도 어느정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 참고 - 독립 서버군 키프로사 신규 유저 그래프(클릭 시 확대)


신규, 복귀 유저를 모으기 위한 광고나 유치 전략은?

개인정보 수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로 게임을 즐기거나 아키에이지를 즐겼던 유저들을 대상으로 타겟팅 광고를 한다.

그리고 관련 이벤트를 꾸준하게 하고 있지만, 기간이 종료되거나 지급된 아이템등이 사라지면 그만두는 경우도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콘텐츠로 풀어가면 좋을거 같다고 생각한다.


그 외 따로 마케팅하는 부분이 있다면?

최근에는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실제로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평가도 많은데, 아키에이지를 잘 아는 사람이 운영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패치나 업데이트 시 초식, 육식 유저 중 어느쪽에 비중을 두고 있나?

강연에서도 언급했듯이 초식 유저에게 비중을 두고 있다. 아키에이지 게임 시스템상 초식 유저를 위한 게임 콘텐츠는 항상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업데이트 결과에 대해 좋지 않은 의견을 접할 때 어떤가?

아키에이지를 즐기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는 유저들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점에 대해 충분히 안좋은 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해당 의견을 줬을 때 뜻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꽤 오랜 시간 논의를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