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탑솔러의 나라입니까` 한국의 탑라이너가 임팩트있는 플레이를 펼칠 때 나오는 이야기다. 이 문장은 단순한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수 없다. 제갈량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1세대의 `래퍼드` 복한규부터 2017년도를 제패한 짜황 `큐베` 이성진까지. 우리나라 탑라이너들은 유독 타 지역에 비해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곤 했다.

여기서 잠깐. `다른 라인도 마찬가지인데?` 라는 의문을 제시할 수도 있다. 물론, 한국에는 반박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 `페이커` 이상혁이나 녹슬지 않은 피지컬과 연륜을 겸비한 다른 라인 선수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평균적인 기량으로 생각해보자. 임팩트 있는 경기력으로 우리를 환호하게 한 해외 선수들 중 탑라이너는 누구였는가. 다른 라인에 비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 한국은 명실상부한 탑 강국이다. LCK가 세계 최고의 지역 리그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도 이 유능한 탑라이너들이 한몫했다. 후반 운영의 핵심이 되는 라인이 바로 탑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치고 빠지는 유려한 플레이나 기습적인 다인 압박 상황에서 센스있게 살아가는 슈퍼 플레이는 스플릿 구도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곤 한다.

이에 더해 곧 시작될 2018 시즌에는 탑라이너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패치의 변화에 따라 탑에 순수 탱커형 챔피언보다 브루저류의 챔피언이 등장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현재 프로 선수들을 포함해 최상위권에서 유행하고 있는 픽을 살펴보면 오른을 제외하고는 카밀, 갱플랭크, 제이스, 나르 등 개인의 피지컬을 뽐낼 수 있는 챔피언이 대부분이다. 팀플레이인 만큼 다른 라이너의 개입도 배제할 수 없긴 하지만, 우선적으로는 탑라이너의 순수 기량이 먼저 바탕이 되어야 하는 메타다.


■ 우린 걱정 없다! - KSV, 킹존 드래곤X, kt 롤스터


2017 시즌 동안 강팀으로서의 입지를 견고히 다진 KSV(전 삼성 갤럭시)와 킹존 드래곤X(전 롱주 게이밍), kt 롤스터는 이런 변화를 반가워할 팀이다. 세 팀 모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매우 강한 탑라이너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세 팀의 탑라이너들은 시즌 내내 강력한 라인전 능력과 단단한 스플릿 푸시 운영을 선보였다.

KSV 소속 `큐베` 이성진은 2017 롤드컵 우승컵을 거머쥔 팀 내에서도 단연 에이스로 꼽히는 선수다. 이성진은 `앰비션` 강찬용의 영입과 함께 팀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2016년도부터 성장에 시동을 걸었다. 가장 적은 케어를 받고도 묵묵히 버티는 모습으로 이목을 끌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최정상급 탑라이너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 어떤 메타가 와도 늘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며 어느 하나 모자람 없는 완벽한 오각형의 능력치를 갖추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킹존 드래곤X의 탑을 맡고 있는 `칸` 김동하는 말 그대로 혜성처럼 LCK에 등장했다. 2017시즌 서머 스플릿에 투입된 김동하는 데뷔전에서 `스멥` 송경호를 솔로 킬 내며 눈도장을 단단히 찍었고, 이후 매 경기 특유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호전적인 플레이로 승리를 견인하며 LCK 우승컵까지 팀에 안겼다. 특히, 그의 제이스는 필수 밴 목록에 오를 정도로 피지컬이 굉장히 돋보이는 선수다.

kt 롤스터의 `스멥` 송경호 역시 피지컬 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선수다. 그를 가장 처음 빛나게 했던 챔피언이 리븐이었다는 점만 봐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구 락스 타이거즈 시절, 절정의 기량을 뽐내며 `세최탑`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던 송경호는 kt 롤스터로 이적 후에도 여전히 캐리형 탑솔러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피오라, 레넥톤 등을 선택했을 때 유독 더 빛나던 송경호였기에 브루저 메타에서 분명 자신의 캐리력을 아낌없이 보여줄 것이다.


■ 왕좌 내준 SKT T1, `운타라`의 어깨가 무겁다


SKT T1은 분명 LCK 강팀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팀이지만, 탑만 놓고 봤을 때는 불안함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후니` 허승훈-`운타라` 박의진 투탑 체제였던 2017 서머 스플릿에도 SKT T1의 탑 라인은 불안 요소 중 하나로 꼽혔다. 앞서 소개한 세 팀과 비교해 봤을 때 기량 면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허승훈과 박의진이 상반된 플레이 스타일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팀이 그 부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컨디션 난조를 메우는데 급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2017 시즌 종료 후 주전급이었던 허승훈이 계약을 종료하면서 이번 시즌은 온전히 박의진의 몫이 됐다. `트할` 박권혁이 새롭게 팀에 합류하긴 했지만, 경험이 전무한 신인이기에 큰 기대를 하기 힘든 상황이다. 더군다나 팀이 오랜 기간 지켜온 왕좌서 내려온 상황이기 때문에 박의진의 어깨는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다.

긍정적인 지표는 박의진은 언제나 솔로 랭크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해왔다는 점이다. 솔로 랭크가 곧 대회 성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솔로 랭크 최상위 선수는 분명 언제든 터트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최상위권 팀에서 반년을 보내며 쌓은 경험치도 무시할 수 없다. 박의진이 스토브 리그 동안 연습과 피드백을 통해 기량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가 2018 시즌 SKT T1 탑 라인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다.


■ 상대적 열세 팀 탑라이너들의 반란?

기존의 강팀 외에 주목해서 봐야할 신예 선수가 한 명 있다. 바로 아프리카 프릭스의 `기인` 김기인이다. 올 시즌 `마린` 장경환의 공백을 메우게 된 김기인은 말 그대로 다크호스다. 지난여름, 시즌 중반에 투입되며 깜짝 데뷔한 김기인은 빠르게 무대에 적응해 폭발력 있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단숨에 유망주로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2018년이 가장 기대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진에어 그린윙스의 `소환` 김준영과 bbq 올리버스의 `크레이지` 김재희, MVP의 `애드` 강건모는 꾸준히 팀의 지붕을 지켜온 선수들이다. 팀의 부진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긴 했지만, 개인 기량만큼은 절대 뒤쳐지지 않는다. 단단한 라인전 능력과 이따금 보여주는 피지컬 플레이가 이를 뒷받침한다. 팀원 간의 합이나 운영을 조금 더 끌어올린다면, 충분히 치열한 탑 대전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아쉬움을 남기는 선수는 락스 타이거즈의 `린다랑` 허만흥과 콩두 몬스터의 `로치` 김강희다. 아직 뚜렷한 장점이 드러나지 않은 데다, 라인전도 약한 편이기 때문에 팀의 약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올 시즌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번에는 정말 이 악물고 연습해서 이 한 치의 양보 없는 브루저 싸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제 대망의 LCK 개막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각양각색 10명의 선수가 펼치는 2018년의 탑 대전, 그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