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봉주식회사 정봉재 대표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정봉재 대표는 넥슨의 사업본부와 신규개발본부의 팀장으로 근무한 후, 모바일 게임 개발의 꿈을 쫓아 지난 2014년 인디 게임 개발사 아이봉주식회사를 설립, 현재 하늘에서 펼쳐지는 배틀로얄을 표방하는 신작 '도그파이터:월드워2'를 개발 중이다.

'강한 자가 오래가는 것이 아니고 오래 가는 자가 강한 것이다'

인디 게임 개발사 아이봉주식회사의 정봉재 대표는 스스로를 '듣보잡'이라고 자청하면서도 꾸준히 글로벌 히트작 출시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난 IGC 2017에서 인디 게임 개발과 마케팅 방법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던 그는 올해엔 '아직 아이 망하니?'라는 주제로 창업 5년 차를 맞이한 스타트업의 생존 전략을 소개하기 위해 IGC 강단에 섰다.

적자생존, 즉 환경에 잘 적응하여 오래 살아남는 자가 정말 강한 것이라는 격언처럼, 인디게임 개발자로서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는지가 아닌, 어떻게 하면 생존하고 굶어 죽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한 솔직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 인디 게임 개발사 창업 5년 차,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다"


강단에 선 정봉재 대표는 먼저 게임으로 크게 성공해서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소개하는 강연이 아니어서 죄송하다고 표현했다. 그의 강연은 창업한 지 벌써 5년이 흘렀지만, 크게 흥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크게 망하지도 않은 인디 개발자로서 그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노하우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정봉재 대표는 한빛소프트에서 1년, 이후 넥슨에서 7년간 근무한 후 지난 2014년에 창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모바일 게임 자체 개발부터 콘솔 게임 개발, 로컬라이제이션과 컨버팅 외주개발 등 게임 개발 지원, 게임 광고 수익화를 위한 최적화 개발, VR, AR 게임, 웹사이트와 서비스 앱 개발, 그 종류도 다양하다. 충분히 게임 개발자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을만한 고된 행보였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이 회사가 생존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었다고 회고했다.

▲ 갖은 역경을 이겨낸 그는 현재 콘솔 게임 '도그파이터: 월드워2'를 개발 중이다


◎ "한 명의 큰 성공 뒤에는 100명의 실패가 있다는 점을 잊지말자"

정봉재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지난 2014년, 업계에는 모바일 게임으로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오른 이들의 영웅담이 넓게 퍼져 나갔고, 너도나도 창업을 통해 성공을 꿈꾸는 장밋빛 분위기가 조성됐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나름의 노력을 통해 먼저 앞서나간 이들만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으며, 대다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소견이다.

언론과 정부도 실패한 다수의 이야기보다 성공한 소수 모델만 띄워서 본보기로 삼곤 하는데, 한국은 창업이 실패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적으로 받아줄 수 있을만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창업 생태계가 미국처럼 왕성한 것도 아니며, 실패 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은 무시할 수 없다. 그는 1명의 성공 뒤에는 반드시 100명, 많게는 1,000명 이상의 실패자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게임 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부정적인 이야기에 매립되어 그저 안좋은 방향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는 레드오션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 업계이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큰 돈이 흐르고 있는 시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는 기회를 계속 모색하며, 언젠가 꼭 찾아올 성공의 기회를 잡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힘든 상황에서도,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 게임으로 성공하려면? '성공을 위한 요소'들에 철저히 대비하자

게임으로 성공을 거두려면, 게임을 '잘' 만들면 된다. 훌륭한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 기획자가 만나면 좋은 게임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더 커진다. 하지만 창업을 하면 모든 것을 혼자 하거나 좋은 파트너를 만나야 한다. 여기서 좋은 팀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원체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축이라도 무너지게 되면 성공 가능성은 매우 줄어들기 때문에, '함께하는 사람'은 창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자본의 논리와 흐름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관심을 둬야 한다. 인디 개발자들은 자칫 이러한 부분을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크게 성공한 하나의 자체 개발 타이틀 이후 다른 게임들을 인수해서 회사를 계속 성장시키는 형태의 자본의 논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저 게임을 잘 만든다는 것은 '창업'의 범주에서 보는 사업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게임을 만들고 1~2년이 흐르면 자존감을 잃는 개발자들도 많은데, 이때 그저 우울한 망상에 젖어있을 필요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이미 구축된 산업체계 속에서 게임을 개발하고, 비즈니스를 하는 후발주자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 때문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시대가 제시하는 분위기와 지표도 중요하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 큰 성공을 이룬 이들은 그 시대가 제시하는 분위기를 읽은 자들이다

정봉재 대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멘탈'과 '피지컬', '인맥'과 '동료'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월 고정적인 월급을 받다가 창업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는 시기가 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돈 한 푼 없이 개발을 계속하다 보면 초라해지는 마음이 들 수 있는데, 그때 무너지지 않을 멘탈은 창업을 이어가기 위해 필수적이다.

창업을 하면 회사에 다닐 때보다 배 이상의 육체적 노동이 필요하다. 남들이 잘 때 일어나서 더 공부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얼마 안돼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좋은 게임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성과가 다음 게임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인맥도 중요하다. 게임 홍보부터 퍼블리싱까지 과정 대부분에서 인맥이 요구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봉재 대표는 우연하게 만났던 사람들의 명함 하나하나를 돌아보던 중, VR 게임 개발과 관련된 일을 맡을 수 있었고, 이 일을 진행하며 고단했던 빈궁기를 한번 넘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게임을 개발하다보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 쉽게 갈라지거나 다툼이 길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같은 뜻과 방향성을 가진 동료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 창업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네 가지 요소들

그는 앞서 소개한 네 가지 요소에 끝으로 '네거티시즘'이라는 요소를 하나 더 추가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장밋빛 꿈에 젖어 창업을 시작하곤 하는데, 부정적인 면과 최악의 경우를 미리 생각하고 대비책을 상정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미리 염두에 두지 않으면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여기에는 실질적인 계산도 포함된다. 정봉재 대표는 회사를 운영하며 회사 통장에 단 2원만 남을 때까지 돈이 바닥난 적도 있고, 대기업에 재직 중일 때는 당하지 않았던 심한 '갑질'을 경험한 적도 있다며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자신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지 미리 생각하고 대처를 계획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소규모 인디 게임 개발사이기에 가능한 것들을 최대한 영리하게 활용해야 한다. 메이저에서는 구조적 문제로 쉽게 할 수 없는 컨셉들이 많이 있는데, 이러한 아이디어를 채용하여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인디 개발사의 강점이다. 사회적으로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소재들을 제대로 다루기만 한다면, 큰 회사들이 움직일 수 없는 영역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 드러나지 않더라도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인디 개발사들도 많다


◎ "생존하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기회는 꼭 찾아온다"

정봉재 대표는 어렵고 힘든 시기이지만 살아남기만 한다면 기회는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계속해서 안 된다면 더 늦기 전에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완전한 포기가 아닌 '다시 업계로 돌아가 내공을 쌓는 시간을 가진다'는 의미다.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의 전략 중 하나라고 불리는 것처럼, 안될 것 같은 상황에는 후일을 도모하는 것도 인디 개발자가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다. 모두가 성공할 수 없다면 누군가는 떠나야하는 것이 순리인데, 분명한 대책이 없다면 재취업의 기회조차 사라지기 전에 일보 후퇴할 필요가 있다.

그는 여전히 게임 산업 자체가 고착화되어 있고 저성장으로 가고 있지만, 게임 산업에는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 기회는 해외 쪽으로 시야를 넓히면 더 커지고, 메이저가 할 수 없는 인디스러운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 인디 개발자들끼리 힘을 합친다면 더더욱 커질 수 있다.

살아만남는다면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살아보니까,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