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코 오영욱 게임 디자이너]

  • 주제: 발굴되지 않은 한국 게임의 역사
  • 강연자 : 오영욱 - 블로코 / BLOCKO
  • 발표분야 : 커리어
  • 권장 대상 : 게임역사에 관심이 많은 개발자, 연구자, 학생
  • 난이도 : 사전지식 불필요 : 튜토리얼이나 개요 수준에서의 설명


  • [강연 주제] 게임의 역사가 점점 길어지며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상당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게임 역사에 대한 시도가 계속 있어왔으나, 주로 일본이나 미국 중심으로 흐르거나 산업적인 부분이나 현재 성과가 나는 부분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경우. 아니면 마니아 시장에서 개인적인 경험에 집중하여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한국게임의 역사 집필 이후로 꾸준히 게임 사료들을 모아오며 한국안에서 게임계에서 어떤 일이 있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게임 개발과 문화가 성립되었는지 관심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잡지등의 기록으로 한국 최초의 게임이라 언급되는 신검의 전설 이전에 국내 게임개발씬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와 국내의 인디게임(혹은 아마추어 게임)들을 다루고, 이들이 한국의 게임산업의 계보에서 어떤위치를 차지하고 정리할 예정입니다. 또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의 각종 공모전과 아마추어 게임들에 대한 지원으로 게임의 다양성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1987년, 재믹스 V로 게임에 입문한 오영욱 개발자는 1992년에 IBM-PC XT를 들이며 본격적으로 PC 게임 시장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리고 2006년, 게임 개발자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한국 게임의 역사를 정리하는 취미도 함께 갖게 됐다.

    그는 지금도 게임 개발 관련 자료를 수집, 정리한다. 게임 잡지에 실린 기사나 인터뷰를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작업 중이다. 최근에는 게임 잡지에서 컴퓨터 잡지, 전자 잡지 등으로 관심사가 넓어지고 있다.

    오영욱 개발자는 이번 NDC 2019 무대에서 그간의 조사로 알게 된 한국 게임사의 기원 및 게임 개발자 문화의 탄생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 주제1 - '신검의 전설' 이전에도 있었다! 한국 게임사의 흐름

    '신검의 전설'이 출시된 1987년을 한국 게임사의 원년로 보는 사람들이 있고, 오영욱 개발자 역시 이를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인디게임 씬 혹은 아마추어 게임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움직임이 있었고, '신검의 전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문화적 과정을 본다면 실제 우리나라의 게임 역사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게 오영욱 개발자의 생각이다.

    1970년 남산 어린이 회관에 '과학 오락실'이 개설되어 1974년까지 운영되었는데, 이는 국내 오락실 보급의 시초로 평가된다. 당시엔 학습 지도를 목적으로 과학 오락실에 어떤 게임이 있는지 기재된 이용편람이 별도로 나오기도 했다.

    오영욱 개발자는 당시 국내 게임 산업이 수출 중심이었다고 설명했다. 가정용 TV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기에 가정용 게임 개발이 시기 상으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림포스 전자라는 국내 업체가 당시 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퐁' 같은 게임의 클론 게임을 만들어 수출했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정리해보면, 1983년 이전에는 일종의 자동 판매기, 혹은 아케이드 이큅먼트가 발전하던 시기였다. 또한, 1979년 11월, 한 컴퓨터 잡지에 '미사일 인베이더 만들기' 같은 기사가 게재된 부분에서 알 수 있듯, 개인이 직접 게임을 만들어보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1970년대 말부터 외국 마이크로 컴퓨터들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되었고, 1980년에는 국산 PC에 대한 뉴스가 등장했다. 하지만 1981년 전까진 아직 한국에서 컴퓨터 자체 생산이 안 되던 시절이이었으나, 컴퓨터 산업 자체에 대한 관심도는 높았기에 Basic에 대한 강좌나 마이크로 컴퓨터 활용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1981년부터는 국산 PC 게임 개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삼보전자에서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었고, 금성전자에서 '국산1호' 마이크로 컴퓨터를 개발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1983년은 이른바 정보산업의 해였다. 한국의 미래는 정보산업에 있다는 이유로 컴퓨터 보급 등을 국가에서 적극 장려했다. 또, 오영욱 개발자는 전자 잡지들이 초기 개인용 PC 문화를 견인했고, 이후 월간 컴퓨터학습을 비롯한 컴퓨터 잡지에 바톤을 넘기면서 80년대 중반까지 PC나 게임이 계속 논의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이 1987년에 발표되며 산업 발전 역시 급물살을 탔다. 미리내 등 국내 1세대 게임사도 이 시기에 설립됐다. 그리고 같은 해, 우리나라의 첫 자체 개발 게임인 '신검의 전설'이 출시됐으며, 1989년에 케텔(KETEL)에 개오동(개털 오락 동호회)가 설립되자, 수많은 게임 매니아들이 이곳에 모였다. 이후 1993년, 하이텔에 개발 제작 동호회가 설립되고, 음지에 있던 게임 개발자들이 소스 제작 기법 등을 공개하며 본격적인 게임 개발 문화가 퍼지게 됐다는 것이 오영욱 개발자의 설명이다.


    1990년대부터는 게임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들이 속속 창간됐다.1992년 12월, 제우미디어에서 게임 챔프를 창간함과 동시에 제 1회 시나리오 공모전이 개최되었고, 1995년에 등장한 PC 게임 잡지들은 국내 게임 산업의 트렌드가 PC 게임으로 옮겨지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제우미디어의 PC 챔프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또한, 1990년 이후로 수많은 게임 공모전이 열렸다. 97년에 하이텔 게임제작 동호회에서 100k 게임 공모전을 열었고, 넥슨 김동건 본부장, 이은석 디렉터도 게임을 출품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9년에는 제우미디어에서 아마추어 게임 콘테스트를 열었고, 당시 수상작은 홈페이지를 통해 받을 수 있었다.

    2003년에는 한국 게임 개발자협회, 한국 게임산업개발원이 등장하며, 게임=산업이라는 인식이 확산됐고, 덕분에 2000년대 초까지도 정보통신부장관배 게임제작대회, 한게임 게임 공모전 등 수많은 공모전이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5년 국내 게임산업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라 부를 수 있는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면서 게임산업도 역풍을 맞았다. 2006년에 게임산업 진흥 관련 법률과 게임물 등급위원회가 생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오영욱 개발자의 생각이다. 덕분에 아마추어 게임에 대한 단속이 크게 강화됐다. 2010년 RPG 쯔꾸르 커뮤니티 '니오티'에 보내진 시정요청공문, 2019년 플래시 게임 배포에 대한 규제 이슈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0년 이후로 다시 인디 게임 시장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 박선용 대표가 '아웃 오브 인덱스(OOI)'를 개최하며 창의적인 게임들이 외부에 알려지는 계기를 만들었고, 그 다음 해 '부산 인디 게임 페스티벌(BIC)'가 열리며 인디 게임 시장이 다시금 활력을 찾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영욱 개발자는 "2016년부터 구글 인디 페스티벌이 열리는 것도, 유니티와 언리얼 등 플랫폼 홀더에 의해 꾸준히 관련 행사가 열리는 것도 OOI와 BIC의 노력이 없었다면 한참 뒤로 미뤄졌을 것"이라 말했다.




    ■ 주제2 - 역사는 현재를 만든다

    오영욱 개발자는 2014년 이후 자생적, 자본적으로 게임 대회 등의 창구가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라 평가했다. 현재 게임 개발에 관한 커뮤니티는 학원, 학교 등으로 거의 흡수되었고, 이러한 활동등에 규제 등의 제약이 있는 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아울러, 한국에서의 게임 개발은 제대로 된 흐름대로 이어져오진 않았지만, 역사적인 깊이가 있고 다음 세데에 계속 영향을 끼쳐왔다고 전했다. 특히, 초창기 취미 컴퓨터 활동들이 게임 개발자들을 키워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2006년 이후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었으며, 그 이후 생긴 게임 관련 법률들은 아마추어 게임계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게임산업진흥원이 한국콘텐츠진흥원에 흡수되는 등, 게임에 대한 지원이 문화적, 개발적으로 크게 위축된 점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여전히 불씨를 살려냈고, 조금씩 긍정적인 게임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만큼, 이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모두의 노력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