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스포츠를 바탕으로 만든 스포츠 게임은 다른 장르의 게임보다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오랜 역사를 지닌 점과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한 번쯤은 해볼 수 있다는 점도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된다.

본디 스포츠는 철저하게 실력 위주의 게임이다. 실력이 좋을수록 승리에 영향을 주기 쉬우며, 스포츠의 룰을 딴 게임 역시 이러한 성향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세계적으로 인기 높은 스포츠 게임인 피파 온라인도 선수의 능력치와 구단 가치가 승패에 영향을 주지만, 결국 플레이하는 사람의 실력이 떨어진다면 무용지물이다. 실제로 동료 기자는 낮은 구단 가치로도 쭉쭉 승리해 최상위 티어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원래 실력 게임은 대전 격투 게임이나 리듬 게임, 실시간 전략 게임처럼 대중적으로 다가서기가 어려운 편이다. 하지만 스포츠 게임은 스포츠의 대중성을 빌려 많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스포츠에 흥미가 있어서 다가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스포츠 팬들이 게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실제와 얼마나 흡사한가이다. 아예 대놓고 초인물로 나오는 스포츠 게임이 아닌 이상,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룰과 조작감은 불편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7월 출시된 '슬랭덩크 모바일'은 농구를 베이스로 만든 스포츠 모바일 게임이다. 90년대,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농구 만화 '슬램덩크' IP로 만들어졌으며, 출시 4개월이 지난 후에도 매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슬램덩크 모바일'은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게임으로 재탄생하면서 초반에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에는 원작의 인기와 별개로 게임의 조작감, 농구 시스템의 깊이에 호평을 받으며, 구글에서 올해를 빛낸 게임 캐주얼 부분에서 수상한 바 있다. 최근에는 e스포츠 대회를 개최 준비 중이니 단순히 IP만 씌운 게임은 아니란 소리다. 도대체 '슬램덩크 모바일'의 무엇이 스포츠맨들을 매료시킨 걸까.


향수를 일으키는 그 시절, 슬램덩크
SBS TV판 성우 등장

▲ 한 번도 못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는 전설의 애니메이션 OST 곡
(동영상 출처 - MBC Sports+)

슬램덩크는 1990년, 일본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연재한 스포츠 농구 만화다. 주인공 강백호를 필두로 고등학생들의 농구 일대기를 다루고 있으며, 6년 동안 31권의 단행본이 출판됐다. 90년 당시만 해도 학창시절, 반에서 슬램덩크를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나중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혹여나 애니메이션을 안 봤어도 가수 박상민이 부른 '너에게 가는 길'은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다.

농구에 관심 없던 친구도 슬램덩크를 본 이후 갑자기 농구에 관심이 커졌는데 실제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덩크슛을 던진다고 목마에 태워달라고 하거나 리바운드의 신이라 불러 달라는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만큼 90년대에 슬램덩크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좋아하는 만화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는 것은 팬으로서 기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안한 감정도 느끼게 한다. 특히, 원작의 힘이 세면 셀수록 후속작이 짊어지는 부담감 또한 많으니 말이다.

▲ 이름도 멋있는 윤대협

따라서 '슬램덩크 모바일'이 출시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꽤 많은 걱정을 했었다. 앞서 유명 IP의 힘을 믿고 게임이 만들어진 선례는 매우 많다. 그리고 게임 대부분이 그저 원작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생각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혹은 원작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기존 팬들의 마음을 충족하지 못한 일도 있다.

쉽게 말하자면 유명 IP의 힘만 너무 믿은 것이다. 게이머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게임이 재미있냐, 없냐다. 유명 IP를 사용한다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홍보 효과가 뛰어나니 출시 직후에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모인 인원들은 금방 빠져나간다. 정말 IP의 찐 팬이 아닌 이상 재미없는 게임을 단지 추억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붙잡지 않는다.

일단 유명 IP로 게임을 만들 때 중요한 첫 번째, IP를 얼마나 게임 속에 잘 녹였는지부터 보도록 하자. '슬램덩크 모바일'은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한다. 주인공인 강백호가 소속되어 있는 북산부터 올라운더 사기 캐릭터, 윤대협이 소속된 능남, 상양, 해남대부속고 등이 있다. 게임은 애니메이션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쉽게도 슬램덩크 내 최강의 고등학교인 산왕공고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애니메이션에서만 등장했던 구대철 등의 캐릭터가 참전한다.

▲ 원작의 그림체를 살린 일러스트

캐릭터는 8등신이 아닌 SD 형태로 등장하지만, 캐릭터들의 이목구비와 특징을 딱 짚어 모델링했기 때문에 어색한 느낌은 덜하다. 그간 만화에서도 웃긴 장면에선 2등신으로 등장한 적이 있었고 고전 게임 '슬램덩크 SD 히트 업'에서 SD로 다룬 적이 있기 때문이리라. 어색한 모습보단 귀엽게 잘 표현했다는 것이 먼저 생각나는 디자인이다.

한편, 애니메이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게임을 켜는 순간 흘러나오는 OST에 한 번 멈출 수밖에 없다. 로딩 중에 흘러나오는 가수 박상민의 '너에게 가는 길' 노래와 인트로 영상에서 스킵을 누르는 팬은 없을 것이다. 게임의 초반에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튜토리얼은 이러쿵저러쿵 설명만 하는 형태가 아닌, 강백호의 시점으로 왜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원작의 스토리 방식으로 풀어준다.

▲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따라간다

스토리는 일러스트 컷씬으로 진행되지만, 중요한 장면에서는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애니메이션도 90년대에 방영되었기 때문에 요즘 기준으론 썩 좋은 품질의 영상은 아니다. 90년대 애니메이션 특유의 흐릿한 질감으로 보여주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다. 또한, 당시 애니메이션의 성우를 맡았던 성우들이 대거 참여해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듣기만 해도 유쾌해지는 강백호(홍시호 성우)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원작 스토리를 감상할 수 있는 '싱글 모드'는 메인 스토리와 서브 스토리로 세분화해서 보여주며, 원작을 보지 못했던 사람이라고 해도 슬램덩크가 어떤 작품인지 충분히 알 수 있게끔 세밀하게 짜여있었다. 원작을 아는 팬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으리라. 대전이 싫다면 그냥 스토리만 보고 나와도 될 정도다.

스포츠 게임은 초기 진입 장벽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인데, 이를 스토리와 잘 엮어서 알기 쉽게 풀어주는 방식은 꽤 좋았다. 단순히 IP만 씌운 느낌보단 최대한 게임에 IP를 녹여내는 방법을 택했다.

▲ 그 시절 애니메이션의 감성이 충만하다



플레이는 쉽지만 숙련되긴 어려운 실력 게임
모바일 최적화의 정밀한 조작감

그렇다면 농구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어떨까? '슬램덩크 모바일'은 1개의 골대만 사용하는 3X3으로 진행된다. 흔히 반코트라고 불리며, 코트의 절반만 사용하는 만큼 게임의 템포가 빠른 편이다.

전체적인 플레이 느낌은 국내 온라인 게임 중 하나인 '프리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 두 게임 모두 반코트로 게임이 진행되며, 3:3 대전과 공격 수비 전환 시의 룰 등이 비슷하므로 평소 '프리스타일'을 즐겼던 유저라면 쉽게 익숙해질 수 있다.

'슬램덩크 모바일'은 그래픽과 디자인 요소만 보면 캐주얼한 농구 게임처럼 느껴진다. 아기자기한 SD 캐릭터들이 아장거리면서 뛰어다니니 하드코어한 게임으로 보는 것 자체가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생각 보다 알아야 할 내용이 많고 숙련되기까지 난도가 조금 있는 게임인 것을 알 수 있다.


▲ 적과 아군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시점과 색 처리를 했다

우선 게임의 기본적인 흐름은 다음과 같다. 공을 가진 쪽이 공격팀, 공을 뺏는 쪽이 수비팀이 되며, 공수는 공을 뺏으면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공격팀은 수비팀을 피해 골을 넣어야 하고 반대로 수비팀은 공격팀에 공을 뺏거나 밀착 수비를 통해 슈팅을 방해해야 한다.

공을 들고 있는 캐릭터의 앞에는 박스아웃이라 불리는 수비존이 생기며, 수비팀이 박스아웃 위에 서 있으면 슛과 패스 등에서 실패할 확률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혹은 스틸로 공을 빼앗는 것도 가능하다. 반코트라 뛸 수 있는 영역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캐릭터들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몸싸움하는 편이다.

한편, 농구에 등장하는 대부분 포지션이 '슬램덩크 모바일'에도 존재한다. 큰 분류로 포인트 가드와 슈팅 가드부터 스몰 포워드, 파워 포워드, 센터 등이 존재하며, 캐릭터의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서 듀얼 가드나 코너맨, 빅맨 등으로 칭하기도 한다.

▲ 북산고의 슈퍼루키 서태웅은 SF(스몰 포워드)인 식이다

당연하겠지만 게임 내에는 슬램덩크에 등장한 캐릭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작을 알고 있다면 캐릭터마다 어떤 포지션을 맡고 있는지를 대략 알 수 있다. 원작을 몰라도 캐릭터 하단에 어떤 포지션인지 적혀 있으니 정보를 알아내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가령, 장신과 높은 점프를 이용한 리바운드가 주특기였던 강백호는 인 게임에도 리바운드에 특화되어 있다. 따라서 골대에서 멀어지기보단 골대 밑에서 공격팀에 달라붙어 밀착 수비하던가 날아오는 공을 쳐 내고 골대에 튕긴 공을 리바운드하는 형태로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강백호의 포지션을 무시하고 공격을 위해 나가도 상관은 없지만, 적 수비수를 따돌릴 수 있는 스킬이 없으므로 공격이 단조로워 큰 효과를 볼 수 없는 구조다.

이렇듯 캐릭터마다 고유의 특징이 너무나 명확하므로 게임에 출전하기 전부터 어떤 캐릭터로 어느 포지션을 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상대 팀의 정보도 함께 알고 있어야 원활한 공격과 수비를 진행할 수 있다. 상대 캐릭터가 어떤 스킬을 가졌는지 모른다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 캐릭터 창에서 각 포지션에 속한 선수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평소 농구를 좋아했거나 슬램덩크의 팬이라면 캐릭터들의 기본적인 능력은 파악하고 있을 테지만, 처음으로 이 게임을 접한 유저들에게는 꽤 큰 진입장벽 중 하나다. 다행히 게임 내에서 세부적인 튜토리얼을 제공해 초반의 진입장벽을 낮추려 했으며, 캐릭터 대여와 체험 등의 기능을 통해 다양한 포지션을 해볼 수 있도록 지원한다.

디테일한 농구 시스템은 언뜻 진입장벽을 높여 게임을 재미없게 만드는 요소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 게임에서 디테일한 시스템은 오히려 관련 팬들에게 큰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캐릭터를 조작해 리바운드하고 멀리 있는 팀에게 패스 후 3점 슛을 획득하는 모습을 보면 짜릿한 쾌감이 밀려온다.

스포츠 대전 게임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조작감이다. '슬램덩크 모바일'은 모바일 환경으로 구축되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조작 방식은 가상 조이스틱으로 이뤄져 있다. 공을 들고 있는 유무에 따라 스킬창이 자동으로 스왑되며, 스킬 아이콘이 직관적이기 때문에 익숙해진다면 보지 않고 터치하면서 게임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특히, 조작감이 정말 뛰어난 편이다. 세밀한 조종이 가능하며,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서 공을 던질 수 있다. 반응 속도도 빠르고 온라인 멀티 환경도 잘 구축되어 있어 딜레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 사이에서도 조작감은 인정해주는 수준이니 게임 중에 조작감 때문에 짜증을 내는 상황은 없는 편이다.

▲ 설정에서 패드의 위치와 크기를 바꿀 수 있으니 입맛에 따라 맞추는 것이 가능하다


e스포츠의 성공 가능성
깊이감 있는 시스템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슬램덩크 모바일'은 애니메이션의 팬들뿐만 아니라 농구에 관심이 있는 게이머들도 흡수할 만큼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모바일이란 플랫폼 특성을 고려해 캐릭터를 SD 디자인으로 제작했으며, 조작감도 그에 최적화해 어디서든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다. 경기 한 판당 소모되는 시간도 하프 코트 기준 2분으로 짧은 시간 동안 즐기기에 적합했다.

캐주얼한 디자인 속에 농구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녹여 충분한 깊이감을 만든 점도 이 게임이 인기를 끄는 비결일 것이다. 캐릭터마다 뚜렷한 플레이 스타일과 치밀한 농구 시스템 덕분에 최근에는 e스포츠 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국내 최강자를 가리는 '슬램덩크 한국 챔피언컵 시즌1' 대회는 12월 12일부터 시작한다.


이번 e스포츠 진행에 따라 앞으로 더욱 다양한 형태의 대회가 개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슬램덩크 모바일'은 글로벌 서비스를 지원하니 추후에는 국가 대항전 등이 열릴지도 모른다.

오래된 인기 IP의 재탄생은 득과 실이 함께 존재한다. 작품을 기억하는 팬들로 인해 초기 유저층을 쉽게 끌어모을 수 있다는 마케팅 장점이 있지만, 게임에 대해 신경을 못 쓰거나 혹은 IP의 힘에 짓눌리는 단점이 있다. 원작 반영과 스포츠 게임으로서의 정도를 적절하게 지킨 '슬램덩크 모바일'이 e스포츠로 재도약할 수 있을지 대회의 결과가 귀추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