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과 불편함, 두 번이나 모두 담아버렸다



2021년 1월 28일, 정식 한국어화를 거쳐 '로스트 스피어'가 출시됐습니다. 로스트 스피어는 도쿄 RPG 팩토리의 두 번째 작품으로, '제물과 눈의 세츠나'와 '오니가 우는 나라'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게임이죠. 도쿄 RPG 팩토리가 '제물과 눈의 세츠나'를 발표하면서, 그 시절 우리가 빠진 RPG를 되찾자는 메시지를 건넸던 게 기억이 납니다. 로스트 스피어 역시 제물과 눈의 세츠나에 이어 '고전 RPG'의 감성을 담아보려는 현대적인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물론 잘된건 아니지만요.

게임명 : 로스트 스피어(Lost Sphear)
장르명 : RPG
출시일 : 2021.01.28.
개발사 : 도쿄RPG팩토리
서비스 : 아크시스템웍스
플랫폼 : PC, PS4, Switch



RPG에 푹 빠져 있던 '그시절 감성'을 담는 시도

이는 고전, RPG의 감성을 살린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RPG는 많은 갈래로 흩어지고 장르도 혼합되면서 발전해 왔지만, 지금에도 'JRPG'라는 이름으로 일본식 RPG를 칭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JRPG는 전 세계적으로 꽤 잘 알려졌고, 한때 비디오 게임 시장을 지배하던 일본인만큼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도 어릴 적, JRPG들을 많이 경험하고 자란 세대로서,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을 즐기는 현재에서도 많은 게임들에서 JRPG의 향기를 느끼기도 하니까요.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로 대표되는 JRPG는 나름대로 몇 가지 특징들이 드러납니다. 가장 큰 특징이자 서양식 RPG와 대조되는 면은 바로 '선형적인 구조'를 가졌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죠. 정해진 루트대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루트가 바뀔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해야 하는 일이나 경험하게 되는 사건의 흐름이 비슷합니다.

물론 선형적 구조로 인해 쉽게 게임을 플레이하다 따분해질 수 있는 근본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선형적 구조의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사건'에 집중하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해둡니다. 연출, 시나리오, 사운드뿐 아니라 게임 속에서 서브 퀘스트를 통해 메인 시나리오를 보완하기도 하죠. 그 외에는 '세이브포인트'로 대표되는 한정적인 세이브 공간, 자유도가 떨어지는 맵 등의 몇 가지 특징을 꼽을 수 있습니다.


'로스트 스피어'는 도쿄 RPG 팩토리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세 번째 작품인 '오니가 우는 나라'도 지난해 8월에 출시됐죠. 2018년 초에 출시된 로스트 스피어는 이미 3년이나 지났죠. 너무 늦은 시점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시점에서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일단 지난 1월 28일 정식 한국어화를 통해 출시된 점입니다. 아무래도 정식 한국어화가 안된 이전보다는 지금, 정식 한국어화를 통해 이 게임을 만나볼 유저들이 있겠죠. 그렇게 출시된 '로스트 스피어'를 유저들이 플레이하면서 느낄 JRPG와 '고전 감성'에 대해 돌아보기 위함입니다.

▲ 4인 파티, 그리고 ATB 턴제로 구성된 전투 시스템.

일단 로스트 스피어는 JRPG의 왕도와 같은 구성을 가진 게임입니다. 평범한 주인공이 알고 보니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통해 세계를 구한다는 스토리입니다. 주인공 '카나타'는 기억을 잃고 백화화하는 '로스트'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고, 이를 통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와줍니다.

전투는 ATB, 액티브 턴 배틀에 기반해 이뤄지고 추가로 모멘텀 게이지를 쌓아 '찰나'를 통해 공격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찰나와 스킬들은 마석으로 장착이 가능하고, 이 부분은 전작과 유사하게 계승된 느낌입니다. 이를 통해서 단순한 턴제 전투가 아닌,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차별화를 주려고 한 점이 눈에 띕니다. 턴제 구성 방식이지만 '실시간 전투'라는 느낌을 살리려고 한 의도가 느껴집니다.

또한 공격 대상을 정하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원거리 범위 공격도 무빙을 통해서 더 많은 적에게 적중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에 찰나까지 더해져서 확실히 전략성이 전작에 비해 발전한 모습이 느껴지긴 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적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확실히 좀 더 긴장감과 공략 요소를 생각할 필요가 생기죠. 여기에 추후 얻게 되는 기장까지 합쳐서 확실히 전투는 다채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발전된' 경험을 확실하게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이로 인해서, 부드럽게 전투가 이어진다는 생각보다는 계속해서 딱딱 템포가 끊긴다는 느낌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게다가 기술을 사용하려고 ATB가 모으고 결정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적이 움직이고 내 캐릭터가 피해를 받아 전략을 수정해야 할 상황도 빈번해집니다. 긴장감을 더해주는 요소가 흐름을 끊고 짜증을 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약점을 갖게 된 셈이죠.

▲ 핵심으로 내세운 전투 시스템들은 오히려 템포를 끊어먹기도 합니다.


담아야 할 것과 담아야 하지 말아야 할 것

▲ 대사와 연출도, 일러스트 등장없이 그래도 이뤄집니다. 좋은 일러스트를 활용하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이 정도는 그래도 '로스트 스피어'라는 게임만의 개성으로 봐줄 수 있습니다. 이를 감안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이 게임이 추구하는 '고전 RPG'의 감성이 무엇인가 하느냐에 더 많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감성'과 '불편함'의 중간점이라고 할까요.

고전 RPG라고 하면 흔히 콘솔 혹은 PC에서 RPG가 태동하던 시절의 게임을 일컫습니다. 20년 전 게임이라고 하면 창세기전3 파트2 정도가 되어버려서, 그 이전까지 거슬러가야 하죠. 아무튼 PS1 시절이나 패미컴 시절들의 RPG들을 살펴보면, 당시에는 '기술적인 한계'로 펼치지 못한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부분이 '세이브 포인트'입니다. 물론 다크소울과 같이 세이브포인트로 '난이도'를 조절하는 방법도 존재하겠지만, 로스트 스피어는 아닙니다. 퀵 세이브가 있기는 하지만 아쉽죠. 로드를 하기 위해서는 다시 게임은 꺼야 합니다. 수많은 용어들이 등장하면서 스토리의 몰입감을 떨어뜨리고, 각종 아이템과 상성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 '아티팩트'를 통해 불편했던 부분들이 개선되지만, 이걸 '굳이' 이렇게 해야 했나 싶습니다.

큰 문제는 느릿느릿한 연출과 상당히 진부한 대사입니다. 3D 캐릭터를 활용한 연출로만 게임이 진행되므로, 잘 그린 일러스트를 활용하지 못하는 점도 매우 아쉽다고 느꼈습니다. 전작에서는 오히려 캐릭터들의 일러스트라도 사용해서 덜심심했는데, 더 심심해진 부분입니다. 게다가 90년대 게임에서나 보여줄 법한 느릿한 연출이 발목을 더 잡아버립니다.

느릿~하게 대사가 나오고, 느릿~하게 캐릭터가 움직이고, 다시 느릿~하게 돌아보고 다음 대사가 나오기도 하죠. 엘레베이터는 모두가 예쁘게 모여서 타고 올라가야만됩니다. 여기에 잔로딩이 겹치니 아주 고역이 따로 없습니다. 매끄럽지 못한 연출에다가 진부한 대사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답답함을 가중시키는데, 이를 스킵 할 수 있는 기능이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스킵이 너무 빨라서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플레이어가 잠시 확인할 틈도 없이 너무 빠르게 정보가 지나갑니다. 정보를 확실히 습득하고 확인해야 진행이 편해지므로, 스킵 기능은 정말 다회차를 위한 기능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혹은 타이밍 맞게 눌러야 하는 액션이 필요하게 되죠.

결과적으로 너무 빠른 스킵으로 인해 기능이 봉인되는 수준이 되고, 스킵이 안되는 고전적인 게임의 불편함이 존재하게 되어버린 셈입니다. 처음에는 설마 미니맵도 없나 싶은 스스로를 보게 되지만, 그나마 이는 게임 속 콘텐츠와 장치로 풀어나갈 수 있게 해둔 부분이 보입니다. 여기까지 '접근하는 시간' 자체가 꽤 걸리는데, 그 사이에 유저들이 게임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 전투 템포가 끊기기는 하는데, 그래도 생각할 것도 많고 재미포인트는 확실히 있습니다.



발전하고 있는 도쿄RPG팩토리, 더 나은 게임을 보여줄 수 있기를

JRPG들은 꾸준히 발전을 해왔습니다. DOT로 제대로 보이지 않던 캐릭터들은 큰 일러스트나 훌륭한 그래픽을 통한 '연출'로 스토리를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요소로 승화됐고, 세계적인 트렌드에 맞춰 각종 편의 기능도 추가했죠. 반면에 고전적인 요소를 난이도로 승화시키기도 하는 등 문법을 따르면서 충실한 개성을 만들어나갔습니다.

페르소나 시리즈나 제노 블레이드 시리즈, 파이어 엠블럼 시리즈나 파이널 판타지 등등 시리즈나 세대를 거치며 점점 JRPG는 진화를 했죠. 물론 일본식 RPG의 감성은 그대로 담았고, 과거 게임들에서 잔재처럼 남은 불편함을 해소하고 자유도나 탐험, 커뮤니티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첨가하면서 개성과 재미를 챙기려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다크소울처럼, 고전의 문법을 따르면서 극악의 난이도로 플레이어들을 매료시키기도 했죠. 한때 한 차례 '침몰한 구식 장르'라고 불릴 정도로 비난을 받았던 JRPG는, 점차 진화하고 발전하여 이제 현시대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 장르로 꼽기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발전 속에서 고전의 감성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불편함만 잔뜩 있고 게임은 지루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물론 이를 잘 수행해내고 괜찮은 평가를 받은 '옥토퍼스 트래블러'와 같은 타이틀도 존재하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만약 로스트 스피어가 '과거의 타이틀을 리메이크한다'라는 목적으로 고전의 감성을 살렸다면 앞서 말한 단점들이 크게 평가 요소로 작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로스트 스피어는 '제물과 눈의 세츠나'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신규 게임입니다. 결국 고전의 감성을 담는 걸 목표로 하되, 편의성이나 게임 디자인 구조는 현시대의 유저들이 납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죠.

월드맵이 추가되고 퀵 세이브 등이 추가되는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전작에서 불편했다는 피드백을 듣고 새롭게 적용하면서 발전했다고 하지만 턱없이 부족합니다. 결과적으로 제물과 눈의 세츠나와 비슷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작품 모두, 그렇게 좋은 일러스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 도쿄 RPG 팩토리의 게임들. 점차 발전은 해온 모습은 보이고 있습니다.

로스트 스피어 이후 도쿄 RPG 팩토리가 제작한 '오니가 우는 나라'는 실시간 액션을 추구하면서 큰 변화를 주었고, 지적받던 연출도 한층 더 강화되고 '고전적인 왕도 스토리'도 나름 탈피하면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제부터는 고전 RPG의 감성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찾기 시작한 거라고 볼 수 있겠죠.

평가를 다소 박하게 하긴 했지만, 로스트 스피어가 정말 '못 해먹을 게임'인 건 아닙니다. 천천히 느긋하게 왕도 스토리와 RPG의 감성을 즐기기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작처럼 게임의 사운드트랙은 매우 잘 어울리고 좋습니다. 비록 전투의 흐름은 끊기지만 레벨 디자인 자체는 꽤 촘촘히 잘 되어있다는 점은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죠. 다소 진부한 대사와 흐름이나, 시스템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이를 포기할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불호가 명확히 갈릴 수 있는 게임이랄까요.



총 세 개의 타이틀을 내면서 도쿄 RPG 팩토리를 점차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겠지만, 제물과 눈의 세츠나-로스트 스피어-오니가 우는 나라로 이어지는 세 개의 타이틀을 보면 향후 출시될 타이틀에서 더 멋진 게임을 보여줄 가능성이 보입니다. 마치 일본식 RPG가 진화해온 것처럼, 이들도 비슷한 행보로 진화와 발전을 이어가고 있으니 앞으로 더 멋진 경험을 전달해줄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한국 유저들에게 정식으로 찾아온 건 다소 늦은 로스트 스피어지만 앞으로 나올 새로운 '도쿄RPG팩토리'의 게임들을 한국 유저도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기념비적인 게임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