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스타일을 보여준 차세대 모바일 ARPG



시대마다 흥하거나, 혹은 반응이 신통치 않은 게임 장르가 갈리기 마련입니다. 모바일 액션 MORPG는 그 중에서 다소 쇠락하고 있는 장르라 할 수 있겠죠. 일부 게임들이 여전히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신작은 나오지 않는 상황이죠. 서브컬쳐 부문에서는 붕괴3rd라는 강력한 경쟁작이 있으니, 시도하기도 어렵고요.

이런저런 서브컬쳐 게임들이 많이 나오는 중국에서도 카툰렌더링 기반의 액션 MORPG는 대부분 붕괴3rd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서비스 종료를 하거나 중국 내에서만 소비되는 판입니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은 처음 출시 때부터 강력한 경쟁작으로 주목받은 작품입니다. 이후 조금 주춤했지만 대만, 일본 등 해외로 진출을 노릴 정도로 꾸준히 성과를 올리고 이제 한국 시장에 발을 디뎠죠.

처음 한국 출시가 결정됐을 때, 이미 해외에서 접한 유저들을 통해서 "올 것이 왔다"는 평가를 들은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 일본 서버와 중국 서버를 플레이해봤던 만큼 좀 템포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게임명 :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Punishing: Gray Raven)
장르명 : 액션 MORPG
출시일 : 2021년 7월 8일
개발사 : 쿠로 게임
서비스 : 홍콩 히어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 모바일



퀄리티와 독자적인 스타일을 살린 특유의 카툰렌더링 그래픽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은 그간 출시된 다수의 서브컬쳐 게임들처럼, 인류가 멸망하기 직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퍼니싱' 자체가 작중에 등장하는 치명적인 변이 바이러스를 일컫는 말이니까요. 기계까지도 감염시키는 퍼니싱 바이러스는 감염자의 신체를 변이시키는 한편, 공격성을 극도로 높여서 비감염자들을 공격하게 만드는 바이러스죠.

이에 인류는 뚜렷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공중정원으로 피신한 뒤, 바이러스에 내성이 있는 개조 인간 '구조체'를 투입해서 감염자들을 처리하고 다시 지구를 수복하려고 한다는 것이 작품의 주요 내용입니다. 뒤의 '그레이 레이븐'은 지휘관과 주인공 루시아가 있는 소대를 일컫는 말이죠.

이러한 아포칼립스풍의 스토리나, 작품 외적인 아트워크는 이젠 특별하다고 하기 어려운 요소들입니다. 예전이라면 서브컬쳐 게임이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걸 유저들도 감안해주기 때문에 상상으로 부족한 점을 메워주겠지만, 지금은 서브컬쳐 게임도 기술력을 동원하는 시대니까요. 요는 이런 느낌을 어떤 식으로 인게임에서 드러냈나가 포인트라고 할 수 있죠.


그런 관점에서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은 꽤나 과감한 선택을 한 작품입니다. 일단 전체적인 색채의 톤을 보면 검은색, 회색 등 무채색의 비중을 상당히 높이는 등, 다른 카툰렌더링 기반 게임에 비해서 어둡고 칙칙한 톤을 유지한 것이 특징이죠. 캐릭터 및 적을 살펴봐도 검은색, 흰색, 회색 등 무채색 비중이 높습니다. 각 캐릭터별로 테마 컬러를 살짝 덧붙이면서 서로 구분하기 쉽고, 캐릭터와 색상의 매칭을 시키는 기법을 적용시키긴 했지만요. 혹은 카키색 등 어둡거나 원색의 화려한 느낌과는 거리가 먼 컬러를 많이 쓰기도 하고, 스테이지 중간중간에는 포그 효과를 깔아서 좀 더 흐릿하게 보이게끔 했습니다.

이처럼 특색을 살리는 것도 좋지만, 캐릭터 모델링 및 이펙트 관련 부분도 살펴볼 필요가 있죠. 서브컬쳐 게임이니 캐릭터가 중요하고, 액션 게임에서 기대하는 화려함은 이펙트에서부터 비롯되니까요. 전반적으로 캐릭터 모델링은 여타 게임에 비해서 조금 길쭉하게 나온 감이 있어서 최근 서브컬쳐 게임을 접한 유저들에겐 다소 낯선 스타일이긴 합니다.

일러스트를 살펴보면 애초에 그런 스타일을 지향하고 나온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러스트와 인게임 그래픽을 비교하면,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로 잘 구현했으니까요. 다만 초산공간에 진입해서 다소 캐릭터 움직임이 느려질 때면, 치마나 그런 펄럭이는 걸 처리할 때 다소 뻣뻣하다거나 모호하게 처리된 부분들이 종종 보이긴 합니다. 중국 게임은 검열 때문에 그런 파트를 때론 모호하게 처리하기도 하고, 아울러 최적화를 위해서 안 보이는 곳을 대강 떼우는 건 게임 개발할 때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긴 하죠. 다만 전반적인 퀄리티가 괜찮은데 그 부분만 따로 놀 때는 눈에 밟히기 마련이랄까요.

▲ 사실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서 초산 공간 열릴 때 빼곤 잘 안 보이긴 한다

▲ 그래도 귀여우면 만사 OK



스킬볼과 체인으로 변주한 독특한 액션


왼쪽 가상패드로는 이동, 오른쪽 가상패드로는 기본 공격 및 스킬. 이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기본 틀로 잡힌 모바일 게임 인터페이스입니다. 그런데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에서는 스킬칸이 따로 없고, 대신에 '스킬볼'이라는 시스템을 채택했죠. 기본 공격을 몇 회 맞추면 기본 공격 버튼 위에 빨강, 노랑, 파랑 스킬볼 중 하나가 뜨고, 그 볼을 선택하면 그 색상에 할당된 스킬이 나가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같은 색의 스킬볼이 인접해있으면 최대 3개까지 소모해서 더 강화된 스킬이 나가는 3체인 시스템을 도입하고, 3체인 공격 후에 특정 스킬볼을 사용하면 추가 효과나 EX 스킬이 발동하는 등 액션을 한 층 더 다각화했습니다. 아울러 단순히 기본공격하고 스킬을 번갈아가면서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해야 3체인 스킬을 쓰고 EX까지 발동할지, 계속 치열하게 움직이면서 생각하게 만들었죠.

아울러 여타 모바일 액션 게임에 있는 회피 후 불릿타임 개념인 초산공간 진입시, 그 직후 사용하는 스킬볼을 무조건 3체인 효과가 발동하게 만들면서 속도감을 한 층 더 끌어올린 것이 주효했습니다. 아무래도 스킬볼 시스템이 아이디어는 좋지만, 막상 기본 공격을 먹이고 스킬볼 쌓는 과정만 두고 보면 생각보다 템포가 느리기 일쑤니까요. 그런 과정 대신 적 공격 회피 후 3체인 발동 - EX로 바로 이어지게끔 해서 속도감을 한 층 더 끌어올렸습니다.

여기에 3색 스킬볼 시스템을 세 명까지 팀원을 편성하는 시스템과 맞물리면서 파트너 QTE 시스템 발동 조건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 보통 태그 QTE 스킬이나 파트너 QTE 스킬은 적을 띄우거나 빙결시키는 등 상황에 따른 조건이 붙지만,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에서는 파란색 스킬볼 3체인이면 파란색 칸에 할당된 캐릭터의 파트너 QTE를 발동하는 식으로 통일한 것이죠. 아울러 각 색상별로 특화된 영역이 따로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서 캐릭터를 편성하고 적의 특성에 따라 스킬 콤보도 구상하는 맛을 살렸죠.


또한 같은 색상이 연속해서 배치되어있을 때 이를 활용하면 더욱 강력한 효과가 발동하는 만큼, 이를 고려한 스킬 배분도 중요했습니다. 스킬볼을 한 번 사용하면 해당 스킬볼은 사라지고, 스킬볼 양옆에 있던 다른 색상의 스킬볼이 서로 인접하는 퍼즐 요소가 가미되다보니, 전투하는 중간중간 이를 캐치하면서 강력하게 딜을 우겨넣었을 때 성취감도 상당한 편입니다.

이 튜토리얼이 다 끝났을 무렵이면 적의 공격을 회피하고, 스킬볼 3체인 효과를 노린 뒤에 계속 추가타를 넣는 한편 3체인 색상을 보고 파트너 QTE까지 발동한 뒤 에너지가 차면 필살기까지 발동한다는 다소 복잡다단한 과정을 겪었을 겁니다. 말로 하니까 조금은 길지만, 실제로는 몇 초 안에 이루어지는 일이라 손을 이리저리 바삐 놀리면서 빠르게 적에게 갖가지 공격을 우겨넣는 속도감이 느껴지죠.

적을 이렇게 강맹하고 속도감 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 만큼, 전투력이 다소 낮더라도 스테이지 클리어에는 딱히 문제가 없는 편입니다. 가끔 보스들이 아프게 때리기도 하고, 중간중간 자폭하는 감염체들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끔살당할 뻔하기도 하지만 모든 스테이지가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있진 않으니까요. 아주 강력한 액션 설계 없이도, 그냥 기본기만 알아도 대체로 클리어하기 무난한 구성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말은 곧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는 말이기도 하죠.



그래서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에서는 그 속도감 있는 액션을 즐기면서 콤보 설계, 조합 설계를 하는 능력을 끌어올리게끔 경쟁 요소를 도입했습니다. 경쟁 요소라고 해서 PVP는 아니고, 지정된 스테이지를 누가 더 고득점으로 클리어하냐 점수로 경쟁하는 방식이죠. 크게 3개 스테이지의 기록을 겨루는 '분쟁지역'과 보스전인 '환통의 우리' 두 종류가 있으며, 두 모드 다 클리어 타임과 잔여 HP를 기반으로 점수가 산정됩니다.

아무래도 남들과 경쟁하기도 하고, 또 점수가 나온다는 걸 보면 이래저래 더 집중하기 마련이라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을 해외 서버 시절부터 즐겼던 유저들 사이에서도 분쟁지역이나 환통의 우리를 핵심 콘텐츠로 꼽곤 합니다. 특히 5단계 난이도로 나뉘어진 환통의 우리는, 마지막 난이도 '지옥'으로 가면보스에 갖가지 조건과 패턴이 붙어있다보니 집중해서 컨트롤하지 않으면 고득점을 올리기가 정말 힘들어졌죠.

▲ 지옥 난이도에서 딜에 집착하다간 먼저 가니 주의

다만 경쟁 콘텐츠의 스트레스는 양날의 검이라 우려가 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실 경쟁 콘텐츠를 잘못 설계하면, 컨트롤 말고 장비 차이 때문에 상위권 못 달았는데 보상 격차가 너무 커서 할 맛이 안 난다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까요.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은 그래서 일정 점수 이상을 획득하면 보상을 확정으로 주고, 랭크 보상은 최대한 비중을 낮춰서 랭크 경쟁에 대한 부담감을 낮추는 방식으로 접근성을 높였습니다.

▲ 주간 보상은 토벌 점수만 기록하면 일괄 지급하고

▲ 랭크 보상 격차를 최대한 줄여서 경쟁이 과열되지 않게끔 했다



심플한 육성과 융통성 있게 설계한 BM


캐릭터 육성 방식은 이미 기존에 나온 액션 MORPG와 궤가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기존작을 했던 유저라면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장비에 해당하는 무기와 의식을 강화하고, 캐릭터를 레벨 업시키면서 특정 조건이 되면 진급한 다음 중간중간 뽑기나 던전을 돌면서 캐릭터의 조각을 얻으면 클래스를 진화시키는 방식이니까요.

일반적으로 수집형을 가미한 액션 MORPG들은 육성 재료를 얻는 던전을 요일별로 다르게 개방할 때가 많고 티켓을 따로 편성하는 일이 많은데,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은 그런 제약을 없애고 일괄적으로 행동력을 소모하게 해서 자신이 필요한 걸 먼저 빠르게 파밍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 또한 스토리 모드에서는 자원재료를 최대 80%까지만 획득할 수 있지만, 자동전투를 지원하면서 육성의 부담을 조금은 덜었죠.

▲ 엄밀히 말하면 자동 전투는 아니지만, 어쨌든 수동조작 없이도 파밍이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 육성 재료 던전은 상시 개방되어있다

캐릭터를 획득한 다음에는 캐릭터를 강화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데, 이 부분은 캐릭터 조각을 얻을 수 있는 스테이지를 마련해서 수급 난이도를 완화시켰습니다. 물론 행동력이 비교적 높고, 하루 열리는 횟수도 제한이 되어있다보니 질러서 중복으로 뽑는 것보다는 빠르진 않겠지만 이론상 한 번 뽑고 나면 추가로 뽑기 위해 투자하지 않아도 되게끔 한 셈이죠.

어쨌거나 확률형 BM을 채택한 만큼 흔히 말하는 착한 과금이라고 하기는 논란이 있을 겁니다. 신규 한정 40회, 그 이후엔 60회로 천장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뽑기고, 뽑기에서 캐릭터만 나오는 게 아니고 다른 부속품들도 나오는 방식이니까요.

그렇지만 그 뽑기풀에서 캐릭터와 무기는 분리해서 캐릭터를 뽑고 싶은데 무기가 나오거나 그 반대인 상황이 나오지 않게끔 조율했습니다. 아울러 무기의 천장은 30회로 줄이고, 자신이 원하는 무기를 정해서 확률업을 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준 것도 특징이죠. 확률형 BM이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원하는 걸 최대한 추려서 노릴 수 있게 여러 시도를 한 것도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을 하면서 눈에 띈 점이라 하겠습니다.

▲ 무기, 캐릭터 뽑기는 분리해뒀고

▲ 무기는 5, 6성 확률업 조합을 직접 정해서 뽑기를 시도할 수 있다



다소 빈약한 초반 추진력 극복이 관건


초반엔 약하다가 후반에 가면 화려하고 강해지는 건 여느 게임에서나 비슷합니다. 스킬을 난사하면서 적을 도륙내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먼치킨 액션이든, 보스를 힘겹게 한 땀 한 땀 돌려깎으면서 화려한 손놀림과 스트레스를 즐기는 소울류든 말이죠. 요는 그 낯설고 약한 초반을 어떻게 넘기느냐 하는 문제인 셈이죠.

물론 이게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이 초반엔 재미없다가 후반에 재미있어진다 이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기대감을 충족시킬 만한 콘텐츠가 나오기까지 거치는 과정이 좀 플랫하고, 특정 구간을 넘어가기 위해선 밀도 있는 플레이를 요구한다는 게 문제죠.

액션과 그래픽에 대해서는 이미 말한 것처럼 크게 흠잡을 곳은 없지만, 무언가 확 임팩트를 줄만한 연출은 부족한 편입니다. 서브컬쳐 게임으로서 교감도 초반 단계에서는 딱히 눈에 띄는 게 없고, 계속 콘텐츠가 해금되기 스테이지를 밀고 또 밀기를 반복하는 방식이죠.

그렇게 해서 쭉 하다보면 어느 틈에 '위험'이라는 표시까지 뜨고, 그럼 거기서부터는 심리가 위축되기 시작하죠. 전투력이 천 가까이 차이나는 걸 쉽게 깨리라고 생각이 안 드니까요. 그렇지만 실제로는 좀만 익숙해지면 바로 쉽게 클리어가 가능하긴 합니다. 그 단계를 또 건너뛰게 되면 긴장감 없이 계속 그렇게 스토리 밀고, 제한에 걸려서 다시 육성을 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됩니다.

▲ 아니 전투력을 언제 올리라고? 이런 생각이 들겠지만

▲ 2천 이상 차이나고 그런 게 아니면 가능은 하다. 다만 심리적으로 불편한 건 별 수 없다

여느 RPG나 다 그런 루틴을 겪고 현자타임을 겪기 일쑤겠지만,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은 초반부에 잠깐 액션을 보여주고 난 이후에는 좀 단조로운 느낌이 유달리 빨리 이어집니다. 이미 시중에 쟁쟁한 경쟁작이 있기도 하다보니 비교되는 것일 수도 있죠. 그보다는 실제로 주력으로 하는 콘텐츠가 해금되는 시점이 각을 잡고 플레이해야 좀 빨리 열리는데, 그만큼의 밀도가 없으면 비슷비슷한 것의 연속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초반이 플랫한 것이 더 클 겁니다.

이런 문제를 개발사와 퍼블리셔에서도 중국 및 해외 서버를 서비스하면서 알았는지, 초보자 미션 등을 디테일하게 주면서 이런 문제를 시스템적으로 고치지 못하더라도 보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엿보였습니다. 오프닝 PV도 삽입하고, 감자 서버 방어전 등 눈길을 끄는 이벤트를 한국서버에서도 진행하는 등 초반에 다소 심심한 구간을 최소화하고자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고요.

▲ 숙소 등 깨알 같이 꾸밀 것도 있고

▲ 그래도 초반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가이드라인은 잘 짜인 편이다





2년 가량 지나서 한국 유저들을 만나는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은, 왜 그간 해외 서버 유저들이 국내 출시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해외 서버를 플레이했는지 그 저력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그래픽과 스킬볼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도입한 짜임새 있는 액션은 그간 모바일 게임에서 잊고 있던 손맛을 느끼기엔 충분했기 때문이죠.

특히나 스킬볼 시스템은, 개인적으로 모바일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액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짜여졌습니다. 가상 패드에 크게 의존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터치스크린이라는 걸 극대화해서 가상 패드에 국한하지 않고 스킬볼을 놓고 터치하는 식으로 액션을 구축하고 그에 맞춰 여러 시스템을 추가로 연계한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었죠.

다만 그렇게 저력이 있는 만큼, 아쉬운 요소들이 조금씩 눈에 밟혔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풀거리는 것들을 가끔씩 엉성하게 처리하기 때문에 모션이 중간에 느려지면 그런 어색한 부분이 조금씩 보입니다. 타격할 때나 피격할 때 캐릭터의 모션도 조금 뻣뻣한 편이고요. 이를 가리고, 좀 더 타격감을 가미하기 위해서 공격과 피격시 카메라가 비교적 심하게 흔들립니다. 액션 게임을 오래했다면 적응하는데 익숙해지겠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금방 피곤해질 수 있다고 할까요.


무난한 아포칼립스물을 보여주는 도입부에, 캐릭터의 외전 스토리를 파밍 요소와 곁들이는 등 스토리와 콘텐츠의 배합도 나쁘지 않지만 지금 당장 그쪽에 신경을 쓰기엔 연출이 빈약한 편이죠. 주력 경쟁 콘텐츠들은 확실히 괜찮은 편이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밀도 있게 한 번 딱, 뚫을 필요가 있는데 그러기엔 좀 초반 임팩트를 유지할 중간 단계가 애매하고요. 더군다나 EX 같은 건 조건이 한 눈에 안 들어오고, 자잘한 곳이 좀 불편해서 안 좋게 생각하면 여러 모로 수렁에 빠질 위험도 있었죠.

그런 걸 다 떠나서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이 일단 손맛 하나는 확실하게 냈다는 건 분명합니다. 만일 진짜로 손맛 있는 모바일 액션을 즐기고 싶다고 하면,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은 유력한 후보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제한된 스테이지 내에서 액션을 극대화해서 모바일이라는 환경에서도 콘솔 액션 게임을 하는 느낌을 준다는 게 모바일 액션 MORPG의 기본 방향인데, 그걸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패드로는 소화하기 어려운 모바일 특유의 시스템을 적극 활용, 자신만의 액션을 구축한 작품이니까요. 흔히 말하는 덕후풍도 상당히 옅은 작품이니, 액션은 좋아해도 덕겜 특유의 엉뚱함과 재기발랄함이 꺼려져서 접근하지 못하겠다 싶은 분도 한 번쯤은 맛봐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