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오브워쉽을 플레이하다보면 메타의 흐름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최근에 크게 바뀐 메타로는 항모의 공격기의 기총 소사라는 선딜레이 모션이 추가된 것이다.

덕분에 그동안 항모의 등쌀에 밀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던 구축함들이 일제히 부활했으며, 특히 항모에 제대로 카운터를 맞았던 포격형 구축함들의 세상이 왔다.

이후 메타의 흐름은 포격형 구축함을 카운터 치기 위해 은신 뇌격형 구축함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고, 이에 미국과 소련 순양함을 비롯한 레이더쉽 함선들이 자리를 치고 올라왔다. 지금은 어느정도 정체기를 거쳐 레이더쉽 순양함을 견제하기 위한 장거리 카이팅 위주 메타로 흘러가는 도중이다.

메타에 따라 자신의 주력 함선을 재빨리 교체하는 것이 높은 승률을 유지하는 비결일텐데, 한편으로는 이러한 메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도태되는 함선들이 존재한다.

비단 메타 문제만은 아니라 단순히 파워 인플레로 인해 가치가 떨어진 함선이나 혹은 추가되는 트리가 카운터로 작용한 경우도 있을텐데, 유저들의 머리속에서 잊혀진 대표적인 함선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정리해봤다.


▲ 공격기 선딜레이 패치 이후 급격히 픽률이 줄어든 항공 모함




■ 괴랄했던 속도와 내구도를 보유한 최초의 OP 구축함 - 레닌그라드

레닌그라드는 소련 7티어 프리미엄 구축함으로 등장 시기에는 동급 구축함과 비교하여 압도적인 기동성과 내구도, 그리고 주포 화력으로 당당히 OP 함선에 등록되었다.

출시 당시에 있던 구축함들이라고 해봤자 일본과 미국 구축함이 전부였고, 속도는 30노트 중반대에 머물러 있는 함선이 대부분이었다. 주포 역시 일본은 여러 버프를 받은 지금과 달리 거의 봉인 무장 수준이었고, 미국은 당시에도 연사력은 좋았으나 탄속 문제 등으로 결정력은 모자란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레닌그라드는 경쟁자들을 43노트라는 속도에서 따돌리며, 주포는 미구축급에 탄속과 명중율 대미지는 훨씬 좋았다. 어뢰 무장 역시 장식에 불과한 정규 트리에 비해 8km라는 실전성 있는 어뢰를 보유했기에 숙련자가 잡으면 동티어 맞대결에서 적수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후로도 랭크전은 물론 공방에서 줄기차게 모습을 드러내다가 어느 순간 출현 빈도가 급속도로 줄었는데, 대부분 성능이 우월하나 유일한 약점인 대공 능력이 약하다는 점 때문에 항공모함 메타에 밀려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항모 메타가 끝난 이후에도 존재감은 희박하다. 아무래도 패턴이 뻔한 미국과 일본 구축함만 있던 시기와 비교하여 프랑스, 유럽, 영국 등 카운터 요소가 있는 트리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트레이드 마크였던 속력을 이용한 카이팅도 유저들이 상당수 적응했기에 지금에 와서는 큰 강점이라 볼 수 없다.

오히려 7티어에서는 큰 편에 속한 피탐지와 세팅을 전부 몰아줘도 반응이 느린 주포 회전 속도(기본 28초)가 계속해서 발목을 잡고 있는 상태다. 요약하자면 주변 함선들의 성능이 올랐고, 경쟁 함선이 늘어나면서 독보적인 위치를 잃고 제국의 황제에서 지방 호족급으로 지위가 떨어진 함선이다.


▲ 여전히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지만 초기처럼 대놓고 깽판치는 압도적인 힘은 더이상 없다




■ 6탑방 괴물이었지만 더이상 과거와 같은 활약은 무리? - 황허

황허는 범아시아 6티어 프리미엄 순양함으로 앞서 출시된 퍼스와 비슷한 콘셉트인 저속 연막 소모품을 활용한 고폭 스팸에 특화된 함선이다.

고폭을 쓸 수 있는 순양함이 연막 소모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능이 보장되는데, 거기에 더해 범아시아 특유의 높은 화재율과 연사력, 그리고 적절한 포문수와 사거리, 퍼스보다 더 발전한 피탐지 등 여러모로 OP 함선의 요건을 갖췄다.

실제로 출시 시기부터 약 1년간은 황허의 독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대활약이었고, 지금도 승률 자체는 최상위권에 속해 있다.

다만 여러 국가 트리가 등장하여 점차 파워 인플레가 심화되니, 현재는 6탑방이 아닌 이상 활약하기가 힘든 함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주포의 사거리와 빈약한 장갑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데, 정찰기를 이용해 추가로 사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퍼스에 비해 황허는 기본 사거리인 13.2km 밖으로는 쏠 수 없다. 장갑 역시 일부 갑판에 32mm 장갑이 발려져 있는 퍼스에 비해 황허는 구축함에게도 시타델이 나가는 물장갑이다보니 점차 연막을 피기도 전에 의문사 당하는 상황이 급격히 늘었다.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7티어 이상의 상위 매칭에서는 여실히 파워 부족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함선이라 할 수 있다.


▲ 본인은 그대로지만 주변 함선들이 상향받으며 위치가 역전된 경우라 볼 수 있다




■ 연막 고폭만 믿고 들이대는 시대는 지났다! - 미하엘 쿠투조프

소련 8티어 프리미엄 순양함인 미하일 쿠투조프 역시 파워 인플레에 밀려난 함선이라 할 수 있다. 한때 벨파스트와 더불어 유이한 연막 고폭 함선으로 악명을 떨쳤으나, 레이더쉽이나 구축함 견제에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약점을 노출하며 최근에는 보기 힘들어졌다.

4X3 152mm의 주포 성능은 여전히 우수하며, 8티어임에도 불구하고 19km대를 자랑하는 사거리는 상위 매칭이 잡혀도 활약할 구석을 만들어 준다.

문제는 경순양함급임에도 불구하고 피탐지가 티어 대비 11.5km로 큰 편이고, 소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장거리 레이더 소모품과 연막을 교환한 형태기에 팀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주류를 이루던 과거에는 6인치 함포로도 대부분의 함선에 피해를 입힐 수 있었으나, 이제는 중장갑으로 무장한 함선이 쏟아지면서 화재를 일으키는 것 외에는 유효타를 내기 힘들어졌다. 티어 대비 대미지는 높으나, 그에 반해 승률이 낮은 결정적인 이유다.

즉, 예전처럼 픽만 하면 1승을 보장하는 OP 함선이 아니라, 적군의 조합을 따져야 하고 자신 역시 연막 시간과 거리를 철저히 계산하며 조심스레 몰아야 하는 함선이 된 셈이다. 또한, 프랑스의 바야르나 독일의 마인츠같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함선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파워 인플레의 대표적인 희생자가 되어버렸다.


▲ 사람은 적응하기 마련이고, 짜증나는건 여전하지만 예전처럼 무서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 한때는 정규 트리마저 위협할 인기였으나, 세월의 흔적만 남았다 - 워스파이트

워스파이트는 사실 출시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함선이지만 성능 자체가 우월한 OP 함선이라는 느낌은 아니다. 오히여 정규 트리로 출시된 퀸 엘리자베스가 워낙 저열한 성능을 보유했기 때문에 정규 트리를 탈바에는 워스파이트를 타고 마는 유저들이 많았기에 벌어진 기현상이라 볼 수 있다.

15인치 4X2 주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퀸 엘리자베스와 비슷하나, 차이점이 있다면 철갑탄의 신관 작동 시간이 다른 국가와 같이 0.03초로 일반적이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구경이 커도 영국 특유의 지연신관덕에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했던 퀸 엘리자베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주포를 보유했다는 평가다.

사거리가 짧다는 문제가 있으나 적어도 주포에 대해서는 큰 불만을 지닌 유저는 없었고, 특히 선회 반경이 구축함급인 550m라는 점도 화제가 되었다. 레이더 소모품이 없던 시기 대부분 전함 유저는 자신의 드리프트 실력만으로 어뢰를 회피해야 했기에 작은 선회반경은 분명 눈여겨 볼만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프리미엄쉽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고, 태생이 퀸 엘리자베스의 자매함인 워스파이트는 더는 파워 인플레를 쫓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어찌보면 시대에 밀려 그대로 사라진 비운의 프리미엄 함선이라 할 수 있다.


▲ 초보 시절 정말 많이 만났던 함선인데, 요새는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 항모 개편 이전 전설의 3신기의 일원이 바로 나! - 사이판

미국 프리미엄 항모인 사이판은 항모가 짝수 티어로 정리되는 대개편이 이루어진 이후 급속도로 위치를 잃으며 현재는 1천판을 해도 볼까 말까 수준의 멸종위기종이 되버렸다.

출시 당시에는 지금처럼 8티어가 아닌 7티어 항공모함이었는데, 이때 당시에도 10티어 함재기를 미리 끌어와 쓰는 콘셉트였고, 당연히 자탑방은 물론 9탑방에 걸리더라도 막아낼 함선이 없었다.

또한, 선체의 성능도 볼티모어급 순양함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빌빌거리는 석탄쉽 이미지가 강했던 다른 항공모함에 비해 33.5노트라는 쾌적한 속도를 보장했다.

사이판 자체만으로도 치트 능력에 가까운 성능이었는데, 이와 전대를 이루며 삼신기라 불렸던 심즈, 애틀랜타와 합쳐지면 그야말로 공방을 파괴시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는 삼신기 전대가 우리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그대로 승패가 갈렸을 정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사이판의 철권 통치가 끝난 시점은 항모 개편 이후인데, 티어가 1티어로 상승하여 10티어 매칭이 잡히게 바뀌었고, 덕분에 7티어에서 독보적인 성능을 자랑하던 함재기가 오히려 편대수 부족이라는 약점으로 변해버렸다.

무엇보다 개편 이후 함재기 무한으로 바뀌면서, 적은 편대수라는 페널티가 남들의 2배에 가까운 재정비 시간이라는 폭탄을 맞아버려 더이상 항모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버렸다.

같은 삼신기의 일원이었던 심즈나 애틀랜타가 여전히 7티어에서 현역으로 활약하는 마당에 홀로 몰락한 모습은 심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 천조국의 오버테크놀러지라고 불리던 시기는 어디가고 초라한 모습만 남았다





■ 처음 등장할때부터 설계가 잘못되어 있었던게 아닐까? - 아즈마

아즈마는 워쉽의 첫 대형순양함인 크론슈타트와 알래스카의 뒤를 이어 출시된 세 번째 대형 순양함이지만 인기는 앞의 둘에 비해 상당히 저조하다. 아니 저조한 것을 넘어서서 1급 멸종 위기종이라 볼 수 있다.

첫 등장할 때부터 주포의 성능이 준수하다는 것과 일본치고는 대공 성능이 쓸만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줄곧 유저들의 외면을 받아왔던 함선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알래스카와 비교하면 고폭탄의 성능과 탄도가 좀 더 좋다는 점과 1초가량 빠른 조타 속도, 그리고 수리반의 절반의 쿨타임을 지녔다는 점을 제외하면 나은점이 없다.

장갑 구조는 전신 25mm로 매칭되는 모든 순양함급 이상의 고폭탄에 터져나가고, 측면 방호 구역의 장갑 수치 역시 8인치 이상의 철갑탄에 모조리 뚫린다. 즉, 덩치는 대형 순양함이지만 방어력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똑같이 전신 25mm의 약점을 지닌 크론슈타트조차 각을 잘 주면 급격히 올라가는 방어력과 높은 체력으로 방비를 단단히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수 밖에 없다.

하다못해 일본 특유의 장거리 무장이라도 달아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이후 출시된 요시노에게 어뢰 기믹이 가버리면서 아즈마가 설 곳은 영영 사라졌다. 사실상 동국가의 요시노가 비수를 꽂은 셈이다.

현재도 공방에서 보기 대단히 힘든 함선 중 하나로 국밥처럼 매판 팀에 하나씩은 있는 알래스카나 간간히 나와서 고성능 장거리 레이더로 구축함들을 깜짝 놀래키는 크론슈타트에 비해 존재감이 극히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 대형 순양함 중에서 지크프리트 다음으로 가장 보기 힘든 함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