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물품 사고파는 전당포, 이래도 먹고 살 수 있나요?


최근 동네 사람들과 중고 물품을 나눌 수 있는 모바일 앱을 정말 열심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필요로 하지 않는 물건을 다른 이들에게 적당한 가격에 팔았을 뿐인데, 그 물건을 받고 상대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땐 알 수 없는 성취감이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중고 거래 앱에 남다른 애착을 갖게 된 것은 정말 오래전부터, 아마 어린 시절부터 중고 물품을 전문으로 다루는 중고 상점에 아련한 동경심이랄까, 선망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새 물건을 사는 것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물건을 살 수 있는 것은 물론, 다른 이들에게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물건일지라도 그 물건에 숨겨진 가치를 척척 밝혀내는 '전문가'다운 모습이 멋있어 보였죠.

지난 3일, 스팀에 정식 출시된 시뮬레이션 게임 '우산 금지(No Umbrellas Allowed)'는 중고상점을 운영할 때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상황들을 사실적으로 구현한 작품입니다. 중고품을 사고파는 행위라는,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독특한 소재를 게임 속에 구현한 것은 물론, 국내 인디 개발사에서 개발한 작품이라는 점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당X마켓 매너온도 55도'를 자랑하는 중고 거래 애호가로서, 경건한 마음으로 직접 게임 속 중고상점을 운영해보았습니다.

게임명 : No Umbrellas Allowed
장르명 : 시뮬레이션
출시일 : 2021.09.03.
개발사 : Hoochoo Game Studios
서비스 : Hoochoo Game Studios
플랫폼 : PC



"전문 전당포의 중고품 거래란 바로 이런 것"


'우산 금지'에서 유저는 전당포를 운영하는 매니저가 됩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수 많은 사람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각각의 사연이 있는 중고 물품들을 거래하게 되는 것이죠. 전투 같은 부가적인 요소 없이 중고 거래 절차 그 자체에 집중하여 게임의 메인 콘텐츠로 다루는 만큼, 정말 사실적인 중고 거래를 만나볼 수 있는 것이 이 게임의 특징입니다.

중고 물품 거래는 먼저 중고상점을 방문한 의뢰인의 물건을 감정하고, 감정 결과에 맞는 가격을 제시하며 의뢰인과 흥정한 뒤, 구매에 성공한 중고품을 가게의 매대에 올려 다른 구매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기본적으로 싸게 구매한 뒤, 구매한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하여 이윤을 남기는 것이 주된 목표라고 할 수 있죠.

중고 물품을 감정하는 방식도 시계의 결합을 풀어 내부의 무브먼트와 각인 여부를 보는 것부터, 흔히 'S급, 미개봉 박풀, 사용감 있는 A급' 등으로 표현하는 상태 체크, 보석의 진위 확인, 재질 체크, 제작연도 체크, 유명인의 서명 체크, 브랜드 가치 확인, 또 이러한 요소들에 따른 시장에서의 인기와 희소성 체크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물론 각 감정 과정에 최적화된 특별한 감정 도구들이 제공되므로, 해당 분야를 몇십 년간 공부한 달인을 부르지 않더라도 누구나 감정 전문가가 되어볼 수 있는 것이 이 게임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매일 손님들이 드나드는 알짜배기 상권에 뭐든지 감정할 수 있는 신기한 도구 세트까지 갖춘 플레이어에게 있어 '싸게 구매한 뒤, 구매한 가격보다 비싸게 팔기'라는 1차적인 목표는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이는 절대로 호락호락한 목표가 아닙니다. 물건을 감정할 때부터, 물건을 구매하고, 이것을 다시 판매할 때까지 손님과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여야만 하거든요.


'우산 금지'의 협상 절차를 소개하기 위해, 이해하기 쉬운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온라인 MMORPG를 플레이하다 보면 사냥 중에 획득한 희귀 아이템을 팔기 위해 다른 유저들과 거래를 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 거래에선 딱히 내가 획득한 상품의 주요 디테일을 상대에게 고지할 의무가 전혀 없습니다. 다른 이들이 주로 판매하는 가격을 검색해서 참고하거나, 그냥 원하는 가격을 부르면 그만이거든요. 이것저것 알아보기 귀찮으면 '선제시염', 'ㄴㄴ안팜'이라고 하더라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요.

우산 금지에서는 이러한 다소 무책임하게 느껴질 수 있는 행동들 모두에 일정 수준의 패널티가 부여됩니다. 플레이어는 수많은 인파 속 떠돌이 개인이 아닌, 일정한 공간에서 '전당포'를 계속 운영해나가야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책임을 져야 하는 책임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루는 물건이 작은 하자 하나 없는 신품이 아닌 '중고'라는 상품의 특수성 역시 간과할 수 없죠.

물건을 감정할 때는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도구와 지식 정보를 모두 총동원해서 그 물건이 가지고 있는 진짜 가치를 정의하고, 이를 의뢰인에게 알려야만 합니다. 판매 이윤을 크게 남기려고 감정 정보를 속이고 의뢰인에게 알리지 않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살 땐 어떻게든 싸게 사고 비싸게 팔아넘기려고 하는 사기꾼' 소리를 듣게 되기 십상입니다.

▲ 일단 비싸게 올려놓고 손님의 의사를 듣는 배짱 장사 역시 통하지 않습니다

구매에 성공한 아이템을 판매할 때도 상품 정보에 기반을 둔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중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 역시 가격표에 적힌 가격 그대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가게가 제시한 가격이 과연 합리적인지, 꼼꼼하게 체크해보고 흥정을 시도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모든 절차는 가게의 평판에 직결됩니다. 이 가게가 물건의 가치를 제대로 감정하는지, 판매하는 물건들이 적절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지, 나아가 플레이어가 인간적으로 성숙한 의식을 지녔는지'까지도요. 가게의 평판, 그리고 가게를 꾸려나가기 위한 여유 잔고와 앞으로 지출해야 하는 고정 비용들을 함께 고려하는 과정은 마치 실제 가게를 운영하는 것 같은 묘한 사실감을 전달합니다.

정리하자면, '우산 금지'는 시뮬레이션 장르에 더없이 충실한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북미 TV 프로그램인 '전당포 사나이들(Pawn Stars)'을 보며 중고 거래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었다면, '우산 금지'를 직접 플레이해보시길 바랍니다. 쇼의 주인공인 해리슨 가족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그들의 현실이 방송에서 비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은 가게의 평판으로 이어집니다

▲ 거창하지 않더라도,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 우산은 왜 금지됐을까?"


우산 금지는 중고 상점의 카운터에 가만히 앉아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닙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그리고 중고 물품 거래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메인 스토리를 함께 갖추고 있죠.

시대 배경은 가까운 미래인 2080년, 바닷가에서 크게 다친 채 발견된 플레이어는 중고상점 '달시스' 점주인 달시에게 구조받아 그를 대신하여 중고상점을 운영하게 됩니다.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쓰레기나 다름없는 물건을 최고급 골동품이라고 속이려 하거나,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기도 합니다.

가게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마치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잃어버린 듯한 묘한 모습을 보입니다. 아니면 일부러 숨기는 것일 수도 있죠.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플레이어는 평범한 사람들을 '과욕 범죄자'라고 부르며 통제하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이며, 곧 닥쳐올 픽서 강우란 무엇인지, 또 도시 전체에 '우산'을 거래하는 행위가 금지된 이유는 무엇인지 스토리를 통해 하나씩 깨우쳐 나가게 됩니다.


스토리는 사고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주인공과 주변인들을 불행으로 이끄는, 다소 무겁고 어두운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게임 속 시간으로 약 두 달간 진행되는 스토리는 결국 주인공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계속해서 궁금하게 만드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코, 중고 거래 시스템의 곁다리를 채우는 부차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엔딩의 종류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총 14가지로 나뉩니다. 단순히 특정 분기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따지는 것 외에도, 게임 플레이 전반에 걸친 플레이어의 행동 양식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다양한 엔딩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엔딩을 보기 위해 때론 과피연의 편에서, 때론 플로티 들의 편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해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스토리는 플레이어가 왜 중고 상점에서 계속해서 진상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는 요소가 됩니다. 돈이 필요한 상황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니, 플레이어는 신경 써서 물건을 감정하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손님들과 흥정을 하고, 가게의 평판까지 고려하며 게임을 계속 이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에 지속할만한 의미 부여가 어렵다면, 이처럼 잘 짜인 스토리를 만끽한다는 마음으로 게임을 이어가는 것도 가능한 셈이죠.

▲ 무겁고 어두운 스토리를 선호한다면, 취향에 딱 맞을지도 모릅니다



"중고 상점 운영, 원래 이렇게 배워야할 게 많은가요?"


'우산 금지'는 실제 중고상점 운영을 하는 것 같은 본격적인 중고 거래 시스템과 더불어 스토리 중심의 게임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심도 있는 스토리까지 갖춘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매력들 속 몇 가지 요소들은 게임의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 요소는 다소 반복적인 게임 플레이입니다. 스토리를 진행하며 여러 이벤트를 마주하게 된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플레이어는 상점 운영에 도움이 될만한 물건이나 요소를 구매하는 '오전'과 실제 상점을 운영하며 돈을 벌고 집으로 돌아가는 '오후'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됩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도 않고, 특정 NPC와 달달한 로맨스가 시작되지도 않으며, 오직 집과 일터를 계속해서 오갈 뿐입니다.

초반에 신규 감정 도구가 하나씩 해금될 때는 다룰 수 있는 중고 물품의 폭도 늘어나고, 덩달아 게임의 재미도 배가됩니다. 그러나 도구들이 모두 해금된 중반 이후에는 게임의 핵심 요소인 물건 감정조차도 마치 '업무'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여러 분기로 나뉘는 스토리가 궁금해서 게임을 계속하는 이들은 상점 운영과 출퇴근 과정 모두가 번거롭게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다 보니 1회차 이후에 10종 이상의 다양한 엔딩을 모두 수집하기 위해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쉽게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 됐죠.

▲ 탈것인 '호버보드'가 추가되어 빠른 이동이 가능해졌지만, 결국 출퇴근용에 그칩니다

'우산 금지' 특유의 스토리 설정과 고유명사들 역시 일부 유저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요소입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유저들은 '과욕 범죄 피해자 연대', '픽서 강우', '플로티', '픽서' 등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게임 속 주요 설정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여러 명의 등장인물과 게임 속에서만 사용되는 고유 개념들이 계속 등장하지만, 이러한 정보들을 모아서 볼 수 있는 도감 요소는 게임 속에 제공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몇몇 편의 요소들은 오랜 얼리억세스를 끝내고 드디어 출시된 정식 버전임에도 여전히 미흡한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 초반에 등장하는 항목별 튜토리얼도 유심히 읽어두지 않으면 다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우산 금지'는 오랜 얼리억세스 기간을 거치며 여러 불편한 점들을 개선해왔고, 유저 피드백을 반영하여 초기 버전보다 더욱 친절한 게임이 됐습니다. 스토리의 흐름대로 플레이하는 것이 답답한 이들을 위한 '도전모드' 추가, 다양한 엔딩을 본 후 엔딩 일러스트를 모아볼 수 있는 수집 페이지 추가,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동을 쉽고 빠르게 만들어주는 이동 수단의 추가 등이 대표적이죠.

그간 꾸준히 진행된 버그 픽스 덕에 별다른 오류를 경험할 일 없이 엔딩까지 쾌적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던 것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이고요. 상대적으로 피드백을 전하기 쉬운 국내 인디 개발사의 작품이기에, 앞으로의 개선된 모습 역시 계속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들 역시 여럿 남아있지만, '중고상점 시뮬레이터'라는 우산 금지만의 독특한 가치는 앞으로도 쉽게 바래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싼 값에 물건을 사고, 반대로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심리전을 펼치게 되는 중고거래 특유의 쫄깃함을 게임으로 느껴보고 싶은 유저라면, 꼭 '우산 금지'를 플레이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