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의 공백이 만든 가장 큰 변화


슈퍼로봇대전. 일명 슈로대 시리즈는 꾸준히 나오는 신작에도 새 참전작과 스토리를 보면 겉으로 큰 차이가 없는 작품처럼 보입니다. 특히 눈에 보이는 연출이 새로운 기종에 맞게 엄청난 향상을 거뒀던 과거 시리즈와 달리 양산화라는 단어가 썩 어색하지 않은 제3차 슈퍼로봇대전Z 즈음부터는 이런 아쉬움이 먼저 터져 나오는 시리즈가 되어버렸죠. 2D 로봇 전투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연출가의 부족과 함께 이른바 재탕 연출의 비중이 일정 비율을 차지하기도 했고요.

그동안 시리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신규 참전작의 새 연출과 어중간한 분량의 스토리 참가. 후속작에서는 기존 연출은 재활용하며 스토리와 무장 연출의 일부 추가. 그 다음작에서는 스토리가 빠지고 기체와 연출만 가져오는 식으로 그려지는 게 슈로대의 패턴이었죠.

이런 부분은 매 작품 반복되는 비판 거리지만 사실 신작 하나하나를 찬찬히 뜯어보면 그 작품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과 변화가 보입니다. 최근 작품으로만 따져도 슈퍼로봇대전V는 본격적인 글로벌 판권작 시대의 시작을 알렸고 슈퍼로봇대전 T는 부족한 로봇 연출과 스토리의 시각적 요소를 컷인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최근 작품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시리즈 30주년이라는 이름. 그리고 매년 출시되던 발매 일정에서 벗어나 이루어진 넉넉한 개발 일정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좋은 분위기기도 했죠.

개발진은 큰 줄기에서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야만 했던 정해진 이야기에 플레이어 스스로 게임의 진행에 참여하는 '주도성'을 이번 작품의 방향성으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또 똑같은 슈로대라고 할 수 있지만, 시리즈를 줄곧 따라온 플레이어라면 그 어떤 슈로대보다 가장 큰 변화가 있는 작품임을 곧 알 수 있습니다.


게임명: 슈퍼로봇대전30
장르명: 시뮬레이션 / RPG
출시일: 2021. 10. 28.
개발사: B.B. 스튜디오
서비스: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스팀 / PS4 / NSW

관련 링크: '슈퍼로봇대전30' 오픈크리틱 페이지


미션과 선택, 내가 그리는 슈로대의 이야기

이번 작품이 그간 슈로대 시리즈와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건 바로 플레이어의 선택입니다.

이 방향성의 결과를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역시 미션이겠죠. 그간 슈퍼로봇대전의 이야기는 선형적이었습니다. 지구 내부권의 싸움과 이성인의 침공, 그리고 이세계 좀 왔다갔다하다가 오리지널 적들과 싸우는 고정된 패턴은 그저 준비된 대로 따라가는 게 전부였죠.

물론 중간에 분기가 있긴 하지만 우주로 갈 건지, 지구로 갈 건지 정도에 스테이지 몇 개를 팀을 쪼개진 팀으로 플레이하는 수준입니다. 보통 최대 3갈래 분기가 나오니 2회차, 3회차에 다른 선택을 하면 사실 스토리 상으로는 더 즐길 게 없는 수준입니다. 슈로대 시리즈의 오랜 팬이라면 보통 다회차 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플레이하니 3회차 플레이가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니고요.

▲ 지난 작인 슈퍼로봇대전T까지만 해도 시나리오 루트 선택의 분기가 존재했습니다

슈퍼로봇대전30은 미션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야기를 다발 형태로 풀었습니다. 기존의 인터미션 개념인 전략 페이즈에서는 진행할 수 있는 여러 미션이 표시되고 플레이어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해 플레이하게 되죠. 각 전투 사이에서 그저 개조와 강화에 그쳤던 걸 떠나 본격적인 진행과 그에 따른 이점을 고려해야 하니 전략 페이즈라는 이름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요.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고 싶다면 별표가 있는 키 미션을 빠르게 클리어하면 됩니다. 반대로 서브 미션을 클리어하면 강화파츠나 추가 자원, 그리고 게임에 합류하지 않은 파일럿과 기체가 일찍 합류하게 되죠. 어떻게 보면 앞서 설명한 분기 개념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션은 단순히 스테이지의 순서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먼저 진행한 서브 미션에 따라 키 미션의 이름과 세부 내용, 등장인물의 상황이 달라지기도 하고 주요 무장을 일찍 활용하기도 합니다. 굳이 플레이할 필요는 없지만, 플레이어가 여러 미션을 클리어한 결과가 게임에 적용된다는 거죠.

▲ 다양한 미션들. 원하는 미션을 직접 선택해 플레이하게됩니다

미션 시스템의 추가는 단순히 스테이지 뿐만 아니라 파일럿과 기체 성장의 선택도 보다 중요하게 만들었습니다.

엔딩 후 다시 플레이할 때의 추가 이점인 다회차 계승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 잡기 전 과거 슈로대의 숨겨진 요소는 게임을 다시 플레이하게 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게임 잡지가 공략의 전부이던 어린 시절, 똑같이 게임을 플레이했는데 누구는 하만이 아군으로 합류하고, 누구는 에바 초호기가 S2 기간을 탑재해 케이블 없이 돌아다니는 등 전혀 다른 게임 진행이 이루어졌죠.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이런 요소들을 어떻게 얻게 됐는지 분석합니다. 파일럿이나 기체, 신 무장을 얻는 데는 캐릭터 간의 대화나 전투, 격추수, 격추 캐릭터 등 숨은 포인트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플레이어들이 서로 비교하고 분석해 다음에는 얻고야 말겠다는 다짐과 함께 다시 게임을 플레이하게 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게 됐죠.

하지만 다회차 시스템이 공고해지며 이런 숨겨진 요소가 다음 회차를 돌릴 큰 이유가 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숨겨진 요소 획득이 예전처럼 어렵지 않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에는 출시 이틀, 사흘 정도만 지나면 주요 숨겨진 요소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공유되죠. 굳이 복잡하고 어려운 포인트를 고민하지 않고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들을 따라만 해도 됩니다. 또, 분기에 따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요소들의 수도 점점 줄어 어지간하면 한 회차에 모든 요소를 얻을 수도 있고요.

▲ 미션 개방 조건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고 전력 수치도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슈퍼로봇대전30에서는 이런 요소 일부를 추가 미션에 담아냈습니다. 특정 기체의 강화도를 올리고 격추수를 채우는 등 일부 목표를 달성하면 미션이 개방되죠. 이들 추가 미션의 오픈 요구 사항은 게임 내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밌는 건 이들 미션에서 주는 혜택이 꼭 지금 얻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추가 미션을 통해 얻는 무장이나 새로운 기체는 대개 게임 진행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것들이죠. 대신 초반에 지나치게 약한 기체를 타고 나오거나 후속기체의 합류가 늦다면 이런 추가 미션을 통해 미리 해금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얼마나 빨리 미션을 개방할지 고려하고 이를 위해 특정 파일럿에게 격추수를 몰아주거나 강화를 밀어주는 것도 선택해야 하죠. 게임 속에 여전히 전투나 격추 파일럿 등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숨겨진 요소가 많지만, 빠른 무장, 기체 획득 요건을 플레이어가 직접 다룰 수 있다는 건 전에 없던 선택권이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셈입니다.

미션 말고도 특정 요건 달성하면 인터미션 중 알아서 진행되던 대화 이벤트도 함내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하고 볼 수 있도록 한 점도 슈퍼로봇대전VXT 3부작과는 다른 점이고요.

▲ 굳이 직접 게임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전력차가 많이 난다면 자동 전투를 켜도 좋습니다

하나하나 키워줄 유닛 선택하지 않고 좀 더 쉽게 키우고 싶다면 자동 전투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를 위해 오토배틀은 게임 중 스타트 버튼을 통해 간단히 실행할 수 있죠. 그래서 새롭게 전력이라는 개념이 추가됐는데요. 사실 히트&어웨이 커맨드를 활용하지 않는 정도를 빼면 AI가 생각보다 영리하게 알아서 운용합니다.



시리즈 최고 볼륨 속에서 로봇 군단을 이끄는 진짜 주인공이 되다

미션의 추가가 플레이 전반에서 플레이어에게 선택권을 줬다면 스토리에서는 오리지널 전함, 드라이스트레가가 이야기의 전보다 커진 주도성을 가집니다.

드라이스트레가는 거대 기동 전함으로 게임 중 획득한 MxP를 이 드라이스트레가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혜택은 트라이스트레가, 혹은 게임 전체에 미치는데요. 드라이스트레가의 EN이나 이동력을 올릴 수 있고 모든 로봇이 입수하는 크레딧의 양을 늘린다든가 SP 회복량, 추가적인 이동력 증가, 격투나 사격 수치 등 게임 플레이를 수월하게 만들 다양한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걸 어떤 순서로 업그레이드하느냐에 따라 성장 방식이 결정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MxP 투자가 되지 않은 초반에는 비교적 정신기를 자유롭게 쓰기도 어렵고, 이동력을 높이기도 어려워 후반과 비교하면 게임이 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게임 초반부터 높은 난이도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면 가지고 있는 자금과 강화 파츠를 통한 성장으로 충분히 클리어 가능하지만요.

▲ 기력, 능력치, 획득 크레딧 추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성장시킬 수 있죠

이렇게 부대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만, 전함 드라이스트레가의 진짜 의의는 게임의 스토리 부분에 있습니다. 슈퍼로봇대전VXT의 기본적인 이야기는 개별 기체를 운용하는 주인공과 여러 슈퍼로봇의 집합체로 이루어집니다.

반면 드라이스트레가는 연방군 소속이기는 하지만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다른 여러 파일럿을 이끄는 수장 역할을 합니다. 과거 슈퍼로봇대전에서 론도벨의 역할을 오리지널 캐릭터와 전함이 하고 있는 격이죠.

오리지널 캐릭터가 게임 전체의 다양한 로봇을 이끌다 보니 플레이어 역시 다른 작품에 등장한 캐릭터만이 아니라 슈퍼로봇대전30만의 스토리를 독립된 작품으로서 다가가고 끌리게 됩니다. 거기다 플레이어가 전함의 이동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미션 시스템까지 더해지며 특유의 색을 더 진하게 칠하고 있죠.

이런 역할에 따라 다른 많은 함대 크루 중에서도 함장인 미츠바에 꽤 많은 주목 요소를 넣어놨는데요. 지구 통일이라는 꿈을 게임 초반부터 드러내기도 하고 전시에 군 인물의 사망으로 갑작스럽게 함대를 이끄는 모습은 기동전사 건담의 초반부를 다수 오마주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게임 중 만나는 브라이트 노아 역시 이런 상황을 직접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초반 유저가 선택하는 주인공보다도 이쪽이 게임의 특징과 맞물려 진짜 주인공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주인공은 하나의 참전작 느낌이고요. 캐릭터성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슈퍼로봇대전T에서 보여준 세계 평화를 지키는 샐러리맨보다는 좀 더 그럴듯한 전개기도 합니다. 통솔자의 역할이기에 여러 참전작만의 특징을 건드리는 부분도 적고 말이죠.

▲ 1년전쟁 당시의 모습을 오리지널 캐릭터에게 투영해 스토리의 독립성을 주고 있죠

이렇게 작품 전체에 플레이어의 선택 권한을 주며 자연스레 게임의 볼륨도 늘어났습니다. 기존 게임의 분량으로는 지금 같은 미션 선택 방식의 게임을 채우기엔 스테이지 수가 부족할 테니까요.

분량만 따지면 슈퍼로봇대전 임팩트 이상의 수준인데 사실 임팩트와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긴 합니다. 임택트의 경우 2편으로 나누어 출시됐던 F와 F완결처럼 3부작으로 분할 출시됐던 슈퍼로봇대전 컴팩트2를 기반으로 합니다. 컴팩트 시리즈가 기기 성능에 한계가 있던 원더스완으로 출시돼 오늘날 슈로대와 비교하면 그 분량이 많지 않았고 임팩트 역시 3부작을 합쳐 다시 출시한 것을 생각하면 전체 분량 자체는 100화 정도였죠.

물론 임팩트가 기존 슈로대 최고 분량의 작품은 맞지만, 분할 출시된 작품을 하나로 합해 다시 선보이는 데 집중한 리메이크작과 플레이어의 선택 권한을 위해 스테이지를 늘린 것과는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역대급 분량'을 넘어 그 이면에 담긴 개발진의 방향성이 이번 작품의 진짜 핵심이지 않을까 싶네요.



특색에 맞게 다시 살아난 전투 연출

물론 이런 장점도 그저 재탕 연출만을 지적하며 아쉬워하는 이들에게는 크게 개선된 점이라고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투 연출 부분으로 개선점을 한정해도 슈퍼로봇대전30은 한동안 아쉬움만 남겼던 시리즈의 단점을 많이 극복한 모습입니다.

예전 슈퍼로봇대전T의 리뷰에서도 밝혔듯 매 시리즈 슈퍼로봇대전이 기존 작품의 연출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비율은 전체 참전작의 60% 정도입니다. 특히 글로벌 판권작인 슈퍼로봇대전 VXT 3부작은 각각 1년 만에 게임이 출시되는 빡빡한 일정 아래 이런 재활용이 더욱 도드라졌죠. 사실 B.B. 스튜디오라는 개발팀 자체의 인력, 그리고 일본 게임 업계 전체에서 계속 언급되는 귀해져만 가는 로봇 연출 담당가 수에 일정마저 촉박하니 앞선 3부작의 연출 재활용과 로봇 연출의 전체적인 수 저하는 예고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기존 연출의 재활용은 확실히 줄었습니다. 재참전작은 연출을 새로 그리거나 여러 추가점을 더했고 신 참전작은 확실히 연출 역량을 몰아준 느낌입니다.

최근 작품에도 여러 차례 합류했던 Z건담은 기존 연출도 훌륭한 편이었지만, 오랜 재활용에 이번에는 연출이 새롭게 그려졌습니다. 거의 10년 넘는 시간이 흘러 메인 시리즈에 합류한 컴배틀러V나 엘가임이야 당연히 새로운 연출이 게임에 담겼죠. 건X소드에서 반의 모자 고리가 흔들리는 연출이 추가되는 등 지난 작품을 통해 새 연출이 그려진 작품의 연출도 추가 요소가 다수 포함됐습니다.

▲ 작지만 은근히 눈에 밟히는 추가 연출로 보다 원작 분위기를 살리고 있습니다

▲ 전작의 인형뽑기와는 다른 가오가이가

작품별로 분위기를 살리는 연출 차이가 이번에는 더 도드라지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대표적인 게 컴배틀러V인데요. 컴배틀러V의 전투 속 모습은 타 작품과 리얼 사이즈에 조금 더 가까운 비율로 그려졌습니다. 특히 거의 모든 연출이 마치 컷인처럼 기체를 확대해 보여주죠. 그래서 공격만 본다면 오히려 SD화된 캐릭터를 보는 게 더 드물 수준입니다.

반면 시리즈 30주년에 맞게 오랜만에 참전한 시리즈 첫 건담, RX-78은 작품 내에서는 아무로가 뉴 건담 이전에 사용할 다시 만든 구식 건담에 그칩니다. 하지만 연출만큼은 정말 팬들의 향수를 자아내게 합니다. 비슷하게 초반 성능 제한을 위해 카미유가 타고 나오는 건담 Mk-II와 비교하면 모션이나 컷인, 역동성 모두 엄청난 수준으로 그려지죠. 마치 예전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프레임 낮은 연출도 오히려 분위기를 살리고요. 시리즈 시작을 알린 작품에 대한 예우까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 우주세기 건담 팬들에겐 앞으로도 잊지 못할 연출

은하기공대 마제스틱 프린스의 기체들은 원작의 장면들을 컷인으로 넣어둔 것도 돋보이지만 훌륭한 2D 기체 움직임과 함께 원작과 비슷한 3D 연출로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반대로 그리드맨의 연출은 슈로대만이 가능한 2D 전투로 박진감을 살렸습니다. 관절 하나하나의 움직임이나 모션은 오히려 애니메이션 이상으로 울트라맨 같은 특촬물 느낌을 잘 살리고 있고요.

컴배틀러V와 그리드맨의 전투를 비교한다면 같은 게임에 등장하는 장면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다르지만, 사실 전혀 다른 작품의 크로스오버를 그리는 슈퍼로봇대전의 특징을 생각하면 되레 이게 더 잘 어울리는 연출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연출 역량을 잘 분배한다는 측면에서도 효과적이고요.

슈퍼로봇대전은 잘 알려졌듯 여러 연출가가 무장이나 로봇 연출을 따로 담당합니다. 역동적인 움직임을 전투에서 잘 구현한 아리오스의 사람이라는 개발자 연출을 찾아내려는 팬이 있을 정도로 연출별 편차가 크죠. 지난 작품에서는 이걸 애니메이션 장면을 보는 듯한 컷인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번 작에는 단순히 컷인으로만 해결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별 특색에 맞는 연출로 그려냈습니다.

물론 이런 연출 품질의 향상은 충분한 개발 기간의 확보가 있기에 가능했겠지만요.

▲ 같은 게임 치고는 정말 많이 다른 전투 액션

다만, 아쉬운 게 없는 건 아닙니다. 작품에 따른 연출 편차는 여전한데 가장 약한 무장도 컷인과 움직임을 최대한 활용해 그럴듯하게 그려지는 예도 있지만, 최종 무장이 그보다 못하는 예도 있죠. G제네레이션 시리즈에만 있을 것 같았던 급격한 프레임 드롭도 일부 연출에서 보입니다.

거의 모든 작품이 간단한 연출 추가나 새로 장면이 추가된 데 반해 진 겟타 드래곤의 연출은 이번 작품 중 드물게 완전 재활용됐습니다. 전작에서 큰 비판을 받았던 가오가이가가 전작의 아쉬움을 새로운 연출로 반전시킨 것과 비교하면 아쉬울 따름입니다. OVA '진 겟타로보 세계 최후의 날'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진 겟타는 시작하자마자 리타이어. 맵에 등장한 것을 끝으로 등장도 없어 더 아쉽고요.

또 풀아머 백식처럼 움직임이 정말 제한된 유닛도 종종 눈에 띕니다. Z건담이나 역습의 샤아 기체들의 새로 그려진 연출이 굉장히 매끄럽고 훌륭한 것을 보면 유독 부족해 보이기도 하고요. 이처럼 작품마다 연출 수준이 편중되어 있다는 의미인데요. 연출은 호불호의 영역이기도 해 전작의 연출들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연출의 품질은 확실히 나은 편이라 아쉬움보다는 만족스러움이 큰 편이긴 합니다.

▲ 남들 다 바뀌는데 초기 겟타는 커녕 연출도 똑같은 진 겟타 드래곤

▲ 그래도 슈퍼로봇대전T에서 잘 쓰였던 컷인 스토리 연출은 이번에도 잘 활용되고 있죠

그간 오랫동안 쓰이던 UI의 형태 변화도 눈에 띕니다. HP와 EN이 막대 형태로 표시되던 게 원형 그래프로 바뀌고 맵 상의 커맨드도 고리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오래 이어져 온 부분이 바뀌는 셈이라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하고요.

반면 UI 전체를 없애는 옵션은 게임을 새롭게 즐기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동안은 화면 전체를 쓰는 일부 연출에서만 하단 대사창 배경을 잠시 없애는 식이었는데요. 이번에는 모든 대사를 제외한 모든 UI를 없앨 수 있도록 했습니다. 화면 전체를 전투로 채우며 역동성은 한층 더해졌는데요. 이렇게 화면을 꽉 채운 연출 자체가 늘어난 걸 보면 UI를 제거하고 보는 게 더 맞도록 만들어진 느낌도 들고요.

적의 공격 후 반격처럼 중간 로딩이 이루어지는 구간에는 화면을 그대로 두지 않고 암전시킨 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데요. 전투 사이사이 기체가 등장하는 모션이 추가되며 피격과 추가 사이를 이렇게 어둡게 처리해버렸습니다. 출시 전에는 이게 꽤 거슬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PS5에서 플레이할 때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은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이건 충분히 중간 단계 연출을 그려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라 아쉽기만 합니다.

▲ UI를 끄면 전투 연출에 훨씬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됩니다. 대신 체력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릅니다

▲ 피격 후, 또는 전투 돌입 시 애니메이션이 추가되며 UI만 남기고 잠시 화면을 암전시켜버립니다



DLC, 슈로대의 생명을 늘릴 수 있을까

이번 작품은 메인 시리즈 처음으로 DLC를 통해 기체 합류가 이루어집니다. 참전 기체와 수 등에는 호불호가 갈릴지 모르겠지만, DLC를 통한 새 기체는 플레이어의 선택과 늘어난 볼륨을 생각한다면 슈로대 각 시리즈의 생명을 늘릴 좋은 기회가 될 법합니다.

슈퍼로봇대전의 참전작은 라이선스 계약이나 프라모델 제작 가능성, 유저들의 선호도 등 게임 외적인 요인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게임 내적으로는 스토리의 전개와 관련이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작품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내기 위해 적당한 이야기 변형과 추가, 삭제가 이루어지죠.

적 기체가 아군에 합류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단순히 쓸 수 있는 기체 추가의 일부겠지만, 그 과정에 맞는 스토리가 뒤따라줘야 하는 일이고요. 하지만 DLC를 통한 기체 추가는 좀 다릅니다. 세계관 합류에 따른 간단한 스토리 미션이 추가되긴 하겠지만, 결국은 스토리 외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초반 특전으로 합류하는 SRX 팀이나 사이버스타처럼 말이죠.

▲ 그저 싸움만이 전부였던 첫 슈로대. 30년이 지난 지금은 여러 작품의 캐릭터가 다양한 방식으로 엮이며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이런 방식으로 기체가 합류하는 건 게임 안에서 새로운 즐길 거리가 됩니다. 초회차, 혹은 2회차 정도야 여러 작품이 크로스오버 되는 이야기를 즐기긴 하지만, 회차가 많아질수록 원하는 기체의 성장이나 무개조 플레이처럼 스스로 정한 기믹 플레이 정도를 즐기게 되죠.

아무리 미션 당 참전 기체의 한계 수가 적다고 하지만, 다회차 플레이서는 정신기 요원, 갑판 요원의 파일럿과 기체도 성장이 끝납니다. 이 정도 단계에서, 스토리 걱정 없이 새로운 기체가 DLC로 추가된다면 게임의 수명도 한결 늘어나는 거고요.

지난 슈퍼로봇대전T의 익스팬션 시나리오처럼 추가적인 스토리 전개와 함께 스토리의 확장을 그린다면 개발 기간에도 좀 더 여유를 가질만한 성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게이머가 굳이 회사를 걱정해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매년 기대 이하의 자가 복제 게임을 즐기기보다는 조금 더 개발 기간에 여유를 두더라도 이번 슈퍼로봇대전30이 보여준 볼륨과 변화가 더 기대되는 건 분명하니까요.

물론 그 결과가 실망스럽다면 돈 받고 기체나 팔았다는 오명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요.

▲ 스토리상 합류하기 어려운 작품도 DLC를 통해 참전하고 후반 즐길 거리도 늘어나게 됩니다



게임 출시 전 3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에 어울리지 않은 사전 정보와 우려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던 슈퍼로봇대전30. 하지만 오랜 팬들이라면 분명히 그 어떤 작품보다 오래 즐길만한 단편임이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이번 슈퍼로봇대전30을 충분히 즐긴 이후일 겁니다. 당장 휴대용 게임에 집중하던 에이아이가 슈로대 제작에 빠지며 오늘날 작품은 B.B. 스튜디오 주도로 개발이 재편됐습니다. 1, 2년을 주기로 신작을 선보이는 여러 대형 프랜차이즈가 다수의 스튜디오를 통해 나누어 개발하는 것과는 다른 모양새죠. 다음 작품도 이 정도 볼륨, 이만한 발전이 선보일지 걱정될 정도입니다. 그래서 DLC, 확장팩을 통한 수명 늘리기와 개발 기간 확보에도 눈이 가는 거고요.

개발 기간에 대한 걱정이 들 정도인 건 그만큼 이번 작품이 최근 판권작들과 비교해 확실히 나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물론 긴급 미션 발생 시 미션이 일부 사라지거나 미션 상황에 따라 대사가 꼬이는 등의 오류도 몇몇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작품별로 스토리나 비중에 대해 아쉬움도 있고요. 하지만 30주년이라는 이름에 맞게 확실한 변화와 나아가야할 길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31, 32주년에 나올 작품만이 아니라 앞으로 나올 슈로대가 이런 변화와 성장을 보여준다면 수 작품 이내에 '재탕'이라는 오명도 벗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