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인상에 남는 '명작 게임'을 접해본 이들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한 번쯤 게임 개발자의 꿈을 꿔보고는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업으로 삼아 먹고 산다면?', 또는 '내 취향의 게임을 직접 만든다면?'이라는 가정엔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어떤 로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 개발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물론 요즘은 문외한들도 조금만 공부하면 그럴싸하게 모양새를 낼 수 있는 게임 엔진이나 개발 툴이 여럿 존재하지만, 업으로써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실력을 갖춘 개발자가 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기본 소양들이 있다.

기존엔 이런 지식들을 대학의 관련 학과에 진학하며 처음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게임 산업 자체가 나라에서 주목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로 부상하며 더 일찍부터 게임 개발과 관련된 기술을 가르치려는 시도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경기게임마이스터고등학교(이하 게임마이스터고)'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게임마이스터고가 게임 개발자 육성을 위한 전문 커리큘럼을 갖춘 학교라고는 하지만, 사실 교명을 게임마이스터고로 변경하고 '게임'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게 된 지는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게임 교육 과정에서는 신설 교육기관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교명 변경과 함께 교장으로 새롭게 취임한 정석희 교장은 취임 당시 게임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 양성을 통해 대한민국 게임 산업 최고의 중등교육기관이 되고자 한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바 있다. 2021년의 끝 무렵에 진행된 정석희 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포부에 흔들림은 없는지, 학생들의 취업 비전, 그리고 현재 게임마이스터고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무엇인지에 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경기게임마이스터고 정석희 교장


게임마이스터교의 교장으로 취임하고 3년 차를 맞이하게 됐다. 지난 2년은 어땠는지, 소감을 먼저 듣고 싶다.

- 소감을 이야기하자니, 처음 학교에 왔을 당시가 떠오른다. 자영업으로 치킨집을 차린다고 예를 들어보자. 처음에 인테리어를 꾸미고, 카드 결제를 위한 단말기를 두고, 가맹점 계약도 해야한다. 이처럼 게임마이스터고 역시 신입생을 뽑고 개교를 하게 됐는데, 별도의 안내나 교육이 없다 보니 처음엔 교장으로서 무엇을 먼저 하면 좋을지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교육감으로부터 위임받아 학교의 관리자가 됐지만, 아무래도 게임 산업에서 온 사람이다 보니 기존 학교 선생님들과 소통도 어려웠고, 이곳의 문화에 익숙해지려고 많이 노력했다.

지난 2년간 가장 공을 들였던 것은 '환경 개선 공사'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만큼 마음 편히 쉬고, 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교의 가장 중요한 위치들을 휴게실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 왔을 땐 도서관 시설도 참 낡았었는데, 서가부터 시작해서 시설들을 전부 개선하기도 했다. 이렇게 2년을 보냈다.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서 정말 바쁜 2년이었을 것 같다. 어려운 일은 없었나?

- 열심히 설비를 정비하고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려 하니, 코로나가 터져버려 개교를 못 하는 상황이 됐다. 각 산업체에서 온 교사들도 계셨는데, 수업을 진행할 수 없으니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 없으니, 원격 수업을 진행하자고 제안한 기억이 있다. 강의 영상을 만들고 구글 클래스 등을 통해 수업을 준비했는데, 교사들 역시 이러한 환경을 낯설게 느끼는 상황이었고, 어려운 일이 많았다. 당시 원격으로 수업을 진행하자고 제안한 것은 우리가 최초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엔 교육청에서도 나와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도 하고, 굉장히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여러모로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많이 노력한 것 같은데, 공립학교 교장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다.

- 4년의 교장 임기가 끝나면 집으로 가야하는 산업체 출신 교장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이왕하는거 소신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 내가 이 자리에 임명된 것 아닐까.


2년간 여러 도전을 통해 많은 개선을 이뤄냈을 텐데, 주요 성과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 앞에서 학교 운영과 관련하여 환경 개선이나 학부모와 교사 간의 민주적인 소통을 이루었다던지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용병'으로 이 학교에 부임하게 된 나에게 바라는 성과는 따로 있다는 것을 안다.

코로나 시국이 겹쳐 원격 교육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퍼포먼스를 기대만큼 끌어올리지는 못했는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이 다양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올해 글로벌 인디 게임 제작 대회에서 중고등부 금상, SKT에서 청소년 대상으로 진행한 앱 경진대회에서 엔터테인먼트 부문 대상, 그리고 로블록스로 진행되는 메타버스 관련 대회에서도 학생들이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코로나 시국에도 좋은 성과를 거둔 학생들이 대견하게 느껴질 것 같다. 학교의 어떤 커리큘럼이 학생들의 좋은 성과에 기여할 수 있었다고 보는가?

- 학생들이 실제 게임 개발 현장에 참여해볼 수 있도록 한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먼저 크래프톤에서 만들고 있는 신작의 게임 테스트를 위해 학생들을 보내고, QA 기업인 오르고소프트에 학생들을 보내서 현장 실습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충북글로벌게임센터에 입주한 10개 기업의 작품 중 출시를 앞둔 게임을 테스트하기도 하고,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여러 기회를 제공해 준 기업들에도 참 감사한 마음이다.



학생들의 교육 과정이나 실습을 준비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나?

- 물론 있다. 게임마이스터고는 다른 마이스터고들과 달리,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콘텐츠'를 가르치는 학교다. 게임마이스터고에서 가르치는 수학, 역사, 영어 등 일반 교과는 콘텐츠 개발을 위한 소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진행되는 모든 수업은 프로젝트를 베이스로 한다. 역사 수업이라면 소재를 찾아 가공하고, 왜곡이 있다면 정정해주고, 각색을 통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식으로 진행되는 식이다. 게임의 구조와 틀을 만드는 방법을 배울 때, 이러한 뼈대를 채울 수 있는 살집과 액세서리는 모두 콘텐츠의 몫이다. 이 콘텐츠는 인문학과 경제,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배우게 되고, 이런 것들은 공학이라는 기술로 구현된다.


이상적인 수업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 국가대표 감독이 됐을 때 자신의 코치진을 직접 꾸릴 수 있었던 것처럼, 교장 역시 자신의 스텝을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한데, 이것이 자유롭지 않아서 아쉽다. 일을 추진하기 위한 인력 세팅이 쉽지 않다는 것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점이다. 산학겸임교사 채용과 제도 운영에 있어 학교장의 재량권이 지금보다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일 것 같다. 가능한 선에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 기업과 연계한 계약 형태의 학과가 필요하다고 본다. 기업들이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참여하기를 바라는 상황이다. 단순히 PC나 타블렛을 지원해주는 방식보다는 해당 기업의 스튜디오가 꾸며지고, 특정 게임으로 꾸며진 랩실이 지원된다면 학생들이 해당 기업에 대한 꿈, 희망 같은 것을 품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번 만들면 10년 이상 영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부분이니, 기업들이 이런 쪽으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가 절실해 보이는데, 게임 산업과 협력이 잘되고 있는 편인가?

- 기업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상황인데, 두 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첫 번째는 공유재산법 관련 문제다. 학교 시설은 기본적으로 공공시설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빌려줄 수 있는데, 영리활동을 추구하는 기업이 들어올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또 하나는 산학협력과 관련된 법이다. 산학협력단을 설치해서 직원들을 채용하는 방식이 현재 전국 대학교에서는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이를 설치할 수 있다는 조항이 없다. 현재 활용할 수 있는 유효 공간이 많이 남아있으므로, 산학협력단 유치 관련 법 개선, 그리고 영리가 목적이라도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기업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임기 동안 공유재산법 관련 문제는 허가를 받았는데, 교실 하나당 기업이 1년에 약 1,4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일반적인 경우 사무실을 대여할 때 관리비를 더해도 3개월에 80만 원 정도를 내는 편인데, 학교에 1,400만 원이나 내고 들어올 기업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이게 현실적인 궤도에 들어오려면 임대료 면제 조항을 추가하는 등, 현실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산학협력 확대를 위해서 넘어야 할 허들이 정말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 정리하자면 여러 대학의 사례와 같이 게임 기업의 학교 내 유치를 위한 제도 개선, 학교 내 기업 유치를 통해 교강사 지원과 협업 프로젝트, 게임 테스팅 등 상호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중등 교육 산학협력 모델 마련 등이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한 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목표는 가능한 선에서 학교 환경을 잘 만들어서, 다음번에 취임하게 될 후임자가 더 편하게 운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다음 교장은 게임 업계에서 오는 사람이 아닐 수 있는데, 대한민국 게임 산업의 강화를 위해, 그 누가 이어받더라도 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가능한 선에서 기반을 닦을 계획이다.



현재 게임마이스터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산학겸임교사들은 몇 명 정도인가?

- 현재 여덟 분 정도 계시는데, 3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10여 명의 교사가 필요하다. 게임을 이해하고 새로운 교육과 인재 양성에 도전하려는 의지를 가진 교사들 말이다. 요즘 산학겸임교사를 구하는 것이 정말 힘든 상황이므로, 그런 부분에서 업계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특강 수준을 넘어 한 학기를 전담해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는 정말 구하기 어려운데, 이는 우리 산업이 전문적인 교원, 강사를 성장시키기 위한 훈련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개발자들이 양성되기 위해서는,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 전문 교원, 강사의 수도 더 늘어나야 한다.


이외에도 앞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당면 과제가 있나?

- 학생들의 취업 비전을 위해, 산업계 신입 채용 시 병역특례 TO가 있는 회사에 지원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고졸 채용을 하는 기업들이 거의 없는데, 이런 측면에서 문호를 더 열어줘야 한다고 본다. 게임마이스터고의 학생들은 전문대 게임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문체부에서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문체부 지원사업과 연계해서 기업이 학생들을 채용할 때 이득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중요한 건 기업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가슴을 열고, 학생들을 받아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사회 경험이 부족한 고등학생을 채용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 사회 공헌 프로그램의 형태로 돌려도 된다. 대학에 진학하고 어느 정도 사회 생활을 겪은 학생들과 비교하면 수준이 다소 부족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가능성을 시험해볼 기회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생겨야 후배들도 희망을 갖게 되고, 선배들이 현업에 종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후속 조치도 이어지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이 있다. 재학생 중에는 1~2학년을 거치는 동안 게임 개발자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학생들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학생들에 대한 지원도 있나?

- 물론 있다. 게임에 관심은 있으나 '개발'이라는 부분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라면 'QA'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3학년 때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꼭 게임 개발이 아니더라도 교육과정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관련 IT 프로그래밍 및 유니티를 활용한 분야로 취업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1,2학년은 본연의 교육과정에 충실하게 운영하고, 진로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면 마지막 학년인 3학년에 집중적으로 교육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다가오는 2022년에는 게임마이스터고의 첫 번째 졸업생들이 배출될 예정이다. 그간의 노력이 첫 번째 결실을 맺게 되는 셈인데, 2022년을 앞둔 포부가 궁금하다.

- 게임 산업은 학력적으로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산업 중 하나다. 그런 만큼, 학생들이 업계의 미래를 책임져줄 일원이 되리라는 기대와 믿음의 시선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외부 환경들을 계속 조성해야만 한다. 교장으로서 남은 임기 동안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생각이다.


멋진 포부다.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외부 환경'을 만드는 일의 일환으로, 앞으로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계획이 있나? 계속 현실적인 이야기만 했으니, 다소 현실적이지 않아도 좋다.

- 한국에서도 언젠가 '국뽕'을 느낄 수 있는 세계적인 규모의 게임 행사를 개최할 수 있다면 좋겠다. 오로지 한국에 와야만 참여할 수 있는, 전 세계의 게임 개발자들이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어하는 그런 행사 말이다. '그 행사를 경험하면 진짜 게임 개발자의 꿈을 키울 수 있겠다'하는 동기를 줄 수 있는 행사가 한국에서, 거리 부담이 없는 수도권에서 개최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