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초 플레이어언노운즈 배틀그라운드(이하 PUBG)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게이머들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PUBG는 스팀 동접자 1위, 국내 PC방 점유율 1위를 넘어 배틀로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순식간에 글로벌 대세 게임으로 자리잡은 PUBG는 e스포츠에도 야심차게 발을 내밀었다. 그러나 게임의 인기와는 별개로 e스포츠로서는 어려움이 매우 많았다.

대규모 인원이 참가해야 하는 게임성으로 인한 물리적 한계는 물론 게임 자체의 버그도 많았고, e스포츠와 어울리지 않는 인게임 시스템도 있었다. 옵저빙 기술 및 인터페이스가 허술해 보는 맛이 전혀 살지 않았다. 지역, 국가 별로 온갖 리그가 열리는데 각 대회마다 다른 규정이 난립했고, 팀과 선수 계약에 대한 규정이나 체계 또한 더없이 허술했다. 결국, 게임의 인기를 등에 업고 초반에 반짝했던 PUBG e스포츠의 인기는 순식간에 식었다.

그러나 시간과 함께 PUBG e스포츠는 끝없이 발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산업과 사업이 직격탄을 맞은 와중에도 오히려 그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보다 안정적인 e스포츠 생태계를 구축했다. 지금까지 PUBG e스포츠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정리했다.


■ 규정조차 없었던 시절,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 PC방에서 진행됐던 '아프리카TV 배틀그라운드 인비테이셔널'

2017년 10월에 진행된 국내 최초의 PUBG 공식 e스포츠 '아프리카TV 배틀그라운드 인비테이셔널'을 시작으로 각종 PUBG e스포츠가 우후죽순 개최됐다. 문제는 한동안 명문화된 규정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에 크래프톤(당시 펍지주식회사)은 방송사에, 방송사는 크래프톤에 규정을 문의하는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는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고 부적절한 행위를 한 선수들에 대한 징계도 내리기 어려웠다.

인게임 시스템이나 옵저빙도 PUBG e스포츠의 발목을 잡았다. 다수의 선수가 물 속에 몸을 담근 채 순위 방어를 기다리는 장관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관전 랙으로 인해 송출 화면 자체의 프레임이 떨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으며 옵저빙의 한계와 리플레이의 부재로 킬 현황만 보고 전세를 파악해야 했다. 선수들도 20프레임 내외의 상황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으며, 대회 서버는 심심하면 터져서 경기를 지연시켰다.

당시엔 팀과 선수들도 크래프톤의 관리 대상이 아니었다. 각 팀의 관계자들은 전무한 지원과 빡빡한 일정 등에 운영난을 호소했다. 더군다나 선수들은 수시로 팀을 옮겨다녔는데, 이에 한동안 팀이나 선수에 대한 스토리가 쌓이지 않아 고정 팬층이 쌓이지 않고 몰입도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큰 문제는 크래프톤의 불통이었다. 크래프톤은 대회 운영이나 인게임 시스템에 관해 언제나 팀 관계자와 선수들의 의견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내용들이 e스포츠에 실제로 반영되는데는 한세월이 걸렸다. 이러한 크래프톤의 행보에 팬들마저 피로감과 불만을 호소했고, 야심차게 출범한 PUBG e스포츠는 머지않아 내리막길을 걸었다.


■ 범지구적 위기 '코로나19', PUBG에겐 기회였다


앞서 나열한 문제점들은 크래프톤의 인력 충원과 게임 업데이트, PUBG e스포츠 글로벌 룰셋인 S.U.P.E.R의 제정 및 지속적인 수정-발전을 통해 점차 보완되어 갔다. 팀과 선수들에 대한 지원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며 경기 수준이 보다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떠나간 시청자들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운영에 대한 반감이 남아 있었고, PUBG의 인기도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20년 초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가 PUBG e스포츠에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가 됐다. 마침 지역 리그 폐지와 글로벌 리그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PUBG e스포츠 방향성과 맞물렸다. 기존에 예정됐던 PUBG 글로벌 시리즈는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지만, 이를 대체해 기획한 PUBG 컨티넨탈 시리즈(이하 PCS)가 제대로 통했다.

PUBG e스포츠의 온라인 진행은 오래 전부터 계속 진행되어 왔다. 기존의 모든 스크림은 온라인으로 진행됐으며 다수의 중소규모 대회가 온라인으로 펼쳐졌다. 다만 문제는 국제전이었다. 국내 한정이라면 상관 없지만, 다른 국가의 팀들과 원활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경기를 치르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2017년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했겠지만, 그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한 크래프톤은 인프라와 관련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유럽-APAC-아시아-북아메리카 등 4개 권역으로 나뉘어 출범한 PCS 1은 성황리에 종료됐다. 온라인 진행으로 인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회는 순조롭게 흘러갔으며, 선수들도 각자의 지역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하며 명경기를 뽑아냈다. 이어진 PCS 2와 PCS 3 역시 큰 잡음 없이 종료됐는데, 대회가 거듭될수록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PCS에는 그동안 눈에 띄게 발전한 관전 인터페이스와 옵저빙, 게임 시스템과 함께 팀과 선수들이 쌓아온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또한 그 무엇보다 PUBG e스포츠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국제전을 보다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이 주요했다.

2020년 세 번의 PCS를 통해 온라인 대회 기반을 완전히 구축한 크래프톤은 PGI.S 2021에서 온-오프라인 결합 대회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 PUBG e스포츠의 순항은 PCS 4, PCS 5를 넘어 PGC 2021까지 이어졌다. 올해 역시 PCS 6, 7과 PGC 2022가 예정되어 있으며, 3년 만에 PUBG 네이션스 컵까지 돌아온다. '코로나19' 시국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몰라도 PUBG e스포츠의 2022 로드맵은 모두 이행될 것이다.



■ 아쉬움 남았던 순간들, 보다 현명히 대처해야

지난 2년이 PUBG e스포츠에 마냥 긍정적인 시간만은 아니었다. PGI.S 2021에서 첫 선을 보인치킨 룰을 PGC 4에 갑작스럽게 도입하고 PCS 5까지 이어가며 많은 지탄을 받았다. 치킨 룰은 처음부터 호불호가 크게 갈렸던 방식이었던데다가 PGI.S 2021 종료 후 수많은 관계자와 팬들의 피드백이 있었지만, 크래프톤은 이를 귀담아듣지 않고 독단적인 판단으로 PCS에 곧바로 적용한 것이다. 물론 PGC 2021는 기존 포인트 룰로 회귀해 진행됐으며, 최근 발표한 S.U.P.E.R v.1.7.0에선 치킨 룰을 전면 폐지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행보였음은 분명하다.

'배틀그라운드 한중전 파트너스 리그'에서 나왔던 중국에 대한 편애도 구설수에 올랐다. 중국 파트너 BJ 다수가 대회에서 핵을 사용한 정황이 발견되고 대회 도중 추방까지 됐음에도 불구하고 크래프톤은 대회 종료 후 4일이 지난 후에야 입장문을 발표했다. 더군다나 한 중국 BJ는 이미 핵 사용으로 처벌을 받은 유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에 지난 2019년 'MET 아시아 시리즈'에서 중국 팀들의 막무가내식 보이콧과 티밍 행위를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까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며 팬들의 큰 공분을 샀다.

e스포츠에 대한 크래프톤 김창한 대표의 각별한 의지에 따라 PUBG e스포츠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성장할 것이다. 실제로 인기도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지만, 운영의 성숙함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e스포츠화 초기의 수많은 우려를 딛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e스포츠 종목으로 자리 잡은 만큼 보다 현명한 운영을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