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게임을 비롯한 IT 산업 전반에서 가장 뜨거웠던 주제인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은 다양한 영역에서 응용되면서 여러 산업 분야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IT가 기반이 되며 가상 세계라는 맥락에서 이와 여러 부분에서 공통점을 지닌 '게임' 산업은 말 그대로 패러다임의 변화에 준하는 새로운 개념들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몇 년에 걸쳐 블록체인과 게임의 융합은 마치 계단을 하나씩 오르듯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갔다. 매우 노골적인 형태의 '코인도저'류 게임부터, 블록체인 경제의 '탈중앙금융'에 집중한 형태의 게임 디자인까지. 그리고 그 계단의 끝에서, 다음 층으로 나아가기 전 마지막 숨을 돌리는 층계참에 위메이드의 '미르4'가 있다.

게임과 블록체인 경제의 융합은 분명 긍정적인 반응만을 이끌어내진 않았다. 그간 게임을 구매하는 이상으로 게임과 돈이 연관될 때 생겨난 수많은 부정적 현상들은 게이머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를 주었으며, 이익 창출 중심의 사고관이 게임 산업을 지배할 때 이미 당할 대로 당해왔던 한국 게이머들은 그 정도가 더했다. 보다 쉽고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게임에 돈이 엮이는 순간, 혹은 그렇게 인식되는 시점부터 게이머들의 의심은 시작된다.

때문에, 이를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는 위메이드의 시도가 다소 무모하게 비춰진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상 화폐는 그 빛나는 가능성만큼이나 수많은 삶을 나락으로 몰고 갔다는 부정적 프레임에 갇혀 있으며, 메타버스와 블록체인은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된 정의를 확립하지 못할 정도로 새로우면서도 복잡한 개념이었다.

결과적으로, 위메이드와 장현국 대표는 입사 전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치듯, 두 번의 검증을 받아야 했다. 그들이 개발하는 게임과 플랫폼이 부정할 수 없는 성공을 거둬야 했고, 나아가 대중의 인식을 바꿀 이벤트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미르4와 위믹스 플랫폼을 출시함으로서 첫 번째 시험대에 올랐고, 예상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첫 번째 시험을 통과했다.

그리고 지금, 장현국 대표와 위메이드는 두 번째 시험대에 섰다. 그들로서는 회사가 바라보는 비전의 실현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게임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구성원들과 게이머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비단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아울러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세계 최고의 정상급 개발자들과 관계자들이 모이는 GDC로 향했다. 그리고 3월 22일. GDC 2022의 첫 날에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가 연단에 올랐다.

▲ 위메이드 장현국 대표


'블록체인'과 '재미'는 양립할 수 없는가?

위메이드와 본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얼마 전 세상을 뜬 故 김정주 회장(넥슨)에 대한 추모로 강연을 시작한 장현국 대표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가 이 강연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장현국 대표는 '오해'를 풀어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미르4가 이미 대중적 성공을 거뒀음에도 블록체인 기반의 경제 체계가 도입된 게임 자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심과 오해가 많으며, 이를 풀어내기 위해 자리에 섰음을 분명히 했다.

"전통적인 게임 시장의 구성원들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보입니다. 몇몇은 이를 구리다(Sucks)고도 하죠."

장현국 대표가 말했다. 그는 게임의 본질에 대한 정의가 블록체인 기반 게임의 인식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게이머, 혹은 게임 개발자들은 게임의 본질이 '재미'에 있다고 믿는다. 이는 게임 산업 구성원들에게 매우 보편타당하게 인식되는 개념이며, 아무리 코드를 잘 짜고 멋진 아트를 지닌 게임이라 해도 막상 재미가 없다면 좋은 게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 가상 화폐 결합 게임으로는 1세대인 '액시 인피니티'

블록체인 중심의 게임들이 그간 산업 전반에서 푸대접을 받아온 이유도 기술 간의 융합이나 경제 체계의 발전과 같은 긍정적 발전상을 보여주기 이전에 게임으로서의 재미를 보여준 작품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게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초기에, 수많은 게임들은 최소한의 게임적 요소만을 갖춘 채, 오로지 경제적 요소만을 고려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게임 개발자가 블록체인을 도입한 것이 아닌, 경제학자가 게임으로서 개념을 풀어둔 듯한 모습. 이는 게임으로서 엉망진창인 완성도를 지녔음에도 과도한 과금 체계를 도입한 모바일 시대 막바지의 양산형 게임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고, 이 느낌은 인식이 되어 블록체인 기반 게임에 대한 일종의 프레임이 되었다.

장현국 대표는 이 '흥미 본위'라는 게임의 본질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블록체인 기반의 경제 시스템이 게임의 재미와 상반되는 요소가 아닌, 게임의 재미를 더해줄 수 있는 요소임을 역설했다. 특별한 경제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은 일반적인 게임이라 해도, 블록체인 기반의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를 '더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 블록체인 기반 경제가 중심이 아닌, 재미의 보조 요소로 삼겠다는 것

그는 '미르4'의 지표를 기준으로 이를 설명했다. 미르4가 출시된 2020년 11월 부터 지금까지의 지표를 살펴보면, 일반적인 게임으로서 존재했던 기간보다, 위믹스 기반의 경제 체계가 도입된 작년 8월 이후부터 각종 부분에서 성장세를 보였다고 말하며, '블록체인 게임이라도 이 정도 게임이라면 안 할 이유가 없다'라는 피드백을 받았다고 말했다.

장현국 대표가 말하는 핵심은, 블록체인 기반의 기술들이 게임의 본질과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수많은 이들이 블록체인 기반 게임들을 게임이라기보단 돈 버는 프로그램 뭉치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게임의 재미를 더해줄 수 있는 보조 시스템이 될 수 있음을 말했다. 블록체인 게임은 재미가 없으며, 개발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만 집중하는 유사 게임이라는 건 좋지 못한 사례들이 만들어 낸 오해일 뿐이란 뜻이다.


위메이드가 생각하는 비전과 생태계

이어, 장현국 대표는 현재 위믹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짜여 있는 게임 경제 생태계의 모습에 대해 설명했다. 미르4의 경제 체계는 가상 화폐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으며, 이는 곧 실물 경제와 연동된다. 게임 내에서 대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재료인 '흑철'은 가상화폐인 드라코(DRACO) 코인의 제련에 쓰인다. 이 드라코 코인은 위믹스 크레딧으로 환전하거나 상위 개념의 코인인 '하이드라 코인'으로 제련할 수 있으며, 이러한 몇 단계의 절차를 통해 현금화가 가능하다.

근래 떠오르는 주제인 'NFT'의 개념 또한 도입되어 있다. 디지털 저작물의 소유권을 말하는 NFT는 게임 내에서 '캐릭터' 그 자체에 부여되어 있으며, 미르4는 캐릭터 자체를 사고 팔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게임 내에서 레벨업을 하고 장비를 착용한 캐릭터 또한 일종의 디지털 저작물이 될 수 있으니, 이를 다른 NFT처럼 거래 가능한 요소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탈중앙화 경제 체계(DeFi: Decentralized Financial)로 되어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중앙 집중형 경제 구조의 MMORPG들은 모든 디지털 가치가 최종적으로는 게이머가 아닌 게임사에 귀속되어 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는 재화나 게임 캐릭터 등 게임 시스템 내에서 만들어진 모든 디지털 어셋들의 소유권은 게임사에게 있는 것이다. 때문에, 게임 캐릭터를 사고 팔거나 게임 내 재화를 사고파는 행위는 대부분의 경우 게임 이용 약관과 위배되는 행위가 된다.

▲ 미르4의 기본적인 경제 체계

반면 '미르4'의 경우 블록체인 기반의 게임 답게 모든 경제적 요소들이 탈중앙화되어있기 때문에 모든 어셋들의 소유권은 게임사가 아닌 유저 개인에게 존재한다. 게임을 하면서 얻은 게임 내 재화부터 게임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게이머가 게임을 하면서 얻거나 제작하는 모든 것은 게임사가 아닌 게이머의 소유로 인정된다.

장현국 대표가 생각하는 비전은 이렇게 구축된 생태계를 확대함으로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는 위믹스 플랫폼을 통해 현재 7종의 게임이 서비스되고 있으며, 범위를 넓혀 세자릿 수 이상의 게임들을 위믹스 플랫폼과 연계해 서비스할 예정이라 밝혔다. 원하는 개발사가 있다면 상담과 SDK 제공을 통해 보다 다양한 게임을 확보해나가는 형태다.

배틀넷에서 서비스되는 블리자드의 게임들을 예로 들어 가정하면,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플레이해 얻은 아이템을 거래해 '오버워치'의 스킨이나 '디아블로2'의 장비로 바꿀 수 있는 형태의 광범위한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위메이드의 비전은, 현재 수많은 게임사들이 마치 경쟁하듯 선보이는 '메타버스'와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주제기도 하다.


장현국 대표가 생각하는 '메타버스'의 정의는 무엇인가?

강연의 막바지에서, 장현국 대표는 '메타버스'를 거론했다. 메타버스는 현재 IT뿐만 아니라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뜨거운 키워드다. 실리콘벨리의 모든 기업들은 메타버스를 말하고 있으며, 게임과 미디어 산업 뿐만 아니라 농업이나 제조업 등 전통적인 산업 분야에서도 메타버스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장현국 대표는 이들이 말하는 메타버스가 근본적으로 모두 다 다를 수 있음을 말했다. 예를 들어 '메타(페이스북)'가 지향하는 메타버스는 VR 기기를 기반으로 연결되는 가상의 세계다. 그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오큘러스를 인수했으며,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플레이어원'과 같은 보다 노골적인 형태의 가상 세계를 꿈꾼다.

▲ 몇몇 기업들이 지향하는 메타버스

국내 게임 기업인 '제페토'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글로벌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게임사인 제페토는 글로벌 아바타 플랫폼을 지니고 있으며, 이 플랫폼 상에서 유저들은 온라인 수업을 받거나, 단순히 만나 소통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VR까지 나아가진 않는 보다 부드러운 형태의 가상 세계이지만, 이 또한 지향하는 목적지가 다를 뿐 엄연한 메타버스다.

그리고, 장현국 대표가 생각하는 메타버스는 '경험 본위'의 가상 세계다. 그는 위메이드가 생각하는 메타버스의 초점이 어떤 장비를 필요로 하기보단 경험 그 자체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말하며, '로블록스'를 그 예로 들었다.

▲ 이미 메타버스가 된 '로블록스'

10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로블록스'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완성에 가까운 메타버스의 모습을 띄고 있다. 유저들은 로블록스 내에서 자신만의 아바타나 캐릭터를 만들며, 유저 개개인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과 규칙 내에서 갖가지 경험을 즐긴다. 역할극을 하기도 하고, 슈팅 게임을 즐기기도 하며, 때로는 그저 어셋을 통해 만들어 둔 지형지물을 탐험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로블록스를 즐기는 이들이 "우리는 메타버스를 즐긴다"라고 말하지 않고, "로블록스를 플레이한다"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장현국 대표는 이를 말하며, 게임과 메타버스가 근본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말했다.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떠오르기 이전부터 이미 게임은 메타버스에 가까웠으며, 메타버스가 보여주는 수많은 가능성의 대부분은 이미 게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잘 만든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 그리고 그 게임 경험을 묶어낼 수 있는 광범위한 플랫폼. 즉, 위믹스를 중심으로 만들어나가는 생태계가 곧 장현국 대표가 지향하는 메타버스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 게임에 대한 소개로 시작해 미르4의 현실, 그리고 메타버스의 정의까지 이어진 장현국 대표의 강연은 약 40분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강연의 끝에서, 장현국 대표는 한 가지를 강조했다. 위메이드의 정체성은 결국 '게임 개발사'라는 것. 위메이드가 가장 잘 하는 건 게임을 만드는 것이며, 블록체인 기반의 게임과 플랫폼을 런칭한 것 또한 게임을 보다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을 고안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스텝이라는 것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장현국 대표의 주장과 강연 내용에 대해 기술하는 것을 마치고 강연 참가자로서의 감상을 표하자면, 장현국 대표의 주장과 비전에 대한 생각은 개개인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확인한 사실은 블록체인 기반의 게임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비단 한국만의 열풍은 아니었다는 것. 강연장은 발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으며, 참관객들은 모두 진지한 자세로 강연에 임했다. 최소한, 장현국 대표와 위메이드가 그리는 미래가 그저 그들만의 희망은 아닌, 모두가 한 번쯤은 귀를 기울일 내용이라는 건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