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C가 코로나19 유행 이후 3년만에 오프라인으로 개막했다. 그러나 지난 2020년부터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코로나19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여전히 일부 행사는 온라인으로 동시 송출하거나 영상을 올리는 등 GDC도 이전과 다소 달라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은 건 GDC만이 아니었다. 게임업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게임쇼는 개최를 취소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했으며, 게임사들은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이에 맞는 업무 체계를 갖추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게임들이 출시를 몇 차례 연기하기도 했다. 지금도 코로나19가 완전히 극복된 건 아닌 만큼, 많은 개발사들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울러 개발자들이 코로나19 이전부터 요구해온 근무 환경 개선 요구도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그간 업계에서 있었던 차별 및 억압적인 사내 문화에 대한 토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GDC 2022 메인스테이지에서는 이렇듯 다방면으로 변화를 겪고 있는 게임 업계에 주목해야 할 포인트를 제시하고자 세 명의 연사를 초빙, 강연을 진행했다.


■ 에이도스 몬트리올이 주 4일 근무를 채택한 이유 - 웰빙이 퍼포먼스를 높인다

▲ 데이비드 안포시 에이도스 몬트리올 사장

가장 먼저 강연을 진행한 에이도스 몬트리올의 데이비드 안포시 사장은 20년간 게임업계에 몸담은 베테랑이다. 그는 커리어를 9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부터 시작했으나, 당시 프랑스 게임 업계의 형편이 썩 좋지 않아서 장난감 및 자동차 업계에 잠시 몸을 담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몬트리올로 가서 에이도스 몬트리올에 입사, 이후 사장까지 오르게 됐다.

그는 몬트리올에 오게 된 이유로는 몬트리올이 세계 5위권의 비디오 게임 산업 도시이자, 모든 메이저 개발사 및 퍼블리셔의 지사가 위치해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구성원들의 게임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높고, 비전도 좋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팬데믹 이전까지 업무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코로나19 이후, 그는 과연 자신들이 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당연하던 일상이 일순 멈추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복기하게 된 것이다. 일례로 코로나19 이전에 에이도스 몬트리올은 매주 금요일마다 전체 회의 시간이 있었다. 이를 온라인 세션으로 바꿔서 진행해보니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에서 대면했을 때는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시간으로 보였는데, 화상 회의로 접근하니 그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발표해야만 하는 압박감이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은 대면 업무 때는 그저 한 번 다 모이는 정도로 여겼지만, 재택근무 체제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감시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 코로나19 이후, 과연 자신이 팀의 현황을 제대로 알고 있나 의문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이외에도 코로나19 유행으로 재택근무뿐만 아니라 자가격리나 통행 제한 같은 조치가 취해지자 개발팀의 스트레스도 높아지고 자존감도 낮아졌다. 그러면서 환경이 변하기 전까지는 소소하게 보았던 문제도 불거지기 시작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수적이었다.

이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또 바꾸는 게 좋을지 선택의 순간에서 안포시 사장은 직원들의 '웰빙'을 챙기는 선택을 했다. 급여 변경 없이 주 5일 근무에서 주 4일 32시간 근무제로 변경한 것이다. 안포시 사장은 이 결정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개발 직군 특성상 디버깅 등 하루에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되는 작업도 있다보니 워크 프레임워크를 처음부터 다시 짜야 했고, 그런 업무량을 주 4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 전통적인 방식이 비효율적인 것을 보면서, 그는 새로운 방안을 찾아나섰고

▲ 주 4일 근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매주 회의를 지켜보았던 그는, 점차 직원들이 동기 없이 수동적으로 회의를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변화를 꾀하게 된다. 아무런 동기도 없이 하루의 몇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더 짧은 시간이지만 동기부여가 된 상태에서 일하는 것이 팬데믹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는 직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 4일 32시간 근무제와 함께 그간 매주 전통적으로 진행해왔던 회의를 대폭 축소했다.

이러한 변화를 빠르게 적용하고자 했던 이유는, 그 시기가 마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개발이 출시 전 마무리 단계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직원들이 그 기간 동안 쌓인 압박감이나 스트레스를 풀어주지 않으면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려서 더욱 수동적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점차 조금씩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그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의례적으로 몇몇 수석급이 리드하는 식으로 진행했던 회의가 좀 더 적극적으로 직원들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주 5일 때와 비교해서 업무 시간은 줄었지만 업무 진행 속도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렇듯 개발자 스스로가 여유가 있는 웰빙 상태가 아니면,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결국은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게임 업계에서도 다양성과 형평성, 통합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 다비나 맥키 SIE 플레이스테이션 QA 디렉터

다비나 맥키 SIE 플레이스테이션 QA 디렉터는 그간 여러 사회 운동이 전통적으로 각 산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에 주목했다. 비교적 신생 산업인 게임 업계는 역사가 짧아서 사회 운동의 영향을 그간 직접적으로 받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변화 및 여러 사회 운동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코로나19 및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회 캠페인을 손꼽았다. 코로나19라는 큰 변화가 닥친 이후, 그 전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문화적인 차이나 갈등이 수면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성 운동이나 여러 사회 운동 이후 인종 차별이나 남녀 차별이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했으나 코로나19 이후 그간 잠재했던 갈등이 불거져서 차별 범죄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이와 함께 게임업계에서도 그간 쉬쉬했던 건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맥키 디렉터는 SIE가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DE&I, 즉 다양성 및 형평성, 통합을 중시하는 움직임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SIE를 비롯해 여러 게임사들이 지지 선언을 했으며, 그간 은연 중에 의견을 내기 어려웠던 플레이스테이션 부서의 흑인 직원들이 더 의견을 적극적으로 낼 수 있던 계기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SIE의 DE&I 워크프레임은 단순히 흑인이나 LGBT 등 소수자 존중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힘을 모아 의견을 내고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된 SIE는 더 많은 사람들의 권익을 형평성 있게 보장하는 방안에 눈을 돌리게 됐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상이용사를 돕는 VETS@Playstation, 장애인을 돕기 위한 Able@Playstation 이니셔티브다.

▲ 코로나19,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로

▲ SIE는 모든 커뮤니티의 다양성과 형평성, 통합을 존중하고 지원하는 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DE&I가 더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사회 운동이 다시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만큼, 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형평성을 고려하면서 통합을 이끌어내야 비로소 조직에서 협동과 시너지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다양성과 공평함을 존중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한데, SIE는 스폰서십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이 리더로서의 자질을 점차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재능과 소비자를 존중하는 마음도 중요한 자질 중 하나로 꼽았다. 마지막으로 최근 DE&I라는 말이 많이 쓰이긴 하지만, 그 본질은 모두가 존중 받고, 조직에서 인정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 역경을 헤쳐나온 인디 퍼블리셔의 조언 - 친절함과 멘탈을 잃지 말자

▲ 마이크 윌슨 디볼버 디지털 공동 창립자

디볼버 디지털은 현재 가장 손꼽히는 인디 퍼블리셔 중 하나다. 창립 멤버인 마이크 윌슨 공동 설립자는 그와 관련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신의 지금까지의 인생사를 풀어놓으면서 '친절함'과 '겸손'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13살이었던 1983년에 타계했다. 어머니는 계셨지만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형제들은 그때부터 어떻게 생계를 꾸려야 할지 고민해야만 했다. 그는 MTV에 한창 빠져서 락스타를 꿈꿨고, 곧 밴드에 합류해서 루이지애나 곳곳을 다니며 연주하고 팁을 받으며 삶을 꾸려갔었다. 그러다가 결혼하고 아내가 출산하게 되자, 오래도록 꿈꿔왔던 락스타의 꿈이 사라졌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을 좋아하던 친구 더그가 울펜슈타인 3D의 플로피 디스켓을 건넸고, 곧 그는 울펜슈타인 3D와 둠 같은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꿈을 안고 게임업계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다가 운 좋게 지인 찬스로 이드 소프트웨어에 입사한 그는 게임 업계가 당시 경계가 생각보다 모호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게임 업계는 아직 신생 산업이었기에 장난감이나 여러 산업과 끼어있었고, 게임에 대한 정확한 정의나 열정보다는 새로운 업계에서 기회를 노린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게임업계에 경력을 쌓을수록 그는 히트하는 게임을 만들기보다는 퍼블리싱이 더 쉽게 느껴진다는 걸 깨달았고, 결국 퍼블리싱 전문 업체인 갓게임즈로 가게 된다.

▲ 디볼버 설립 전까지, 그는 락밴드에서부터 각 회사를 돌아다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의 경험에 대해 그는 "90년대니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과, "그간 다녔던 곳 중 가장 꺼림칙했던 곳"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그와 함께 당시 개발자들은 돈을 못 벌 수도 있는 구조였으며, 그로 인해 게임을 좋아해 개발자의 길을 걷던 자신의 친구 더그가 죽을 때까지 돈도 제대로 못 받았던 것을 회상했다. 운 좋게 이드 소프트웨어 등 이름 있는 개발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던 그에게는 그때 당시의 경험은 충격적이었고, 더군다나 당시 '중년의 위기' 증상을 겪은 탓에 그는 게임 업계에서 나와 휴식기를 갖고, 다른 업계를 전전한 뒤 마침내 디볼버 디지털을 공동 창립하게 된다.

디볼버 디지털이 높은 평가를 받고 매번 좋은 작품을 퍼블리싱할 수 있는 이유를 그는 개발자를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 역시도 인생의 굴곡이 있었고, 대접받지 못하는 중소 개발자의 고충을 직접 눈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와 디볼버 디지털은 개발자를 가장 먼저 챙겨왔다. 일례로 엔터 더 건전 개발팀인 도지롤은 마이애미의 소규모 개발팀이었는데, 개발 초창기에 여러 문제가 있어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를 디볼버 디지털이 챙겨주면서 도지롤은 개발에만 전념했고, 엔터 더 건전을 무사히 출시해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 디볼버 디지털이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로 개발사에 대한 존중과, 적극적인 지원으로 손꼽았다

코로나19로 최근 몇 년간은 중단됐지만, 디볼버는 정기적으로 자사가 퍼블리싱하는 게임을 투어에 참여해서 개발자들이 커뮤니티를 꾸릴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2020년부터는 온라인으로 디볼버 다이렉트를 진행하는 등,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개발자들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여러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딥웰'이라는, 디지털 테라피에 특화된 게임 개발사 및 퍼블리셔를 지난 3월 15일 설립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의 멘탈 관리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그가 유달리 멘탈 관리에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자신이 두 차례나 꿈이 좌절되거나 소실되어버렸고, 멘탈이 무너져내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 멘탈 관리와 겸손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또다른 회사 '딥웰'을 설립, 개발자의 멘탈 케어를 지원할 예정이다

그때의 좌절이 게임 개발뿐만 아니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는 그는 친절함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절함을 잃어버리는 순간, 멘탈이 무너졌을 때 같이 해줄 사람이 없어 극복할 수 없고 결국 도미노처럼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철칙을 지킨 것이, 그가 디볼버 디지털을 지금까지 이끌 수 있던 비결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