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2로 출시된 '건그레이브' 트라이건으로 유명한 나이토 야스히로가 합류하면서 주목을 받은 시리즈다. 나이토 야스히로 특유의 감성과 거침없는 총격 액션, 데스코핀을 휘두르거나 바주카를 발사할 때의 묵직한 타격감 등을 선보이면서 액션팬들의 이목을 끌었으나, 애니메이션 출시 후 한동안 신작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명맥이 끊어질 듯 보였다.

그러나 국내 개발사 이기몹이 2018년 '건그레이브 VR'로 시리즈 신작을 출시한 이후, 원작의 그 느낌을 현세대 콘솔과 PC 환경에 맞춰 새롭게 선보이기 위한 '건그레이브 고어'를 발표하면서 다시금 수면 위로 올랐다. 당초 2019년 출시 예정이었던 '건그레이브 고어'는 개선 작업 및 코로나19 등으로 출시일이 연기됐으나, 지난 6월 2022년 가을 출시를 예고한 것에 이어 이번 게임스컴에 출전하면서 출시 직전 검증의 자리에 나섰다.

※ 개발사의 요청으로 현장 촬영은 제한됐습니다


'건그레이브'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무한 탄창에서 비롯되는 난사 액션이다. 흔히 슛뎀업 스타일처럼 막 난사하는 유형도 재장전을 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럴 시간에 총알을 더 박아넣는다는 명언이 딱 들어맞는 게 건그레이브의 모토다. 그렇게 무수히 총알을 날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끝날 기미가 안 보일 정도로 적들이 대량으로 나오고, 총탄으로 다 막지 못해서 거대한 관까지 묵직하게 휘둘러서 쳐낸 다음 또 총알로 박살내는 시원시원함이 '건그레이브'의 아이덴티티 아니던가.

이번 시연 버전에서 선보인 '건그레이브 고어'에서도 그 아이덴티티는 확실했다. 어디선가 마구잡이로 들이닥치는 적들을 두 자루 권총으로 무자비하게 난사하고, 그 총알비를 뚫고 다가오는 적을 찍어버리는 그 호쾌함이 바로 처음부터 시작된다. 총알 몇 번 맞아도 흠집 하나 없이 무자비하게 쌍권총 액션으로 박살내면서 전진하는 그레이브의 모습은 그 옛날 올드팬들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는 장면이고, 아직도 건그레이브가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 시연장에서도 그 모습을 잊지 않고 그레이브의 그 호쾌함과 멋짐을 이야기하는 팬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엿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느낌이 바로 처음부터 눈에 들어올 정도로 확고히 설계가 됐으니, 시리즈의 신작으로서 입지는 충분히 다지고도 남았다고 할까.

▲ 떼로 몰려오는 적을 난사로 소탕하는 쾌감, 그 전통의 느낌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그것뿐이라고 하면 리마스터가 아닌 신작으로서 의미가 없다는 의혹이 들지 모르겠다. 혹은 건그레이브 시리즈가 대대로 들어왔던 '사격 버튼만 누르면 끝나는 게임'이라는 오명까지도 이어받았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그레이브 고어'는 시연 버전에서도 그런 우려를 날려버릴 정도로 액션의 코어가 잘 잡혀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새로운 시스템을 추가하되, 건그레이브의 핵심인 '난사 액션'을 해치지 않고 그 느낌을 보조하는 방향으로 설계했기 때문이었다. 일례로 회피 기능이 추가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울류나 기타 회피기가 있는 게임처럼 한 번 쏘고 회피하고 쏘고 회피하는 방어적인 운영을 하는 식으로 변경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서는 처리하는데 한세월이 걸릴 정도로 적들이 많기도 하고, 공격적으로 선제대응을 하지 않으면 애먹을 적도 등장하는 터라 자연스럽게 무한 공세를 취하게끔 한 것이다.

실제로 건그레이브 고어에서는 초반부터 총알 세례를 어느 정도 버텨내는 방패를 구비한 적들이 다수 등장했다. 그 적들을 말 그대로 고기방패 삼아서 뒤에서 로켓을 발사하거나, 혹은 시드 인자 때문에 맷집이 좋아진 또다른 고기방패 2진들이 우루루 몰려오다보니 소위 사격 버튼만 누르면 땡인 구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회피하고 쏘고 회피하고 쏘기엔, 방패들도 총알을 잘 막아내고 숫자도 너무 많아서 역부족이었다.


▲ 회피가 싫다면 난사로 게이지를 모아 스킬로 뻥뻥 시원하게 터뜨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잠시 회피하면서 숨을 고르고 관으로 방패를 든 적들을 털어버린 뒤, 난사로 웨이브를 말 그대로 갈아버리는 플레이가 가능했다. 빠름 일변도라서 다소 단조로울 수 있는 템포에, 쉼표가 생겨서 잠시 물렀다가 한층 더 빠르게 몰아치는 그런 완급 조절과 복잡한 리듬감이 더해졌다고 할까. 맵도 그렇게 요리조리 피해다니면서 플레이하기엔 장애물도 많아서 동선도 제약되고, 카메라가 장애물에 가려지기도 해서 오히려 눈먼 공격을 못 보고 맞기 십상이었다.

회피 하나만으로도 그 정도 효과를 냈는데, '건그레이브 고어'에 추가된 시스템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적을 끌어오는 체인 시스템이나 일정 체력 이하의 적을 바로 즉사시키고 실드를 충전하는 처형 시스템, 멀리에서 방패를 들고 방어태세를 취한 적을 무력화시키는 스피어 등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인 액션을 여럿 더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코핀을 활용하는 스킬도 한층 더 다채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건그레이브 특유의 과장된 스타일을 한껏 살리면서 광역으로 쓸어버리는 카타르시스를 채웠다.

이러한 시스템 자체는 액션이라는 장르에서 볼 때 새로운 요소들은 아니다. 그렇지만 '건그레이브'라는 시리즈에서 채택하기엔 너무도 새롭고 위험한 모험이 될 수도 있었다. 심플하게 쏘고 또 쏘고 박살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건그레이브의 매력인데, 여러 조작법이 추가되면 자연스럽게 복잡해지면서 그 매력이 반감된다는 우려가 나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 어딜 도망가려고 내 실드의 제물이 되라

여기서 그 새로운 시스템을 어디까지나 '보조'에 두고, 때로는 난이도를 높일 때 적절히 사용될 정도로 개발진이 오래도록 연구한 흔적이 보였다. 어떻게 보면 리듬 게임처럼, 딱 그 패턴이 요구될 때 그 패턴을 소화하면서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노트처럼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적은 손이 바쁘게 난사를 해대는 모습이라고 할까.

패턴이 정해진 리듬 게임과 달리 '건그레이브 고어'는 그 시스템을 자기식대로 응용해서 처리할 수 있는 묘미가 있었다. 로켓은 잠시 회피하고 스피어로 방패를 든 적을 원거리에서 처리하고 나서 그 뒤에 달려드는 근접전투병을 근거리 난사로 갈아버리든, 방패병과 근접전투병을 동시에 관짝으로 보내버리고 난사로 로켓병을 요리하든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난사만 한다는 옵션은 사라졌고 전작에 비해서 복잡해져서 심플한 맛은 조금 떨어졌지만, 그걸 코어에 두고서 여러 가지로 변주하면서 입맛대로 액션을 즐기도록 짜임새를 갖춘 것은 인상이 짙게 남았다. 건그레이브 시리즈를 하면서 다소 아쉬웠던 요소를 거의 완벽하게 커버하고 끌어올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초반부만 플레이한 시연 버전이니 속단하기엔 이를 수 있다. 잡졸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효율적으로 그리고 무자비하게 갈아버리는 시원시원한 모습과 달리, 시연 버전의 보스전은 그간 모아둔 게이지를 스킬로 치환해서 집중포화를 날리면 다소 심심하게 끝났기 때문이다. 다만 이 부분은 기본적인 테크닉을 소개하기 위해 난이도를 조율했다고 하니, 정식 버전에서 어떻게 바뀔지 한 번 지켜볼 필요는 있겠다.

현재까지 보면 '건그레이브 고어'는 새로운 시스템을 추가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난사 액션을 근간으로 그 시스템을 활용해서 적극적으로 나서게끔 유도해 시리즈의 정체성과 액션의 짜임새 두 마리 토끼를 훌륭히 잡은 게임이다. 시리즈의 신작뿐만 아니라, '신작 액션 게임'으로서도 잘 짜인 단면을 보여줬으니, 과연 그 추진력으로 시리즈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