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넘어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성웅들의 활약으로 조선 팔도는 지켜냈지만, 혼란한 틈을 타 관리들의 수탈 이어지고 백성들은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이러한 상황을 보다 못한 한 선비가 활 한 자루 쥐고 과거길에 오른다.

스토브 인디 플랫폼을 통해 얼리액세스 출시된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우리 한국을 배경으로하는 액션 게임입니다. 흔히 AAA 게임으로 불리는 대형 게임사의 근래 하이 프로덕션 게임이 판타지 세계관, SF 등으로 글로벌 시장을 노리지만, 국내 인디 시장의 경우 설화부터 근현대사까지 우리의 역사와 문화, 디자인을 다양하게 활용해왔습니다.

문경새재 역시 그런 게임 중 하나고요. 하지만 많은 게임이 우리의 역사적 사실이나 이야기를 게임을 통해 풀어내는 데 집중한 것과 달리 문경새재는 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분명 게임의 배경이긴 하지만, 말 없고 이름 없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적당한 창작 요소 더했고 내러티브보다는 액션 자체에 재미의 근간을 두고 있거든요. 플레이어들이 직접 조작하고, 고민해 커맨드를 입력하는 전투 요소와 디자인에 얼마나 고민했는지 게임을 통해 느껴질 정도로 말이죠.


사실 공격, 점프, 회피. 세 가지 액션 요소를 활용하는 전투는 시작 단계만 하더라도 굉장히 단순하고, 밋밋해 보입니다. 공격 자체는 선비가 한양으로 올라가며 손에 든 활이 전부고 그걸 그저 연발로 쏘는 것이 기본이니까요. 여기에 꽤 버거운 수준의 적이 루트 곳곳을 막고 있어 하나씩 잡아나가며 나아가는 게 한세월이죠.

하지만 단순하고, 밋밋해 '보인다'라고 말했듯, 게임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문경새재'가 가진 액션의 깊은 묘미가 하나씩 드러납니다.

기본적으로 원거리에서 활을 하나하나 꽂아가며 플레이했을 때 느껴졌던 빈약함과 답답함은 이동 버튼의 조화, 무기의 활용, 적의 경직 저항과 소지품을 활용한 충격/화약 공격의 스킬이 어우러지면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오히려 이 전투와 액션이 문경새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으로 바뀌거든요.

▲ 익숙해지기 전에는 밋밋하다 착각할 수 있는 전투

우선 공격 버튼과 이동, 회피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격투 액션은 높은 속도감을 전하는 동시에 적의 공격을 파쇄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전방으로 나아가며 발로 차는 공격이나 멀티샷 때리는 이루어지는 활 마무기 공격까지. 건카타, 정확히는 활카타가 제대로 펼쳐집니다. 여기에 위 방향을 눌려 적을 공중에 띄우거나 뒤로 눌러 충분히 공격 후 거리를 벌리는 공격처럼 마무리 액션 방향성도 유저의 조작에 따라 이루어지고요.

일반 졸개의 경우 플레이어가 공격만 연속으로 잘 넣는다면 낙엽 스러지듯 마땅한 대항 한 번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는 연타(콤보 수), 집중력 채우기 아이템이죠. 하지만 게임 중간중간 플레이어의 공격을 견디고, 큰 모션과 함께 공격을 이어가는 강력한 적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보통 이런 액션 종류에서 중간 보스, 혹은 강력한 졸개 역할을 하는 적이 가끔가다 하나, 혹은 중요한 순간 둘 정도 등장하는 것과 달리 잡졸과 비슷하다 싶은 정도로 자주 등장하죠.

앞서 말했듯, 플레이어의 기본 공격을 무시하다 보니 졸개 잡듯 연타만 밀어 넣으면 그걸 견디고 이어지는 공격에 당하게 되겠죠. 이때 활용하는 게 기술입니다. 기술은 화살, 충격, 화약 공격 등 무기 형태에 따라 다른 공격을 구사하는데 그게 적에 따라 그 공격이 먹히는 형태도 다릅니다.

적이 경직하지 않고 공격 할 때는 크게 노란색, 붉은색, 보라색으로 외곽선이 부각됩니다. 이를 경직 저항이라고 하는데 이 중 충격 공격은 노란색 경직 저항, 화약 공격은 붉은색 경직 저항을 각각 깨부술 수 있죠.

일반적으로 이어지는 공격 사이사이에 적의 경직 상황을 보고 추가 기술을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보라색 경직 저항을 가진 적의 저항은 깰 수 없으니 회피와 점프를 적절히 활용하는 게 중요해지고요.

▲ 본격적으로 버튼과 기술을 조합하며 전투 액션의 속도감도 달라진다

이러한 경직 요소는 보스전에서는 공격 패턴과 맞물려 꽤 독특한 재미를 전합니다.

소울류, 헌팅류 게임의 흥행과 함께 전투 액션 자체를 강조하는 게임의 보스들은 각각의 파훼법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형태를 알아내기 전까지는 쉽게 당할 수밖에 없는 공격 패턴이 이어지죠. 이러한 패턴에 따라 회피하고, 공격을 몰아넣는 식인데 플레이어는 이걸 여러 차례 당하며 익히게 됩니다.

문경새재에서는 앞서 말한 경직 저항 색에 따라 그 공격 패턴이 정해져 있습니다. 공격 모션이나 작은 움직임 변화 같은 세세한 요소를 찾아낼 필요 없이 강조되는 색만으로 어떤 공격이 이어지는지 알 수 있다는 거죠. 여기에 경직을 깨부술 수 있는 기술까지 가지고 있으니 공격 모션에 따라 경직을 파괴할지, 피할지 선택할 수 있는 셈입니다. 경직 저항이 없이 이루어지는 공격의 경우 연속 공격으로 피해를 누적시킬 수 있지만, 일반적인 경직 저항 공격과 달리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라 회피 행동을 선택할지 고를 수 있고요.

▲ 노란 경직 저항의 무사가 충격 공격에는 쓰러지지만 화약 공격은 버티는 모습


다만, 이러한 전투가 마냥 플레이어의 마음대로 쉽게 흘러가는 건 아닙니다. 정확히는 어려운 편이라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네요.

가장 큰 이유는 회피의 효용성입니다. 회피는 같은 높이로 빠르게 전진하거나 후진해 이동기로서 매우 효과적인 기술입니다. 점프 없이 가시밭이 있는 플랫폼 사이를 오갈 수도 있고, 공격 사이사이에 넣어 연타 모션을 캔슬하는 역할도 하고요.

하지만 여타 액션 게임처럼 넉넉한 절대 판정으로 상대의 공격을 '맞았는데도 피하는' 식의 회피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상대 공격을 흘려보내는 식이 아니라 피하는 역할에 집중됐죠. 상대 공격 타이밍을 보고 무적 회피로 공격을 피하는 게 아니라 깨부술 수 있는 저항은 깨고, 저항 없는 공격은 미리 공격해 쓰러트리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의도하고 있는 겁니다. 또, 회피와 함께 원거리에서 이루어지는 공격의 경우 초반에 언급했듯 밋밋함과 더불어 피해량도 정말 미미하고요.

전투를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는 체력 시스템인데요. 적에게 공격당하면 화면 위 9개의 매화꽃이 하나씩 사라집니다. 보스의 강력한 공격을 당하든, 졸개가 던진 도끼에 당하든 버틸 수 있는 체력은 똑같죠. 적의 경직 공격에 신경 쓰며 회피하고, 연타 넣고, 별별 액션을 다 하다 한 번 허용한 공격과 멀리서 총 한 발 쏜 병사의 공격에 아까운 체력 하나가 다는 건 똑같다는 겁니다.

여기에 회피의 판정 여유가 없고 일부 공격의 경우 히트 박스도 꽤 커 일반적인 졸개에게 연타를 넣다가도 피격당하기 일쑤고요.

▲ 보스든 졸개든 똑같이 맞으면 매화 하나씩

게임이 어렵게 느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역 중심의 로그라이트 형태입니다. 기본적으로 적당한 구역을 한 지역으로 나누고 이 지역 하나를 깰 때마다 영혼이 된 성춘향이 소지품과 기술 각각 하나를 랜덤으로 구해다 둘 중 선택할 수 있도록 던져줍니다. 그리고 이런 지역 몇을 깨고 보스를 없애면 잠시 휴식 구역을 만나게 되고요.

다만, 체력 회복은 보스를 클리어한 후에나 가능하고, 그것도 항상 가득 채워주는 건 아닙니다. 즉, 9개의 피격으로 매화꽃이 모두 지게 되면 다시 게임 시작 부분으로 돌아가게 되고요. 체력 회복 수단이 부족하니 잡졸에게라도 9번 공격 허용하면 언제든 첫 화면으로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또, 첫 보스를 깨야 적 잡은 영혼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한 강화 시스템이 해금돼 오히려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초반이 더 어렵게 느껴지고요.

▲ 일단 보스 한 번은 깨야 해금되는 성장 시스템, 그래서 그 전이 제일 어렵다

대신 이러한 로그라이트 구성에 따른 기술과 소지품 조합을 전투와 녹여내는 부분은 꽤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기술의 경우 총 3개까지 소지가 가능한데 적의 공격을 파쇄할 충격, 화약 공격을 골고루 들고 다닐지. 아니면 기본 공격과 공격력 강화 특성을 공유하는 화살 기술을 가지고 다닐지 자유롭게 조합해볼 수 있죠.

소지품의 경우 이런 조합의 수도 많아집니다. 소지품은 방향 입력과 함께 이루어지는 공격 형태를 바꾸거나 연타를 소비해 강력한 공격을 수행하도록 바꾸기도 합니다. 혹은 공격 범위 확대, 첫 공격 시 연타 수 누적, 치명타 피해 위주의 공격 성장 등 꽤 여러 종류가 등장하죠.

연타의 경우 이 숫자에 따라 치명타에 확률 보정 값을 가집니다. 연타를 소모해 공격하는 방식의 경우 치명타 부분에서 손해를 보지만, 짧은 공격 연계로 큰 피해를 줄 수 있죠. 반대로 연타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면 치명타 쪽에 투자를 해보는 것도 좋고요.

물론 성춘향이 지역 클리어 후 가져다주는 기술과 소지품은 이쪽 장트 특성상 랜덤으로 주어지기에 어떤 아이템이 드롭됐는지에 따라 그걸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게 중요할 테고요.


▲ 지역 클리어 후 주어지는 기술, 소지품 종류에 따라 성장 방식과 빌드도 달라진다

아울러 게임의 전투는 꽤 매끄러운 움직임과 함께 매력을 더합니다.

근래 픽셀 아트 게임이 3D 기술을 기반으로 하거나 광원 효과에 따른 빛의 변화를 보이고, 고해상도 작업을 통해 굉장히 촘촘한 연출을 선보이는 것과 비교하면 문경새재의 아트 자체는 고전적인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수채화로 칠한 듯한 색구현, 단순화한 묘사 등이 그렇죠.

하지만 전투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의 모션 자체는 고전적이지 않습니다. 전투 속도감에 맞춰 기민하게 움직이는 움직임과 그걸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도트. 여기에 타격감은 살렸지만 과하지 않을 적당한 수준의 효과들이 캐릭터 액션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거든요. 단순히 기술 형태의 고전적인 부분을 이야기했지 게임이 가지는 우리나라만의 분위기와 그 연출도 잘 살아있고요.

게임의 반복 플레이를 위한 다양한 분기나 기술 등의 콘텐츠 활용, 밸런스 조절은 꽤 절실합니다. 반대로 그걸 얼리 액세스 단계에서 잘 잡아나간다면 낮은 가격에 플레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액션 게임이라는 점도 분명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