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컨드 디너 용 우 CPO

지난 2022년 10월 출시된 '마블스냅'은 벤 브로드를 비롯해 해밀턴 추, 용 우 등 '하스스톤'의 주요 개발자가 모인 신생회사 세컨드 디너가 마블 IP를 기반으로 제작한 신작이다. 출시 이후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더 게임 어워드 등에서 베스트 모바일 게임으로 손꼽히는 등 유저와 평단 모두에게 호평받았다.

이러한 성과는 2018년 블리자드를 퇴사한 벤 브로드가 해밀턴 추와 둘이 세컨드 디너 설립을 발표하고 용 우, 마이클 슈바이처, 조마로 킨드레드까지 공동 창립자로 합류한 지 4년 만에 일구어낸 성과였다. 처음 다섯 명으로 시작해서 50명 정도의 소규모 개발팀을 꾸린 세컨드 디너가 어떻게 마블의 여러 캐릭터들을 다양하게 담아낸 카드 게임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유니티와 함께 GDC 현장에 온 용 우 CPO와 니키 브로더릭 선임 PD는 '마블스냅'의 개발 과정을 되짚어나가면서 설명해나갔다.

마블스냅 개발은 2018년 벤 브로드의 차고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벤 브로드는 블리자드 퇴사 이후 해밀턴 추와 함께 종이로 마블스냅의 프로토타입을 제작, 플레이를 반복하면서 양상을 다듬어가고 있었다. 이 과정을 돌아보면서 용 우 CPO는 게임을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플레이할 수 있는 빌드가 어떤 형태로든 만들어져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그래야 실제 플레이 경험을 기반으로 한 아이디어의 확장, 개선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용 우 CPO가 공개한 마블스냅의 프로토타입은 종이 위에 펜으로 설명만 적어둔 형태이긴 하지만, 카드의 배치나 구역 시스템 등 현재의 마블스냅의 근간과 유사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종이로 된 TCG 형태였지만, 그렇게 만든 카드로 무언가 새로운 걸 반복적으로 시도하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 벤 브로드와 해밀턴 추가 종이로 제작한 마블스냅의 프로토타입

그렇게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뒤, 벤 브로드와 해밀턴 추는 유니티의 지원을 받아서 종이가 아닌 앱 형태의 프로토타입 제작에 나섰다. 서버 관련 기술을 구축할 여력은 없었기에 보드 게임처럼 두 명이 한 아이패드 화면에서 위아래에 각자 카드를 두고 대결을 펼치는 방식으로 얼개를 짰으며, 이 역시도 계속 플레이테스트를 반복하면서 신선한 재미를 줄 수 있는 디지털 카드 게임의 방식에 대해 고민해나가기 시작했다.

이후에 용 우 CPO를 비롯한 다른 개발진이 참가하면서 세컨드 디너는 본격적으로 프로젝트 개발에 들어갔다. 용 우 CPO는 개발자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의견 충돌을 조율하거나 프로젝트 관련 파트너를 찾는 등 비즈니스적인 관리를 주로 맡았다. 인원이 더 많아지면서 프로젝트는 더욱 커졌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유니티 엔진 내에서만 처리하던 빌드 개발이 깃허브 그리고 유니티 클라우드 빌드까지 활용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 여러 차례 개선을 거쳐서 지금의 안과 유사한 틀이 나온 뒤

▲ 유니티를 활용해 2주만에 디지털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인원이 많아진 만큼 개발 방향에 대한 의견이나 아이디어가 때로는 상충하는 일도 있었다. 이를 해결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세컨드 디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해결 방법인 '일단 아이디어가 나오면 다 만들어보자'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게임 개발은 어차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작업인데, 아이디어를 시도했다가 다시 재작업하는 시간보다 의견 충돌과 갈등으로 인해서 서로 감정이 상한 뒤 이를 극복하고자 소모하는 시간이 더 치명적이라는 생각 떄문이었다.

팀 환경까지 정비한 이후 세컨드 디너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프로토타이핑을 반복하고,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넣는 작업을 진행했다. 각 구역에 놓을 수 있는 카드 수도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었다. 한 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누군가가 제안했던 숫자대로 늘리거나 줄였고, 이를 실제로 적용해본 뒤에 왜 아닌지 고민해보고 다른 방안을 찾는 일련의 작업들이 이어졌다.

용 우 CPO가 공개한 사진에는 실제로 각 구역마다 열 몇 장이 넘는 카드가 배치되는 프로토타입 버전도 있었다. 종이 카드로 테스트했을 때는 무난해 보였지만, 아무래도 화면 크기가 작은 디지털 디바이스에서는 카드 한 장 한 장 크기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이 부각됐다.

▲ 이후에 용 우, 마이클 슈바이처, 조마로 킨드레드까지 합류하면서


▲ 본격적으로 마블스냅 개발에 뼈대가 붙기 시작했다

▲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견들을 다 반영해서 이것저것 실험해보기도 했다

배치도 서로 위아래로 마주하는 구도가 아닌 좌우로 배치하는 구도도 실험적으로 적용해봤으나, 테스트에서 결국 탈락했다. 자신의 캐릭터가 왼쪽에 있나 오른쪽에 있나 정하기도 어려웠고,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왼손잡이나 오른손잡이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불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세컨드 디너는 그렇게 '당연하다'라는 식으로 넘어가지 않고 새로운 의견을 계속 시도하고 적용해보았다. 그런 시도가 여러 차례 이어지다 마침내 2018년 12월, 네트워크 대전 기능까지 지원 가능한 빌드가 완성됐다. 이 빌드를 들고 근처 스타벅스에 같이 모여 플레이하다가 각자의 친구, 가족 단위로 테스터를 확장해나갔다.

▲ 프로토타입을 만든 뒤 3년 동안 계속 개발하면서 가족과 친척, 지인들에게 다섯 차례의 테스트를 거쳤다

자금 및 현실적인 문제로 처음에는 빌드와 NDA를 이메일을 보냈지만, 이후에는 슬랙과 디스코드 등 툴을 활용해 유저와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더 적극적인 방안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네 번째 테스트부터 헬프시프트 등 고객 지원 관련 파트너 툴과 협업, 이들과 함께 패치 및 새로운 카드 소개, 앞으로의 계획 등을 방송이나 인게임 그리고 커뮤니티를 통해 다양하게 전달하고 준비할 수 있었다.

내부 테스트 준비가 끝나고 외부인까지 함께 하는 테스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블스냅만의 재미와 어필 포인트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준비 과정 자체는 유니티 등과 협업하면서 큰 문제는 없었다. 최적화는 애셋의 어드레스만 알면 빌드 내에 깔려있지 않아도 불러올 수 있는 어드레시블 애셋 시스템을 활용하고, 안드로이드 및 iOS 테스트 준비 과정에서 클라우드 관련 기술도 연구하면서 반복 작업을 계속했다. 그 결과 빌드 용량을 700MB 단위까지 줄이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그 안에는 수천 개의 애셋이 들어있었고,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문제도 남았다. 실제로 세컨드 디너의 문제는 그 애셋의 최적화보다 그 물량을 어떻게 확보하고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마블의 히어로들과 빌런들이 등장하는 만큼, 유저들이 기대한 만큼의 퀄리티는 물론이고 그 이름값에 맞는 인상을 보여줘야만 하는 과제가 남았다. 그리고 마블에 등장한 캐릭터들의 수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 카드 게임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만 했다.

▲ 헐크 하나만 해도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있는데, 이런 것까지 포함하면 넘어야 할 고비가 많았다

예시로 '울버린'의 제작 과정이 언급됐다. 울버린 카드를 처음 만들 당시에는 초고를 기반으로 아티스트들이 최종 채색까지 마쳐서 고퀄리티의 카드를 만드는 작업까지 총 이틀의 시간이 걸렸다. 이를 단순히 계산하면 이틀 X 수천 개의 카드라는 셈이 나왔고, 당연한 말이었지만 세컨드 디너에서는 이런 속도의 작업을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세컨드 디너는 마블과의 파트너십을 확장, 마블 코믹스의 아티스트들에게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세컨드 디너에서 스케치 구도를 대략적으로 전달하면 그 구도에 맞춰서 마블 코믹스에서 선화를 그리고, 컬러 러프까지 확인을 마치면 최종안까지 아티스트들이 작성해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 다수의 아티스트를 보유한 마블의 이점을 십분 활용, 파트너십을 강화하면서 애셋 물량을 확보했다

물론 세부 파이프라인은 단순히 외주를 맡기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티스트들이 그려서 전달해준 애셋을 어떻게 해야 밋밋하지 않고 입체적이면서 히어로와 빌런 각자 고유의 인상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건 세컨드 디너의 몫이었다. 그래서 카드 프레임부터 시작해 일러스트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됐다.

카드 프레임만 해도 수천 개의 샘플이 제작된 가운데, 세컨드 디너는 2D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유니티의 다양한 툴과 기능에 주목했다. 비단 유니티의 자체 기술만은 아니더라도, 유니티와 호환되는 툴이나 패키지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당시에 2D 레이어를 분할한 뒤 따로 움직이게 조립할 수 있게 해준 캣툴이었다. 이를 활용해서 마블 코믹스의 80명 이상의 아티스트들이 그려준 애셋을 각 파트별로 분리, 대기 자세 등을 구현하면서 2D지만 3D처럼 생동감을 느끼게끔 했다. 이와 같은 효과적인 작업 프로세스를 통해 80명의 외부 작업자와 8명의 내부 인력이 천 개도 넘는 애셋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 일일이 작화를 새로 그려서 캐릭터의 대기 상태를 구현하는 게 아닌, 각 파트를 레이어 단위로 나눠서 조립했다

이처럼 세컨드 디너의 철학은 일단 빌드를 만들고, 경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다듬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그중 몇몇 과제는 반복이 어렵다 보니 플레이어 경험에 대한 직관이나 폴리싱이 필요했다. 떄로는 막연하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 이후, 그 방법을 어떻게 구축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아 갈팡질팡한 일도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블 스냅'의 과금 모델이었다. 벤 브로드를 비롯한 주요 개발진은 여타 TCG처럼 팩을 사서 카드를 뽑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보길 원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여타 수집형 게임의 기본 단계처럼 레벨이 올라가면 카드나 재화가 해금되는 방식을 확장해서 적용했다. 그러나 수천 명의 마블 영웅들을 그 방식으로 획득하게끔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영웅 수도 많아서 어떻게 배열해야 눈에 잘 띌까 싶었다.

그뿐만 아니라 '마블 세계를 여행하는 느낌'도 강조하고자 했는데, 너무 많은 영웅이 한 번에 배열되면서 구도도 난잡해졌다. 세 번째 테스트에서는 플레이해서 획득한 크레딧으로 영웅을 해금하는 방식으로 바꿨지만, 이 역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크레딧으로 해금할 영웅들을 한 화면에 일일이 담아내니 한눈에 잘 안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런 일련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컬렉션 레벨 및 시즌패스 모델이 결정됐다.

BM까지 점차 마련되면서 실제로 출시 가능한 빌드로 만들어갈 수 있나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2020년에 여러 차례 테스트했지만, 당시에는 어림도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개발진들이 재미있어 보인다고 생각한 것을 다 넣어보고 실험해보고 짜 맞추다 보니, 그런 일련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았던 유저 입장에서는 다르게 느껴졌다. 결국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쳐서 새로운 건 더 이상 넣지 말고, 오히려 기존 것도 줄여야 한다는 기조가 생겼다.


▲ 카드 수집 및 BM에 관해서도 여러 차례 시도가 이어졌고

▲ 새로운 뭔가를 자꾸 시도하고 넣으려는 게 지나쳐서 결국은 줄이고 다듬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해서 마블스냅은 콘텐츠 및 여러 가지를 다듬은 뒤 서드 파티 로그인, 튜토리얼, 경쟁, 랭크 시스템, 시즌별 이벤트까지 기틀을 잡아갔다. 친구와 가족들 그리고 지인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는 인맥을 타고 타서 2,000명까지 대상을 잡아서 검증을 진행했고, 그 지표가 긍정적이라고 판단하자 벤 브로드가 직접 3월에 대중에게 마블스냅 클로즈 베타테스트 소식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몇몇 지역에 소프트런칭을 하면서 라이브 서비스에서 빌드 관리 및 운영, 기술 대응 같은 노하우를 쌓은 뒤 2022년 글로벌로 출시했다. 이미 소프트런칭 단계에서 알음알음 소문이 알려졌던 만큼, 글로벌 출시 후 마블스냅은 바로 백만 다운로드 이상을 기록하면서 유저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11월에 와칸다의 전사들 시즌을 시작으로 파워 코스믹, 새비지 랜드 등 시즌 업데이트까지 주기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2명으로 시작해 현재 50명 가량 모인 소규모 스튜디오에서 글로벌로 성공할 수 있던 게임을 만들 수 있던 궁극적인 비결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용 우 CPO는 빠르고 반복적인 시도를 꼽았다. 빠르게 프로토타입 카드를 제작해서 여러 차례 플레이하면서 아이디어를 쌓고 다듬어간 결과 마블스냅만의 독특한 게임플레이를 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빠르게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다양한 시도를 했기 때문에,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파트너에게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용 우 CPO는 기술적으로 다양하게 지원해준 유니티를 비롯해 마블 코믹스, 그 밖에 여러 솔루션 파트너들에게 감사하면서 아이디어의 실현을 도와줄 파트너와 좋은 관계도 강조하는 것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 빠르게 자신의 게임의 틀을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파트너와 협업,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