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브 온라인'의 개발사 CCP 게임즈의 힐마 페터슨 대표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블록체인 컨퍼런스 한국 블록체인 위크 2023(KBW 2023)에 연사로 참여한다는 소식이었다. 현재 차기작으로 블록체인 신작 프로젝트 어웨이크닝을 개발 중인 CCP 게임즈인 만큼, 여러모로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블록체인 개념이 도입된 웹3 게임에 대해서는 아직도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정확히 기존의 게임과는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앞으로의 게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까지 통일된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완성도를 비롯해 기준이 될 게임이 나와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프로젝트 어웨이크닝을 개발 중인 CCP 게임즈의 힐마 페터슨 대표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20주년을 맞이한 '이브 온라인'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블록체인이 게임을 어떤 식으로 바꾸게 될지 힐마 페터슨 대표를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 CCP 게임즈 힐마 페터슨 대표


Q. 먼저 '이브 온라인' 20주년, 축하드립니다. 어지간한 장수 온라인 게임도 이만큼 오래 서비스하는 경우가 적은데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 서비스할 거라 예상했었는지도 듣고 싶네요.

= 10주년과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10주년 때는 목표를 이뤘다고 해야 할까요. 결승선을 통과한 느낌이었어요. 10주년을 목표로, 그 이상의 미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온 거였죠. 그런데 20주년을 맞게 되니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20주년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닌, 다가올 10년. 그러니까 30주년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치 책을 읽을 때 다음 장이 기대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저희 역시 다음 장을 준비하면서 한창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시작으로 조만간 아이슬란드에서 열리는 팬 페스트 준비로 한창 바쁜 상황입니다. 새로운 정보들이 공개될 예정이어서 이거에 대한 기대도 크고 팬들을 만날 생각에 벌써 흥분되고 그렇습니다.

한편, 진부한 답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오래 서비스할 수 있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습니다. 맨 처음 저희가 예상한 건 유저 수 15만 명에 최대 5년은 서비스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랬던 게 20주년을 맞이하고 유저 수도 2천만 명을 돌파했으니, 저희의 예상을 진작에 뛰어넘은 성과를 낸 셈입니다.


Q. 지금까지 서비스하면서 게임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가장 기억에 남는,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떤 게 있었을까요.

= 개인적으로는 기네스북 신기록 달성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브 온라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M2-XFE 대참사)이 터진 적이 있었는데 그게 비디오 게임 역사상 최대 규모,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간 게임으로 기네스북 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물론, 비슷한 사건이 그전에도 있었지만, 역시 최대 규모라고 해야 할까요. 이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보다 저희가 뭔가 한 게 아니라 유저들이 '이브 온라인'에서 써 내려간 사건, 서사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게임 외적으로는 회사 차원에서 학술적 연구를 한 일이 떠오릅니다. 저희도 '이브 온라인'이 이렇게 오래 사랑받은 이유가 뭘까 궁금해서 학술적 연구를 한 적이 있거든요. 연구 결과 '우정' 덕분이라고 조사됐습니다. 알다시피 '이브 온라인'은 혼자서 하기 힘든 게임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고 하면서 나중에는 코퍼레이션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등 커뮤니티가 핵심이죠. 이렇듯 다른 유저와의 탄탄한 연결고리가, 우정이 유저들을 계속 게임을 하도록 하고 '이브 온라인'이 지금까지 서비스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술적 연구인 만큼, 근거하는 데이터도 많습니다. 실제로 '이브 온라인'을 통해 친구 관계를 넓혔다는 데이터도 있고 우정이 건강이나 장수,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브 온라인' 장수 비결이라고 해야 할까요. 근본적인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던 만큼, 매우 의미 있는 연구였다고 생각합니다.

▲ 378,012달러 규모의 손실이 발생해 기네스북에까지 기록된 M2-XFE 대참사


Q. 게임이 인간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하니 이걸 물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최근 발생한 몇몇 폭력 사태의 원인을 게임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게임이 폭력성을 조장한다는 거죠. 아이슬란드는 어떤지, 그리고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 게임마다 다를 거 같습니다. 어떤 게임은 선한 영향을 끼치고 어떤 게임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근데 이건 게임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영화나 음악 등 온갖 예술적인 것들이 다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이브 온라인'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건 부모가 잘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 역시 딸을 가진 아버지인데 제 딸이 친구들과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를 한다고 전 하루 종일 해도 된다고 내버려 둡니다. 게임을 통해 다른 친구와 만나고 떠들고 즐기는 거니까요.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고 혼자서 틱톡 같은 SNS를 한다면 하루 30분으로 제한합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아이슬란드에서는 게임보다 오히려 SNS에 대한 우려가 더 큰 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 게임이나 하도록 놔둔다는 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의 영향도 저마다 다르니까요. 이런 부분은 부모가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하면서 현실에서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배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브 온라인' 얘기가 다시 나오게 되는데 게임 내에서 다양한 거래가 이뤄지는데 이걸 엑셀로 만들어서 경제학적 데이터를 얻을 수도 있고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 전략적인 사고를 기를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한번 전쟁이 발발하면 장기적으로 진행되기에 끈기도 필요하죠. 전 세계의 수많은 유저를 이끌려면 리더십도 있어야 합니다. 쉽게 배울 수 없는 이런 것들을 게임으로 익힐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영향도 있으니, 게임과 관련된 대화는 심층적으로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Q. '이브 온라인'을 보면 일반적인 게임과는 결이 좀 다른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유저들에게 있어서 또 다른 세계, 이른바 메타버스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시선이 더러 있는데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제 경험을 빗대서 얘기하면 좋을 것 같네요. 제가 1996년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처음 입사한 회사가 VR ML(Virtual Reality Modeling Language, 가상 현실 모델링 언어) 브라우저를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3D 인터넷에서 활용할 수 있는 HTML을 구현하는 일이었죠.

그때 깨달은 게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세계를 유저들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죠. 가상의 공간을 만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기서 뭘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죠. 그렇게 메타버스를 만들려고 했던 시도는 실패하게 됐습니다. 그때만이 아닙니다. 이후로도 메타버스를 만들려고 하는 시도는 있었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게 메타버스라는 걸 생각지 않고 그냥 재미있는 게임으 만드니 사람들이 '게임이야말로 메타버스'라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런 걸 보면 메타버스라는 건 누가 만들겠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그런 건 아닌 거 같습니다.



Q. 지난 6월 신규 확장팩 '비리디언'을 출시했습니다. 장수 온라인 게임인 만큼, 확장팩을 준비할 때마다 고민이 컸을 것 같은데 이번 확장팩에서 가장 주안점을 뒀던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 업라이징 확장팩을 내놨을 때 다양한 백스토리를 넣거나 모험을 개선하는 시도를 했었는데 '비리디언'에서는 유저들에게 더 좋은 툴을 제공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주력하고 있는 건 '이브 온라인'의 소셜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코퍼레이션과 얼라이언스를 좀 더 효과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를 만드는 일입니다. 또한, 팩션 전쟁이라고 해서 NPC 전쟁 시스템이 있는데 이 부분도 개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우주 정거장을 개인화할 수 있는 기능 등 다양한 것들이 추가됐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기능들을 추가하고 개선할 예정이며, 장기적으로는 '이브 온라인'의 핵심과도 같은 유저들이 그들의 소셜 그룹을 더 잘 조직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할 생각입니다.


Q. 20주년을 맞이한 지금, 다가올 10년을 준비 중이라고 하셨는데 이를 위해 현재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점은 무엇인가요.

= 지난 5년간 신규 유저 유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5년 전 처음 '이브 온라인'을 접한 유저와 최근 접한 유저의 경험은 굉장히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마냥 어렵고 복잡했다면 지금은 초반 1시간 동안의 경험이 꽤 괜찮게 바뀌었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라 이후로도 지속해서 가이던스를 제공해 유저가 목표를 찾는 데 도움을 주고 신규 유저가 기존 유저들이 모인 조직에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혼자 하기보다는 다른 사용자와 함께했을 때 더 즐거운 게임이니 말이죠. 이런 식으로 진입장벽을 낮추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Q. 여담이지만, 좀 더 캐주얼한 모드나 콘텐츠를 넣을 예정은 없나요. 흔히 '이브 온라인'이라고 하면 어렵고 방대한 게임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브 발키리'나 '이브 건잭'같은 캐주얼한 콘텐츠가 들어가면 신규 유저 유입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 '이브 발키리'나 '이브 건잭'은 이브라는 세계관을 확장하고 알리는 시도였습니다. '이브 온라인'은 기본적으로 하드코어한 게임을 지향하는 MMORPG인 만큼, 게임에 캐주얼한 모드나 콘텐츠를 넣는다거나 하는 그런 시도는 절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Q. 이브 유저들의 축제의 장인 팬 페스트가 조만간 개최 예입니다. 단순한 축제의 장을 넘어 다양한 정보가 공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떤 소식들이 공개될지 간단하게나마 부탁합니다.

=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이자 앞으로의 10년을 여는 행사인 만큼, 중대한 발표가 몇 가지 예정되어 있긴 합니다. 그리고 보통 여름, 겨울에 확장팩을 공개하는 만큼, 겨울에 공개할 확장팩에 대한 정보도 공개 예정입니다. 자세한 소식은 팬 페스트에서 공개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한편, 이번 팬 페스트에서 가장 기대되는 소식으로는 기념비 증축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3년에 10주년을 기념해 기념비를 세운 바 있습니다. 그걸 이번에 증축하게 됐습니다. 10주년 기념비를 첫 번째 단으로 해서 그 위에 20주년 기념비가 추가되는 건데 아마 30주년을 맞게 되면 그 위에 또 새롭게 증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한편, 10주년 기념비에 기록된 유저 가운데 지금도 하는 유저들은 타이탄 쉐브론이라는 마크가 추가됩니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유저들을 계속 기릴 예정입니다.

▲ 20주년을 맞아 10주년 기념비가 증축된다


Q.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그리고 웹3 게임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블록체인은 우리가 즐기는 게임을 어떤 형태로 바꾸게 될까요.

= 유저가 게임에 미치는 영향력을 더 확대하는 형태로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유저들은 게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인플루언서라는 형태로 비즈니스에 관여하기도 하고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걸 넘어서 팬사이트를 만들어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있죠. 더 나아가서는 직접 프로그래밍해서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비즈니스적인 부분은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그랬던 게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됨으로써 지금까지는 유저가 들어올 수 없었던 영역 안으로 유저가 들어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블록체인의 이념이라고 할 수도 있는 탈중앙화와 스마트 컨트랙트가 그 핵심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현재는 포트나이트나 로블록스가 가장 근접한 형태의 게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이브 온라인'은 원칙적으로 현금거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한편, 코인이 적용된 웹3 게임은 어떤 의미로는 이런 현금거래를 장려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이브 온라인'에서 현금거래를 금지한 것과는 별개로 웹3 게임에서의 현금거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MMORPG의 생태계는 작은 국가와 비슷합니다. 국가들은 저마다 다른 통화 체계가 있고 교역을 위해 다른 국가와 거래하기 위해선 외환 거래를 해야 하죠. 국가가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앞서 MMORPG를 작은 국가에 비유했는데 마찬가지입니다. 게임마다 다른 통화 체계(게임머니)가 있고 이걸 다른 게임에 쓰기 위해선 현금거래를 하든지 해야 하죠.

물론 지금은 대부분의 게임들이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죠. 하지만 다들 알게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회색지대(Grey zone)라고 해도 될 겁니다. 그런데 이것도 바뀌고 있습니다. EULA(End User License Agreement)를 개정해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식이죠.

여담이지만, 제 모국인 아이슬란드는 역사적으로 한때 외환 거래를 금지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물론 풀렸지만요. 결국 발전을 위해선 외환 거래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한 셈입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간 교역이 국가를 성장시키듯이 MMORPG에서도 유저간 거래가 활성화되면 긍정적인 효과가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Q. 끝으로, CCP 게임즈가 선보일 블록체인 신작 프로젝트 어웨이크닝을 기다리고 있을 유저들을 위해 한마디 부탁한다.

= 팬 페스트에서 발표할 내용에 많은 관심과 기대 바랍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이브 온라인'을 즐겨주시는 유저분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아직은 적은 규모지만, 굉장히 열정적으로 즐겨주시고 있다는 거 잘 알고 있다. 데이터를 보니 정말 열정적이시더라. 앞으로도 많이 즐겨주길 바라며, 앞으로 CCP 게임즈가 내놓을 신작에 많은 기대 바란다. '이브 온라인'을 즐겨주시면 우리의 신작 개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