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귀여운 동물을 좋아하나요? 복슬복슬 폭신폭신한 감촉은 말할 것도 없고 털 사이로 느껴지는 온기는 마음마저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묘한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똘망똘망 빛나는 눈과 살랑살랑 흔드는 꼬리, 반들반들한 코는 또 어떤가요.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치명적인 귀여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취향을 꿰뚫고 있던 지인이 최근, 출시한 지 5개월이 지난 현재 한국어를 공식 업데이트한 게임이 있다며 추천했습니다. 패치를 통해 한국어를 추가한 것은 기특하지만, 한국어 하나 추가했다고 관심도 없던 게임에 5만 원을 태우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민하던 찰나 지인은 귀여운 강아지가 거대 전차를 몰고 다니는 게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귀여운 멍멍이와 거대한 전차의 조합이라니. 이건 솔직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알고 보니 강아지와 고양이 수인이 등장하는 게임, '전장의 푸가2'였습니다. 동물을 좋아할 뿐 수인은 취향이 아니라고 완곡히 거절했지만, 어차피 귀여운게 좋다면 수인도 취향에 맞을 수 있다며 끈질기게 권유했습니다.

취향이 아닐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어화를 꾸준히 해주는 것을 무시하기도 아쉽고, 지인의 흔치 않은 추천을 무시하기도 뭣 하니 앞으로의 한국어화에 투자하는 셈 치고 구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수상한 취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 게임 특성상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초반 스크린샷만 첨부했습니다.


게임명: 전장의 푸가2
장르명: 전략 턴제 RPG
출시일: 2023.5.11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CyberConnect2
서비스: CyberConnect2
플랫폼: PC, PS, Xbox, Switch
플레이: PC



탄탄한 본편과 대비되는 부실한 도입부

전장의 푸가2는 21년에 발매했던 전작의 후속작으로, 1편의 엔딩 직후를 기준으로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그렇다 보니 전작의 스토리를 모른다면 도입부의 상황을 완벽히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뒤따릅니다.

물론 시리즈 작품이라면 당연할 수 있겠지만, 전장의 푸가는 그런 성향이 더욱 짙습니다. 보통 타 시리즈 게임은 가볍게 전작 스토리를 복습하거나, 주인공의 대화를 통해 상황을 어림짐작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유입/복귀 유저를 동시에 배려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전장의 푸가는 이런 안전장치가 없는 데다, 세계관과 관련된 고유명사도 많이 등장해 초반에 스토리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메인 화면에서 전작의 스토리를 볼 수 있긴 하나, 내레이션이나 대화 없이 주요 장면을 그린 일러스트만 보여줘 대략적인 추측만 가능할 뿐, 정확히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전장의 푸가는 암울한 배경과 설정을 통해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는 것이 강점인데, 이러한 장점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 1편의 엔딩 이후부터 스토리가 진행되어, 전작 스토리를 모른다면 재미가 반감된 채 시작된다

▲ 메인 메뉴에서 전작의 스토리를 볼 수 있을 것처럼 되어있지만,

▲ 아무 설명 없이 이렇게 3분간 그림만 나온다. 사실상 전작 일러스트 모음집 수준

초반 스토리 진행 방식이 아쉽긴 하지만,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는 잘 구축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게임 진행 도중 인터미션과 항구라는 장소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서브 스토리나 커뮤니케이션, 성장 등을 할 수 있으며 자연스레 게임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인터미션은 챕터 초반과 후반부에 한 번씩 들를 수 있는 일종의 세이브 포인트입니다. 여기서 제한된 행동 횟수만큼 다른 캐릭터와 대화하거나 재료 채집, 타라고니스 강화, 요리, 휴식 등을 할 수 있습니다. 기본 전투력을 높이거나 버프 효과를 얻어 전투의 이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캐릭터와 대화하면서 친밀도를 쌓을 수 있습니다.

대화를 통해 친밀도 레벨을 높이면 지원 효과(패시브)를 상승시킬 뿐만 아니라, 협력 필살기라는 강력한 기술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인터미션에서 진행하는 모든 작업의 대성공 확률도 높아지는 혜택도 따라옵니다. 대화뿐만 아니라 캐릭터별 소원을 이뤄주면 다음 전투 시 추가 능력치를 획득하는 하이 텐션 상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런 요소는 단순 RPG 장르의 성장 시스템으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게임으로써의 성격도 강하게 띠고 있어 자연스레 캐릭터에게 애정과 유대감이 생기게 만듭니다.

▲ 정해진 행동 횟수(AP)만큼 커뮤니케이션이나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는 인터미션

▲ 타라고니스 성능을 강화하거나

▲ 다른 캐릭터와 대화를 통해 인연을 쌓을 수 있다

▲ 낚시, 농사, 축사로 자원을 채집하거나 식사, 휴식으로 회복, 이로운 효과를 획득한다

▲ 캐릭터의 소원을 이뤄주고 다음 전투에서 활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항구는 챕터를 완료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전, 마무리하는 장소입니다. 마을 수인과 대화하거나 모험에 필요한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습니다. 이따금 대화 도중 행동을 선택하는 저지먼트 찬스 이벤트가 발생하는데, 선택지에 따라 공감 또는 각오 수치가 오르며, 각 수치가 특정 구간을 넘으면 일종의 버프 스킬인 리더 스킬이 해금됩니다.

이 수치는 리더 스킬을 해금하는 것 외에 다른 엔딩을 맞이하는 분기점의 역할을 해 자연스레 다회차를 도전하고 싶은 욕구도 발생시킵니다.

이런 캐릭터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시스템은 물론, 엔딩에도 큰 영향을 주는 선택지도 끊임없이 발생하다 보니 자연스레 게임과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잘 구축했습니다.

▲ 챕터 마지막에는 항구를 들른다

▲ 전투 아이템이나 자원을 거래할 수 있다

▲ 대화 중 선택지를 고르는 저지먼트 찬스 이벤트가 발생한다

▲ 선택을 통해 쌓인 수치에 따라 해금되는 리더 스킬과 엔딩이 달라진다



전투에서도 이어지는 선택과 집중

주인공이 타고 다니는 전차 '타라고니스'는 기본적으로 머신건, 그레네이드, 캐논을 사용합니다. 무기별 특징이 존재하며 상대하는 적 기체의 종류에 따라 적절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절한 무기로 공격하면 적 기체는 '딜레이' 상태가 되며, 턴이 밀리게 되니 적 기체에 유리한 무기로 공격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투 중 언제든지 전술 모드를 통해 배치된 무기를 변경, 조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용 중이던 무기로 공격할 순 있지만, 약점 무기가 아니라면 온전히 그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무기는 고유 스킬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머신건은 대상의 장갑 랭크(방어력)를 감소시키고, 그레네이드는 모든 적을 3번 공격하죠. 딜레이를 포기하는 대신, 유리한 상황을 이끌기 위한 선택도 필요합니다. 참고로 똑같은 무기를 사용하는 캐릭터라도 패시브 효과는 다르기에 이 부분도 숙지해야 원활한 전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등장하는 적의 수와 종류는 늘어나지만, 무기별 공격 턴은 정해져 있어 모든 적을 한 번에 상대하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우선순위를 두고 적을 하나씩 처치하거나 스킬, 방어 등을 사용하는 등 전략적인 선택을 해야 합니다.

▲ 기본적으로 턴제 방식이며 약점 공격을 통해 딜레이 상태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 전투 중 전술 모드에 들어가 캐릭터의 배치를 교체할 수 있다. 캐릭터별 능력치 확인은 필수

▲ 캐릭터별 배치된 무기는 고유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 이를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타라고니스에는 무기 외에 마나가름이라는 필살기도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적을 1번의 공격으로 파괴하는 위력을 가진 기술입니다. 마나가름을 사용하기 위해선 캐릭터 1명의 생명력을 소모해야 하며, 생명력을 소모한 캐릭터는 다음 인터미션까지 행동 불능 상태가 됩니다. 일종의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인 것이죠.

특정 적을 상대하다 보면 전투 도중 브레이크 찬스가 발동합니다. 브레이크 찬스는 적절한 선택지를 고를 시 전투에 이점을 가져오는 일종의 이벤트입니다. 선택지의 난이도가 높은 편이 아니라 부담도 적고, 반복적인 전투로 지루해질 상황에서 쏠쏠한 재미로 다가옵니다.

전투를 끝내고 경로를 진행하다 보면 갈림길을 발견해 어느 쪽으로 갈지 선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안전한 곳으로만 이동하면 보상을 많이 획득하지 못해 성장이 더뎌 후반 진행이 어렵고, 자원이나 경험치를 얻기 위해 전투만 진행하면 체력이나 SP가 고갈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타라고니스와 캐릭터의 성장치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끝 없는 선택지는 수많은 전략, 로그라이트 게임에서 흔한 요소지만, 전장의 푸가2는 턴제 전투 방식을 도입해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하는 부담을 계속 부여합니다. 전투를 치르면 반드시 피해를 보니 이를 최소화하고, 적이 공격할 수 없도록 딜레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하죠. 물론 경로 중 보급 지점이 있긴 하지만, 자주 나오는 편은 아니니 항상 최악의 수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모든 선택에 신중해지며 게임에 몰입하게 됩니다. D&D나 CCG 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전략적인 시스템을 매끄럽게 구축했습니다.

▲ 강력한 위력을 뽐내는 만큼,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마나가름

▲ 전투 도중 발생하는 브레이크 찬스는 소소한 정도. 그래도 질릴 법한 전투에서 재밌게 다가왔다



캐릭터 게임으로써 아쉬운 비주얼

전장의 푸가2는 포지션, 인연, 친밀도 등 캐릭터 게임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이벤트를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캐릭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고, 매력을 더 느끼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만드는데, 한 가지 장벽이 이를 방해합니다. 캐릭터 게임에 있어 비주얼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이 다소 심심하다는 것이죠.

트리플 A 게임에 버금가는 제작비가 들어간 게임은 아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래픽이나 이펙트, UI 등 시각적 요소가 전체적으로 저렴한 느낌이 강합니다. 물론 그래픽이 게임의 전부인 것은 아니지만, 시각적 요소가 떨어지면 게임에 대한 감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모델링은 물론 텍스쳐의 품질도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사운드도 아쉬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캐릭터가 대화를 나누거나 스토리를 진행할 때 더빙이 아닌 감탄사 정도의 짧은 음성만 나옵니다. 대사가 많은 JRPG에서도 메인 스토리의 대사 정도는 모두 더빙해 스토리의 몰입감을 높이는 데,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 자꾸 부족함이 느껴집니다.

물론 이런 단점은 게임을 하는 데 치명적인 수준은 아닙니다. 유저의 취향에 따라 별로 신경 쓰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굳이 단점으로 뽑은 이유는 게임의 가격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가격임에도 여러 부분에서 개발비를 절감한 게 눈에 띈다면, 게다가 게임의 주요 포인트에 영향을 끼친다면 단점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 컷 씬에서 보여주는 일러스트는 모두 괜찮은 퀄리티를 보여준다

▲ 다만 그래픽은 전작과 큰 차이가 없다. 각진 모델링과 저해상도 텍스쳐가 눈에 띈다

▲ 혹시나 그래픽 설정이 잘못되었나 보았지만, 그래픽 설정은 이게 전부다

▲ 서브 이벤트야 둘째치더라도 중요한 메인 스토리조차 더빙이 안 되어 있는 건 몰입을 방해한다

▲ 내레이션은 전부 더빙했으면 왜 캐릭터는 안 챙겨주는 건데!



몇 가지 단점이 눈에 띄는, 그래서 아쉬운 게임

전장의 푸가2는 전작에 있던 시스템을 잘 계승하면서 더욱 발전된 선택 시스템을 도입해 장점을 부각했지만, 그만큼 눈에 띄는 실수는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잘못 만든 게임은 아닙니다. 언급했던 몇 가지의 단점은 확실히 아쉬운 부분이지만, 전장의 푸가2는 충분히 매력 있는 게임입니다.

특히 어리고 귀여운 캐릭터와 암울한 세계관이 과연 어울릴지 의문이 있었는데, 오히려 이런 캐릭터가 있었기에 암울한 세계관이 강조되는 한편, 게임이 너무 무겁게 다가오는 것을 방지해 피로가 크게 쌓이지 않고 부담도 적어 가볍게 즐기기 좋았습니다.

등장 캐릭터가 수인이다 보니 다소 거부감이 들 수 있겠지만, 단순 퍼리 게임이라 넘기기엔 아쉬운 게임임은 분명합니다. 5만 원이라는 가격은 다소 조금 비싼 감이 있지만, 할인을 통해 저렴하게 구매한다면 충분히 돈값은 한다고 느낄만한 게임입니다. 게다가 이 게임을 하다 보니 수인도 꽤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가볍게 즐길 전략 게임을 원하거나,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게임입니다.

▲ 전략 게임의 재미는 확실히 갖추고 있다

▲ 캐릭터와 커뮤니케이션도 단순 전략 요소가 아닌 하나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 보다 보니 수인도 꽤 귀여운 것 같기도...?

▲ 완벽한 게임은 아니지만, 한 번 해보기엔 괜찮은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