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기를 넘어 액정만 있다면, 아니 액정이 없어도 구동하게 만드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둠'. 이번에는 장에서 발견되는 박테리아가 둠 구동에 활용됐다.


MIT 생명공학 박사 과정 연구원인 로렌 람란은 자신의 리포트를 통해 장내 박테리아를 흑백을 표현할 수 있는 1비트 픽셀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형광 단백질을 활용해 필요에 따라 이 박테리아를 조명으로 비추면 게임 화면을 구성하는 하나의 픽셀이 된다.

이렇게 대장균으로 된 세포는 32x48 사이즈의 흑백 디스플레이를 만들어 화면을 채운다. 그리고 게임플레이 렌더링 화면에 맞춰 게임에 쓰이는 개별 프레임을 만들게 된다. 세포 내벽에는 둠의 화면이 그려진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둠의 컬러 화면을 흑백, 이진법으로 변환하는 코딩 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둠 실행에 더 문제가 되는 건 극악의 프레임 타임이다. 형광 단백질이 최대 출력에 도달하는 시간은 70분이며 세포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데에는 무려 8시간 20분이 걸린다. 단 하나의 프레임 구현에 말이다.

람란은 둠의 원래 게임 프레임인 35프레임, 그리고 평균 플레이 타임 5시간을 생각하면 게임에 599년 정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적어도 대장이 둠가이에 의해 터질 고민은 죽기 전엔 하지 않아도 된다.


한편, 이드 소프트웨어의 대표작이자 FPS의 인기를 대중화한 둠은 1995년 출시 이후 수많은 기기로 이식됐다. 특히 전체적인 기기 성능 향상으로 다양한 기기로 둠을 돌리는 것이 밈으로 자리 잡은 후 게임과는 관련 없는 기기들이 둠 실행에 쓰였다.

최근에만 해도 스마트 냉장고, 맥북 프로 터치바, 메모장, 임신테스트기 등 화면만 있다면 둠이 구동됐다. 여기에 인간 줄기세포를 대신할 쥐 뉴런을 컴퓨터에 연결, 뉴런을 통해 둠을 제어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었다. 통속의 '쥐' 뇌가 둠을 플레이하는 셈이다.

'모든 것에서 둠을 실행한다(Doom Runs On Everything)'라는 밈이 둠 실행 도전의 첫 이유지만, 기술적인 이유도 따라붙는다. 렌더링된 게임 화면이 3D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2D에 가깝게 레벨 디자인이 구성됐다. 플레이어가 정면으로 공격하면 주인공 둠가이가 알아서 적의 위치로 공격해 상하 시점 역시 필요하지 않다.

람란 역시 박테리아를 통한 둠 실행에 있어 비교적 간단한 설정만으로 플레이를 가능하게 하는 둠의 특징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둠 이식에는 디스플레이와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샘 치에트가 공개한 바 있는 메모장 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