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C 트랙 중 첫 날 최고로 인기를 끈 강연을 꼽으라면 단연 데몬즈 소울에 대한 것이었다. 특별히 이번 강연은 프로듀서와 디렉터가 하나씩 하이라이트를 맡은 두 번의 연속 강연으로 구성되었는데 300석 규모의 강연장이 꽉 차다 못해 미어터졌다. 여기 저기 바닥에 앉아서 강연을 듣는 사람이 즐비했다.


동시통역 리시버를 나눠주는 스탭은 리시버가 부족하자 100개를 더 공수해왔다가 그마저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300명 규모로 세팅된 동시통역기는 너무 많은 접속자가 몰리면서 일시적으로 전송이 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데몬즈 소울을 플레이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


시장성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자가 재미있어 하는 게임을 만들었다는 카지 타케시 프로듀서의 첫 번째 강연에 이어, 미야자키 히데타카 디렉터가 데몬즈 소울이 실제 어떤 흐름에 따라 기획되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한 두 번째 강연 내용을 소개한다.



▲ 미야자키 히데타카 디렉터(좌)와 카지 타케시 프로듀서(우)가 강연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 KGC2010 데몬즈소울 강연 1부 - 데몬즈소울, 위험했지만 끝내 도전했다 [클릭!]



원점회귀. 그리고 성공하려면 실패해야 한다는 모순


데몬즈 소울을 개발할 때 가장 먼저 잡은 컨셉은 ‘원점회귀’. 시장에서 잘 팔리는 게임을 고려하지 않고 원점으로 돌아가 ‘게임이란 무엇인가’, ‘게임은 어떤 재미를 주어야 하는가’, ‘무엇이 재미인가’를 고민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로 꼽힌 것은 ‘달성감’. 어떤 행위에 의미를 주는 게 게임이라면 유저의 플레이와 행위에 달성감을 주자는 1차 목표를 세운 것이다.


그렇다면 달성감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스테이지를 깨고, 레벨업을 하고, 보물을 발견하고 하는 일련의 극복과 성장과정을 통해 달성감 또는 성취감을 줄 수 있는 것인데, 데몬즈 소울은 이런 ‘성공의 체험’을 쌓아나가길 원했다고. 하지만 성공의 체험이 빛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패가 있어야 한다. 100명 중 90명이 합격하는 것보다는 10명이 합격할 때 더 성취감이 크지 않냐고 미야자키 디렉터는 반문했다.


실패는 무엇인가. 데몬즈 소울은 간단했다. 실패하면 죽는다. 데몬즈 소울은 그렇게 죽기 쉬운 게임이 되었다. 그래서 난이도가 높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정말 ‘용서 없이 죽는’ 그런 게임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냥 난이도가 높기만 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달성할 수 없는 목표라면 달성감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몬즈 소울은 난이도는 높지만 달성할 수는 있는 모순된 지점을 찾아야만 했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한 룰이 ‘플레이어 중심’. 성공도 실패도 모두 플레이어의 탓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을 ‘당했다’거나 실패의 원인이 ‘게임 탓’이 되어서는 곤란했다. 나 때문에 죽었고 나 때문에 실패해야 그걸 극복할 때 진정한 달성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


또 실패를 해도 포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죽었을 때 시간을 들여 회복할 수 있는 돈이나 경험치는 잃어버리지만, 고유성이 있는 아이템은 남아있도록 했다. 또 적의 패턴이나 함정을 고정화시켜서 죽었더라도 학습과정을 통해 다음 번 도전에서는 극복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잘 만든 싱글 액션 RPG에 불과했다. 성공 체험과 실패. 죽음과 극복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런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는 것. 이전에 있던 싱글 액션 RPG에는 없었던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싱글 플레이에 자극을 주는 용도의 네트워크 플레이


데몬즈 소울은 네트워크 플레이를 철저하게 싱글 플레이에 자극을 주기 위한 요소로만 정의했다. 네트워크 플레이가 들어감으로써 얼마나 싱글 플레이가 더 재미있어 지느냐가 핵심이었다. 네트워크 플레이가 독립된 컨텐츠로 온라인 요소를 가지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데몬즈 소울에 적용된 네트워크 플레이는 상대편에 감정을 가진 인간이 있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바닥에 써 놓은 힌트는 시스템이 만들어 둘 수도 있는 것이지만, 누군가가 남겨두었다는 점 때문에 누가 이걸 써놨는지 왜 써놨는지 하는 감정까지 엿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정형문을 골라 남겨두는 방식의 비동기 커뮤니케이션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네트워크 플레이로 인해 싱글 플레이의 장점이 줄어들면 안 된다는 것. 미야자키 씨는 싱글 플레이의 장점으로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렇다면 이런 장점을 저해하는 네트워크 플레이의 요소는 무엇인가.


그건 바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부담이었다. 이를테면 전화와 이메일의 차이. 전화로 하는 것보다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심리적 부담이 덜하다는 것. 여기에 힌트를 얻은 데몬즈 소울은, 같은 시간에 접속해 있는 사람들끼리여야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동시성’을 깨고 ‘비동기 네트워크’를 채택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렇게 비동기 네트워크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언어권에 관계 없는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플레이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데몬즈 소울의 독특한 네트워크 시스템에 대한 소개도 강연에 있었지만, 직접 플레이 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인벤이 소개한 데몬즈 소울에 대한 지난 기사를 참고하기를 권한다.

[칼럼] 이런게 실감나는 온라인 월드, 데몬즈소울은 왜 회자되는가


결국 데몬즈 소울은 원점회귀 - 죽음이라는 하나의 축과 네트워크를 통한 자극 - 상부상조 라는 또 하나의 축이 만나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잘 조화되면서 새로우면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 미야자키 디렉터의 설명이었다.







QnA 시간


강연이 끝난 후 폭풍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참관자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던 것. 시장성을 고려한 게임 만들기에 반기를 들고 나와 수 많은 상을 휩쓸었던 데몬즈 소울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뜨거웠다. 스탭의 제지가 없었다면 QnA를 하느라 밤을 샐 기세. 강연이 끝나고 오고 간 QnA를 정리한다.



= 높은 난이도의 게임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서 77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고 했는데 그 중에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게임을 클리어 했는지 궁금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이도가 좀 과했나 싶기도 하다. 약간 반성하고 있기도 하다. 그 당시 내 한계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게임을 하다가 집어치운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무서워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좌중 폭소) 완벽한 난이도를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난이도는 대충 대충 맞추거나 아니면 과하게 하거나 해야 하는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과하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카지 프로듀서) 클리어에 대한 수치는 내가 알고 있다. 그렇게 많지는 않다. 50%정도 될 거다. 마지막까지 완전히 마스터 해서 트로피를 딴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게임을 꼭 클리어 해야 하느냐고 하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플레이하고 있는 시간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는 거다. 난이도가 높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미야자키 디렉터) 이 난이도로 50%면 잘 만든 것 아닌가? (좌중 폭소)




= 달성감, 성취감을 강조했다. 온라인 게임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데, 온라인 게임에는 그런 부분을 어떻게 적용하면 좋겠나.


사실 온라인 게임은 아직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확실하게 소화를 하지 못해서, 이번 KGC에서 많이 배워서 돌아갈 생각이다.



= 데몬즈 소울을 만들고 나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극복 가능한 난이도 부분이 그렇다. 맵지만 먹을 수 있는 카레처럼 이건 어쩌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들고 나니 그제야 보이는 부분도 있으니까. 난이도는 좀 더 낮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그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어서 다음 게임에는 그렇게 만들까 싶은데, 이 부분은 말하면 혼날 것 같은데…

(카지 프로듀서) 아니오. 괜찮으니까 하세요.

난이도를 낮추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임이 된다. 만약 이 게임의 후속편을 만든다면 난이도를 낮추지는 않을 것이고 대신 극복 가능성을 올릴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조작이나 시스템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두고 있다.




= 유저가 보스 몬스터가 되는 스테이지가 있다.


실은 많이 플레이하는 유저들을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게 있다. 그걸 가장 첨예한 형태로 구현한 게 타워의 보스다. 굉장히 개성있고 실력있는 유저들을 활용한 거다. 처음에 보스로 소환되면 상당히 놀라게 된다. 머리에 이상한 노란 모자를 쓰고. 어떻게든 상황을 이해하고 대처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보스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잘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한다.



= 커뮤니케이션의 부담이라는 건 나라마다 다르리라 생각한다. 어떤 반응들이 있었나.


개개인 마다도 차이가 있다. 부담이 있어도 좋으니까 좀 더 농도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 게임은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네트워크를 이해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한데,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는 게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미약하지만 존재하는 그것이 데몬즈 소울의 오리지널리티다.

보이스 채팅을 하고 하는 건 다른 게임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니까. 좀 더 독특한 네트워크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싶다.

실은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잘 못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좀 히키코모리 성향이 있어서… (좌중 폭소)




= 튜토리얼 보스의 난이도가 높아서 무조건 죽게 되어있다.


처음부터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셈인데 그게 부담이 되지 않는지. 그런 이야기를 물론 했다. 그런데 대충 용서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좌중 폭소) 처음부터 데몬을 만나서 죽으면 너우 어이가 없어서 그냥 하하 웃지 않을까. 그걸 노린 거다.

몇 가지 해결해야 하는 모순이 있다. 난이도는 높은데 극복하게 해야 하는 것도 모순이다. 성공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 실패 또한 해야 하는 것도 모순이다. 이걸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는 없다. 둘 모두가 양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게임의 가치를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몬즈 소울의 실패는 죽었을 때 패널티가 적고 적의 패턴이 똑같아서 다음에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거나 해서 실패의 부담감을 줄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충분했는지는 모르겠다. 조금 하다가 게임을 포기한 분도 있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의미에서는 그게 게임의 가치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부분은 차기작에서 보여드리겠다… 아 이건 농담이다. 그렇게 굉장한 걸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좌중 폭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