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TV에서 로봇들이 등장하는 만화를 봤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주인공 로봇끼리 모여서 싸우면 누가 가장 강할까?’라는 궁금증을 풀어주는 슈퍼로봇대전(ス-パ-ロボット大戦) 시리즈의 신작이 14일 PSP로 출시되어 게이머와 게임 업계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슈퍼로봇대전은 1991년 패미컴으로 제작되어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리즈다. 개발 당시 인기있던 기동전사 건담의 로봇들이 고전 애니메이션인 마징가Z 등과 시대와 세계관을 넘어 한 자리에 모여 지구정복을 노리는 외계인 또는 악의 조직과 싸우는 시뮬레이션 RPG다.



▲ 4월 14일 발매된 제2차 슈퍼로봇대전Z 파계편


다양한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로봇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저작권이 강한 일본의 문화산업 시장의 특징 상 비용 문제로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나, 당시 완구 및 콘텐츠 산업을 주름잡던 반다이(현재 반다이남코)가 대부분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작 가능한 게임이었다.



현재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많은 로봇들이 참가하게 되면서 애니메이션 팬층에게 인기를 얻었고, 그에 따라 새로운 로봇 애니메이션 제작 및 관련된 2차 사업의 붐을 일으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콘솔 기기로 시리즈가 발매되었으며, 2011년 기준 시리즈 누계 50여개 타이틀 1500여만장의 판매량을 달성했다.



슈퍼로봇대전의 기본 시스템은 게임에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을 섞거나 오리지널 세계관을 무대로, 원작 주인공들끼리 부대를 편성하고 악역으로 등장하는 세력과 전투를 벌인다. 전장 위에 유닛(로봇)들을 배치하고 로봇들의 각종 무기마다 공격력 및 명중률 등의 수치를 부여하여 그 수치를 기준으로 공방을 주고받아 상대를 공격하거나 격파하면 경험치를 얻어 레벨업한다.



▲ 필드에서 유닛을 배치하고 전투를 벌이는 SRPG


여기에 적 격파시 얻는 군자금을 이용한 로봇 개조 시스템이나 로봇을 조종하는 파일럿의 성장 등 다양한 시스템이 추가되었다. 또한 전투시 원작 애니메이션의 연출을 넣어서 게이머 자신이 주인공이자 올스타 로봇 군단을 이끌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재미 등 다양한 요소로 인기를 얻었다.



게임 외에도 슈퍼로봇대전 시리즈는 한때 내리막길을 걷던 로봇 애니메이션을 부활시키고 묻혔던 고전 애니메이션의 재평가 및 재판매를 부추기는 등의 부가 사업 수익도 올렸다. 또한 유명 성우나 가수의 활동, 관련 상품의 판매 등 2차 저작물 사업쪽도 발전시켜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계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게임 자체는 일본 내수용이나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는 한국의 청소년층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팬층도 다른 해외 게임들에 비해 비교적 두터운 편이다. 시리즈의 주제가를 부른 JAM Project가 내한 공연을 수 차례 하고, 슈퍼로봇대전 신작이 출시되면 한국의 게임 개발자들이 두문불출하거나 밤을 샌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올 정도로 게임 업계 내에서 인지도가 높다. 심지어 슈퍼로봇대전을 플레이하기 위해 일본어를 배운 사람도 하나둘이 아니다.




▲ 제2차 슈퍼로봇대전Z 파계편 프로모션 영상 2탄




그 중에서도 제2차 슈퍼로봇대전Z 파계편(第2次ス-パ-ロボット大戦Z 破界篇, 이하 파계편)이라는 이름으로 4월 14일 발매된 신작은 PSP로는 최초로 제작된 오리지널 시리즈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물론 기존에 슈퍼로봇대전MX나 슈퍼로봇대전A 포터블 등이 PSP로 출시되었지만 모두 다른 기종으로 발매되었던 시리즈를 이식한 것이기 때문에 파계편이 사실상 PSP 최초의 오리지널 타이틀인 셈이다.



하나의 슈퍼로봇대전 시리즈는 같은 기종으로 출시된다는 기존의 노선과는 달리, 전작 슈퍼로봇대전Z가 PS2로 나왔지만 파계편은 PSP용으로 출시되어 불안의 목소리가 높았다. PS2보다 PSP의 기기 성능이 낮은 탓에 전작의 화려한 연출과 볼륨을 담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실제 뚜껑이 열린 파계편은 그 불안을 가볍게 날려 버리는 퀄리티로 무장하고 있다.



구동 기기가 PSP로 바뀌면서 가장 큰 변화는 전작과의 스토리 연결이다. 기존 시리즈는 같은 세계에서 차례대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지만, 이번에는 전체적인 세계관 설정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모조리 갈아엎었다.





전작에 등장했던 기체나 파일럿 등은 대부분 그대로 출연하나 파계편에서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살다가 합쳐진 것으로 설정되어, 전작의 무대인 차원에서 넘어온 일부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서로 면식이 없다. 후속작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상 새로운 시리즈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출연작의 숫자 역시 휴대용 기기 중에서는 최고로 많기 때문에 파계편 하나로는 PSP의 용량 문제 상 스토리가 끝이 나지 않아서 파계편과 재세편 2개로 나뉘어서 출시할 예정이다. 과거 PS1으로 출시되었던 슈퍼로봇대전F의 경우 미완성된 버전으로 2편으로 나뉜 탓에 비난을 들었으나, 파계편은 스토리가 일단락된 이후 재세편으로 이어지므로 비난보다는 아쉬움을 사고 있다.





파계편의 특징으로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참전작의 개편이다.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의 신작이 나올 때마가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이 참전작과 연출인데, 그 중에서도 참전작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구매층이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로봇이나 파일럿이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에 등장하면 구입을 하고 육성하면서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의 팬층에 흡수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참전작의 선정은 시리즈의 인기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그래서 신작 발표가 되면 가장 먼저 공개되는 것이 바로 참전작이다.



이번 참전작은 특히 신작의 비중이 높아서 전체 참전작 중에서 1/3이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에 처음으로 출연하며, PSP외에도 GBA나 DS 등 휴대용 기기로 출시된 시리즈에 처음 참전한 애니메이션까지 모두 합치면 반쯤은 새로 참전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특히 참전작 중에는 제작사인 반다이남코와 견원지간으로 알려진 코나미가 스폰서를 맡은 천원돌파 그렌라간과 장갑기병 보톰즈까지 참전하여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 코나미가 스폰서를 한 그렌라간


또 다른 파계편의 주목할 점은 휴대용 기기에 맞춘 쾌적한 플레이다. 발매 전 공개된 프로모션 영상을 통해 새로 등장하는 기체들의 전투 연출이나 속도감 등 다양한 부분이 강화되고 전투가 많은 슈퍼로봇대전의 특징상 UMD의 로딩 속도 문제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참전작의 숫자가 많아서 눈물을 머금고 전장에 내보내지 못하는 기체가 많을 수도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그렇지만 실제 발매된 후 불안과 걱정은 모두 사라졌다. 로딩 문제는 데이터 인스톨 방식을 채택하여 900mb에 가까운 용량을 메모리스틱에 직접 인스톨하여 로딩 속도를 획기적으로 줄여서 과거 롬팩 시절이 생각날 정도다.



또한 창고 대기 신세를 면치 못했던 2군 기체와 파일럿들도 추가 임무 기능을 통해 전투에 참가하지 않아도 자금 조달이나 레벨업을 시킬 수 있으며, 명령 선택 메뉴가 간결하고 불러오는 속도가 빠르다. 즉 휴대용이라는 PSP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서 어디서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쾌적한 게임 환경을 제공한다.



▲ 메뉴의 로딩 속도나 선택이 간편해졌다


슈퍼로봇대전 하면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연출 역시 강화되었다. 시리즈 초기에는 아군과 상대방의 기체에서 무기만 날아가는 것이 전부였으나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투 영상이 원작의 연출을 재현하거나 더욱 화려하게 바뀌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과로로 실려가서 개발이 발매 연기되는 등 연출 제작 중 벌어진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참전작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기체 연출이 좋으면 좋을 수록 슈퍼로봇대전의 구입층이 증가하기 때문에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눈이 즐거워진다. 파계편에서는 기존의 연출을 더욱 강화하여 PSP의 화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수준의 전투 영상을 자랑한다.



특히 기존 시리즈의 전투 장면에서 확대축소를 할 경우 속칭 ‘도트가 튄다’는 비난을 들었던 부분들이 대거 개선되어, 도트가 보이지 않는다는 칭찬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7~80년대의 고전 애니메이션 연출도 상당 수 보정을 받아 원작의 느낌을 살림과 동시에 최근의 애니메이션에도 뒤지지 않는 연출로 올드팬들을 즐겁게 해 준다.



▲ 원작의 육중함을 자랑하는 갓마즈


하지만 슈퍼로봇대전 시리즈 전통의 단점 역시 그대로 갖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와 문화. 게임 특성상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100% 일본에서 제작되고 방영하는 탓에 저작권을 시작으로 각종 문제가 얽혀서 한글화로 발매될 가능성이 한 없이 0에 가깝다. 즉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일본어를 읽을 줄 알아야 하는 점과 원작인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 갖춰야 하는 등 사전 지식이 많이 필요하다.



심지어 게임 내의 개그나 일부 세계관에는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성우들의 정보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종종 등장한다. 슈퍼로봇대전 자체가 일본 내수용으로 제작된 게임인 탓에 일본 기준으로 외국인 한국 입장에서는 문화나 언어 문제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서 대부분 대사를 그냥 넘겨버리는 일이 많다.





플레이타임과 반복성의 문제점도 여전하다. 보통 슈퍼로봇대전 시리즈는 40~50 스테이지 전후의 길이로 구성되고 스토리의 분기가 있기 때문에 모든 분기를 다녀보고 엔딩을 보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린다. 그렇지만 이것도 여러 작품의 기체와 파일럿 등 사전 정보가 충실할 경우고, 대부분 대사를 빠르게 넘기고 전투 자체만 즐기기 때문에 한 번 엔딩을 보면 다시 플레이하려고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최근의 슈퍼로봇대전 시리즈는 한 번 엔딩을 본 후 반복해서 플레이할 경우 자금이나 능력치 등 여러 특전을 주는 경우가 많아서 플레이타임을 줄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스토리 분기 하나 선택을 위해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하는 것은 조금 망설일 수밖에 없다.





▲ 제2차 슈퍼로봇대전Z 파계편 프로모션 영상 3탄




기체와 파일럿간 밸런스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가장 강한 법인데 그 강한 주인공들만 모아 놓고 그 중에서 우열을 가리자니 논쟁의 끝이 없다. 시리즈마다 강한 기체와 약한 기체 차이가 커지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을 들여야 하므로 일부 기체와 파일럿은 애정 없이는 육성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고 어떤 캐릭터는 너무나 강해서 게임 밸런스를 망칠 정도다.



그러므로 게임을 쉽게 플레이하기 위해 대다수는 강력한 기체와 파일럿만을 선호하게 되고 그 외는 버려지는 일이 많아서, 유닛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머리를 쥐어짜는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즉 전략이기보다는 단순한 캐릭터 게임에 가깝다. 물론 슈퍼로봇대전이라는 게임 자체가 캐릭터성을 부각시키는 게임이긴 하나 전략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 전체적으로 깔끔해진 능력치 화면, 그러나 언어가 문제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이번 파계편은 머지 않아 출시될 재세편에서 스토리가 완결되는 탓에 참전작 기체들의 스토리가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들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상당히 높다. 특히 특정 조건 달성에 따라 난이도가 바뀌는 시스템 덕분에 기존작은 너무 쉽다고 투덜거리던 비난이 상당수 줄어들 만큼 난이도 조절도 무난한 편이다.



남은 것은 재세편에 파계편의 데이터가 얼마나 전승될 것인지에 대한 여부와 재세편의 발매 일정이나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은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파계편을 부지런히 즐기면서 파일럿과 기체를 육성시키게 될 것이다. 전작 슈퍼로봇대전 Z에서 보여 준 기체들의 최강 무기가 빠진것은 안타깝지만 반수 가까운 새로운 참전작이 재세편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진 겟타로보 세계최후의 날 주인공 나가레 료마의 썩은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