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시리즈라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만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로봇 콘텐츠입니다. 70년대 말 기동전사 건담에서 시작하여 30년이 넘도록 다양한 시리즈가 제작되어 팬층을 굳혀 왔고, 애니메이션 외에도 2차 산업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건담 시리즈는 게임과 프라모델로 유명한데, 특히 게임으로만 놓고 따지면 해마다 10가지 전후로 출시되어 지금은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80~90년대의 건담 게임은 대부분 캐릭터 홍보를 위한 게임으로 제작되어 게임성은 그다지 높지 않아 건담 게임에 회의적인 평가가 높았습니다.





그러던 중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의 성공과 2000년대 이후 콘솔 기기의 발전에 힘입어 게임성이 강화되면서 점차 건담 게임도 조금씩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기체로 전장을 달리는 대전 액션형 건담 전기 혹은 건담 배틀 시리즈나 자원을 모으고 군대를 생산해서 지역을 점령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기렌의 야망 시리즈 등 다양한 장르의 타이틀이 제작되었고 얼마 전에는 PSP용으로 최신작 건담 메모리즈가 국내에도 출시되었습니다.




건담 메모리즈는 실험용 게임

건담 메모리즈는 원작 애니메이션의 주요 전장을 재현하고 그곳에 참가하여 미션을 완수하며 입수한 포인트로 기체를 강화해 나가는 액션 게임입니다. 경험치를 쌓아서 능력을 올리는 RPG 요소 대신 게이머 자신의 컨트롤이 성장하고, 기체는 정해진 범위 안에서 개조하여 한계치를 끌어내게 됩니다. 또한 PSP의 통신 기능을 이용하여 다른 게이머들과 협력 또는 대전 플레이를 즐기는 것도 가능합니다.





사실 건담 메모리즈를 게임성 면에서 놓고 본다면 어느 정도 평균 이상은 될 수 있지만 아주 재미있는 게임이라고는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체적으로 최근 건담 시리즈의 주요 등장 기체 위주로 편성되고, 각 전투가 단조로우며 기체 입수와 강화를 위해 끊임 없이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지루한 느낌이 강하고, 과거 시리즈의 팬층에게도 지지도가 낮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재미 요소를 옆으로 밀어두고 다른 방향에서 들여다보면 건담 메모리즈는 단독 상품이라기보다는 추후 PSVITA 등으로 발매될 신작을 위한 기술 시험용 혹은 SD건담 캡슐파이터와 같은 온라인 게임 요소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건담 액션 게임을 제작하기 위한 포석으로 예상되는 것들이 곳곳에 보입니다.




그래픽과 조작성 면에서의 실험 요소

가장 눈에 띄는 전작들과의 차이점은 그래픽 부분입니다. 기존의 콘솔용 건담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기체의 그래픽은 원작을 게임에 맞게 적당히 조정한 느낌이 강했지만, 건담 메모리즈에서는 애니메이션 형식에 가깝도록 하여 기체의 외곽선이 굵은 것이 특징입니다. 즉 기존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면보다는 선을 강조한 그래픽으로 원작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다음은 조작 방식으로, 과거 PSP로 출시되었던 건담 배틀 시리즈의 전투는 버튼을 길게 누르는 차지 공격이나 2개 이상의 키를 동시에 누르는 필살기 사용방식을 채택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건담 메모리즈에서는 삼국무쌍 시리즈의 공격 버튼 조합 방식을 이용하여 △△△□ 식으로 무기를 사용합니다. 얼마 전 발매되었던 무쌍 시리즈 중 하나인 건담무쌍의 공격 방식입니다.



무쌍류의 조작 방식을 채택하게 될 경우 단순히 하나의 버튼만을 연속으로 누르는 것 보다는 콤보 효과가 증가하여 조합에 따라 다양한 공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쌍 시리즈와 같이 조작 캐릭터의 특징을 살리기 쉬워집니다. 또한 그럴 경우 CPU와의 대전보다는 다른 게이머와의 대전의 비중이 커집니다.



그러나 공격 패턴은 거리 형태에 따라 공격 패턴이 상당 수 비슷하므로 재활용 느낌이 강합니다. 비교적 화려한 기체에 비해 각 기체의 공격 패턴은 같은 계열의 기체가 대부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작과는 다른 점이 많은 것이 아쉽습니다. 게임 용량을 줄이기 위해 자원을 재활용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캐릭터성이 강한 게임인 만큼 기체별로 개성이 적다는 것은 감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대전 액션으로서의 묵찌빠 요소를 채용

또 하나는 묵찌빠 개념입니다. SD건담 캡슐파이터에서 채용되어 비교적 친숙한 시스템으로, 각 그룹별로 포함된 기체마다 공통된 특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묵 기체는 근접전에 강하고, 찌 기체는 중간 성능, 빠 기체는 원거리전에 강하다는 것인데 이를 건담 메모리즈에는 근거리/스피드/사격 기체로 분류해 놓았습니다. 캡슐파이터의 성공 이후 건담류 대전 액션 게임에서도 이와 같은 상성 시스템을 추가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건담 메모리즈에 등장하는 기체의 분류는 캡슐파이터처럼 기체 분류별로 서로 유리하고 불리함이 아주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각 게임 미션에 등장하는 적의 패턴에 대응할 수 있는 정도지만, 캡슐파이터의 가위바위보 기체분류와 대부분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그 외에도 기체의 분류별로 대미지 조절 등도 상당 부분 캡슐파이터가 연상됩니다. 예를 들면 근거리형 기체는 근접전 무기의 대미지가 높고 원거리 공격의 대미지가 낮으며, 원거리형 기체는 근거리형 기체와 무기 대미지가 정반대입니다. 스피드형 기체는 그 중간 정도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SD로 그려진 캡슐파이터의 기체들이 실제 등신 비율로 나온다면 건담 메모리즈와 같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건담 게임이 추구하는 곳은

그렇게 게임을 플레이하던 중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건담을 소재로 하는 게임이 향하는 목표는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입니다. 슈퍼로봇대전이나 SD건담 G제네레이션 시리즈의 건담이라면 SRPG 형태로 거의 고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면 원작의 재현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다수를 차지하는 액션형 게임은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일단 대전 모드를 손에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건담 시리즈에 등장하는 수 많은 기체들 중 누가 가장 강한가를 가리는 것으로, 원작의 실제 설정만으로 놓고 본다면 게임 내에서의 강함의 차이는 답이 없을 만큼 크기 때문에 능력대로 구현하는 것은 게임 밸런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게임 밸런스 면에서 강약을 조정해 준다면 충분히 대전용 액션 게임으로 제작할 수 있고 실제로 다수의 건담 게임이 대전 액션으로 출시되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만약 그 게임이 성공을 거뒀다면 신규 기체 몇 개만 더 넣으면 후속작도 만들 수 있으니 제작사 입장에서는 콘텐츠 활용과 게임 수명 관리 면에서는 그만입니다.





또한 기술이 발달하면서 3D 그래픽 기술의 발달과 함께 과거 2D 그래픽의 건담을 3D로 구현할 수 있게 되어 연출과 묘사가 강화되는 등 원작 이상의 재미를 줍니다. 그래서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었던 화려한 전투를 누구나 직접 경험하며 게임 속에서 원작 주인공 에이스 파일럿을 꿈꿀 수 있기 때문에 건담 게임류 중에서도 대전 액션 장르가 특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략 보드 게임인 GNO(Gundam Network Operation) 시리즈나 서비스를 종료한 MMORPG 유니버셜 센추리, 전략 시뮬레이션인 기렌의 야망 등 건담 게임의 장르는 셀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현재 가장 많은 팬층을 누리는 건담 게임은 대부분 대전 또는 팀 형식의 파티 플레이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쉽게 즐기는 대전 액션으로서의 건담 게임

결국 건담이라는 콘텐츠를 이용한 2차 산업 중 게임 분야로는 TCG부터 시뮬레이션까지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게임에 적응하기 위한 기간을 최소화하고 콘텐츠의 재생산성 및 게임 자체로서의 수명 등을 고려할 때 대전 기능을 지원하는 액션 형태가 현재로서는 상업적인 측면에서 가장 유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건담 메모리즈는 하나의 패키지 게임이기보다는 그래픽이나 대전 기능 면에서 PSVITA 혹은 3DS, 아니면 새로운 건담 액션 게임 시리즈에 채용될 기능 등 후속작 제작을 위한 실험 단계의 게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한국에서의 건담류 게임은 슈퍼로봇대전과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이 유명하지만 본가라고 부를 수 있는 일본은 액션으로 시장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 일본 게임센터에서 인기 높은 대전 액션인 건담 익스트림 버서스


일본의 게임센터의 경우 설치되어 있는 전장의 인연/익스트림 VS 등이 자신이 직접 기체를 조종하는 대전형 액션 게임으로 전국 대회까지 개최하는 등 높은 수익을 거두고 있습니다. 또한 콘솔쪽으로는 최근 건담무쌍3이 수 십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시뮬레이션이나 보드, RPG형보다 대전 액션으로서의 건담 게임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처럼 몇 년 전까지 여러 층에서 인기를 얻은 건담류 게임은 전투 장면 등의 연출면에서 특화된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RPG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건담 게임은 현재 게임들의 판매량이나 수익 및 개발 숫자 등을 고려할 때 게임 제작 기술과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과 함께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전 액션쪽의 비중이 점차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PSP로 출시된 건담 메모리즈는 대전 액션으로서 건담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시험하는, 일종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