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벤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는 E3 관련 정보를 행사 기간 동안(2012년 6월 4일~7일) 실시간으로 공개합니다. 게임쇼 기간 동안 올라오는 행사 정보는 E3 특집페이지를 통해 더욱 자세하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_E3 특별취재팀


새로운 게임을 플레이하려는 수많은 관람객이 길게 길게 부스를 휘감은 장사진의 모습은 베데스다 부스에서 볼 수 없었다. 검고 높은 벽으로 내부를 완전히 감춘 베데스다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전에 등록되어 명단에 올라가 있는 취재진들뿐. 명단에 없는 취재진이 함부로 프레스 카드를 들어 보인다면 ‘당신은 등록되어 있지 않다’는 대답을 피해 갈 수 없는 그런 곳이다.

극도의 보안은 엘더스크롤 온라인 미디어 브리핑 행사장에서도 다시 한 번 강조되었다. 게임 설명 영상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것은 물론, 브리핑을 맡은 개발자의 음성을 녹음하는 것도 금지된 그곳에는 대작 중의 대작 엘더스크롤의 이름을 가진 온라인 게임이 과연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지 기대하는 취재진들의 긴장감만 맴돌고 있었다.

브리핑은 엘더스크롤의 자연 경관과 마을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숲 속의 마을과 부서진 로봇 몬스터들, 아름다운 건물들과 고블린, 던전, 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모험을 찾아 달려가는 주인공들의 모습들이 화면에 이어졌다.


엘더스크롤 원작을 개발한 곳과는 또 다른 제니맥스 스튜디오가 개발한 엘더스크롤 온라인은 MMORPG 장르의 게임. 그렇다면 엘더스크롤을 감명깊게 플레이했던 당신이 엘더스크롤 온라인에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아마 그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점은 바로 환상적이라는 말로도 그 뛰어남을 다 담지 못할 훌륭한 그래픽일 것이다. 하지만 엘더스크롤 온라인은 원작의 그 그래픽을, 글쎄…

그래픽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무조건 뛰어난’ 어떤 지점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었다. 특히 PC 온라인 게임에서는 뛰어난 그래픽을 즐기기 위해 고사양 PC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대규모 PVP 컨텐츠를 제공하는 게임에서는, 고사양의 그래픽이 오히려 게임 플레이를 제한하는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쾌적한 플레이와 뛰어난 그래픽 사이의 절충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엘더스크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온라인 게임에 대한 기대감 중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부분이 ‘현실타협’을, 그것도 굉장히 많이 했다는 점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너무도 뛰어난 그래픽을 가진 원작과의 비교는 애초에 불공정한 게임이었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엘더스크롤이라는 이름이 아닌 다른 MMORPG였어도 이런 수준의 그래픽에 만족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5년 전 사양으로도 잘 플레이 되는 게임’이라는 개발자의 설명에서 이 게임이 지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이해가 되긴 했지만.



엘더스크롤이라는 이름을 가진 온라인 게임에 두 번째로 기대해 볼 만 한 부분이라면, 아마 많은 원작 팬들이 ‘자유도’를 꼽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번 게임 소개 시간 동안에 그런 부분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는 없었지만, 몇 가지 엘더스크롤 온라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시스템과 콘텐츠들에 대한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우선 평소에 UI가 화면에서 사라져 있다. 캐릭터의 체력이나 마나 상황은 마우스를 가져가야 나타났다. 방패로 ‘막기’를 하면 방패 게이지가 나타나지만 막기를 풀면 사라졌고, 마나도 마나를 쓰거나 해야 나타났다. 전투를 하지 않고 그저 이동할 때는 스킬 슬롯조차 사라져 쾌적한 화면을 보여줬다. 물론 내 체력이 얼마인지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전투 시스템일 것이다. 리얼타임 액션이라는 말로 표현된 엘더스크롤 온라인의 전투는 단순히 스킬 버튼을 차례대로 누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를테면 적의 공격을 방패로 막을 수 있었는데, 이는 몬스터의 공격 타이밍에 맞춰 ‘막기’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것이다. 또 무기 공격도 오래 누르면 게이지가 올라가 좀 더 강하게 때릴 수 있다거나, 몸을 굽히고 은밀하게 이동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직업과 무관하게 모두 가능하다고. 조금 더 액션성이 강조된 전투였다.

적이 여럿일 때의 선택지도 이런 전투 방식 때문에 다양해진다. 이를테면 멀리서 얼음 화살을 날리는 마법사 몬스터의 공격은 타이밍에 맞는 ‘막기’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체력이 적은 가까운 적부터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몬스터 무리를 최소의 피해로 물리치면 더 좋은 보상 – 박스가 떨어지는 것도 특이한 부분.



엘더스크롤 온라인의 퀘스트 시스템도 소개되었다.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는 중에 가까운 지역에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가 표시되는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위상 변화 시스템처럼 퀘스트의 진행 상황에 따라 같은 지역이라도 전혀 다른 몬스터와 NPC, 환경이 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엇다. 브리핑에서는 최종 보스를 물리치고 돌아온 마을에 더 이상 유령들이 나타나지 않게 되어 ‘세상을 바꾸게 되는’ 퀘스트 진행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3개의 진영으로 구분되어 나중에는 대륙의 가운데 위치한 실로딜의 자원을 두고 대립하게 되는 RvR은 엘더스크롤 온라인의 엔드 컨텐츠라 할 만하다. 자원 생산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각 진영의 수많은 대표 캐릭터들의 대규모 전투 장면이 브리핑의 후반부를 장식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MMORPG는 이제 ‘평범한’ 축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이어졌다. 액션 전투 시스템은 테라나 블레이드 앤 소울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던전 앤 드래곤스 온라인이나 에이지 오브 코난 온라인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했던 것이다. 심지어 코난에서는 몽둥이를 왼쪽으로 휘두를지 오른쪽으로 휘두를지도 선택할 수 있었고 이런 ‘휘두르기’의 방향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스킬 사용과 밀접히 연결되기까지 했다.


일반적인 처치, 구출, 수집의 범주였던 퀘스트도 평범한 수준으로 보였다. 같은 지역이지만 퀘스트의 진행에 따라 각기 다른 플레이를 해야 하는 시스템 또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이미 위상변화 퀘스트로 선보인 바 있다. 하물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위상변화 퀘스트는 로딩조차 없이 진행되는데 엘더스크롤 온라인은 퀘스트를 모두 끝내고 마을로 돌아가면서 로딩바가 보이기까지 했다.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세 진영의 RvR도 단순히 그것만으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콘텐츠. 전체적으로 엘더스크롤이라는 걸작의 이름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평범한 MMORPG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자연스럽게 뒤따라나왔다.

물론 희망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엘더스크롤 온라인의 출시는 내년. 어쩌면 더 멋진 내용을 앞으로 차차 공개하려고 지금은 숨겨두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걸작 게임이 평범한 온라인 게임으로 너프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팬들의 간절한 바람을, 개발사 역시 잘 알고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건 엘더스크롤 온라인의 위기라 해야 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