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개발사인 CDProjekt RED는 참으로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북미 대형 개발사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대작 RPG계에 혜성처럼 나타났으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굽히지 않고 전 세계 수많은 골수팬을 양산한 위쳐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또한, 고전게임 다운로드 서비스인 GOG.COM의 소유주이자 그동안 게이머들을 괴롭혀왔던 DRM 폐지를 주장하는데 앞장서기도 했으며 실제로 자신의 최신작이었던 위쳐2도 얼마 지나지 않아 DRM을 풀어버리는 대범함을 보였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한국 유저가 자체 제작한 한글패치를 공식 업데이트해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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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행보로 점차 세계 게이머들이 이목을 집중시키던 CDProjekt RED가 머나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GDC 현장을 찾았다. 위쳐 시리즈의 메인기획자, Maciej Szczesnik은 게임 디자인이 상상력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면서도 매번 새로운 게임을 만들 때마다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기반으로 실제 게임을 개발하는데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했었다고 고백했다.

이것이 Maciej Szczesnik이 그동안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정리한 게임 디자인 8단계 비법을 GDC 강연장에서 공개한 이유다.

▲ 위쳐 시리즈의 메인기획자, Maciej Szczesnik



1단계: 질문에 답하기

Maciej Szczesnik은 위쳐 시리즈를 개발할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게임플레이 시스템을 넣고 싶었지만, 그들 자신도 정확히 그게 어떤 시스템인지 몰라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보안관의 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보안관이 가슴에 다는 여섯 꼭짓점을 지닌 별 모양의 뱃지에서 유래한 것인데 왜?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라는 6가지 질문을 각각의 아이디어에 대입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왜 우리는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하는가?" "누가 그것을 가장 즐길 것인가?" "언제 플레이어들은 그 시스템을 사용할까? "어떻게 그 시스템이 게임 전체를 더 재밌게 만들 수 있나?" "어떤 부분에서 그 시스템은 가장 빛을 발할 것인가? "그 시스템을 쉽게 다가가게 할 방법은 어떤 것이 있나?"

Maciej Szczesnik의 설명에 의하면 1단계를 도입한 후 위쳐 개발팀은 게임을 신선하게 만들어줄 정말 개발팀이 원하는 콘텐츠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됐고 실제 위쳐의 전투와 캐릭터 이동 시스템에 변경을 가해 더욱 액션이 강조된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개발자 특유의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생각을 유연하게 하는데 매우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2단계: 적절한 연구조사

게임을 디자인할 때 많은 개발자들이 책과 영화, 다른 게임을 참고하지만 대부분 개발자들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거기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오르기란 쉽지 않다. Maciej Szczesnik은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 예를 들면 여행, 휴가 중에 일어난 이벤트나 오래된 가족사진에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도서관에서 먼지가 쌓인 오래된 문서에 고대 전쟁법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실제 위쳐2 개발자는 중세 기사의 복장과 도검을 착용하고 진행되는 토너먼트 이벤트 경기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을 보세요. 항상 노트와 펜, 아니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아이디어를 기록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Maciej Szczesnik은 이 단계가 1단계. 즉 보안관의 별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기에 중요하다고 밝혔다. 상상력의 연료가 되며 더 많은 연료를 확보할수록 그것을 기반으로 더 많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 수 있다. 적절한 연구조사는 현재뿐만 아니라 먼 미래의 프로젝트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3단계: 팀 전체와 함께 이야기하기 (우리는 단 하루 만에 300개의 아이디어를 내야 했습니다!)

Maciej Szczesnik는 위쳐3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몬스터에게 엄청나게 많은 스킬을 부여하기를 원했지만, 마감에 쫓겨 아이디어를 내거나 그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우리는 팀 전체가 모여 한번에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는 "크로포트의 브레인스토밍 기술"을 해결방법으로 채택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이자 더 많은 독특한 아이디어가 나왔고 스텝 1에서의 질문에 모두 답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전체 팀이 한데 모여 게임 디자인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4단계: 혁신을 추가하기

위쳐 개발팀은 위쳐만의 독보적인 전투 시스템을 기획하고자 했지만, 매번 프로토타입에서 좌절을 맞았다. 결국, 스턴트맨 자격까지 갖춘 격투기와 도검의 장인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그동안의 어려움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게이머들에게 위쳐2만의 매력을 각인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설명.


5단계: 아이디어 평가하기

Maciej Szczesnik는 전 단계들의 결과로 수백 개의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 중에서 가장 최선의 아이디어를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낸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감정적인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개발팀 전체가 아이디어 때문에 설전을 벌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Maciej Szczesnik은 모든 아이디어를 수치화해서 평가한 후 점수를 매기는 방식을 도입했다.





위 그림을 보면 적 몬스터가 비행할 수 있는 스킬은 91점을 받았지만, 단순히 회피하는 기술 (몇몇 개발자는 정말 특별하다고 주장하는)은 8점을 받았다.

이 과정을 통해 위쳐 개발팀은 개발 초기에 문제가 있는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었고 프로토타입에 들어가기 전에 모두 제거할 수 있었다. 또한,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전에 기존 아이디어를 더욱 강화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6단계 : 컨텐츠의 영향력을 검증하기

Maciej Szczesnik는 위쳐1에서는 섹스카드를 언급했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로 탄생했지만, 결과적으로 여성 단체로 많은 비난을 받았고 일부 게이머들은 위쳐의 본 게임보다 이 미니게임에 더 집중하는 역효과가 났다.

섹스카드의 교훈으로 위쳐 개발팀은 NPC, 플레이어, 제작, 저널, 연금술 등의 각 시스템을 동일한 두 축으로 하는 행렬을 만들어 각 콘텐츠가 동일한 혹은 각기 다른 콘텐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결과 그래프"(Consequences Graph)를 도입해서 한 콘텐츠가 발생시키는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매우 자세하게 살펴보는 과정을 추가로 거쳤다.








그 결과 위쳐 개발팀은 새로운 콘텐츠가 다른 콘텐츠에 끼치는 직접적인 영향력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됐고 아무리 단순한 변경일지라도 다른 콘텐츠에게는 엄청난 시간을 투입해 버그를 잡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대로, 각 콘텐츠와의 결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도 찾아냈다.


7단계: 좋은 계획 세우기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것은 게임 디자인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Maciej Szczesnik는 각 콘텐츠의 가치와 노력을 측정해 최대한 낮은 노력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는 콘텐츠를 우선하여 개발해 나가는 것이 옳은 프로듀싱 순서라고 주장했다.

위쳐2 개발을 시작할 때 위와 같은 우선 순위 없이 컨텐츠를 제작했기 때문에 개발팀은 잠입 시스템을 3번이나 갈아 엎어야 했다.











이 가치와 노력 평가의 단계로 각 콘텐츠는 제자리를 찾게됐고 개발팀은 개발진행에 따른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개발 중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어떤 사건과 변화에 적응하기가 쉬워졌고 현재 진행 중인, 그리고 앞으로 진행할 전체 개발 단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됐다. Maciej Szczesnik는 이 방법이 앞으로 나올 차기작이나 DLC에도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8단계: 해결방법 단순화하기

Maciej Szczesnik은 위쳐3에서 풀 3D 환경 안에서 비행하는 몬스터를 만들고 싶어 3D navmesh 기술을 활용했다. 하지만 나중에 결과물을 보니 그것은 오픈월드 게임에 적용하기는 어려운 기술이었다.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전에 최대한 단순하게 실행해 보세요.간단한 실행은 게임 안에 더 많은 콘텐츠를 구현할 수 있고 대부분 경우에서 비교적 적은 버그를 발생시키며 개발자가 자신만의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게 합니다." 이 조언을 끝으로 Maciej Szczesnik의 강연은 끝을 맺었다.

▲ 위처3 프로토타입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