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 리스폰 Ent ⊙장르: FPS ⊙플랫폼: Xbox One, Xbox 360, PC ⊙출시: 2014년


이변은 없었다. '타이탄폴'이 보여준 존재감은 여전히 강했다.

지난 E3 2013에서 기자의 눈에 가장 띄었던 작품은 리스폰 엔터테인먼트라는, 그전까지 이름조차 알려진 적 없었던 신생 개발사의 처녀작 '타이탄폴'이었다. 정신없이 휙휙 지나가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그래픽, 근미래형 FPS라는 뻔한 프레임을 쓰고도 제법 독특함이 묻어났던 세계관이 참 마음에 들었다. 움직임은 신선했고, 타격감은 끝내줬다. 적어도 보이는 영상에서는 그랬다.

먼 미국 E3 현장에서 선보인 '타이탄폴'의 겉모습만 핧던 차에, 마침 기자에게도 기회가 왔다. 독일에서 개최되는 '게임스컴 2013' 취재 멤버로 선정된 거다. 보통 E3가 마무리된지 3~4달쯤 지나서 개최되는 게임스컴이었기에, 기대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들은 또다시 출품되는 경우가 흔했다. 당연히 '타이탄폴'도 나올 거라 예상했고, 역시나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 ▲ 현장을 압도하는 거대한 타이탄폴 기체 ]


퍼블리셔인 EA도 역시 이 게임이 가져다주는 존재감을 무시하지 않았다. 돔 형태로 구성된 EA 부스 한가운데는 '타이탄폴'의 거대 피규어가 장식되어 화룡점정을 찍었다. 정말 들어가자마자 눈이 갔다. 덩치 산만한 기자가 타도 될 정도로 덩치가 태산만 했고, 미소녀 피규어의 매끈한 피부와는 또다른 맛을 보여주는 상남자스런 디테일도 만족스러웠다. 상남자를 지향하는 기자의 맘에 들었다. 덕중지왕이 양덕이라는 거, 정말 괜한 소리가 아니다.

'타이탄폴'에 대한 간략한 기본 설명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시연석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는 총 40여 석으로, 설명 때 들었던 대로 48인 동시 멀티 플레이를 지원하는 듯 했다. 경기는 팀 데스매치 방식으로 진행됐다.

아,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게 있다. 현장은 XBOX 컨트롤러 외 키보드 마우스로도 플레이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는데, 서양 취재진 대부분이 키보드와 마우스로 게임을 즐겼다는 사실. 콘솔 FPS에 강한 서양이라지만, 총알 한 방에 승부가 갈리는 장르에서 키보드 마우스의 존재감은 따라갈 수 없는 듯 하다.

[ ▲ 타이탄과 함께 하는 치열한 전장 ! ]


나름 FPS에 자신있다고 생각해 패드를 집어 플레이 했으나 1분도 안 되어 상대 진영에 5킬 가까이 내주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서양 취재진의 영혼이 담겨진 총알세례에 발가벗겨지고 만 기자는 키보드 마우스 체제로 진검승부를 펼치리라 맘 굳게 먹었다. 자, 받아라. 군대서 영점사격도 한 번에 끝낸 한국 게임기자의 서슬퍼런 총알을 받아봐라.

결과는 처참했다. 경기가 마무리된 후 스코어를 확인한 기자는 그간 지켜왔던 자부심이 습자지처럼 적셔지는 것을 생생히 느꼈다. 1킬 10데스. 생각보다 어렵다. 잘 안죽네. 진짜 요리조리 잘 피한다고 게임 내내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맞다. 진입장벽 꽤 높다.





더 이야기 해봤자 푸념밖에 되지 않는 내 실력에 살을 붙일 생각은 없다. 슬쩍 겉만 핧아 본 수준이지만, 껍질에서 느껴진 '타이탄폴'의 맛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 맛이 어땠는지 지금부터 해석 해보려 한다.

가장 먼저 느껴진 맛은 그래픽에서 오는 즐거움이었다. E3에서 게임플레이 트레일러가 공개될 당시, '그래픽 괜찮네. 저 정도면'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제로 해 본 '타이탄폴'의 그래픽은 그 이상이었다. 하프라이프 시리즈와 같은 쨍한 화면을 보여주면서 고밀도의 텍스쳐를 사용해 시작하자마자 플레이어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게임 자체 속도감이 상당한 편이라 자칫 어지러울 수도 있지만, 과도하지 않은 이펙트 효과로 그 부분도 충분히 상쇄했다. 현실감 넘치는 그래픽 정도로 표현하는 게 맞겠다.

이 작품은 멀지 않은 근미래에 자유를 찾기 위해 상대 진영과 싸운다는 배경을 기초로 한다. 진영 이름은 M-Cor과 IMC로, 명칭만 다를 뿐, 병과 클래스는 동일하다. 플레이어는 '어썰트', '택티컬', CQB'라는 병과를 선택해 플레이 가능하며, 각 병과는 화력, 지원, 저격 등 맡는 분야가 나뉘어져 있다. 하지만 지원 병과라 할지라도 화력 병과에 비해 전투시 압도적으로 불리한 입장은 아니다. 각 병과의 특색은 뚜렷하나 전투력 차이는 근소하다고 보면 될 듯 하다.

'타이탄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타이탄(인간형 거대탑승머신)'도 3개의 종류로 구분된다. 각각 '메인배틀', '헤비웨폰', '폭발형'이라 일컫어지며, 전투 방식이 다르다. 메인배틀은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모두 해 볼만 하다!'라고 외칠 수 있다. 상대가 누구라도 안정적인 전투를 펼칠 수 있으며, 그렇기에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도가 높은 타이탄이다.

헤비웨폰 타이탄은 말 그대로 총알을 폭우처럼 쏟아붓는 클래스이며, 폭발형은 넓은 범위에 로켓을 연발로 발사하는 클래스다. 데모로 체험한 멀티플레이모드에서 타이탄은 이름만큼이나 강력한 화력을 보여주었으며, 콘트롤에 강한 유저가 탑승할 시 전장의 판도를 뒤집을 정도로 높은 존재감을 보여줬다. 타이탄은 일정 분기마다 투하 신호가 울리며, 호출시 바로 투하된다. E키를 누르면 바로 탑승할 수 있는데 탑승 모션도 독특하다. 빈 타이탄이 플레이어를 집어들더니 자신의 가슴에 있는 조종석에 구겨(?)넣는다.

[ ▲ 조종석이 열려있는 타이탄의 모습 ]


그 외에도 타이탄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한데, 이중에서 탑승 플레이어 외 또 다른 플레이어라도 타이탄 등짝에 달라붙어 이동하는 엄폐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주목할 만 하다. 당초 영상으로 본 것과는 다르게 타이탄의 움직임은 경쾌한 편이었다. 메카닉 특유의 묵직함을 기대했다면 살짝 내려놓는 게 좋을 듯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박한 움직임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그런 것 보다는 경기에 임하기 전, 자신에게 맞는 병과와 타이탄을 미리 체크해보는 데 더 신경쓰는 게 좋다.

그리 크지 않은 데모 맵이었지만, '타이탄폴'의 특징과 속도감을 느끼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첫 번째 특징이 타이탄이었다면, 두 번째 특징은 플레이어 움직임의 높은 자유도에 있다. 이 움직임에 '타이탄폴' 속도감의 비결이 담겨져 있으며, 기존 FPS와 '타이탄폴'이 확연하게 구분될 수 있도록 해 준다.

기본적으로 어떤 병과든 2단 점프가 가능하다. 파일럿들의 기본 움직임도 빠른 편인데 2단 점프까지 하니 서커스가 따로 없다. 서든어택이나 카운터스트라이크에 익숙한 유저라면 초반 적응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조작 체계가 잘 갖춰진 편이기에 크게 의식할 부분은 아니다.

2단 점프와 함께 파일럿을 강하게 해주는 특징이 있다면 벽타기 액션이다. 특정 키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그냥 달리다가 비스듬하게 벽에 닿게 되면 자동으로 벽타기를 시전한다. 이를 이용해 좁은 구간이라면 연속 벽타기와 같은 기술도 선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느정도 조작에 익숙한 유저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초보와 고수를 구분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 ▲ 이것이 바로 벽타기 액션 ]



데모 체험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낀 바가 적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작 멀티플레이 체험이었지만 '타이탄폴'이 괜찮은 게임이라는 것은 나 뿐만 아니라 주위 기자들 표정에서도 느껴졌다.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쾌적한 조작감을 유지한다는 점, 안티 타이탄 무기를 별도의 버튼으로 설정해 둬 편의성을 도운 부분 등, 개발 단계임에도 유저를 배려하는 부분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이 작품을 개발 중인 '리스폰 엔터테인먼트' 개발진은 '콜 오브 듀티'시리즈로 유명한 '인피니티워드'의 핵심 멤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근현대전 FPS로 세계 최고라는 명예를 누린 멤버라는 뜻. 그렇기에 그들이 직접 개발하는 근미래전 FPS에 기대를 거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 등을 참고하면, 개발진이 싱글플레이를 따로 개발하기보다는 '다크 소울' 스타일로 싱글과 멀티가 유기적으로 호환되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시연한 데모 버전은 그냥 팀데스매치였기에 이러한 미션 요소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콜오브듀티'를 만든 사람들이라면 이 부분 역시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타이탄폴'의 공식적인 출시일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품이 출시되고 난 후에는 카운터스트라이크와 헤일로, 배틀필드와 콜오브듀티 이후 정체된 멀티플레이어 FPS 시장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을 높게 주고 싶다. 이 게임의 개발진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이해했고, 자신들이 짊어진 기대량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 걸 다 안다는 게 데모 버전에서 생생하게 보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