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던 고 3의 기억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로 변모하듯이, 기억이 시간에 마모되면 추억이 됩니다. 좋았던 기억만 남는 거죠. 따라서 추억의 명작을 리메이크하는 일은 굉장한 고난이 따라옵니다. 기억을 그대로 재건했다 하더라도, 가슴 속의 추억까지 끌어담기는 상당히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추억을 건드리려다 씁쓸한 결과만 안고 퇴장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그런지, 기자는 추억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추억' 이라는 것이 꼭 장애물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스톤에이지 모바일' 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스톤에이지 모바일은 추억을 이용한 마케팅이 상당히 잘 된 게임입니다. 전세계 2억 명이 두루 즐겼던 PC MMORPG 스톤에이지를 모바일로 담았다는 문구는 올드팬의 감성을 자극하기 충분했습니다. 이에 약 한 달간의 사전등록 이벤트에는 무려 6만 명이 참가하는 등 대 성황을 거뒀지요.

과연, 2000년대에 영광을 누렸던 추억의 PC 온라인게임이 모바일에서도 성공을 거둘까요? 추억이라는 매력에 끌려 직접 플레이해 봤습니다.

▲ 스톤에이지 모바일 프로모션 영상




모바일에 맞춘 최적의 조작법 이식, 더 빠르고 더 쉬운 '자동진행'이라니... 좋은 선택일까?



모바일게임은 간단한 조작과 빠른 진행이 미덕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스마트폰 들고 4~5시간을 몰입하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요. 기기 성능의 한계도 있고, 일단 스마트폰의 화면 자체가 PC에 비해 아주 작기 때문에 모바일게임에는 수많은 컨트롤보다는 터치기반의 간단한 조작법이 더 적합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몇몇 모바일 게임들은 웹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자동 진행 기능을 마련해두기도 합니다. 스톤에이지 모바일 역시 더 빠르고 쉬운 턴제RPG라는 미명 하에 자동진행 기능을 도입해 터치 한 번만으로도 대부분의 퀘스트와 전투를 완수할 수 있도록 해 원작과 차별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튜토리얼뿐 아니라 본격적인 게임의 진행까지 계속 이어지는 과도한 편의 기능을 굳이 추가해야 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과거 스톤에이지 모바일을 즐겼던 유저라면 추억에 젖을 컨텐츠가 곳곳에 있지만, 자동진행 기능으로 인해 상당 부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넘겨버리고 맙니다. 그렇다고 있는 자동진행 기능을 안 쓰자니 당장 눈에 보이는 편의성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말 그대로 목적도 영혼도 없이 지켜보기만 합니다.

사실 스톤에이지 모바일은 웹게임의 종주국 격인 중국에서 이미 서비스되고 있는 타이틀로, 아무래도 중국 느낌이 물씬 나는 시스템이 상당수 도입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설명하는 자동진행 기능이나 VIP시스템(과금 정도에 따라 혜택을 차등지급하는 시스템)도 중국 웹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스템이죠.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이 지금의 정서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미 여러 온라인게임을 접하며 자유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유저들에게 "이대로만 하면 큰 문제 없이 수월하게 플레이할 수 있을 거에요" 라는 수동적인 조작은 편리함을 넘어 재미를 반감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 플레이 시 가장 자주보는 글귀 '이 동 중'

▲ 장비 착용이나 스킬 배우기도 손가락이 지시하는 대로만 하면 된다

▲ 전투 역시 '자동전투' 및 '빠른 전투(제한횟수 있음)' 기능이 있다

자동진행에 대한 아쉬움은 특히 퀘스트를 수행하며 더욱 두드러지게 느꼈습니다. 지금 어떤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누굴 찾아야 하는지 등등 퀘스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목적달성의 재미가 있을 터인데, 그저 누르라는 버튼만 터치하는 반복작업만 끊임없이 하다 보니 목적은커녕 게임 플레이의 본디 이유도 잊게 되더군요. 그렇다고 자동진행을 하지 않고 터치로 가자니 땅은 넓은데 미니맵 보는 건 굉장히 불편해 퀘스트 담당 NPC를 찾는 일이 굉장히 번거로워 집니다.

자동진행 자체는 좋으나, 이를 사용하지 않을 유저층도 고려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자동진행 기능 이용의 여부에 따라 게임의 편의성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니, 불만이 많더라도 결국 '자동' 버튼을 누르게 되죠. 선택권을 좀 더 보장해줬다면 참 좋았을텐데...많이 아쉽습니다.



▲ 퀘스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손가락이 지시하는 대로만 하면 충분하다



펫 RPG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살렸다...추억 면에서는 합격점!


스톤에이지에 펫이라는 존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캐릭터의 레벨 못지않게, 아니 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펫의 성장이었죠. 스톤에이지의 펫은 졸졸 따라오는 귀여운 생물체의 개념이 아니라, 이동수단 겸 전투 유닛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는 존재로서 함께 모험을 떠나는 전우, 일종의 포켓몬스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스톤에이지 모바일은 적어도 원작의 펫 RPG 요소를 잘 담아낸 게임입니다. 모가로스, 얀기로 등 원작의 펫이 상당수 마련되어 있는데다 포획부터 성장, 그리고 교배까지 아우르는 육성 시스템으로 펫에 대한 애정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습니다. 또한 수집욕을 자극하는 앨범도 따로 마련되어 있어 성취감도 크게 느낄 수 있죠.

플레이어의 행동은 '자동진행' 의 존재로 다소 제한이 있으나, 펫 컨텐츠만큼은 자유도가 높습니다. 수백여 종의 펫을 수집해 앨범을 구성할 수 있으며, 마음에 드는 펫이라면 원하는 스킬과 속성, 장비를 착용시켜 나만의 특별한 펫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펫은 전투의 전반을 책임지는데다 종류 갯수도 다양해, 차후 업데이트의 중요한 카드가 될 거라 예상됩니다.

▲ 수백 가지의 펫들이 마련되어 있어 수집욕을 자극한다


▲ 플레이어와 펫을 위한 하우징 시스템도 있다

▲ 이동수단 및 전투 유닛 등 활용도도 뛰어날뿐더러 색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다시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스톤에이지'라는 원작을 이식했다는 측면에서 평가하자면 정말 추억을 잘 살린 타이틀입니다. 석기시대 느낌이 물씬 나는 고유의 그래픽을 잘 살린데다, 펫이나 부족 커뮤니티 등 특유 컨텐츠도 잘 구현해두었죠. 오픈 초기 추억을 간직한 유저들이 대거 몰렸음에도 지연현상 없는 서버 환경을 구축했다는 것도 칭찬해줄 요소입니다.

하지만 스톤에이지의 추억을 벗겨내고 단순한 신규출시 게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듭니다. 그래픽도 현대 시대에 그다지 끌리는 것도 아니고, 플레이어의 의지가 아닌 터치 몇 번으로 진행되는 게임에 매력을 느끼기 힘들지요. 오로지 PC판 스톤에이지를 기억하는 유저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허나 섣부르게 판단할 때는 아니라 봅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PC판 스톤에이지가 다양한 업데이트와 현지화를 거쳐 유저들에게 '한국적인' RPG라 인정받은 만큼, 지금의 단점이 나중에 어떻게 보완될 지는 모르기 때문이죠. 지금은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PC의 영광을 모바일로도 재현할 수 있을 지 앞으로가 궁금해지는 게임인 것은 분명합니다.

▲ 누가누가 더 뛰어난 사냥꾼인지 판가름하는 경쟁시스템도 마련

▲ 미니게임도 존재한다


▲ 부족 등 원작의 커뮤니티 요소를 잘 구현해 두었다


▲ 부족전 등 기존 원작의 협동 컨텐츠가 잘 살아있다

▲ 2000년대 PC에서 누렸던 영광, 모바일로 가져올 수 있을지...중요한 건 역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