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승부


알라타리엘 서버는 서버통합부터 시작된 성혈들의 전쟁이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3성 vs 1성의 구도가 3주 동안 이어져왔다.

통합 후 첫 공성에서 10초를 남기고 간신히 로덴 성에 깃발을 꽂아 체면을 세운
강한,수호 연합이 그 후로 로덴-로덴-바이런을 이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푸리에를 지킨
하나연합과 각각 하나씩의 성에 자리잡은 악마,불새 연합과 대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 간단하게 이런 구도 ]


오랫 동안 이어진 쟁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생각이었을까. 기자가 연창을 들은 것은 아니라
자세한 작전을 사전에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9월 2일 공성전의 진행양상을 보면
마치 악마, 불새의 그런 기세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블랙성, 로덴성에 지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악마, 불새 길드원이 바이런을 친 것이다.



[ 로덴 성도 비었고... ]



[ 블랙 성도 한가롭다. ]


이에 맞서 강한, 수호도 모처럼 입성한 바이런의 문을 굳게 걸어잠궜다.
양쪽은 마치 콜포트 섬에 성이라곤 바이런 하나 뿐인양 한 시간이 넘도록
계단을 두고 밀고 밀리고 했다.


목록대왕의 활약


푸리에나 블랙에서는 자주 계단이 중요한 수비지역으로 이용되곤 했으니
그러지 말란 법은 없지만, 보통 수호탑 앞 좁은 길목에 수비벽이 세워지곤 했던
바이런 성에서 계단 입구에 바리가 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수호탑 앞의 좁은 길목은 그럼?

공성전이 끝나고 강한무적의 독안룡 군주가 밝힌 바에 따르면 바이런 성에
250개의 소막이 쓰였다고 하니, 얼마전 최신형으로 바꾼 기자의 컴퓨터가
넉다운 되버린 것도 수긍이 간다.

몇 마리인지 셀 수도 없는 많은 몬스터가 좁은 골목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막상 어려운 것은 저렙 몬스터들의 공격력이 아니라 랙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애초에 수가 워낙 많아서 마침 계단을 뚫고 올라온 악마, 불새 연합이
플레임을 날려가며 길을 뚫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또 그러는 사이 강한, 수호는 금방 달려와 다시 계단을 차지해버리는 것이었다.



[ 주요 접전 지역. 계단 바리를 누가 치느냐도 계속 바뀐다 ]



[ 계단에 바리 친 이유...? ]


제갈량의 칠금맹획(七擒孟獲) 중 한 대목.

다섯 번 풀려난 남만의 왕 맹획에게 찾아온 구원투수는 팔납동주 목록대왕(木鹿大王)이었다.
흰 코끼리에 올라탄 목록대왕은 몸에는 금과 보석 구슬을 꿰어 차고 허리에 두 자루 보검을 찼는데
종을 흔들며 주문을 외면 그가 데리고 온 호랑이며 표범, 늑대 같은 짐승들이 불같이 덤벼들었다.

만병들이 공격해 온다는 첩보를 듣고 맞이하러 나갔던 촉의 군대는
그러나 그같은 맹수부대와 싸워 보기는 처음이라 조운이 함께 있던 위연에게
"우리가 싸움터에서 일생을 보냈으나 저런 인물을 보기는 실로 처음이다"라며 놀랄 정도였다.

맹수를 길들여 아군의 전력으로 삼는 것은 이처럼 오래된 전쟁의 한 방법이기도 하니
소막을 전쟁에 이용한 것이 그르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R2 게임 자체가 고질적으로 랙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발팀이 좀 더 고민해 개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고 기자는 생각해본다.



[ 계단 바리는 계속 뚤리고 막고 뚤리고 했지만 ]



[ 이 몬스터들 공성전 끝날 때까지 다 못 죽인다 ]


강한, 수호의 스파이크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누가 먹어도 이상할 것이 없던 블랙, 로덴의 성주가 바꼈다.

강한, 수호의 군주진 중 한 명이 이반을 타고 다니며 지키는 사람 없는 수호탑을 깨버린 것이다.
물론 혼자서 이를 지켜낼 수는 없다. 그저 견제용인 것이다. 악마, 불새도 그런 견제는
이미 익숙해진 듯 군주 한 명이 잠깐 돌아가 금새 성을 되찾아 왔다.

둘은 탁구라도 하듯이 두 성을 주거니 받거니 마크를 바꾸고 또 바꿨다.
그러니까 문제는 누가 언제 스파이크를 때릴 건가였는데, 그걸 강한, 수호가 먼저 해냈다.



[ 상대적으로 평온한 푸리에 ]



[ 빈 성은 혼자서 유유히... 이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


성을 모두 비우고 바이런 올인을 해서 공격하고 있던 악마, 불새는
적의 성스킬을 깨는 것도 중요한 전략적 목표였겠지만, 이 전략이 성공적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성 스킬을 지켜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깔고 있었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시간을 남기고도 바이런 공략에 진전이 없으면
더이상 무리하지 말고 본래 성으로 들어가 수비모드로 전환할 걸로 생각했는데,

절벽을 향해 자동차 경주를 하는 두 남자가 먼저 브레이크를 밟는 것을 패배로 여기는 것처럼
악마, 불새는 도무지 후퇴를 몰랐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런 모양새였다.

영리하게 먼저 브레이크를 밟으며 강스파이크를 날린 것은 강한, 수호였고
탁구공은 블랙, 로덴성의 모서리에 정확히 꽂혔다.



[ 어느 순간 블랙에 바리 세운 강한,수호 ]


3성 vs 1성 에서 1성 vs 3성으로


20여 분을 남기고 일단의 병력을 각각 블랙, 로덴에 파견한 강한, 수호.

바이런을 뚫는데 전력을 다하던 악마, 불새가 뒤늦게 각자의 성으로 돌아왔지만
성을 되찾는 데는 시간이 부족했다. 블랙성은 강한, 수호의 성문 바리를 뚫다 시간이 다 되고
로덴은 끝까지 수호탑과 봉인석을 두고 싸움을 벌였지만

악마의 태수 길마가 2분여를 남기고 봉인석 버프를 받고 왔다가 일점사에 쓰러지면서
악마, 불새는 모든 성을 빼앗기고 말았다.



[ 악마, 불새가 달려와보지만 ]



[ 마지막까지 치열했던 로덴 ]



[ 태수 군주가 희망을 잡아보지만 둘러싸이고 만다 ]



[ 최종 공성 점령 지도. 3성 점령 ]



한 번의 공성전으로 블랙,바이런,로덴 3성이 강한, 수호에 떨어진 것이다.
상대방의 전략적 미스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성에 더해 한 번에 두 개의 성에 입성한
이 같은 공성전은 특정 길드를 지지하지 않는 기자로서도 솔직히 놀라운 결과였다.

이런 계책을 누가 세웠는지 궁금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던 강한, 수호 아지트에 찾아갔다.


백색마도 총군은 인터뷰 내용을 연합 길드원 모두가 알아야 한다며
연창으로 인터뷰하기를 원했다.



[ 공성전 승리의 주역들 ]




"하루 전, 전 군주진이 모여 3시간 동안 회의를 해 나온 계획이었다.
인원이 현저히 모자라기 때문에 오로지 단합된 전략으로 승부수를 띠운 것이다.

전 주에 군주진의 한 분인 세크라멘토 형님이 1억 실버를 기부해 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R2 라는 게임의 매력은 무엇보다 활발한 공수성과 스팟전이다.
그동안 힘 있는 길드가 서버를 좌지우지하면 힘 없는 길드 유저들은
쟁이 생기면 접거나 지루한 사냥으로 게임을 떠나곤 했다.

초창기 그런 힘 있는 길드의 총군으로 섭을 유지해본 경험에 비추어
일반 유저들의 공수성, 스팟전이 활발하게 되지 않으면 모처럼 통합된 서버의
많은 유저들이 떠나는 전철을 다시 밟게 될 것이기에, 꿈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 한 곳의 힘 있는 길드가 서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중 6일은
공수성 및 스팟을 대비하기 위한 비축 시간으로 만들고 싶은 소박한 바람이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힘들지만 연합이 탄생하게 된 것이며,
앞으로 사냥터 통제 및 공수성시 쟁이라는 룰을 앞장서서 타파해가겠다.
그런 뜻을 함께 하기 위해 뭉친 각 군주진들과 길원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


한편, 악마, 불새는 '다음 주를 대비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ㅁ 요청 독사진



이렇게 공성전은 끝났다.


이번 공성전으로 악마, 불새의 성 스킬이 깨지면서 전력의 손실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필드는 또 다른 문제다. 아직까지는 어느 한 쪽이 허리에 손을 얹고 웃을 수는 없는 상황.

워낙 큰 두 세력의 전면전이라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나든
알라타리엘 서버의 방향을 크게 휘어놓을 이 전쟁이
이 날의 공성전으로 어떤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Inven Niimo
(Nii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