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김민부 시인의 '기다리는 마음'이다. 몇 분째 메테오스 레어 입구 전경을 쳐다보며 키보드, 마우스를 누르고 있으려니 별의 별 생각이 나지 않나. 테스트 서버 첫날 하필 텔레포트 스크롤 50장을 떨구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이번 4차 테스트 서버에는 이제 접속하기조차 어렵다. 성미가 급한 사람이면 '이렇게 밤새면 일출봉에 해 뜨겠다' 싶기도 하다.



[ 만원 계속 유지중 ]


죽을 四字라 그런가. 그러고보니 4차 테스트 서버는 '순탄함'과는 담을 쌓아가는중이다.


모든 유저가 맨손이라는 동일한 출발선 상에서 새롭게 출발한다는 '서버 초기화'의 의의. 그러나 약관을 수정하면서까지 의욕적으로 추진되었을 '변신 목걸이의 테스트 서버 추가'로 인해 새로운 서버에서의 동등한 출발이라는 기회의 평등이 무너졌다.

언뜻 정식 서버와 같은 식으로 적용되는 게 무슨 문제랴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어느 정도 캐릭터가 성장해있고 재산이 축적되어 꼭 변신 목걸이가 없다고 해도 플레이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 정식 서버와, 모두가 1레벨 캐릭터에서 나이프 한 자루 들고 시작하는 마당에 변신 목걸이를 구입한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캐릭터 사이에서 벌어지는 격차를 눈뜨고 쳐다봐야만 하는 '신 서버 초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달 정액비가 2만원이 되지 않는 게임에서 3만원 짜리 외모 변경서비스를 이용해야 남들보다 더 쉽게 성장할 수 있다면. 누가 외모 변경을 하고 싶어서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으면서도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확인한 변신카드가 7일 짜리로 확인되었을 때의 가슴 아픈 심정...

이미 벌어진 일을 안타까워 한들 뭣하랴. '테스트 서버는 성형공화국'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 성형은 날개고 변목이 몸통 ]


테스트 서버가 열리고 나서 두 번째 일요일이었던 지난 2월 10일에는 유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R2 는 이제까지 새로운 서버가 열리면, 서버 오픈 후 맞는 두 번째 일요일에 늘 첫 공성전을 진행해 왔다. 물론 이번 4차 테스트 서버 오픈 공지에는 첫 공성전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전례대로 2월 10일에 공성전이 있을 것으로 대부분의 테스트 서버 유저가 생각하였으며 그래서 공성전을 준비하기 위해 설 연휴 마지막 날임에도 불구하고 만원 서버를 뚫으려고 몇 시간 먼저 컴퓨터 앞을 지켰던 것이다.

그러나 2월 10일 테스트 서버 공성전은 진행되지 않았고, 어리둥절해하는 유저들을 뒤로한 채 오후 9시가 지나서야 공성전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2월 10일날 한다고 하지는 않았으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공성전을 준비하며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 했던 유저들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했다.



[ 2월 10일 9시가 넘어서야 올라온 공지 ]


만원을 넘어 폭발 수준에 이르렀던 그 날의 콜포트 섬에는 그런데 또 한 가지 사건이 있었으니. 공성전을 기다렸던 유저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는지 바이런 성 앞에 보스 몬스터를 비롯한 몬스터 소환 이벤트가 진행되었다는 것.

R2 유저들 중에 보스 몬스터를 고정적으로 사냥할 수 있는, 그래서 보스몬스터들만이 드랍하는 희귀한 아이템을 손에 넣어볼 수 있는 유저가 전체의 몇 %나 될까. 평범한 유저들에게는 비록 "다굴쳐서 운 좋게"이긴 하지만 희귀한 아이템을 구경해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희망의 시간이 바로 보스 몬스터 소환 이벤트인 것이다. 그런 좋은 기회가 '나 모르게' 지나가 버린다면 어느 누가 기분이 좋을까.

되도록 많은 유저가 보스 몬스터 이벤트의 진행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으며, 그런 점에서 이번 몬스터 소환이벤트는 비록 선한 의도에서 진행된 것이라 해도 진한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다.



[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


이런 저런 사건사고들이 유쾌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서버 목록을 클릭하고 있는 것은 그래도 R2 라는 게임이 재미있고 R2 라는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기 때문일텐데... 좀처럼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새로 열리는 서버에 많은 유저들이 몰리는 것이야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다. 특히 R2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가 조금 더 강화된 버전이라 할 수 있는 테스트 서버는 과거에도 이렇게 만원사례를 보여주곤 했다.

물론 이렇게 많은 유저가 한꺼번에 몰려 서버가 터지기 직전일 때 게임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다. 서버의 안정성을 조금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 수용인원을 조금 늘려보는 것. 그래도 워낙 많은 인원이 몰릴 때는 눈에 티도 나지 않는다. 지금 게임사가 조치할 수 있는 마땅한 방안이 뭐가 더 있을지도 금방 떠오르진 않는다.

그렇기에 서버가 만원이라 접속할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언제 한 자리가 나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마우스와 키보드를 몇 시간이나 눌러야 한다면 그것은 유저의 편의를 생각하지 않는 게임사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와우의 예를 들어보면, 와우도 마찬가지로 서버에 정원이 있고 어떤 서버는 정원을 넘는 많은 유저가 동시에 몰릴 때가 있다. R2와 다른 점은 서버 목록 클릭하고 확인창 클릭하고 서버 목록 클릭하고 하는 기약없는 반복된 노동을 와우에서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자신의 순번이 어느 정도이고 대략 접속할 수 있는 예상시간이 얼마인지 계산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대기 시간 동안 티비를 보거나 화장실을 다녀와도 되고 혹은 간단한 다른 게임을 할 수도 있다.



[ 은행에서 번호표 뽑고 쇼파에 앉아 잡지 뒤적거릴 수 있듯이 ]


이미 R2 에서는 새로운 서버가 열렸을 때 혹은 공성전 당일에 '만원'상태를 자주 보여주었으므로 이번 테스트 서버가 '만원' 상태로 진행될 것은 게임사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만원이 아닌' 상태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해도 자리가 날 때까지 조금 더 편하게 기다릴 수 있는 방법은 벌써 모색되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다.


생각은 그만하고 다시 마우스와 키보드를 누르기 시작하며 아까 부르던 노래를 이어 부른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눈물 흘렸네.

테스트 서버와는 조금 맞지 않는 가사인가. 기다리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서버에 들어갈 수 있을테고, 마우스랑 키보드 누르는 소리를 들으면서는 눈물은 안나고 씁쓸한 미소만 지어지니 말이다.


Inven Niimo
(Nii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