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열려있으면 '길'일테고 늘 닫혀있으면 '벽'일 것이다. 열렸다가 닫히고 닫혔다가도 열리는 게 '문'의 본질. 재미있게도 게임의 '서버'도 그런 본질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열렸다가도 어쩌다보면 닫히기도 하니...


얼마 전 (이라고 쓰고보니 한 달이 훌쩍 지났다) 게임사를 잠깐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벨제뷔트 서버가 열리고 나서 동접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벨제뷔트 서버, 그리고 4차 테스트 서버의 초창기는 접속이 불가능 할 정도로 사람이 몰렸으니 충분히 그랬으리라 짐작이 된다. 정액제 게임에서 동접자 증가는 수익 증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게임사로서도 나쁜 소식은 아니다.


그런데 왜 신서버를 열면 동접 수치가 늘까. 늘어난 동접수치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추측컨데 서버를 새로 열어서 늘어난 유저중에 아예 R2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신규 유저의 비율이 그리 높진 않을 것이다. 그 중에는 구 서버에서 장비와 캐릭터를 처분하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신 서버로 넘어온 유저들이 많겠지만, 단 이 경우에는 동접 수치의 변화를 주지 않는다, R2 를 접었다가 신 서버 소식을 듣고 다시 시작한 유저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신 서버를 열고 닫고 하는 일이 반복되면 구 서버 유저들 사이에서는 '서버 통합'에 대한 이야기가 슬슬 나온다는 게 문제다. 수익을 높이고 떠나간 유저를 돌아오게 하기 위한 방법 중 가장 시각적으로 빠르게 효과가 나타나는 방법이 '신 서버 오픈'이기는 한데 그러다보니 구 서버의 인구는 자꾸 조금씩 줄어든다. 효과는 좋은데 부작용도 있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신규 유저의 유입일테고,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이 '돌아오고 싶어하는 유저'들이 구 서버로 복귀하는 것. 그렇다면 이런 과제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돌아오고 싶어하는 유저'들이 왜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 아니, 그 전에 그들이 '왜 떠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 신섭은 늘 만원사례... ]



얼마 전 모 서버의 한 반왕 군주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R2 의 어느 서버나 상황은 비슷하겠지만 4성혈의 연합과 반왕 세력의 오랜 전쟁으로 반왕 길드의 많은 길드원들이 빠져나가 있는 상태였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핵심세력들이 그나마 성혈과 힘겨운 게릴라전의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의미있는 대규모 전투를 벌이기엔 이미 전세가 기울어져 있음을 그도 애써 감추려 하지는 않았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 전쟁. 그 패배감을 일반 유저가 이겨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둘씩 길드를 떠나고 게임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떠나는 길에 마지막으로 모든 주문서의 주문을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갔던 건 아닐까. 무슨 소리. PK 면에서만 봤을 때 최고의 게임으로 망설임없이 R2 를 꼽겠다는 그는 유저들이 떠나는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단언했다.


"짱개가 많다 오토가 많다 하지만, 다른 게임에도 짱개 많고 오토 많고 작업장 많습니다. 핑계고요. 유저들이 떠나는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압축하면 2가지 입니다. 하나는 랙과 버그입니다. 아무리 고인챈 장비를 차고 있어도 게임 자체 랙 때문에 눕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요. 두 번째 원인이 바로 투망입니다."


그가 말한 두 가지 압축된 원인은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유저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본장비 유실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 그렇게 허탈하게 본 장비를 잃어버린 유저들은 복구를 위해서 혹은 마지막 희망으로 또 다른 본장비에 주문서를 바른다. 무리한 러쉬감행으로 본장비를 유실한 유저들은 마지막 묘비명을 남기듯 러쉬 게시판에 스크린샷을 올리곤 한다. 물론 그 중에는 '러쉬병'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R2를 접는 모든 유저들을 확률에 기대 한 방을 노리는 사행성에 중독되었기 때문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공격은 그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투망피는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오로지 빛보다 빠른 귀환. 그것 뿐이죠. 항상 만피를 유지해야만 합니다. 담배를 필 여유? 타자를 칠 여유? 사치입니다. 늘 긴장한 상태에서 사냥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투망피에 당할지 모르니까요. 과연 이런 긴장감 속에 사냥을 할 수 있을까요?"


3~5명 많게는 8명이 조를 짜서 고대의 계단 등 고레벨 사냥터를 돌아다니는 투망조의 공격에 방셋과 대감셋으로 60방이 넘어가는 캐릭터가 투망을 벗는 것을 보자마자 귀환을 눌러도 200의 체력이 깍여있다고 한다. 체력이 비교적 적은 레인저나 엘프, 저레벨 캐릭터들은 조금이라도 반응이 느릴 경우 투망피의 공격을 받으면 거의 사망하게 된다. 투망피를 직접 돌아봤다는 다른 유저는 '망피엔 90%이상 죽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투망피에 대처하기 위한 유저들의 자구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투망을 입고 오는 캐릭터의 발자국 소리를 듣기 위해 클라이언트의 음원을 변조한 파일이 한 때 널리 퍼지기도 했다. 발자국 소리를 크게 만든 파일이었다. 그러나 그램린 등 다른 몬스터로 변신한 상태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투망피 조원들의 수법도 정교해졌다. 한 명이 먼저 덤벼들어서 상대방의 공격을 유도한 다음에 지켜보던 망피조가 일점사를 하거나 보조캐릭터로 말을 걸면서 갑자기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잦아지면서 나중에는 1:1로 이길 수 있는 적이 나타나도 그 뒤에 있을지도 모르는 망피가 무서워 귀환을 한다.


한 성혈 유저는 중립길드와 전쟁이 났을 때 일주일만에 1억실버에 해당하는 아이템을 먹은 길드원이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싸우다가 떨군 것도 아니고 사냥하고 있는데 뭐가 번쩍하고 캐릭 죽고 장비 떨구면... 거의 접죠.' 전쟁이 한창이라 장비들의 시세가 많이 올랐을 때의 일이다. 투망을 가진 캐릭들 중 일부가 전쟁이나 공성 외에 부캐릭터로 카오단을 도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부가서비스를 통해 기간제 투망을 입고 있다고 발뺌할 수 있게 된 후 부터의 일이다.



[ 플래티넘 카드를 통해 기간제 투망, 마법의 숄을 획득할 수 있다 ]



성혈이 투망을 독식(?)하고 있어서 문제일까. 그는 R2의 투망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반박한다.


"하나의 기간제 투망을 뽑으려면 3만원 짜리 부가 서비스를 20번 정도 받아야 하나 나올까 말까 합니다. 또 기간제 투망이 나와도 성혈 측에서 고가로 다 매입해버리고 있습니다. 물론 기간제 투망을 어떻게 해서든 확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한달만 지나면 필드에 성혈, 반왕혈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을 겁니다. 공성전 때는 바글바글하겠지만 양쪽 다 평소에는 투망피만 다니게 됩니다. 이게 R2를 하는 유저들이 바라는 전쟁의 모습일까요. 모두가 되든 안되든 국지전이든 대규모 전투든 전장에 나가 칼을 휘두르며 싸우길 원합니다. 이런 재미와 희망을 꺽고 있는 것이 현재 R2의 투망입니다."


또 다른 의문. 어짜피 투망이 없던 때도 고렙 사냥터 통제는 일어나고 약한 쪽은 밀려나왔지 않았나.


"반왕이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길드와 연합하고 성길드연합에 대적하고 새로운 길드연합이 탄생되고 내부에서 무너지고 갈라지고 다시 연합하고... 전투는 끝없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투망 때문에 뜻이 있어도 나서지 못하는 거죠. 아무리 좋은 장비와 검방을 갖추고 의기투합해도 한순간 투망피에 손도 못써본다는 생각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죠. 투망이 없다면 수적으로 밀리더라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적과 대응해볼 수는 있습니다. 자신이 속해있는 길드를 위해서 잃을 때 잃고 질 때 지더라도 뭔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 좋은 일 시킬 게 뻔하다며 복귀를 망설이는 주변 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R2와 자주 비교되는 리니지에도 투명망토는 있다. 리니지 초창기에는 현재 R2의 그것과 같이 투명망토의 딜레이가 없어 투망피가 유행했으나 이후 망토를 벗고 나서 공격하는 데 걸리는 딜레이 시간이 도입되면서 투망피는 많이 사라졌다. R2에서 투명상태를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엘프의 디텍션 마법 정도인데 비해 리니지에서는 불투명물약이 있고 흑단이나 마법을 날려서 혹은 기사 클래스도 마법투구를 이용해서 상대방의 투망을 벗길 수 있다. R2에서 유일한 대응책인 엘프 캐릭터는 전투에서 가장 먼저 일점사를 당해 마을로 귀환하게 되고 그 다음은 대응책이 없는 투망피의 시간이 된다.


"투망을 없애야 한다 투망피가 사라져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투망피에 대응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대응할 방법도 방어도 불가능합니다."


공격 딜레이가 없는 투명망토의 문제는 처음 투명망토가 등장했을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리니지의 초창기 모습을 원형으로 조금씩 그 변천사를 따라가는 패치를 계속해왔던 R2 의 과거를 떠올리면서 투명망토로 인해 생기는 몇 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리니지식 해법 또한 금새 R2에 도입되리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한 때 업데이트 예정이라고 소개된 스팟 상점의 디텍션 아이템 판매 예정 소식은 그러한 믿음을 더욱 강화시켜주기도 했다. 그러나 감감무소식... 업데이트 예정은 예정에서 멈춰있다.



[ 이런 아이템이 등장할 것도 같았는데... ]



투망피에 당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냥이나 전투를 통해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말을 빌리자면 '싸우다 누워서 떨어뜨리는 것은 더 좋은 장비를 구하기 위한 욕구를 불러일으킬 뿐'이기 때문. 현질을 해서라도 더 좋은 장비를 맞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맞춘 장비를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떨어뜨린다면...


'누가 고가의 장비를 사겠어요'


왠지 가슴에 남는다. 이 말이 '누가 R2 를 다시 하려고 하겠어요' 로 변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투망 공격 딜레이 패치가 된다고 갑자기 R2의 동접자가 두 배로 늘어나거나 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섭을 자꾸 여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지금 R2에 필요한 것은 월급타면 강해져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닐까. 어쩌면 그 희망을 가로막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현재의 투명망토는 아닐런지...


Inven Niimo
(Nii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