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분노를 느낀다. 모욕감을 느낄 때, 자신의 무력감을 느낄 때, 그리고 자신이 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정당화하면서도 말이다. 대표적으로 이러한 형태는 게임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뭐, 나를 포함해 격투게임에서 "아 눌렀다고!!", "아 막았다고!!" 하고 외치는 게이머들처럼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분노'는 게임에서도 꽤 많이 이용되지만, 플레이어에게 무력감이나 모욕감을 주기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플레이어의 성취감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강하고, 어려운 적들에게 끝없이 도전해서 이윽고 적을 쓰러뜨릴 때의 짜릿한 성취감 자체가 게임의 매력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소울라이크'류의 게임들이 이러한 성향에 가깝다.

필자도 이러한 게임들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오랜 노력 끝에 보상을 받는 구조 자체에는 매우 긍정적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분노의 조절이 쉽지 않아서 막상 꺼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침착하게, 욕심을 내지 않고 한 단계 한 단계 계단을 밟는 과정에서 딜러 본능이 살아나 욕심을 내고 죽기 일쑤니까. 오늘 소개할 '엘디스트 소울'은 이러한 고난도 게임의 코어 플레이가 매우 잘 살아있는 게임이었다.

게임명 : 엘디스트 소울(Eldest Souls)
장르명 : 액션
출시일 : 2021.07.29.
개발사 : 폴른 플래그 스튜디오
서비스 : H2 인터렉티브
플랫폼 : PS, XBOX, PC, Switch

관련 링크: '엘디스트 소울' 오픈크리틱 페이지


엘디스트 소울의 핵심, 무자비하고 강력한 고난도 보스전


엘디스트 소울의 특징이자 매력은 한 가지로 압축된다. 그리고 이렇게 압축하는 것이 게임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한다. 바로 "보스러시"다. 보스까지 가는 과정에서 귀찮은 부분은 모두 제거됐다. 튜토리얼-보스전-보스전-보스전-보스전 식으로 계속 압축된다. 튜토리얼마저도 엄밀히 따지면 보스전이니까, 정말 보스 몬스터만 있는 게임이며 중간 과정은 생략되었다고 할 수준에 가깝다.

극단적인 선택과 집중이라고 할까? 플레이어는 시작과 동시에 몇 가지 조작법을 익히고, 스킬이나 용도에 대한 설명을 아주 간략하게만 듣고 바로 '보스전'으로 돌입한다. 초반 보스전은 누구나 조금만 적응하면 무리 없이 클리어할 난이도로 잡혀있으므로 크게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이후 보스 전투들은 플레이어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난이도로 구성된다. 물론 어느 정도 적응을 마치고 패턴에 익숙해지면서 클리어하는 자신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구성됐다. 주로 HP가 50%에 다다른 보스들은 한차례 각성하여 기존 패턴이 강화되고, 새로운 패턴도 추가되면서 플레이어를 척살하기 위해 달려든다.

▲ 물론 올바른 패턴 파훼를 하면 그만한 보상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플레이어가 단 한 번의 실수로 사망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는 점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회복 능력도 있긴 하기 때문에, 순간적인 대미지 누적으로 사망할 순 있어도 패턴 하나를 피하지 못했다고 사망하는 경우는 드물다.

피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법한 대미지의 패턴들은 그만한 전조들을 보여준다. 물론 모르면 맞아야 하는 법칙은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경험이 쌓여가면서, 처음에는 손도 못 쓰고 "대체 이걸 어떻게 잡으라는 거지?" 하던 보스들도 조금씩 대응해나가는 자신을 볼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전략적으로 맵을 사용하여 회피할 공간을 직접 만들어내는 플레이도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수차례 트라이를 통해 패턴의 법칙을 알아내고, 이를 유도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보스를 쓰러뜨리는 쾌감이 있다.



오로지 '보스 러시'에 집중, 다른 요소들은 부담없이!

▲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전투 스타일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

이러한 보스 전투와 더불어 플레이어에게는 '전투 스타일'을 스스로 정하고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윈드-버서커-카운터로 나뉜 전투 스타일은 언제든지 변경이 가능하며 각각의 특색이 있다. 이러한 전투 스타일 역시 하나의 스타일에서 추가적으로 세분화된다. 이러한 세분화는 하나의 선택이 필요한 것이 아닌, 플레이어가 직접 여러 개의 세분화 능력을 구사할 수 있게 해두었다.

예를 들어 버서커 슬래시는 공격에서 강력한 추가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을 선택하거나, 분노 조각을 이용해 게이지를 빠르게 채우며 회복을 유지해 약한 패턴을 맞으면서 싸울 수 있는 '맞대결'이 가능한 식이다. 보스를 하나씩 쓰러뜨리면서 배우는 스킬 포인트로 이를 강화해나가면, 점차 자신만의 전투 스타일이 굳어진다.

이렇게 선택한 스킬은 일회성이 아니다. 언제든지 보스전에 앞서 변경할 수 있다. 얻게 되는 샤드의 배정 역시 자유롭고, 이를 통해서 플레이어가 점차 익숙해지면 또 보스를 쓰러뜨리고 다시 새로운 길을 열어낸다. 이러한 스타일로 인해 공격의 변화는 다채로워지고, 말 그대로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다. 전투 이외에 다른 요소들에서는 철저하게 스트레스 요인들을 배제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 보스를 물리치면 스킬포인트와 샤드를 얻게 된다. 이를 통해 성장하는 방식.

기본적인 전투, 그리고 성장에 대한 모든 것을 간결화함으로써 '엘디스트 소울'은 보스 러시에 특화된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적절한 BGM과 잘 뽑힌 레트로 스타일 그래픽 또한 매력 요소다. 그러나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장르적인 특성으로 만들어지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다.

솔직히 필자를 포함하여,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자신의 허물을 잘 인정하지 않는 본능이 있을 터다. "죽었으니 내가 좀 더 잘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이게 왜 맞는 건데?"나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 하는 외침과 함께 분노가 솟구친다. 이는 불합리함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이자 심리다. 그렇지 않은 자는 해탈에 경지에 이른, 열반에 든 성자가 맞다고 생각한다. 이는 개인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소울라이크류 게임에서 가장 핵심으로 노리는 심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플레이어들은 이 과정에서 도전을 이어가며 "아, 이거 욕심내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며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이윽고 그들은 아니시에이팅이 줄어들고 연륜과 경험이 쌓인 노련하고 위대한 전사가 된다. 즉,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살살 구슬려야 한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으니 다시 해봐"라고 용기를 주는 것이다. 이 포인트가 '엘디스트 소울'에는 없지만 대신 "언제든 다시 해도 별문제 없다"라는, 부담감을 아예 주지 않는 것으로 해결한다. 전투에서 진다고 손해도 없고, 그저 사망 카운트와 도전 카운트가 하나 더 늘어나도 그냥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것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리송하고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패턴과 판정들이 있는 편임을 부정할 순 없을 것 같다. 분명히 사라진 장판에 피격된다거나, 활동 구역을 제한하고 이후 패턴으로 해제하는 형태에서 플레이어의 운신 구역이 연속으로 제한된다던가 하는 운 같은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엘디스트 소울은 '회피'의 무적 판정을 상당히 고성능으로 설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프레임 단위로 피해야 하는 느낌은 어쩔 수 없지만, 회피 발동 순간에는 판정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회피가 끝난 이후도 잠시 판정이 남는다. 이를 통해서 "밖으로 나가서 피한다"라는 선택지 대신, "안으로 회피해서 적의 공격을 무효화한다"라는 선택지를 준다. 이를 통해서 더욱 많은 딜랑 기회를 가져갈 수 있는 식이다. 천운 같은 기회를 얻어도, 밖으로 멀리 도망갔다면 획득할 수 없다. 결국, 용기 있는 자에게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어주는 게임이다.

더욱이 공격 사이에 끼어들어 회피하는 판정에는 후한 보상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효과들로 무장해두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들에게 "무작정 피하지 말고 달려들라", 그리고 무작정으로 보스에게 멀어지지 말고 보스를 항상 시야에 두고 움직이기를 권하는 디자인을 띠고 있다. 그렇다고 회피를 남발하면 안 된다는 제한까지 확실하게 두었다. 플레이어들의 선택지와 판단, 그리고 컨트롤 모두를 시험하는 구조다.



가볍게 해보기엔 나쁘지 않은 소울라이크


종합적으로 "엘디스트 소울"은 정말 말 그대로 '보스 러시'라는 단어로 설명이 끝난다. 모든 과정은 간략화되어 있고, 잠깐 플레이어들이 쉬어가거나 탐구할 몇 가지 테스트와 요소들만 존재할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전투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악신에게 지배당한 인류가 반기를 들어 신들을 물리친다는 설정이 존재하긴 하지만, 전투에 집중하다 보면 이러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다음 보스는 누구고, 어떤 능력을 줄 것이며, 어떤 악랄한 패턴을 보여줄지만 생각하게 된다.

핵심으로 잡은 전투는 '어렵다'라고 하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충실히 짜여있다. 보스들의 전투와 패턴은 점점 잔혹하고 불합리함이 느껴질 정도로 무자비해지고,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과 플레이어의 성장도 잘 조화되어 있다. 억지로 딜을 욱여넣어야 하는 느낌도 있고 반대로 너무 쉽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건 아니라, 소울라이크류 게임들을 잘 하지 못하는 플레이어들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게임이다.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게임의 분량 자체가 적게 느껴질 수 있다. 1회차 플레이는 고수라면 2~3시간 내로, 초심자라면 7~10시간 정도면 클리어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분량이 '많다'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이후 2회차 해금부터는 보스들이 더욱 강력해지고 악랄한 패턴을 사용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이에 도전하는 재미도 있을 거라고 보지만, 극적인 큰 변화는 없기에 플레이어마다 선호도가 갈릴 수 있다고 본다.

분량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엘디스트 소울'은 잘 만들어진 고난도 보스 러시 게임이라고 생각된다. 하루 날 잡고 진득하게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고, 도전과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플레이어들은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닐까. 행운의 여신은 용감한 자에게 미소를 짓는다는 점만 기억하면, 꽤 즐거운 전투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