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된 IP, 그러나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리마스터


포켓몬스터에 관심이 많다면, 포덕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4세대 리메이크를 기다려왔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4세대인 포켓몬스터 DP 디아루가&펄기아(이하 포켓몬 DP)로 넘어오며 많은 것들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무선 통신 환경의 도입, 전투 환경 변화, 3D 그래픽 대폭 강화 등으로 말이죠.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한국닌텐도를 통해 국내 정발판의 닌텐도 DS가 판매되면서 포켓몬 본가 게임 또한 정식 한글 버전이 출시되기 시작한 타이틀이 바로 4세대라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포켓몬에 본격 입문한 시점이 4세대인 국내 포덕들도 많습니다. 물론 저 같은 아재 포덕에겐 일어를 그림으로 외우며 플레이한 1세대가 입문작이겠지만요.

하나 더 있습니다. 현재 포켓몬 게임의 유일한 진입장벽이 닌텐도 스위치를 갖고 있느냐인데, 작년을 뜨겁게 달군 모동숲 대란 덕택에 그 당시 닌텐도 스위치를 사놓고 방구석에 두고 있는 유저들이 꽤 많았을 겁니다. 이토록 많은 유저들에게 닌텐도 스위치가 판매된 적이 없었고, 대란 이후로 처음 공개된 포켓몬 게임이 바로 '포켓몬스터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 & 샤이닝 펄(이하 브다샤펄)'입니다. 그렇기에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타이틀이었죠. 늘 하던 대로만 출시해도 전성기 그 이상의 성적을 낼 만한 환경들이 갖춰졌으니까요.

판매량으로 따지자면 흥행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일본의 한 콘솔 전문 매체에 따르면 브다샤펄은 출시 3일 만에 약 139만 장 이상을 판매했다고 합니다. 이는 본가 최신작인 '포켓몬스터 소드&실드'의 3일 판매량을 넘어선 수치며,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3일간 판매량의 뒤를 바로 잇는 기록입니다. 또한 12/8일, 주식회사 포켓몬에서 브다샤펄의 첫 주 글로벌 매출이 600만 장을 돌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포켓몬 대작들은 매년 국내 대형 게임 행사와 겹쳐서 저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브다샤펄 또한 집으로 복귀하는 기차 안에서 시작했습니다. 재작년 8세대 출시 시점과 같은 환경, 같은 시간대에 플레이를 해서 게임을 키다가 혼자 웃은 기억이 있습니다. 달랐던 것은 딱 하나입니다. 8세대 땐 카페에서 선배 기자를 2~3시간 앉혀두고 게임을 했다면 이번 브다샤펄은 체육관 1개를 밀고 "집에서 하자"라며 미뤘다는 것.

게임명: 포켓몬스터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
&샤이닝 펄
장르명: RPG
출시일: 2021. 11. 19.
개발사: ILCA
서비스: 닌텐도
플랫폼: 닌텐도 스위치

관련 링크: '포켓몬스터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 & 샤이닝 펄' 오픈크리틱 페이지
※ 플레이는 '포켓몬스터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로 진행하였습니다.

일단 그래픽 문제는 아닙니다. 그게 문제였다면 애초에 구입을 하지 않았겠죠. 국내 여론 중 혹평이 가장 많았던, 잘 쳐줘도 3등신으로 퇴화한 인물들은 게임을 하다보면 신경 쓰이지 않게 됩니다. 새로운 캐릭터, 특별히 4세대에서 좋아했던 NPC가 나오면 조금 깜짝 놀랍니다만 그게 게임을 미루게 만드는 요소는 아닙니다.

또한 생각 이상으로 배틀 그래픽이 괜찮습니다. 확실히 좋다의 느낌은 아닌데, 워낙 기대감이 떨어진 상태로 게임을 접하다 보니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 수준입니다. 레츠고 시리즈와 비슷합니다. 물론 '구멍파기' 기술 또한 레츠고 시리즈와 동일합니다만.. 불꽃 표현이 썩 훌륭하지 못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이 정도면 오케이" 정도의 수준이라 살짝 놀랐습니다.

▲ 제일 공들여 디자인한 것 같은 2세대 관장 규리입니다. 괜히 더 반갑네요

▲ 설마...아닐 거야.. 오지 마!!

▲ 꼬지지와 너무 잘 어울리는 거짓울음 기술. 배틀 그래픽은 꽤 괜찮습니다

▲ 그러나 불꽃은 적응이 잘 안됩니다

좋은 얘기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기존 4세대에 존재하던 지하동굴이 '지하대동굴'로, 팔파크가 '해당화파크'로 확장되었습니다. 이것만 해도 저는 꽤 재밌더라고요. 지하대동굴 내에는 포켓몬 은신처가 존재하여 일반 필드에서 출현하지 않거나 만나기 힘든 포켓몬을 잡을 수 있으며 화석과 비밀기지, 그리고 해당화파크에서 사용하는 재화를 수급할 수 있습니다. 해당화파크는 전설의 포켓몬을 포획할 수 있는 곳으로 해당 포켓몬이 처음으로 출현한 게임 카트리지를 본따 만든 석판으로 포켓몬을 부른다는 콘셉트가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게임 난이도가 상승했습니다. 1회차 스토리 클리어 과정은 꽤 무난했으나 2회차부터는 개체값 및 노력치 분배까지 착실하게 이루어진 포켓몬들이 대거 등장하며 도구 및 포켓몬 교체 타이밍도 기가 막힙니다. 추후 배틀타워 도전을 기대하게 만드는 인공지능 덕분에 포켓몬 배틀이 긴장감 있고 재밌었습니다.

게임에 있어 불편한 요소들도 과감하게 개선했습니다. 비전 머신을 터득한 포켓몬 없이도 괴력, 파도타기, 공중날기 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야생의 비버니, 비버통 그리고 찌르호크가 깜짝 등장하여 도와준다는 콘셉트입니다. 또한 HP 증감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습니다. 다만 이상하게 필드에서 배틀까지 넘어가는 속도는 살짝 느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사실상 엔드 콘텐츠 중 하나, 지하대동굴 탐험 영상

▲ 채굴만 하더라도 하루가 금방 지나갑니다

▲ 내 '비밀기지'에서 특정 타입의 석상을 배치하면 해당 타입의 포켓몬 출현율이 올라갑니다

▲ '해당화파크'에서 필요한 수수께끼의 조각은 지하대동굴에서 획득할 수 있습니다

▲ 레지 시리즈가 첫 출현한 '포켓몬스터 루비&사파이어'. '인도의 석판'은 GBA 게임 카트리지를 닮았습니다

▲ 빨리 실전몬을 양육해야겠습니다

▲ x를 누르면 하단에 가이드가 있어 스토리 진행 시 수월합니다

▲ 이젠 비전 머신 전용 포켓몬이 필요 없습니다! "비버니는 자유예요~"

▲ 몬스터 볼을 꾸미는 기능, '볼 데코'. 실에 따라 포켓몬을 꺼낼 때 효과가 달라집니다

▲ 브다샤펄에서는 엄마와 피부색을 공유합니다. 이게 포켓몬 감성이지~

▲ 현실 반영 제대로 한 포켓몬 따라오기 기능. 실제 스피드가 빠른 포켓몬은 이동속도도 빠릅니다

게임을 미루게 했던 것들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번 4세대 리메이크는 기존 3세대까지의 행보를 생각한다면 너무 아쉽습니다. 포덕들의 기대감을 뒤로한 채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이건 본가가 아닌 외전이니까"라기엔 브다샤펄은 각색 혹은 재편성이 없는, 그래픽이 조금 좋아진 포켓몬 DP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부 얘기하자면 기사 두 개 정도는 작성해야 할 것 같아서 딱 한 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 과거 모든 포켓몬 리메이크 작품들은 최신 세대의 UI를 따라가고 호환되었습니다.

게임보이 타이틀이었던 1세대는 당시 최신작이었던 3세대의 UI를 따라 GBA 버전으로 출시되었습니다. 2세대 또한 게임보이 타이틀이었지만 리메이크 당시 4세대가 최신작이었기 때문에 DS 버전으로 출시되었고요. GBA 타이틀이었던 3세대는 당시 최신작인 6세대와 같이 3DS 버전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이라면 현재 최신작인 8세대인 소드&실드와 비슷한 UI의 브다샤펄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 메인 전설 포켓몬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그에 따라 스토리가 더 탄탄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얘기한 김에 좀 더 포덕스러운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리메이크작의 꽃은 기존 작품에서 전달하지 못한 것들 혹은 풀리지 않은 것들에 대한 재해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물음표들이 설령 새로운 물음표 x3으로 파생될지언정 10년간 팬들이 궁금해했던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마침표를 찍어주는, 그런 타이틀이었습니다. 이러한 작업들이 포켓몬 DP의 확장팩인 '포켓몬스터 PT 기라티나'에서 잘 이루어졌고 그랬기에 포켓몬 팬들 사이에서도 명작으로 인정받는 타이틀입니다.

물론 기라티나가 아닌, 디아루가와 펄기아가 이번 작품의 메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포켓몬 리메이크답게 "너네가 잘못 알고 있었어~ 사실은 이거야!"라며 그에 맞는 이야기를 보여줬어야 했습니다만, 아쉽게도 브다샤펄은 포켓몬 DP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그 예전 그대로 말입니다. 물론 1회차 클리어 이후 관장들과의 재대결이 있지만.. 브다샤펄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포켓몬에 대한 개발사의 애정이 와닿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단점들을 뒤덮는, 가장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혹평을 받을지언정 게임 완성도만큼은 인정을 받았던 여타 포켓몬 게임과 다르게 버그가 너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아쉽네요. 더 이상 게임 진행이 불가능한 것부터 공평성을 헤치는 버그까지.. 현재 지속적인 패치를 거듭하고 있기에 빠른 시일 내에 개선이 되었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 명언 제조기, 태홍과의 대화도 재탕하니 감동이 약간 덜 합니다

▲ 한참을 고민했는데

▲ 답은 정해져있었구나

▲ 여성에게 기억되는 방법.. 메모..

포켓몬 본가 시리즈를 1세대부터 즐겼지만, 항상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때 당시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엔 학업도 있었고 군대도 다녀왔으며 나가서 노는 게 전부였던 시절도, 그러다 직장까지 자연스레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5세대와 6세대를 전부 건너뛰고 3세대 리메이크부터 다시 포켓몬을 시작했기에 저에게 추억 보정은 4세대까지입니다. 제겐 더 이상 그때 그 찬란함을 일으킬만한 소재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포켓몬 본가 리메이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은 여기가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더 아쉽고요.

공식적으로 본가 시리즈가 아닌, 외전이라고 했으니 리마스터라고 생각하며 애정 점수를 포함했습니다. 게임 자체는 개인적으로 재밌으니까요. 다만 저는 포켓몬을 유독 좋아하는 유저기 때문인 거고, 누구에게 선뜻 권유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직전 타이틀까지는 항상 친구들 바짓가랑이 붙잡고 같이하잔 말을 하곤 했는데 브다샤펄은 혼자 조용히 플레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출시 직전까지는 랭크 대전이 왜 없냐고 아쉬워했는데 차라리 이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요.

▲ 나도 너 나이 땐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