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K팝), K-영화, K-드라마, K-웹툰까지. 'K'는 여기저기 온갖 콘텐츠에 마법처럼 달라붙는다. 자가복제되는 표현의 익숙함. 아니 그 지겨움은 비단 우리만이 아니었나 보다. BTS RM과 인터뷰한 스페인 언론 El Pais는 'K-pop이라는 수식어가 지겹지 않으냐'라고 그에게 물었다. 무례한 물음이라는 보도도 많았지만, 콘텐츠를 소비하는 우리에겐 너무나 꺼내고 싶은 질문이기도 했다.

'프리미엄 라벨, 우리 선대가 싸워 얻어낸 품질 보증'


RM의 답에 머리에 종이 울리는 듯했다. 아니 머리를 깨부순 정도의 충격이랄까.

RM의 현답은 질문에 나온 그 표현을 그대로 받아쓰는 이들에게도 오래도록 숙제로 남아있었다. 편의적으로 쓰이는 K에 관해 비관적 의견만 가질 뿐이었지, 그 표현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헤아려보고자 하는 이는 없었다.

분명 음악, 영화, 드라마 등 실제로 K라고 구분된 콘텐츠는 지금 오늘도 전 세계에서 소비되고 있다. 그 중심에서 K-콘텐츠를 이끄는 RM이 내놓은 의견은 모두가 쓰지만, 누구도 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K의 의미를 정의했다. 그저 한국형이 아니라 세계에서 통하는 프리미엄 라벨이라는 의미로 말이다.

일찌감치 문화산업이라는 표현을 콘텐츠산업이 대체하기 시작하며 문화적 함의와 깊이보다는 성과 중심으로 저울이 기울어졌다. 그렇게 문화 콘텐츠는 세계에서 가시적 성과를 낼 브랜딩이 필요했고 'K의 콘텐츠'는 하나의 브랜드로 소비됐다.

그렇게 이런저런 콘텐츠에 하나둘 붙기 시작한 K라는 말은 너무나 그럴듯한 포장이 되어 버렸다. 언론, 마케팅은 물론 정부에서도 K의 편의성을 숨기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를 시작으로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까지 정권이 바뀌고 집권당이 바뀌어도 K의 영향력은 그대로다. 아니, 나아가 범람한다.

그래서 K는 쓰지 않을 수 없는 편리한 표현이지만, 반대로 비판의 대상이기도 했다. RM의 한마디는 10년도 넘은 K의 의미를 새로 쓴 셈이다. 유창하고 정갈한 표현에 대중의 관심도 높았지만, 실제로 K를 직접 맞대는 콘텐츠 업계에서는 더 크게 받아들였다. 누군가는 높으신 분들의 지시 아래 억지로 붙였던 K에 조금은 자부심 같은 게 느껴진다고도 하더라.

다만, 그 K의 프리미엄 라벨이 진짜 K에 붙었는지, 'K-pop'에 붙었는지는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연습은 69시간은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텐투텐으로 데뷔까지 기약 없이 이어진다. 노래, 춤, 무대 구성 등 조명을 직접 받는 이들의 노력 외에도 곡을 쓰고, 가사를 붙이고, 안무를 짜고, '헤메코'에 물적 지원 등 보이지 않는 이들의 노력과 투자도 담긴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노력만이 K-pop을 만든 건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결과물이 있었다. 영상 조회수, 앨범 판매량, 콘서트 등 소비자인 팬들의 관심이 그 결과를 증명한다. 스포티파이에는 신곡, 재즈, 힙합, 워크아웃 등 장르와 분위기 등을 구분하는 섹션에 K-pop을 따로 소개한다. 수치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애정과 관심이 있었기에 한국식 아이돌 문화에 기반한 음악적 형태로 출발한 K-pop은 이제 음악을 넘어 아티스트와 이를 향유하는 팬덤으로 확대됐다.

게임도 결과물을 내놓는 과정은 비슷하다. 기획, 개발, 마케팅 등 수많은 노력이 한 작품을 위해 들어간다. 국내 콘텐츠 시장에 차지하는 규모는 출판, 방송 등과 함께 가장 높다. 2022년 상반기 기준 수출액은 4조 8천억 원 이상으로 무려 전체 66.5%를 차지한다. 음악, 영화가 6.6%, 0.4%인 것과 대조된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적 성과에 K-게임이 세계 소비자 앞에 당당히 통하는 명품이라 단언하긴 어렵다. 0.4%의 수출 성과를 낸 영화는 해외 전문 매체에서 한국 영화만을 집중해 소개하는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게임은 내수 시장과 비슷한 소비 패턴을 가진 중국 시장의 판호 여부에 목매고 들썩거린다. 근래 해외시장에서 주목받은 게임도 개개의 성공 신화로 여겨질 뿐 한국 게임으로는 이어지지는 않는다.

K를 넘어 세계를 향하는 비욘드K가 논의되며 그 가치에 어울리는 내실을 채워가고자 하는 지금. K-게임은 세계에 통할 프리미엄 라벨일까? 아니면 한 주형에 찍혀 나오는 공산품에 허술하게 찍히는 가격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