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여대 X들 재수없어요."

서울 강남구 A 고등학교 김모 교사는 올해 졸업생 B군이 일명 '일베충(일간베스트 회원 또는 이용자를 이르는 속어)'이었단 말을 듣고 머릿속에 한 장면을 떠올렸다. 수업 시간 중 장래희망에 대해 발표를 시켰더니 당당히 일어나 포부를 밝히던 B군은 난데없이 한 여대에 대한 비난하는 말을 던졌다. 학급생들은 B군이 툭 던진 말에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회원들과 자유청년연합 회원들이 지난해 9월 광화문 단식농성장 인근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는 '폭식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 / 사진=뉴스1

김 교사는 곧바로 학생들을 제지했다. "특정 성별이나 대학에 대한 감정적 발언은 당사자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김 교사의 조언을 진지하게 듣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이미 비슷한 수위의 비하 발언이 농담처럼 굳어버린 분위기였다. 한편 올 2월 학교를 졸업한 B군은 서울시내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에 입학했다.

◇농담처럼 퍼지는 일베 용어…"학생들 심각성 인식 못해"=일간베스트(이하 '일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 강남 지역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특정 성별·지역 비하의 뜻이 담긴 일베 용어, 유머코드가 퍼지고 있다. 대부분 일베 콘텐츠가 풍자와 비하 사이를 오가다보니 누군가를 깎아내릴 때 해당 사이트의 용어가 자주 차용되는 것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일베 용어를 일종의 개그로 인식하기 때문에 지도나 교정이 더욱 어렵다고 털어놨다. 지난해까지 서초구 중학교에서 근무했던 유모 교사는 "아이들이 일베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과 별개로 일베에서 언급하는 용어에 대해선 호기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유 교사는 지난해 '일밍아웃(일베 유저라는 사실을 공개하는 것을 이르는 말)'한 C군의 사례를 들었다. C군은 평소 '일베 형님들이 말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급우들은 지나치게 의존적인 C군의 행동을 놀리며 '5·18 폭동' 등 일베 회원들이 쓰는 용어로 역공했다. 유 교사는 "일베가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궁금해서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며 "다른 반 아이들도 다 쓰다보니 단어에 내포된 유해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강남구 중학교에 근무 중인 이모 교사는 "학생들이 일베에 올라왔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꼰 동영상을 따라하며 한 학생을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털어놨다. 해당 동영상은 모 제약업체의 TV광고로, 운지버섯을 찾기 위해 한 남성이 산을 오르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 교사는 "학생 여러 명이 한 동급생에게 '운지해라'며 동영상을 따라하는데, 어떻게 제지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 말했다.

◇전문가 "일베 용어, 일반 욕설과 동급"…방치하면 위험=학생에게서도 비슷한 증언이 이어졌다. 강남구 고교에 재학 중인 D군은 "'민주화', '김치녀', '홍어' 등의 일베 용어가 남중, 남고에서 광범위하게 쓰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학교 교실 벽면에서는 '진성홍어 XXX' 등의 낙서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학생들이 단어의 뜻이나 형성 유래에 대해서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해당 단어들이 비하하는 대상들이 눈 앞에 없기 때문에 남학생끼리는 더 편하게 사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베 특유의 정치·역사관 때문에 학교 수업 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부딪히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국어 교과 담당인 유모 교사는 "수업시간에 서울대 학생들이 쓴 4·19 혁명 선언문에 대해 다룬 후 제자 C군이 찾아와 '수업 내용이 틀렸다'며 항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C군은 유 교사에게 "이승만 대통령님은 부정선거를 하실 분이 아니며 4·19 폭동이 일어나 억울하게 하야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유 교사는 "C군이 다른 수업 시간에 '5·18 민주화 운동이 폭동'이라고 발표해 중간에 제지한 적도 있다"며 "일베 이용자 중에는 해외 유명대 교수나 일선 학교 교사의 자녀들도 있는데 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일베를 하다보니 부모도 통제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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