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StuG III G의 역사

 

 

 

 

Parola tank museum에 전시중인 StuG III G

 

 

 

 

StuG III G의 실제 모습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의 대표적인 전차이며, 한국말로 "3호 돌격포", "스터그 G형"으로 불리는 전차입니다.

 

보병지원/대전차전에서 쓰였고, 핀란드/헝가리도 공여받아 사용했습니다.

 

전쟁 동안 약 1만대 가량 생산되었고, 이름의 G형처럼 A부터 다양한 파생물의 결과가 G형입니다.

[후술하겠지만, 전차가 부족해서 각종 구형과 부품 일부만 G형처럼 바꾸거나 하는 급조물도 많아서 모양이 전차마다 많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양한 국가에서 전시되어있는 StuG III G

 

 

역사적인 자료가 상당히 많은 편에 속하는 전차라 내용이 각기 조금씩 다른부분이 많아서.

겹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등장 계기는 독일군 보병 지원전차의 필요성에 의해 기존전차를 활용해보자는 방안으로 나왔으며 1937년 알켓(Alkett)사에서 3호전차의 차체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등장. 이는 StuG III의 첫 등장입니다 (프로토 O형 타입)

 

주 목적은 "적 보병 부대, 벙커, 토치카, 장애물들을 직사 사격하여 파괴하는 돌격포"입니다.

(토치카는 러시어어이며, 뚜꺼운 콘크리트,철 같은걸로 만든 벙커라는 개념이라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돌격포병이라는 개념을 만든 독일 장군 에리히 폰 만슈타인

 

 [여담 : 처음에는 이 의견을 제시했지만 바로 기각처리 되었습니다. (하인츠 구데리안 : "4호전차가 나오는데 굳이 만들 필요없다.")하지만 목표였던 4호전차의 생산이 계속 지연되는 바람에 의견안을 다시 검토하고 이후 적용됬죠.]

 

 

 

 

StuG III G의 근본이 된 3호 전차. 포탑을 떼어내고 전투실을 추가하는등 개조를 거친다.

 

 

 

첫 전투는 프랑스전에서 시제품 A형 두대가 참가했고 이후 보병지원 전차로 활용되던것 외에는 큰 활약은 없었으나.

 

1941년 독소전쟁(독일vs소련)이 시작되면서 소련군의 T-34, KV-1, KV-2같은 전차들을 상대하기에 37mm포로 무장한 3호전차로는 너무 역부족이였으며 이보다 강한 주포를 사용할 수 있었던 이 StuG III가 대안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대안이 떠오르게 된 시점은 주포를 7.5 cm StuK 40 L/43으로 바꾸게 된 F형부터 이며 이후 G형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후 StuG III는 대전차전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사진은 F에서 G형으로 가는 과도기적 모습의 StuG III]

 

 

이후 3호 전차가 4호 전차로 대체됨에 따라 3호 전차 생산라인은 사실상 StuG III 생산으로 변경되는 수준이였고. 전쟁중 약 10.000대 가량, 대전차 용인 G형 까지 생산되었습니다.

 

사실상 대전차용으로 사용되어지면서 보병지원용으로는 이탈하는 바람에 보병전차쪽에는 StuG III에서 주포를 105mm포를 사용하는 StuH 42가 새로 보급되었습니다.

 

 

 

 

StuH 42는 StuG III보다 구경이 높은 10.5 cm leFH 18 곡사포를 사용했다.

 

 

이렇게 A~G,33B등이 나오지만 1943년 11월 연합군의 폭격으로 StuG III의 생산라인에 큰 차질이 생기면서 기존 3호 전차의 상부를 쓰면서도 4호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StuG IV(4호 돌격포)가 나오기도 합니다. 

[조금 자세하게 설명드리면. 1943년 11월 3호 돌격포 생산시설인 알켓(Alkett)이 폭격을 당하면서 생산라인이 큰 타격을 당해 생산속도가 10%로 감소되어서 이에 차선책으로 나왔고 히틀러의 승인을 받고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크룹(Krupp)사에서 1108대를 생산 + 파손된 4호전차 31대를 개수했습니다. 3호 돌격포의 상위 개념이 아닌 대체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생산량은 자세히 들어가면 A~F/8형까지는 20~300대 가량 생산됬지만 StuG III의 마지막 형태인 G형은 7720대가 생산되었습니다.

 

이들 형태는 각기 모습이 조금씩 다르고, 용도에 따라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모델이라던지, 150mm로 구경장을 늘린 것이라던지 많으며, 또한 각 전투에 고루 쓰이면서 같은 모습이라도 위장 같은 모양도 다른것 뿐만 아니라 파손되어 다른 전차부품으로 갈아끼는것도 있고, 심지어 소속부대마다도 차이가 있어 같은 전차임에도 상당히 다양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서적으로도 있으니 흥미가 있으시다면 찾아보시는것도 좋습니다.

[또한 일일이 다 찾다가는 책을 한권 쓸것 같아 이쯤에서 멈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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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지원용 돌격포로 구상되다가 대전차전에 사용되어진 특이한 케이스인 전차인데요.

 

StuG III는 포탑이 없다는 점이 있었지만 전고가 낮아 은신하기에 좋아서 기습사격하기에 좋았으며 1944년 봄까지 약 20.000대의 소련전차를 격파했습니다.

 

전투 내용을 요약하면 상당히 좋은 가성비, 적은 손실률로 독일에서는 "작은 효자녀석" 취급을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투마다 상당히 자주등장하는 전차였고, 에이스 전차장도 상당히 많은편이 였으며, 핀란드/헝가리에 공여되어 사용되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StuG III 영상

 

 

 

 

 

667돌격포 여단 소속 StuG III 에이스 전차장이자 소대장인 발터 오베르로스캄프 죽퓨러.

그는 40여대의 전차를 격파했고 이후 1943년 5월 10일 기사십자장을 수여받는다.

 

 

 

에이스 포수였던 휴고 프리모지크. 총 68대를 격파했으며.

특히 하루만에 소련군 전차를 24대씩이나 격파하는 등 엄청난 기록을 남겼다.

 

 

프리츠 랑 113, 한스 잔드록 123대 등, 상당히 높은 기록이 있으며

미하엘 비트만도 탑승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탑승 한 전차는 Stug III A형으로 T-26을 6대 격파]

 

헬리오 라가스 상사는 30초만에 T-34/85 4대를 격파, 예르키 할로넨은 소련군 전차,돌격포 7대를 격파등 기록이 상당히 많습니다.

 

 

 

 

 

전차가 마지막으로 사용된 시점은 1967년 시리아 - 이란 전쟁(제 3차 중동 전쟁이자 6일/월 전쟁,욤 키푸르(같은 말이지만 참 많다)) 시리아 소속으로 참전한 기록도 있습니다.

 

 

일명 노인 학대전이라고도 불리는 시리아-이란 전쟁으로 StuG III 또한 사용되었다.

 


 

 

 

중동에서 대파당한체 버려진 StuG III

 

 

 

 

 

2차 세계대전에서 비록 대체적인 방안으로 나오긴 했지만 돌격포라는 이름으로 첫 획을 그은 전차이자 많은 활약을 했다는 점에서 타 전차들에 비해 성공적인 작품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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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3호 돌격포" [클릭]

네이버 블로그 기갑부대님의 "3호 돌격포" [클릭]

네이버 블로그 제국님의 " 3호 돌격포 개발사 #1 [클릭]

네이버 블로그 대독일제국님의 "구축전차 3호 돌격포" [클릭]

[몰라서 묻는데 홈페이지에 대놓고 하켄크로이츠를 대놓고 이리 사용해도 되는건가요?]

 

네이버 질문 답변 "돌격포와 구축전차의 차이가 뭔가요?" [클릭]

 

 

[영어]에이스 전차장 기록 [클릭]

네이버 블로그 프리드리히님의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전차 에이스 목록 [클릭]

네이버 블로그 Sturmgeschutz님의 에이스 발터 오베르로스캄프 죽퓨러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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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조한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