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NXC 최원규 팀장 ]
'게이미피케이션(게임화) 앱 개발 포스트모템.'

NDC2014 강연 치곤 좀 심심한 주제다. '마비노기 영웅전' 같은 굵직한 게임에나 포스트모템 붙이는 거 아닌가? 심지어 바로 전 강연에선 '김학규' 대표가 자기 자신까지 포스트모템 했는데.

아이고, 이거 강연 잘못 들어왔구나 싶었다. 바쁜데 괜히 시간만 날아가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게이미피케이션이란 단어는 게임에 붙이지 않는다. 게임같은 걸 끼얹은 어플리케이션 강연이었던 거다.

굳이 타이핑 해야되나 생각했지만, 다행히 고민을 오래할 필요는 없었다. 큰 정보가 초반에 떴다. 넥슨 김정주 회장이 직접 컨펌(확인, 검사)한 앱이란다. 아니, 이걸 왜 직접? 이라는 생각은 나중에. 일단 적지 않고선 버틸수가 없다.

노트북 열었다. 기자의 열정을 쏟을 준비도 마쳤다.





1. 김정주 회장 曰, "이런 기획 안좋아하는데... 그래도 해봐!"

강연자인 최원규 팀장은 NXC 소속이다. 넥슨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김정주 회장이 대표로 있는 곳, 제주도 소재의 그 NXC 맞다. 2000년부터 게임을 개발해온 최 팀장은 2012년부터 NXC 소속으로 '캐치잇 잉글리시'를 개발했다. 제주도 바람 쐬면서. 그림 좋은 제주도 일몰 구경하면서. 일하다 점심 시간에 잠깐 나가서 '바다 낚시' 즐기고 오는 동료들과 함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캐치잇 잉글리시'는 게임이 아니다. 게임 요소가 들어간 어플리케이션으로, 교육용 앱에 가깝다. 재미있게 갖고 놀만한 요소가 많이 첨가되었다. 성과는 데이터로 드러났다. 평균적으로 보면 게임보다 오래, 또 자주 플레이한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왜 만든걸까. 2000년부터 게임을 만든, 개발경력 10년이 훌쩍 지난 개발자가 교육용 앱을 만든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왠지 어린시절 이야기 나올 거 같다... 싶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어렸을 때 영어 카드 가지고 문장 외우는 걸 했었거든요. 맞추면 선생님이 선물 주고 그랬는데, 이게 공부라기보다는 놀이, 혹은 승부욕을 자극하는 그런 개념이었어요. 하나도 안지루했고요."

최 팀장이 꼬마 시절 겪은 이 공부법은 '게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고를 지닌 개발자 최원규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뭔가 돌직구를 날려보고 싶었다고. 대세를 따르지 않는, 세계를 아우르는 멋진 교육용 앱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NXC 김정주 회장을 '게임의 신'이라고 불렀다. 숭배 같은 거 아니므로 오해하지 말자. 워낙 보기 힘든 인물이라 그렇게 생각한다고.

"어쨌든 그분한테 야망을 공개했어요. 게임만큼 재밌는 영어교육 앱 만들겠다고. 막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는데 그분이 딱 그러는 거예요."

"나, 이런 포커싱도 안된 기획 별로 안좋아하거든?... 그래도 해봐."

'나 제주도 집이거든',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2년 줄테니 열심히 해봐'라는 말까지 들은 최 팀장의 기분은 날아갈 듯 했다고. 제주도에서 게임 개발하는 경험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기대감이 차올랐다고 말했다. 기회도 왔겠다, 이제 정말로 열심히 달리는 것만 남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 "그래픽 왜이러니?"... "네, 저도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개발 승인까지 받은 최 팀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열정이란 열정은 있는대로 휘감아 거칠 것이 없었다. 강력한 동기 유발이 교육효과를 높인다는 걸 유년 시절 직접 겪으면서 배웠다. 서양이라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2015년 쯤 되면 게이미피케이션 앱이 대중화될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지금이 기회라고 확신했다.

열정은 넘쳤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방향성 결정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재미와 기능 둘 다 잡고 싶었다. 이미 좋은 거 두개 섞는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물이 나오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신중해야만 했다.

"네스퀵이랑 콜라 둘 다 맛있죠. 그런데 이거 섞어보세요. 맛 있을리가 없잖아요. 저희가 개발하는 것도 마찬가지였어요. 100에 100 더하는 건데 200이상 나와줘야지, 150정도 밖에 안되면 그거 문제입니다."



그의 결론은 '기능성 먼저'였다. 어느 한 쪽에 포커스를 둬야 한다면, 게이미피케이션 앱인 만큼 기능이 우선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자료 조사에 착수했다. 개발도 병행했다. 기획, 전략 설정과 함께 테스트 배드를 직접 짜보는 것 만큼 효과적인게 없다고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개발은 백문이 불여일견"

문제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롤모델이 없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안개 속에 있는 느낌'으로 비유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최 팀장은 여러 게임을 참고했다. '식물 vs 좀비'가 유저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특히 인상깊게 봤다고 한다.

첫 결과물은 페이퍼 버전이었다. 남들에겐 종이조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이래뵈도 개발자들에겐 '위대한 앱의 초안'이다. 간단히 만들어 내부 테스트를 진행했다. 원리가 단순하다는 것에 착안, 카카오톡 그룹채팅으로도 실험했다. 반응이 좋았다.

두번째로 만든 문장 맞추기 버전 역시 사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마지막 세번째는 소셜 플레이 방식도 접목했다. 사실 '캐치잇 잉글리시'의 구동 방식 자체는 이때 이미 완성된 셈이었다고 한다. 사내 테스트 결과, 소셜 요소를 접목한 마지막 버전이 특히 좋은 피드백을 얻었다. 이 쪽으로 개발 방향을 잡는 계기가 됐다.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한 뒤에는 그래픽과 연출 방식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더욱 게임스럽게 만들기 위해 뭘 넣어야 하는지 생각했다. 다른 게임에서 찾은 매력 포인트도 적용해봤다. 당초 계획보다 개발 속도가 확 늘어난다는 것도 이 때 알았다.

업무량이 폭주했다. 그래픽 개량하는 것도 힘든데, 이것저것 실험하다보니 개발량도 확 불었다.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부록처럼 따라왔다. 하지만 '게임의 신'과 약속한 걸 어길 수는 없었다. 최 팀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2년이었다.

갖은 우여곡절을 겪고 나온 결과물을 들고 김정주 회장을 찾았다. 그가 말했다.

"이거 그래픽 너무 어둡고 이상해."
"당연히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개발기간 3개월 더 늘었다. 이 때부터 팀원들도 조금씩 표정을 잃어갔다.





3. 엄마 얼굴 보고 싶은 거 꾹 참은 결과...

빛이 보이지 않던 터널을 드디어 빠져나왔다. UX 개량, 특허까지 준비한 뒤 앱스토어에 당당히 런칭했다.

"야... 이거 뭐냐. 못하겠어, 짜증나."

기쁨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최 팀장의 권유(?)에 떠밀려 게임을 설치한 친구 한 명이 플레이 3분 만에 한 말이다. 시스템 설명하려고 넣은 튜토리얼이 7분 짜리였던게 실수였다.

친구의 예언(?)대로 앱스토어 순위도 점차 떨어져갔다. 결단이 필요했다. 최 팀장은 처음 출시한 걸 '아이폰 1차 버전'이라고 명명한 뒤 단점 보완에 들어갔다. 동선 유도 위한 퀘스트, 봇이 아닌 실제 사람과도 계속 플레이할 수 있는 도서관도 개발했다. 이 때 진짜 힘들었다고 한다. 육지에 있는 엄마 얼굴 계속 떠오르고.

열정이 온몸을 휘감던 시절, '대세 따르지 말고 새 길로 가보자'는 그 의지는 한 풀 꺾였다. 대신 그보다 현실적인 교훈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든 건 이유가 있지.'

이번이 정말 마지막 달리기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



고생 끝에 골병이 들지, 낙이 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열심히 한 만큼의 보답은 오겠지'라는 믿음을 버리진 않았다. 다행히 네이버 앱스토어 런칭은 성공적이었다. 좋은 평가와 함께 3주 만에 10만 다운로드를 찍었다. 2014년 5월 말, 지금은 '터치잇 잉글리시'의 글로벌 런칭을 준비중이다.



4. "대기업 소속이었으면 못 만들었을 겁니다."

포스트모템 강연의 마무리는 언제나 '느낀 점'이다. 보통 게임 개발에 대한 소감이 나오곤 하는데, 이번 강연은 좀 달랐다. 제주도 홍보대사가 빙의라도 된 듯, 최 팀장은 자신의 제주도 사랑을 거듭 강조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빼먹지는 않았다.

"제주도에서 2년 간의 개발 생활... 지금 돌아보면 나름 즐거웠던 것 같아요. 일단 집이 싸고요. 음식도 맛있습니다. 무엇보다 개발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게 좋아요.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하지만 인력 구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협력업체가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커뮤니케이션 하기도 어렵고요. 모르는 걸 배우기 위한 교육 기회도 많지 않았습니다."


만약 벤처였다면,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면 '캐치잇 잉글리시'를 만들 수 있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최 팀장은 곧바로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절대 못만들었을 거라고 단언해요. 큰 곳에선 새로운 경험을 쌓는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거든요."

"자신이 만드는 것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개발은 탄탄한 이론이 베이스가 되어야 하지만, 의미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