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사귈 때, 그 친구와 '친하다'고 할만한 기준이 뭘까? 같은 취미, 비슷한 식성, 적당히 맞아 떨어지는 성격 등. 하지만 이런걸 종합해 볼 때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기준은 바로 같이 지낸 시간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년 지기' 라고 하듯, '너네 얼마나 친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일단 알게된 시간부터 계산하고 보지 않던가?

의도치 않아도 알게 되는 사람들, 이렇게 저렇게 연이 닿아 친해지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학교를 다닐 때에도 그랬고, 군대도 그렇고, 직장생활에서도 그렇다. 그러니 한 이삼년 알고 지낸 것으론 '지기'라는 명함도 못내밀 터. 그렇담, 한 10년쯤 잡으면 어떨까? '10년 지기' 라면 이제 좀 친구 답지 않은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대한민국 게이머라면 최소한 한 번 쯤은 들어보았고, 한 번 쯤은 캐릭터를 만들어 필드를 뛰어다녀 봤을 게임이 이제 서비스 10년차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10년 전 한번 만나본 별로였던 애'였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10년을 함께한 지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번 돌아보기로 했다. 이 친구와 함께한 10년을.



■ 수줍은 첫만남. 너... 생각보다 괜찮은 애구나?



‘마비노기’가 서비스를 시작한 시기는 2004년.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 등으로 세가 커진 온라인 게임 시장은 이제 막 확장일로에 있었고, 꼬꼬마이던 기자 역시 이런저런 게임을 해보며 바람직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당시는 막 외산 온라인 RPG들이 들어와 소개되던 시기였고, 울티마, 에버퀘스트, DAoC 등이 물밀듯 들어왔다 다시 썰물 빠지듯 빠져나간 시기였다.

비록 꼬꼬마이긴 했지만 그렇게 외국맛을 보고난 기자는 나름 눈이 높아져 있었고, 당시 오픈했던 리니지2 마저도 오픈 베타만 잠시 플레이해 본 뒤 '내 (더)어릴 적 추억을 모욕하지마!' 라고 일갈하며 접었더랬다. 간단히 말하면 당시는 리니지, 바람의 나라, 어둠의 전설 등 1세대 MMORPG로 유입된 게이머들이 이제 비슷비슷한 핵앤슬래시 타입의 MMORPG에 질려있었고, 때문에 외국 게임을 비롯한 색다른 게임 대한 수요도 높았던 시기였다. 뭐, 결과적으로 그시기 외국 MMO들은 전부 망하고 말았지만...

그리고 그러던 시기에 등장한 것이 바로 ‘마비노기’ 였다. 당시 한참 울티마 온라인을 즐기다 아버지의 등짝 스매싱과 컴퓨터 깨기에 울온 인생 전부를 건 집을 날려먹은 기자는 망국의 심정으로 하루하루 시일야방성대곡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울온 뺨을 칠 게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믿진 않았지만. 아무튼 그게 ‘마비노기’였다.

▲ 그땐 이 악마도 그냥 푸근한 동네 아저씨인줄 알았는데...

그렇다. 확실히 울온 뺨을 치기엔 부족한게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요소로 채워져 있었다. 비교하자면, ‘마비노기’는 보다 세세했달까. 집도 없었고 마법도 부족했고 맵도 좁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다. 내 행동에 따라 울고 웃는 캐릭터의 감정표현과, 정말로 상호작용한다는 느낌이 드는 여러가지 오브젝트들. 확실한 감성과 느낌으로 짜여진 게임 전반의 분위기. ‘마비노기’는 울온하고 비교하기엔 좀 그랬다. 따라한 게임이 아니라 '다른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픽이면 그래픽, 생활이면 생활, 전투면 전투, 모두 색달랐다. 반턴제의 전투는 흡사 대전격투게임에서 수싸움을 통해 공방을 주고받는 느낌이었다. 생활 컨텐츠 역시, 대부분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들은 모두 가능했다. 양털을 깎으려면 가위가 있어야 하고, 요리를 하려면 도마와 칼을 마련해야 했다.

▲ '10살에 곰을 잡은'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잡혔었던가...

처음 ‘마비노기’에서 충격을 받은 것은 다른 플레이어와 대화를 할 때였다. 멀쩡히 가만히 있던 내 캐릭터가, 옆에 있던 사람이 말을 거니 그 사람을 쳐다보는게 아닌가? 물론 아직 시스템이 불완전해 춤을 춘다던지 무기를 계속 바꿔든다던지 하면 얼굴도 그에 따라 춤을 추곤 했지만... 캠프파이어를 피워놓고 캐릭터가 말하는 사람들 번갈아 쳐다보며 대화를 나누는 건 정말로 당시로선 충격이자 감동이었다.


악기 연주를 해보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해 골드를 모으고, 악기를 사놓고선 악보를 갖고 한참을 씨름하다 간단한 멜로디를 자작하는 것에서 남의 악보를 따와 복잡한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악보 몇개와 악기를 인벤토리 한구석에 놓고 여기저기 다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기분 내키면 연주하면서 스킬을 올리는, 그런 식의 플레이가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Fantasy Life!' ‘마비노기’하면 떠오르는 캐치프레이즈인 판타지 라이프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챕터1 까진 말이다.



■ 다시 만난 세계


그러던 와중, 기자에게도 시련의 입시철이 찾아왔고, 잠시 ‘마비노기’를 떠나게 된다. 그때 나중에 잘 써먹겠다며 몇만 골드씩 은행에 쟁여두기도 했으나... 나중의 물가 상승을 생각하면 택도 없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혹여 몇백만 골드를 쌓아놨다고 해도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다시 접속한 ‘마비노기’ 로그인 화면에서 본 것은 말할 수 없이 살이 불어 발가 벗고 있는 캐릭터였다. 인벤토리에 남아있는 것은 나무열매 몇개 뿐. 이때부터, 또 이후로도 계정도용은 ‘마비노기’를 플레이하며 누구나 겪는 숙명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결국 지인들과 함께 새 서버에 새로운 캐릭터로 자리잡게 되었다. 당시는 막 등가교환 덕후 연금술사를 포함한 C3가 추가되었을 시절. 이때는 다른 것보다 공백기동안 업데이트 되었던 C1을 완결내는데 혈안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마비노기’가 메인스트림은 어려우니 할 수 있는 사람만 하고, 그저 생활을 즐기련다... 하는 광경이었다면, 수년만에 다시 접한 게임은 많이 달랐다. 환생을 통해 막강한 네자릿수 누적레벨을 달성한 괴수유저들이 득시글 했고, 이제 막 꼬꼬마인 기자의 캐릭터는 메인스트림을 위해 여기저기 울라 대륙을 동분서주했다.

지인들과 던전을 돌 때는 브레이크 댄서 뺨치는 윈드밀 특화 요원(이라 쓰고 쩌리라고 읽는)이었고, 이를 위해 팔자에 없던 제련까지 수련했다. 반호르에서 하루하루 망치질만 하다 곧 블레이즈가 나오자 "내가 원하던 마법은 이거다!" 하며 마법사로의 변신을 선언, 험난한 독자생존의 길을 걷기도 했다.


매일 ‘마비노기’에 접속하면 친구들과 메인스트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하루 한단계씩 느긋한 마음으로 진행하다보니 다소 귀찮기도 했던 챕터 스토리가 마냥 즐겁게 다가왔다. 차츰차츰 빠져들어, 루에리를 동정하며 기필코 다크나이트가 되겠다고 팔라딘을 멸시하며(크큭... 흑.화.하는군요...) G3을 향해 달리던 기억. 이러한 메인스트림의 몰입감은, 그 전에 온라인 게임에서 겪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 일단은 동일인물입니다

친구들끼리 가던 던전에 들러 각자 한번씩 힘자랑도 하고, 다같이 돈을 모아 공동 집을 마련하자고 각자 던전을 돌거나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해 뼈빠지게 돈을 모으고, 합주곡 악보를 구해 여러 악기로 합주 공연도 하고. 이리아에서 뗏목을 처음 타보기도 했다. 이때는 혼자서 게임을 즐길 때와는 사뭇 달랐다. 사람들이 어울려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는 것. 그때 깨달은 ‘마비노기’의 즐거움이었다.



■ 너... 맞아? 왜이렇게 변했어?


마지막으로 ‘마비노기’에 접속했던건 작년 여름이었다. 다른 게임을 하며 비교적 평화로운(?) 삶을 보내고 있던 기자는, ‘마비노기’에서 어떤 이벤트를 한다는 소식을 지인을 통해 접했다. 이참에 너도 누렙 좀 많이 올리라는 말과 함께.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런데 접속하고보니, 오 마이 갓. 바로 1일 1환생 드림 프로젝트 기간이었다.

그 뒤로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기자가 목격한 것은 평화로운 내 추억의 게임이 극강의 파워인플레 배틀물이 되어가는 모습이었다. 만화로 치자면 '요츠바랑!'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블리치'가 된 느낌이랄까. 물론 그 전에도 전투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긴 했지만, 이렇게 환생 누적레벨과 스탯, 파워인플레가 전부인 게임이 아니었는데... 던바튼 한구석에서 광장에 몰려든 사람을 보며 추억을 곱씹을 뿐.

▲ 이건 좀 아니었다고 생각해... 하연수양만 빼고

더군다나 C4부터 시작된 스토리도 집중이 되질 않았다. 기억 속의 ‘마비노기’는 분명 아일랜드 신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셰익스피어라니? 몇 번의 시도 이후, 메인스트림 스토리를 외면하게 되었다. 스토리는 전과 연결성도, ‘마비노기’ 안에서 이루어져야할 당위성도 없었다. 메인스트림이 아닌 이벤트성 스토리라면 모를까... 셰익스피어라면 ‘마비노기’가 아니어도 지겹게 재탕되었던 이야기들이었다.

전체적으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던 것들이 묻혀지거나, 부정당했기에 오랜만에 접하는 ‘마비노기’는 굉장히 생소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처음 알고 있던 ‘마비노기’에 비해 뭔가 거대해지고 많이 채워지긴 했는데, 이것이 전체적으로 하나씩 늘려나간 모양이 아닌,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다시 채우는, 리모델링의 느낌이었다.

▲ 우리 친구... 마이 컸네...

결국 친구들도 별로 남아있지 않고, 아이템도 변변찮고, C4, 다이나믹 패치 등으로 너무도 많이 바뀌어버린 게임성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전투는 더이상 대전격투 게임의 공방 느낌은 없이 여타 MMORPG와 다를게 없었고, 스토리는 적당히 수습이 안됐다.

물론 새로운 유저들은 환영할만한 요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은, ‘마비노기’라는 친구가 10년사이 이렇게 자라서 건장해진 것은 좋은데, 내가 기억하던 친구는 더이상 아닌 그런 기분. 다른 친구 만나 더 잘 살고있는 그런 느낌... 그 친구는 이제 내가 알던 'Fantasy Life' 라는 명찰을 떼어내 버리고 저만치 멀리 떠나 있었다.



■ 전투 외에는 장식입니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너무 잘 알아요



‘마비노기’의 주된 업데이트 흐름은 챕터와 제네레이션이었다. 그만큼 ‘마비노기’라는 게임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스토리였다. 다양한 시스템의 추가 및 개선과 챕터의 주 컨텐츠는 언제나 스토리를 위주로 짜여져왔다. 하지만 이미 예견된 일이었듯 점점 전투 시스템이 방대해져가면서, ‘마비노기’는 생활형 RPG에서 생활이 전투를 뒷받침하는 전투형 RPG로 변해갔다.

‘마비노기’는 스토리와 전투의 두가지 큰 방향으로 성장해 나갔으며, 이 때문에 초창기 ‘마비노기’가 가지고 있던 '생활형 RPG'라는 특색은 많이 희석되었다. 특히나 지속적으로 개발책임자가 바뀌면서, 기존의 것을 유지하기보다 각 팀장 성향에 맞는 새로운 요소와 스토리를 도입했고, 때문에 어떤 획기적인 컨텐츠나 스토리라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의미가 퇴색 되었다.

▲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유저와 개발자가 지향하는 바가 다를 때 생겼다. 유저는 그동안 자신이 즐겨온 게임을 좋아하기에, 그에 맞는, 그와 이어지는 내용의 게임을 계속해서 즐기고 싶어한다. 개발자는 계속해서 바뀔지 몰라도, 유저는 한 사람이니까. 유저의 니즈와 개발자의 지향점이 완벽히 맞아떨어지지는 못한 것이다.

이게 시작된 것이 C2이며, 극에 달했던 것이 C4 셰익스피어였다. 이러한 방향성이 모호해진 이야기 확장으로 ‘마비노기’에서 스토리는 결코 중심축이 아닌 일종의 외전으로 밀려나버렸으며, 결국 이야기를 중시하던 유저들은 실망할 수 밖에 없었고, 스토리보다 전투 혹은 캐릭터성, 커뮤니티 컨텐츠 등에 집중하는 유저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 졸업하면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분노의 문학전공)

물론 전투 시스템은 계속 확장을 거듭해, ‘마비노기’는 전투 위주의 RPG로 재편되었다. 최근 ‘마비노기’에서 중점적으로 이루어진 제로 업데이트를 포함한 재능군의 강화는 결국 이러한 유저 캐릭터의 성장 방향을 다양하게 제시하려는 노력이다. 랜스, 듀얼건, 격투 등 새로운 무기류가 추가되고 스킬이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아직 문제는 남아있다. 전반적인 이러한 전투 시스템의 개선이 '양적인 면'에 치중되어 있었던 만큼, 질적인 부분이나 유저간 밸런스는 엉망이 되어버렸고, 또 이 바뀐 전투 시스템과 컨텐츠를 효과적으로 활용할만한 대상 컨텐츠가 없었던 것이다.

울라 대륙의 던전들은 수도 적은데다 어느 던전은 포화 상태에 이를만큼 인기가 높지만 어느 던전은 누군가는 한번도 들러본 적이 없을만큼 양극화를 보이고 있고, 이리아의 예측불가능한 던전, 그림자 세계 등의 전투 컨텐츠 역시 시스템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대부분 단순한 반복 구조였고, 반복에 따른 변수도 없었다. 결국 수많은 무기와 영웅재능 등 유저 캐릭터가 성장할 방향은 매우 많지만, 그렇게 해도 잘 써먹을 데가 없다는 말이다.

▲ 참 많다, 많은데... 정작 내가 할 수 있는건 몇개 없네?

더불어 이런 새로운 무기를 포함한 신 요소들이 누렙이 높은 올드유저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그 해결책으로 '드림 프로젝트'의 1일 1환생 같은 한시적 이벤트를 통해 모두에게 누적레벨을 펑펑 찍어주는 방법을 택한 것도 문제였다. 시스템 근본은 해결되지 않았고 일시적 해소 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이벤트를 통해 당장의 유저불만을 해소시킬 수는 있었으나, 이것이 장기적으로 게임 전체에 긍정적인 효과만 주었는지는 의문이다.

시도는 좋았으나, 이제는 시스템을 올바르게 확장하는 것과 더불어, 그에 걸맞는 컨텐츠가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마비노기’는 이제 게임 자체의 크기와 시스템의 성장과 대조적으로, 유저간 밸런스 격차는 더 커졌고, 컨텐츠는 부족해졌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마비노기’의 다음 과제다.



■ 미워도 다시 한번, '마비노기' 유저들의 변치 않은 사랑


한 게임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비스를 하고, 또한 그 긴 시간을 꾸준히 사랑받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마비노기’는 요금제와 컨텐츠의 변화를 통해 몇 번의 부침과 중흥을 오갔던 게임이다. 이런 면에서 게임계에서는 생각해야할 점이 많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중심이 되는 게임 컨텐츠와 게임성을 완전히 이동시키고 나서 흥행을 거둔 것은, 확실히 주목할만한 일이다.


무엇보다 핵심은, ‘마비노기’는 철저히 '커뮤니티' 중심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마비노기’를 솔로플레이로 즐기는 유저의 비중은 다른 게임에 비해 상당히 낮다. 물론, 이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란걸 미리 말해두고 가야겠다. 이런 커뮤니티성 강한 게임에서 이따금씩 생겨나는 전형적인 부작용들-그들만의 리그, 친목깡패, 어느 심장암 환자와 그의 집사 등-역시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긍정적인 효과 역시 상당했다. ‘마비노기’가 '판타지파티' 같은 오프라인 행사를 성황리에 진행하고 팬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마비노기’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커뮤니티들이 게임 내에서 긍정적인(때론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피드백을 주고 받고, 이것이 게이머 사이를 넘어서서 게임 외부와 게임 자체, 개발자들에까지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마비노기’에 유독 충성도 높은 팬들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다. 그리고 게임의 발전 역시 이러한 팬들, 즉 고객들에 맞춰 나아가기 마련이고, 현재 과거에 비해 크게 변모한 ‘마비노기’는 이런 커뮤니티를 이룬 팬들이 만들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점은 초창기 ‘마비노기’에서부터 이어진 변하지 않는 특징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재미, 그것이 어떤 시스템이나 구체적인 컨텐츠 보다도 ‘마비노기’를 'Fantasy Life' 로서 있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비노기’ 10주년 영상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마비노기’와 유저가 같이 나이를 먹었음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마비노기’는 이제 열살, ‘마비노기’와 10년을 함께한 유저라면 최소 스물두살은 됐다. 앞으로 ‘마비노기’는 또다른 10년을 준비해야 한다. 바로 자신과 같이 자라온 유저들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마비노기’가 유저와 동반 성장을 하는 동안 위기도 몇 번 있었듯, 유저가 개발자들에게 요구하고 제시하는 방향성은 수없이 많고 좋고 나쁨 역시 확실히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개발자들의 결과물 역시 그것이 성공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건 결국 유저의 몫이다. 비록 10년이란 시간 동안 쌓아온 기반이 두텁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험이 없지는 않다.


요즘 MMO 게임들의 수명을 논할 때 10년이면 오래 갔다는 평을 듣곤 한다. 에버퀘스트나 울티마 온라인 같은 과거의 기라성 같은 명작들도 근근히 유지해나가는 시점이다. WoW 역시 10년을 넘기며 유저수가 감소세에 들어섰다. 다른 게임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와중 ‘마비노기’는 되려 10년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 액티브 유저가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10년 전 똘망똘망한 눈과 고사리만한 손으로 게임을 즐기던 기자는 이제 계란한판을 다 채워가는 나이가 되었고, 대다수의 ‘마비노기’ 유저들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과연 어떻게 변해있을지도 모르지만, 다음 10년 뒤에도 ‘마비노기’라는 게임을 해볼 수 있다면 '그래, 그땐 그랬었지.' 하며 추억에 젖어 미소지을 수 있지 않을까. 게임이 어떻게 변했든지 간에 말이다. 한 번 그때를, 기다려 본다.

'마비노기' 10주년 기념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