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벤스 숲에 도착하니 아르카나 부대원들과 소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복장은 가지각색이었지만 일사불란하게 물자를 정리하는 모습은 이러한 활동이 이미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처럼 숙달된 느낌이었다. 훈련을 통해 반복숙달된 병사들과는 다른 느낌이랄까.

다들 분주해 보여서 섣불리 말을 걸지 못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두드려 놀라서 돌아보니 한 남자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히야~ 아름다운 폭풍 가디언 아르카나 아가씨께서 여긴 무슨 일이신가~?"

"저를 아시나요?"

"오늘 처음 봤는데 알 리가 있나요. 그냥 지레짐작으로 말해 본 거죠. 귀가 뾰족한 걸 보면 나이아스족이거나 님프족일 텐데 길지 않고 짧은 모양이니 님프족이겠죠. 님프족은 태어날 때부터 아르카나의 운명을 짊어진다고 들었고 창을 쓰는 님프족이면 가디언이 분명할 거고요.

화들짝 놀라는 걸 보니 경계심은 많은데 눈빛은 호전적인 걸 보면 아무래도 차분한 이미지의 대지 가디언보다는 폭풍 가디언이지 않을까요? 덧붙여서 아름다운 건 누가 봐도 인정할 테니 짐작이라고 말하기 힘들군요. 하하하"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그의 말을 나는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가벼워 보이는 언행과는 달리 상당히 예리한 눈썰미에 조금 놀랐던 것이다. 물론 내가 님프족 가디언이란 것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지만, 순간적인 나의 태도를 보고 폭풍 가디언이란 사실까지 알아내는 것은 정령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님프족이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인데...




"상당히 예리하시군요. 레비나님을 만나러 온 유피라고 합니다."

"자신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걸 예리하다고 하다니... 혹시 공주병이라도...?"

"네? 아, 아니에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하핫, 농담입니다. 저는 나태의 소울 탈환을 위해 모험가 협회에서 파견 나온 립튼이라고 합니다. 이번 임무를 책임지고 있고요. 음, '당신이 책임자라니 말도 안 돼'라는 눈빛이시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책임자라니 하하"



'당신이 책임자라니 말도 안 돼'라고 정확하게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나는 매우 뜨끔해 하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이 남자의 행동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형식적으로 인사를 한 뒤 한참을 헤매다가 아르카나인 퓨엔을 만났다.


"유피님, 오랫만이에영~"

"안녕하세요, 퓨엔님. 그 말투는 여전하시네요."




"헤헤, 그럼 당연하져~ 이게 제 개성인뎅~ 레비나님은 잠시 자리를 비우셨으니 제가 설명해드릴께영. 모트롤 군단이 바오크 부대와 합류하는 바람에 우리 아르카나 부대원들만으로는 상대할수가 없게 됐어영. 그래서 모험가 협회에 도움을 요청한 건뎅. 웬 능글능글한 남자가 총책임자라구 하더라구영.

첨엔 맘에 안들었는데영. 진지의 위치 선정이나 물자 관리하는 걸 보니 상당히 경험이 많은 모험가 같았어영. 역시 사람은 겉모습 만으로 판단하면 안 되겠더라구영."


"모트롤 만으로도 벅찬데 바오크까지...그래도 모험가 협회에서 도와준다니 형세를 비슷하게 맞출 수는 있겠네영. 아, 아니. 있겠네요"



퓨엔님과 얘기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 말투가 옮게 되는데 안 그래도 립튼 대장과의 대화에서 정신력을 너무 소비해버린 탓인지 금세 또 말투를 따라 해버렸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어.


"히힛, 유피님도 이 말투가 마음에 드셨나 보네영. 부끄러운 건 잠깐이에영. 아, 그리고 바오크들이 합류한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모트롤들의 힘이 갑자기 강해지는 바람에 부상자들이 늘어나고 있어영.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네영."




[쿵!쿵!쿵!쿵!]


그때 갑자기 멀리서부터 땅을 울리는 진동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갔다.


"골렘입니다! 근처 무너진 신전에서 갑자기 골렘들이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골렘이라니, 지금 아르카나 부대는 모트롤, 바오크와 대치 중인 상태. 파견 나온 협회 모험가들이 준비를 마칠 때까지 버티고 있을 뿐이라 골렘까지 막아낼 여력이 없었다. 립튼이 달려오더니 말했다.


"아~ 이런, 아름다운 레비나님 곁에서 싸우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모험가 협회는 골렘을 막아내는 데 주력해야겠어요. 모트롤과 바오크와의 전투는 아르카나분들께서 감당하셔야 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네영. 그럼 부탁 좀 드릴게영."



골렘이 날뛰던 것은 비석 유적지와 폐허의 골짜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인가... 유적지에 봉인되어 있던 골렘들이 나태의 소울이 등장한 이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아직 골렘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나태의 소울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다. 립튼은 대화를 마치고 모험가들과 함께 골렘을 막으러 사라졌다.


"이렇게 된 이상 바오크를 처리할 방법을 찾아봐야겠네영."

"수적으로 불리할 때는 적의 지휘관을 암살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니, 제가 한 번 시도해볼게요."

"마음 같아서는 제가 가고 싶지만, 저는 전투 아르카나가 아니라서영... 미안해영."



바오크의 합류로 모트롤 부대를 무찌르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여기서 나태의 소울을 되찾지 못한다면 더 이상 추적은 불가능할 것이다. 드디어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나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겨 바오크의 진지로 향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