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빨리 다가올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세계.

가상현실로 게임을 즐기자는 아이디어는 오래 되었다. 수많은 실험과 도전이 있었지만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술적 요건은 물론이고, 그 기술을 게임에 구현할 수 있을 만큼 경험도 쌓여야 했다. 수익 창출 역시 가능해져야겠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HMD는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등장했다. 1963년, 아이벤 서절랜드가 처음 만든 시작 단계 기기가 최초로 분류된다. 컴퓨터가 고도로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무거웠고, 천장에 설치해 단순한 선만 보여주는 기능이었다. 1990년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게임산업에 HMD를 적용하기 시도했고, 이 시도는 오큘러스 리프트에 이르러 상용화를 눈앞에 둘 정도로 완성되어갔다.

가상현실은 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제 어떤 위치에 서서 무슨 미래를 바라보고 있을까. 그리고 국내 시장에서 가상현실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가장 적절한 답을 내릴 수 있는 강연자가 KGC2014 단상에 올랐다. 2일차 키노트 강연 오큘러스VR 코리아 서동일 지사장이었다.

▲ 오큘러스VR 서동일 한국 지사장



가상현실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 - "제반 기술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상현실은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이용되고 있다. 엊그제 헐리우드에서도 가상현실을 이용해 영화를 찍는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고. 과학 발전에도 유용하다. 의료실험에 쓸 시체를 구하기 어려운데, 가상현실로 해결하기 시작한 것이 그 예다. 비행기, 선박, 건축 등을 제조하는 과정을 미리 체험해보고 비용을 줄이는 용도로도 쓴다. 운전과 군사 훈련에 사용한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이로 인해 다른 분야도 함께 발전하고 있다. "좋아하는 게임의 사양이 높다면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게 되잖아요. 비슷한 원리입니다." 그래픽카드가 GTX980까지 요구되는 오큘러스 VR은 처음에 부담이었다. 대부분의 콘솔 게임은 아직 30프레임을 사용하는데, 오큘러스 리프트는 최대 90프레임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처음 출범했을 때는 하드웨어 사양이 너무 높다는 불만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야기했죠. '제반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말이죠. 여러분이 가상현실기기를 손에 쥐는 그 순간은, 아마 GTX980의 가격이 지금의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을 겁니다. 지금도 하드웨어 업체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발전을 빠르게 앞당기고 있습니다."



가상현실을 스마트폰으로까지 구현하는 시대가 왔다. 올해 9월 공개된 오큘러스 리프트의 신 프로토타입 '크레센트 베이'는 모바일 버전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프트웨어 발전도 무시할 수 없다. 유니티와 언리얼 등 엔진, 그리고 각종 툴이 가상현실을 더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제반 기술은 우리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 이 세상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해보세요"

번지소프트에서 개발한 '데스티니'는 개발 비용이 장장 1천 억을 넘는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수준이다. PC와 콘솔 시장은 이제 혁신으로 승부하기는 한계가 온 것이고, 모바일도 마찬가지라고 서동일 지사장은 내다봤다.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한 시점, 그것이 주장의 골자다.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 "가상현실에 걸맞는 게임 디자인을 더 고민해야 합니다"



가상현실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스카이프가 서양 사회의 통념이었던 "누가 오디오가 아닌 비디오로 이야기해"를 무너뜨렸듯, 누가 가상현실에서 만나겠느냐는 통념을 깰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 5번가에서 만나자"고 전혀 본 적 없는 장소로 약속을 잡더라도, 미리 가상 네비게이션을 작동해 그 지역을 찾아가본 후 실제로 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바타 같은 무궁무진한 세계를 펼쳐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완성된 것은 아니다.

서동일 지사장은 아이폰이 처음 들어왔을 때를 예로 들었다. 초창기에는 스마트폰 게임에 피처폰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당시에는, 개발자들이 터치 인터페이스가 주는 재미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VR기술 역시 "이걸로 기존에 있는 어떤 게임을 하면 끝내주겠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정말 가능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평소 생각도 않던 것들을 고민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이해해야 한다.

"밸브에서 '팀포트리스2'와 '하프라이프2'를 VR 버전으로 컨버팅해본 적이 있어요. 그 결과, 개발자의 대답은 '아니올시다'였죠."



오큘러스가 아직 개발자용으로만 판매되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가상현실 게임 디자인을 이해해야 하고, 공간 인식 오디오 역시 고려해야 한다. 가상현실에서는 어떤 소리가 나는 위치에 따라 공간 인지도가 확 올라간다.

딱 봤는데 내 손이 안 보여, 내 앞에 춤추는 캐릭터를 만져보고 싶은데, 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나를 돌아보면 머리만 덜렁 돌아다니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내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가상현실에서 상호작용이 가능하지?" 이런 의문을 풀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가상현실의 미래는? - "이미 시작했습니다. 지금 움직이세요"



"게임백서 자료입니다. 2012년에서 2013년 사이에 모바일게임 시장이 세 배 이상 커졌고, 동시에 PC온라인 시장이 침체됐죠. 그런데, 그 뒤로 모바일게임 시장이 안 커요. 1년 만에 포화된 겁니다. 하나가 뜨면 거기에 우르르 몰리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미 자리는 거의 잡혔어요. 소규모 모바일 팀을 지금 만들어 성공하겠다고 나서면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이어 나온 자료는 구글 플레이 6개월 동안의 매출 순위였다. 상위권에 신규 게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만의 리그에요. '클래시 오브 클랜' 국내 마케팅 비용만 100억~200억 원이에요. 모두의 마블 광고비용도 그에 밀리지 않고요"



모바일시장도 이제 돈 많은 퍼블리셔와 기업의 장이 되었다는 것이 서동일 지사장의 설명이다. 거둔다나 구글, 카카오, 퍼블리셔와 수익을 분배하다 보면 실제 개발자가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게다가 모바일은 주 단위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PC나 콘솔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니가 PSN을 인디에 오픈한다고 했죠. 취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성공률이 얼마나 될까요. 모장처럼 극히 드문 예외 말고는 대부분 실패하는 시장입니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가상현실 게임의 진짜 재미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한다. 똑같은 버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플랫폼이 줄 수 있는 재미를 찾아야 한다. "앵그리버드는 당겨서 쏜다는 아이디어 하나로 뜰 수 있었죠"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에서 무엇이 재미있을지를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 다빈치 연구소장은 2030년까지 전세계 일자리 중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리를 공장 자동화가 대체하고, 새로운 촉매 기술이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가 말한 새로운 촉매 기술 중 하나가 가상현실이었다. 기기 개발자와 엔지니어가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며, 기기공학과 전자공학이 발전한다는 것. 가상현실 전문가가 내년부터 인기 직업이 될 가능성도 내비쳤다.



"가상현실이 더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는 마음으로는 시대에 뒤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되면 그 시장에는 장담컨대, 이미 VR의 'COC'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과 경쟁해야 해요. 기다리지 않고 지금부터 새로운 인프라 기술 개발을 연구한다면 그건 분명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너무나 많은 시장에서 보아왔어요.

하드웨어는 콘텐츠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JRPG 팬인데, 닌텐도에만 나왔던 파판이 7편부터 PS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PS1을 샀습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면, 그것은 새로운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가상현실 시대는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좋든 싫든, 이미 전세계의 개발자들은 시작하고 있어요. 가상현실은 미래 기술의 각축장이 될 겁니다. 저는 가상현실이 세상을 변화시킬 기적을 믿고 있습니다."




다음은 키노트 강연 후 프레스룸에서 진행한 단체 질의응답 내용이다.



Q. (청중 질문) 혹시 오큘러스 리프트 내부에 그래픽카드를 내장할 계획도 있나?

공개하기가 모호하다.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진 않겠다.


Q. 출시가 임박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한국 지사에서 우리나라 업체라던가 우리나라 안에 있는 외국기업들과 협업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말해줄 수 있나?

우리가 발표하는 것 보다는 개발사들이 직접 발표를 하고 있다. NDA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나와 있는 소식 말고는 알려줄 수가 없다. 예전에 '이브 온라인'을 제작했던 CCD에서 '이브-발키리'라는 우주 전투 게임을 만들고 있고, 국내에서는 모바일 게임을 하나 제작하고 있다.

이외에도 웹사이트 '오큘러스 쉐어'에서 다양한 오큘러스 관련 콘텐츠들을 체험해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인디게임들도 있고,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Q. 한국에서는 아직 가상현실이 낯설다. 가상현실을 좀 더 대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하고 있나

오큘러스 리프트는 일반 소비자용이 아니라서 일반인이 친밀감을 느끼는 건 아닐 것 같다. 일반인들이 친밀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용 오큘러스 모델이 나와야 할 것 같다. 그전까지는 꽤 어려울 듯싶다.


Q. 최근 발표된 삼성 기어 VR에 대해서도 뭔가 소식이 있을 것 같다.

NDA가 있어서 우리는 이야기를 해줄 수 없다. 삼성전자 쪽에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Q. 가상현실에서 멀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이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 오큘러스를 체험해보고 멀미를 호소하는 분들이 있는 편이다. 그러나 예전에 존 카멕의 '퀘이크'가 나왔을 때를 생각해봐도, 그때도 어지러움과 멀미를 호소한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도 FPS를 하면서 멀미를 호소하거나 3D RPG에 어지러움과 멀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마다 멀미에 대해 민감도 차이가 있어서 무조건 오큘러스가 멀미를 준다고 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멀미가 왜 일어나고, 그것을 어떻게 최소화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Q. 최근 발표한 신형 오큘러스 '크레센트 베이'에서는 멀미를 잡았나?

미국 컨퍼런스에서 신제품의 프로토타입을 공개했었다. 여기서 멀미를 잡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DK2 모델에서도 해상도를 올리고 잔상을 없앴다. 그리고 공간지각 여부도 높여서 기기 자체에서 오는 어지러움은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 멀미가 일어나는 부분은 다른 콘텐츠들이 최적화가 잘 이뤄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우리도 관련 개발사들을 찾아가 우리가 알고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


Q. 모바일 부분도 개발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오큘러스의 크기를 보면 휴대용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휴대용 모델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현재 오큘러스 리프트의 PC 버전은 선으로 연결하기 때문에 휴대하기는 좀 무리가 있다. 키노트에서도 말했지만, 우리의 최대 숙제는 무선화와 경량화다. 아직은 제반 기술이 부족한 상태다. 무선으로 전송되는 데이터와 출력되는 화면에서의 갭을 잡는 게 중요하다.

근미래에 보고 있는 오큘러스의 완성된 형태는 안경과 같은 형태다. 게임 '헤비레인'에서 검은색 안경을 쓰면 세상이 가상현실로 바뀌는 캐릭터가 있다. 그게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오큘러스의 이상적인 형태다. 언제쯤 그런 형태로 내놓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DK2 버전이 나왔을 때도 다들 2-3년이라고 생각했지만 6개월 만에 선보였었다. 아마도 최종 형태도 생각보다 빨리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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