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미 좀비가 점령했다. 그런데도 이건 정말 뭣 같은 상황이다.

쏘면 쏘는대로 미간이 뚫렸던 좀비 놈들이 지능적으로 돌아왔다. 다리에 힘줄이 남은 것들은 점프도 마다하지 않는다. 육체와 두뇌가 강화된 녀석들의 송곳니는 잠시도 쉬지 않고 나의 목덜미를 노린다.

탄알집은 총알로 빼곡하게 채웠다. 그래도 저 감염자들을 깡그리 처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놈들 머리통 하나하나 정성껏 총알을 박아 주고 싶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오늘 훈련소에 신병이 몇 명 들어왔다. 수류탄 쥔 손가락이 부들거리는 모양새를 보니, 조만간 놈들에게 당할 것이다. 그냥 죽으면 차라리 다행이지. 쇠창살 밖으로 우글대는 녀석이 한 명 더 늘어나는 것 보다는.





▲ '이터널시티3' 플레이 영상


■ 일취월장한 그래픽, 수준급의 손맛

'이터널시티3'의 분위기는 서문에서 묘사한 것과 비슷합니다. 감염자가 차고 넘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런데 현대 서울을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버스 타고 지나가던 그 거리, 전철 창 밖으로 스쳐가던 그 풍경이 무대란 말이죠. 위화감 없는 배경은 현실적인 느낌과 어우러져 괜찮은 몰입도를 제공합니다.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보기 어려운 개성있는 세계관. 여기에 3인칭 슈터 MMORPG라는 장르적 특성이 버무려지면서 제법 좋은 시너지를 냈습니다. 그 결과, '이터널시티1'은 대중적이지는 않더라도 고정 팬 층을 확보했죠. 물론, 2편은 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3편 제작 소식과 함께 스크린샷이 처음 공개될 때 기존 팬들은 아마 깜짝 놀랐을 겁니다. 저도 그랬어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자체 개발한 '불도저 엔진'의 최신 버전을 사용했는데, 모든 구성이 3D로 제작되어 한 층 더 깊이있는 그래픽을 선보였습니다. 이제 이터널시티의 낮은 전장의 흔적이 쌓인 스산한 분위기가 그대로 연출됩니다. 밤은 더 어두워졌으니 조명 파이프 꼭꼭 챙겨야 하고요. 현실감을 높여주는 그래픽이 전작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2D 기반의 작품이 시대를 거치며 3D로 전환하는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블리자드의 대표적인 IP인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는 전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닌텐도의 '슈퍼마리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등 역사가 깊다 싶은 작품들 역시 시대의 흐름을 무난하게 따라갔지요.


▲ 3D로 진화하면서 한 층 깊이있는 연출력을 보여 줍니다.


액션 장르 게임은 이러한 변화를 적용시킬 때 신중해야 합니다. 그래픽 개선으로 화려한 연출을 얻을 수는 있겠죠. 헌데 2D 특유의 타격감을 깜빡 두고 오는 경우가 흔하거든요. 전작은 분명 짝짝 붙는 맛이 있었는데 신작으로 넘어오자마자 가슴을 휘감는 허전함. 뭐라 콕 찝어 말하기는 애매한 이 기분, 다들 한 번쯤 겪어 보셨을 겁니다.

다행히 '이터널시티3'의 손맛은 그리 나쁜 편이 아닙니다. 어떤 총기를 쓰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은 수준이에요. 개발진은 '보다 강화된 액션성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결과물만 놓고 보면 지켜낸 약속입니다.

다만, 레벨 구간을 따라 몬스터 종류도 변하는 기존 MMORPG와 비교하면, 좀비 구성이 다소 정형화된 편입니다. 아쉬운 부분이에요. 손맛은 괜찮은데 내 총알을 받는 좀비는 항상 그놈이 그놈이니까. 보다 다양한 적, 여기서 우러나는 질리지 않는 전투가 추후 개발 계획서에 적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별표 쭉쭉 쳐서.

▲ 총을 쏘는 느낌과 적의 반응은 준수한 편.


■ 심리스 MMO 못지 않은 이동의 자유, 하지만 효율성은...

개선된 그래픽과 함께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은 주변 배경과의 상호작용입니다. 사실 그리 거창한 건 아니고요. 자동차나 벽 위로 넘어갈 수 있는 정도입니다. 뭐, 전작에서도 점프 키 쓰면 여기저기 올라갈 수는 있었죠. 하지만 '이터널시티3'에서는 점프 키 뿐 만 아니라 별도의 '오르기' 버튼도 구현되었습니다. 점프로 올라가기에는 좀 애매한 높이다 싶을 때 사용하면 됩니다.

오르기가 구현되면서 얻게 된 장점은 꽤 큽니다. 심리스 방식의 풀 3D MMORPG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동에 대한 자유도가 상당히 넓어졌어요. 목적지까지 가는 이동 노선을 압축시키는 것은 기본, 덕지덕지 쌓인 폐차 위로 올라가 몰려드는 좀비를 학살하는 전투 씬 연출은 보너스입니다.

다만, 이 부분에서 소소한 단점도 노출되었습니다. 이동에 대한 자유도를 넓히자는 취지는 물론 좋아요. 하지만 오르기 키 못지 않게 자주 사용되는 점프 키가 효율은 더 뛰어납니다. 오르기를 아예 사용하지 않더라도 게임플레이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말이죠. 단순함을 추구하는 유저라면 그저 불편한 시스템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겁니다.

▲ 오르기는 게임에 자연스러움을 더해 줍니다.

▲ 그런데 점프가 더 실용적이에요.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아쉬움인데요. 캐릭터의 동작 연결이 그리 매끄러운 편은 아닙니다. 어떤 오브젝트와 상호작용을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도록 만드는 거, 물론 어렵죠. 그건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할 때 얻는 강점도 상당하거든요. 수작과 명작의 차이, S급과 트리플 S급 게임의 차이는 이런 마감도에서 나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울러 당신이 열심히 기어올라간 담장도 좀비들에게는 별 문제가 아닙니다. 일부 좀비는 플레이어의 점프력을 훨씬 뛰어넘으니 말이죠. 놈들의 체력이 적은 편도 아니고, 이렇게 폴짝대기까지 하니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영화같이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실리를 챙기고 싶다면 총구를 겨눈 채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여담으로 3편에 들어서며 추가된 '구르기'는 전투의 역동성을 극대화하는 촉매입니다. 이동시간 단축, 적의 공격 회피 등 활용 방법이 무궁무진하거든요. 게임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먼저 익혀둬야 할 기술입니다.

▲ 넓은 범위를 자랑하는 '구르기'


■ 첫 맛은 담백! 그러나 여전히 복잡미묘한 뒷 맛.

'이터널시티3' 공식 블로그를 보면, 신작에 대중성을 덧붙이기 위해 개발진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리즈의 특징이었던 몰입도 높은 퀘스트와 자유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화끈한 액션을 더했죠. 이는 실제 게임에서도 잘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숨부터 나왔던 불친절한 인터페이스도 이번 작품에서는 많이 좋아졌어요. 스킬트리 및 무기 개조 시스템의 구성도 비교적 직관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기분 좋은 변화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요소가 아닌, 게임을 즐겨야만 알 수 있는 내면 요소는 여전히 불친절합니다. 초보 유저들이 게임에 접속하고 최종 레벨까지 올리는 데 어떠한 불편함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게 요즘 게임들의 특징이잖아요. '검은사막'이 예외이기는 하나, 이 게임은 당초 잡았던 콘셉트가 그 쪽이었으니 예외로 할게요.

'이터널시티3'는 대중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한 작품입니다. 과한 친절함이 약이냐 독이냐는 지금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논제이기는 합니다. 헌데 '이터널시티3'의 불친절함은 너무 '고전적'이라는 게 문제죠.

단도직입적으로 물약 값, 무기 개조 값이 너무 빡빡합니다. 이 뿐이라면 모르겠는데 후반까지 사용할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레이드 외에는 없다는 것과 겹치면 상황은 더 악화되죠. 이러면 온라인게임 특유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여지가 있어요. 진원지는 다르지만 전작들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은 바 있습니다. 유저들에게 많은 불만을 샀던 요소인 만큼, 해결이 시급한 사항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는 추후 CBT를 진행하면서 조율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니, 게임 출시 전에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다양한 직업군을 무색케 하는 총기 밸런스도 아쉽습니다. 튜토리얼을 할 때 훈련 교관이 분명 저한테 그랬거든요. 이건 주무기, 저건 부무기라고. 주무기는 화력이 강하고 부무기는 총알을 많이 갖고다닐 수 있다고. 헌데 막상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치면 부무기를 꺼내 싸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부무기가 더 세니까.

게임 내 정보 표시로는 주무기의 DPS가 더 높지만, 막상 체감되는 위력은 부무기가 더 강합니다. 저 뿐만이 아닌 다른 유저들도 비슷한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소수의 의견은 아닙니다. 물론, 좀비 잡는데 주무기고 부무기고 다 세면 좋은 거 아니냐라고 반문하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이 역시 게임의 마감도와 연관이 있는 만큼 아쉬운 건 사실입니다.

▲ 보스에게는 권총이 약!


■ 개성은 여전히 합격, 마감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단점이 있지만, 이것이 '이터널시티3'의 색을 흐리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40명 넘는 플레이어가 좀비 웨이브를 막는 '어썰트', 여러 목표를 수행하는 '레이드', 지역 해방과 탐사 등 각 미션의 개성이 매우 뚜렷하며 종류도 다양합니다. 전작의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대중성도 상당 부분 끌어올린 것도 2차 CBT 체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션 전달 구조는 다소 형식적이지만, 독특한 세계관과 필드 디자인이 뿜어내는 몰입도 자체는 높은 편입니다. 보다 현실적인 배경과 연출, 전투 시 빠른 속도감 등 칭찬해줄 구석은 많지만, 조금은 아껴 말하려고요. '이터널시티1'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봐 온 시리즈인 만큼, 보다 성숙한 완성도로 빚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몬스터넷은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게임 개발에만 매진하는 대표적인 개발사 중 하나입니다. 게임에서 보이는 완성도와는 별개로 유저들의 피드백이 꾸준히 올라오는 것 역시 이러한 개성을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CBT 때는 유저와 함께 걷되, 자신의 색을 더욱 매력적으로 발산하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런 박진감이 그대로 구현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