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타2에는 110명의 영웅이 존재한다. 모든 영웅이 골고루 쓰이기 때문에 영웅 간 밸런스가 잘 잡혀있다는 평을 듣는 도타2에도 대회에서 유난히 선수들의 사랑을 받는 영웅은 존재한다. 때로는 패치를 통한 버프나 경쟁자들의 너프 덕분에, 때로는 잊혀졌던 옛날 아이템 빌드 덕분에 1티어에 군림하며 프로게이머들에게 격한 환영을 받는 그들.

그들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시작된 영웅본색! 이번 주인공은 픽만 해도 욕을 먹던 신세에서 벗어나 '무상성 갓스나'란 호칭까지 얻으며 갖은 인생의 굴곡을 겪은 영웅, 저격수다.

▲ 우리에게 익숙한 저격수의 모습이다.

◈ 저격수가 프로 대회에? '스시락'이 '갓스나'가 되기까지

저격수가 프로 대회에 등장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카운터가 너무나 많고 명확했기 때문에 저격수는 공방에서도 준 트롤픽 취급을 당하는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공방에서도 그런 취급을 받는데 하물며 프로 대회에서는 오죽했을까. 저격수는 농담으로라도 프로 대회에 등장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영웅이 아니었다.

하지만 퀴퀴한 음지에서 서식하던 저격수에게도 'Icefrog'의 축복의 손길이 닿았다. 거의 매 패치마다 이름을 올리며 10여 차례가 넘는 버프를 받은 끝에 저격수는 마침내 프로들의 눈에 들어올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격수가 나타나면 아군은 불안해하는 것이 현실이다.


▲ 10번이 넘는 버프를 받고나서야 저격수가 대회에 나타날 수 있었다. (출처 : 리퀴드도타)


게임을 하지 않은지 오래된 도타2 유저에게 '지금 저격수가 프로 대회에서 1번 캐리로 활약하고 있다'고 얘기를 한다면 아마 그 사람은 어디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냐고 면박을 줄 것이다. 그 정도로 저격수란 영웅은 너무나 카운터치기 쉽고, 심지어 카운터 영웅조차 많은 그런 캐릭터였다.

그러면서도 레인전 단계에서는 긴 사거리를 이용해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들고, 궁극기로 킬이란 킬은 죄다 뺏어가니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남들의 미움을 사기 딱 좋은 영웅인 셈.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약골이 계속 옆에서 신경을 긁었을 때 사람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듯했다.

심지어 도타2를 처음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가장 먼저 플레이하게 되는 영웅이 바로 저격수다. 튜토리얼 기본 플레이 영웅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도타2를 시작한 후 유저들은 저격수부터 다뤄보게 되고, 그 여파가 일반 매치에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할 줄 아는 영웅이 많지 않으니 초보 유저는 저격수를 고르게 될 것이고 그 후에 벌어질 일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 왜... 왜 하필이면 저격수죠? 정말 이게 최선입니까?


하지만 저격수에게도 저격수만의 장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마어마한 사거리를 이용해 레인전 단계에서 상대를 견제하기 좋고, 후반에는 사거리를 활용해 게임을 캐리하는 것. 저격수가 아이템을 잘 갖춰 총을 난사하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영웅은 저격수에게 붙기도 전에 죽어버리기 십상이다. 괜히 '무상성 갓스나'란 별명이 있겠는가.

저격수 플레이의 핵심은 Q스킬 유산탄이다. 유산탄은 마나 소모도 적고 최대 3회까지 충전되기 때문에 크립 웨이브가 한 번 올 때마다 계속해서 써줄 수 있다. 유산탄의 대미지가 생각보다 강해서 저격수를 상대하는 영웅들은 레인전에서 유산탄과 평타 견제를 동시에 맞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더 중요한 점은 유산탄을 쓰면 해당 지역의 시야를 밝혀준다는 것! 룬 체크를 할 때나 레인전 단계에서 어쩐지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싶을 때 주변에 한 번씩 정찰 용도로 뿌려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유산탄과 평타 공격으로 일방적인 딜교환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면 이는 곧 레인전 운영 상의 이득으로 이어진다. 저격수는 시종일관 레인전 단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저격수에게 맞아 체력이 많이 깎인 상대는 소극적인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다. 평타 투사체 속도가 거의 없다시피할 정도로 빠르기 때문에 저격수는 한 번 점한 우위를 쉽게 내주지 않고 계속해서 막타, 디나이에서 앞설 수 있다.

하지만 저격수를 플레이하는 사람도 방심해선 안된다. 저격수에게 레인전 주도권을 내준 상대는 십중팔구 갱킹을 요청할 것이며, 저격수는 도타2의 영웅 전체를 통틀어 이런 갱킹에 제일 약하기 때문이다. 두어 번 갱킹을 당해 죽기 시작하면 저격수는 순식간에 맛 좋은 도시락, 흔히 '스시락'이라 불리는 존재가 되기 쉽다. 적 서포터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타워 뒤로 숨거나 적 크립 웨이브에 유산탄을 뿌려 레인을 단번에 밀어버린 후 아군 크립이 적 타워에 죽게 만들어 레인을 초기화하면 좋다.

▲ 저격수가 성장만 잘하면 VG의 '슈퍼'처럼 뛰어난 캐리력을 선보인다.

저격수가 많이 죽지 않고 후반까지 경기를 끌고 왔다면 이제는 화력을 폭발시킬 시간이다. 한타 때 저격수가 할 일은 어렵지만 간단하다. 그저 위치를 잘 잡은 뒤 적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유산탄으로 진로 방해를 하고 무자비하게 공격을 날리는 것. 잘 큰 저격수는 그야말로 상성이 거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캐리력을 선보이기 때문에 유저들은 오늘도 대회에서 저격수가 경기를 캐리할 경우 '무상성 갓스나'란 호칭을 붙이며 저격수를 치켜세운다.

하지만 도타2에는 점멸 단검이 있기 때문에 저격수는 한시도 마음을 놓지 말고 순간순간 최적의 위치를 찾아내는 센스가 필요하다. 언뜻 보면 패시브가 2개라서 쉬운 영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플레이어의 컨트롤을 많이 타는 상급자용 영웅인 셈.


◈ 저격수, 부술 수 없다면 가져버리겠어!

정말 잘하는 저격수를 만나 캐리 받은 경험을 가진 유저는 몇이나 될까? 아마 많은 유저가 아군으로 '스시락'을 배정받아 수없이 고통을 받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우리 팀에 저격수가 있다면 캐리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어차피 저격수 때문에 질 확률이 높다면 우리가 저격수를 해버리는 건 어떨까? 기자는 '부술 수 없다면 가져버리겠어!'란 마음가짐으로 저격수를 골라서 아군들에게 고통을 주기로 했다.


▲ 이 영웅은 도타2 한국 서버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된 영웅이다. 히익! (출처 : 넥슨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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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수 플레이시 유의 사항!
- 정말로 해야만 하겠습니까? : 사실 웬만해선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 그렇다면 사전에 아군에게 백배사죄하는 마음가짐으로 '저격수를 픽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아군의 인성이 좋다면 알아서 저격수를 보호하기 위한 픽을 해 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비난을 할 것이다. 하지만 비난을 받든 받지 않든 저격수를 한 이상 정치 대상 최우선 타겟이니, 어차피 버린 몸 이러나저러나 픽을 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 그렇다면 마지막에 선택하십시오 : 패기 있게 선픽으로 저격수를 가져가면 영혼 파괴자, 폭풍령, 태엽장이 등 저격수의 온갖 카운터 영웅이 줄줄이 나타날 것이다. 반드시 상대 영웅을 끝까지 보고 픽을 하자.
- 스킨 : 도타2 유저라면 누구나 구매한다는 TI 기록서 보상 '각인 기관단신총', 대부분 이 아이템이 있을 것이니 이걸 착용하자.

1. 레인전에서

레인전에 임하기 전에 반드시 위의 유의 사항을 따르자. 저격수 선픽을 했다가는 어떤 큰일이 벌어질지, 아군으로부터 어떤 소리를 들을지 장담할 수 없다. 국내에서 피지컬로는 따라올 선수가 없다는 MVP 피닉스의 '큐오' 김선엽조차 레이브와의 경기에서 패기의 저격수 선픽을 꺼냈다가 매우 험한 꼴을 당했다는 걸 기억하자.


▲ 패기의 저격수 선픽은 프로게이머조차 초라하게 만든다...


레인전 단계에서는 유산탄은 어찌 보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스킬 사용 자체엔 부담이 없지만 유산탄을 자주 쓰면 아군 크립이 레인을 밀어버리게 되므로 그만큼 갱킹에 더 취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맞는 유산탄 사용으로 아군 크립을 아예 상대 타워 앞까지 밀어 넣은 후 레인을 초기화하는 등 센스 넘치는 플레이가 필요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미니맵을 체크해 갱킹에 당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 막타를 치려는 상대 머리 위에 유산탄을 뿌리면 굉장히 짜증난다.


레인전에서 저격수가 갱킹을 당했다면 사실상 자력으로 살아남기는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저격수는 잘 성장했을 때의 캐리력을 대가로 생존과 관련된 모든 기능을 상실했다고 보면 된다. 유산탄은 분명 좋은 스킬이지만 역으로 사용자에게도 부담을 안겨주는 스킬이다. 때문에 저격수를 플레이하는 유저는 유산탄을 써서 딜교환에서 이득을 봤다고 마냥 좋아하면 안 된다. 어차피 주기적으로 유산탄을 적 갱킹 예상 경로에도 뿌려 시야를 확보하는 데 쓰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 저격수가 맵을 잘 보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일.



저격수가 레인전에서 '스스로' 무언가 할 일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부분의 다른 후반 캐리들이 그러하듯이 저격수의 레인전 역시 맞레인 상대와 아군 서포터의 실력에 달려있다시피 하니 말이다. 저격수는 그저 레인전 단계에서 죽지만 않고 유산탄으로 어두운 맵을 밝혀 갱킹을 피하기만 해도 할 일을 매우 잘 해냈다고 칭찬받을 것이다. 물론 이게 말처럼 쉬운 플레이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도 수많은 저격수 유저들은 아군의 화끈한 입담을 감상한다.

2. 한타에서

레인전에서든 한타에서든 저격수는 적에게 한 번 접근을 허용한 이상 살아남기 힘들다.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먼저 상대의 시야에 나타나서는 안 된다. 저격수가 상대 시야에 들어오게 되면 점멸 단검이 있는 상대 영웅들은 기회다 싶어 저격수를 잡아먹으러 달려들 것이니까 말이다.

아군의 탱커, 혹은 전투 개시형 영웅이 먼저 싸움을 걸 때까지 평타보다 사거리가 훨씬 긴 유산탄으로 시야만 밝혀주자. 적들이 아군의 전방 영웅들에게 발이 묶이면 그때 나타나서 먼 사거리에서 적들을 공격하는 것이 저격수의 주 임무다. 현실에서의 저격수가 목숨을 걸고 은폐, 엄폐를 하듯이 도타2의 저격수도 적에게 걸리면 죽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게임을 해야 제 몫을 해낼 수 있다.


▲ 저격수 포지셔닝의 나쁜 예


생각보다 많은 저격수 유저가 한참 한타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평타 공격을 중지하고 적 영웅에게 궁극기를 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절대 금물이다. 언제든 적 영웅이 저격수에게 붙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저격수가 제자리에 멈춰 서서 궁극기 장전이나 하고 있다면 '날 잡아먹으십시오'라고 광고하는 셈이다. 특히 저격수의 아이템이 갖춰지면 갖춰질수록 평타 공격이 궁극기 대미지를 상회하기 때문에 한타 도중 궁극기 사용은 더더욱 시간 낭비다.

저격수의 궁극기는 전투 시작 전 체력이 약한 상대 서포터를 겨냥해 위협을 가하거나 도망치는 적을 마무리하는 용도로 쓰는 게 이상적이다. 물론 궁극기로 킬 스틸을 자주 하기 때문에 아군의 눈총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후반에 가서 게임을 캐리 한다는 보장만 있다면 아군도 크게 비난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자를 포함한 많은 유저는 킬만 뺏고 캐리를 못한다는 맹점이 있지만 말이다.


▲ 아군이 마무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신 마무리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아이템이 어느 정도 구비되면 저격수는 의외로 1:1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스카디의 눈'이 핵심 아이템 중 하나라서 매 평타마다 적의 이동 속도, 공격 속도를 늦추는데 거기에 추가로 급소 사격 능력까지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 운 나쁜 상대는 계속 급소 사격을 맞고 극도로 느려진 공격 속도 때문에 팔만 허우적거리다 죽기 십상이다. 아이템이 두어 개 넘게 갖춰지면 자신의 운과 아이템을 믿고 등을 보이지 않는 남자의 싸움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 물론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 흥, 저격수 따위가 어딜 감히... 어어?



3. 아이템

▲ 취향을 많이 타는 저격수의 아이템들.

저격수의 아이템은 유저의 취향을 상당히 많이 타는 편이다. 순간적인 폭딜을 선호하는 사람은 '광기의 가면'을, 공격 속도를 중시하는 경우엔 '혼돈의 망치', 안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산화와 야차' 등 사람마다 저격수 아이템 트리는 천차만별이다.

모든 캐리의 필수 아이템 '칠흑왕의 지팡이'를 제외하면 저격수의 공용 핵심 아이템은 '스카디의 눈'이다. 체력이 극도로 약한 저격수의 약점을 크게 보완해주고 평타에 슬로우까지 제공하니 이보다 멋진 아이템이 어디 있을까? 한때 생존력 보강 때문에 저격수의 코어 아이템으로 여겨졌던 '어둠의 검'은 상대가 현시의 가루를 들 경우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현재는 저격수로 어둠의 검을 가서 어설프게 생존을 도모하느니 확실한 대미지를 주겠다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지만, 이 역시도 유저의 취향에 따라 다르다.

'스카디의 눈'과 '칠흑왕의 지팡이'가 나왔다면 남은 것은 공격 아이템들뿐. '다이달로스'나 '여의봉', '나비검' 등 각종 공격 아이템이 갖춰지면 저격수는 비로소 '무상성 갓스나'로 군림하게 된다.



기자는 저격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아군에 저격수가 나타나면 일단 눈살을 찌푸리고 보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플레이하게 된 저격수였지만 저격수를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왜 이 영웅에 그렇게 빠져드는지 깨닫게 되었다. 게임을 이겼을 때는 물론, 심지어는 졌을 때에도 살며시 입꼬리가 올라갔음을 깨닫고는 스스로 점점 위험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정도였다.


▲ 역시 저격수는 패배하는 게 제 맛!


도타2의 영웅들은 대부분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성어를 충실히 따른다. 초반에 약하면 후반에 성장할수록 괴물 같은 힘을 발휘하고, 초반에 압도적인 위용을 과시하는 영웅은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경향이 짙다. 저격수는 그야말로 대기만성. '충'의 상징이나 '스시락'으로 통하지만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나면 '무상성 갓스나'로 환골탈태하게 된다.

같은 편에게 욕을 먹는 것을 즐기는 특이한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정말 포지셔닝에 자신이 있어서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해보고자 하는 용기 있는 이들에게 저격수를 조심스레 권하며 영웅본색 4편을 마친다.


■ 영웅본색 시리즈

영웅본색 1편 : [영웅본색]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가면무사의 재발견!
영웅본색 2편 : [영웅본색②] 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아라! 최강의 하드캐리 메두사
영웅본색 3편 : [영웅본색③] 이젠 도끼의 시대다! 장작 패는 맛이 일품인 도끼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