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에서 하나의 일을 3년 정도 한다면 어느정도 익혔다는 평가를 받고, 5년이 넘으면 이제 다른 일도 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만큼 할 수 있는 것도 다양해졌고, 분야도 세분화되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한가지 일을 23년 간 해왔다면 어떨까?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는 시간 동안 말이다.

'이원술', 한국 게이머 중에서 이 이름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손노리에서 시작해 한국 패키지 시장의 화신 같았던 그는 한국 게이머들의 추억과 현재에 공존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마찬가지로 추억의 게임 중 하나였던 '화이트데이'를 들고 지난달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14년이 지난 '화이트데이', 어쩐지 오래 전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났는데 크게 변한건 별로 없는, 하지만 피부도 좀 좋아지고 옷도 좀 차려입고 그런 느낌이다. 대화를 하기로 했다. 이제는 로이 게임즈의 수장인 이원술 대표와, '화이트데이'에 대해서. 분명 추억 속에만 있던, 전에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던 사람인데도, 처음 본 그의 모습은 너무나 반가웠다.

이원술 로이 게임즈 대표





Q. 간담회에서 '화이트데이' 프로젝트가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밝혔었다. 햇수로만 7년 전인데, 어떻게 프로젝트가 바뀌어 왔고 이제 출시하게 되었는지 사연이 궁금하다.

이원술 : 2008년도에 시작한 프로젝트는 사실 PC버전이었다. 모바일 플랫폼으로 개발을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이 프로젝트는 사실 손노리 시절부터 시작했던 것인데, 상황이 안좋아지면서 현재 이규호 가치온 소프트 대표가 분사, 가치온 소프트에서 진행했다.

초기만해도 리메이크라기 보다는 이식의 개념으로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성능 한계가 비교적 뚜렷했던 시기였고, 수익 모델 역시 유료 판매를 기획했다가도 이런저런 부분유료화 모델을 도입하기도 하면서 많은 변화를 거쳤었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리메이크 '완전판'의 형태를 잡아나간게 작년 말 즈음이다. 여러가지 방향으로 시도를 하다가 완전한 리메이크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당시 가치온에서 만들었던 지난 버전은 스테이지를 여러개로 쪼개고, 멀티플레이 요소를 집어 넣었었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이건 좀 난잡하고, 정돈이 안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화이트데이'가 아닌 이도저도 아닌 게임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서 아직 '화이트데이'를 안해 본 이들도 많으니 예전 테이스트를 살려, 완전판을 만들어 새로운 유저들까지 포함한 보다 많은 이들이 플레이할 수 있게 해보자 했다.



Q. 최근 출시하는 메이저 작품으로서는 흔치 않은 유료 판매 모델을 잡았다. 사실 모바일 시장의 과금체계가 기형적이라는 의견도 있고 여러 논란이 있는데, 유료 판매 모델을 선택하는데 고민이 많지는 않았나?

이원술 : 당연한 말이지만 각 게임마다 어울리는 유료화 모델이 있다고 생각한다. '화이트데이'는 명확히 끝이 있는 게임이고, 이건 장르적인 특성이다. 하지만 요즘 게임들을 포함해서 사업적인 부분 때문에 이런 게임의 장르적 특성들이 희생되고, 저해되는 부분들이 있고, 그러면 안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렇게 만들어진다면 안내는게 낫다.

만약 '화이트데이'가 아예 새롭게 만들어지는 신작이고, 처음 나오는 게임이라면 멀티플레이 요소, 스테이지 분할 등 무엇이든 해도 되었을거다. 하지만 이 게임은 처음 나온지 올해로 15년 째를 맞이하는 게임이다. 그만큼 기존 팬들을 위한 원작의 존중이 중요했다.



Q. 사실 손노리 시절의 IP들은 그 장르도 다양하고, 퀄리티도 인정을 받고 있어 모두 저마다의 팬층을 가지고 있다. '강철제국', '악튜러스' 등 다른 IP도 많은데 그중에서도 '화이트데이'가 선택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원술 : 사실 가치온 소프트에서 꾸준히 진행해 온 이 프로젝트는 사실 사업적인 판단으로 중단할 수도 있는 프로젝트였다. 요즘 모바일 시장의 상황이나 주 수요층, 또 판매 방식등에서 여러가지 차이를 보였으니까 말이다.

로이 게임즈를 설립할 당시에는 이전 IP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것들은 모두 패키지 게임들이었고, 모바일로 이식을 하다보면 원작을 훼손하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대다수의 게임들은 당시의 향수로 인한 것이지, 지금 와서는 절대로 그와 똑같은 게임이 나올 수도, 똑같은 재미를 줄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 당시의 스펙, 취향에 맞춘 게임들을 즐겼으니까. 지금 와서 그걸 현대적으로 만든다고 해도 그때의 느낌과는 다른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화이트데이'는 다른 편이다. 당장 그래픽부터 다른 게임들은 모두 2D지만 '화이트데이'는 풀 3D였다. 그만큼 유저들이 느끼는 차이가 적다는 것이다. 그만큼 리메이크를 할 때 가장 원작을 잘 살릴 수 있는 IP라고 생각했다.

또 한가지는 '화이트데이'는 이 IP 들 중 가장 큰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원작은 영어판을 낸 적도, 홍보를 따로 한 적도 없는데 해외 유저들끼리 언어 패치를 만들고 자기네들끼리 즐기곤 했다. 유료 판매 방식을 고려한다면 해외 시장을 꼭 염두에 두어야만 하기 때문에, 또 그만큼 얼마간의 저변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화이트데이'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Q. 흔히들 모바일 플랫폼에서 호러 게임은 약세라는 인식이 있다. 그럼에도 모바일 플랫폼에서 효과적인 호러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부분이 있다면?

이원술 : 모바일의 가장 유명한 강점은 역시 사람들이 가장 게임을 많이 하는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에서 어떻게 호러를 살릴지 고민한 부분이 많았다. 아무래도 가장 큰 난관은 조작 부분이었다.

화면 크기에 대해 많이 말씀하시는데, 일단 화면 크기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화면이 작고 손에 들 수 있는 만큼 가까이서 보면서 몰입하게 되고, 이어폰을 통해 사운드를 듣기도 하니 일반 PC보다 더 개인적인 몰입을 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

조작 문제는 PC에 비해 어려운 부분이 있다. 보다 세밀하고, 빠르게 틀리지 않도록 조작을 입력하는건 아무래도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PC에선 못하지만 모바일에서만 할 수 있는 조작들이 있다. 스와이프, 슬라이드, 터치 등이 그렇다. 그만큼 약점도 있지만 강점도 확실하기 때문에, 모바일이라는 플랫폼 자체가 호러에 부적합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Q. 플레이타임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량은 대략 어느 정도이고, 또 어떤 식으로 조절이 되나?

이원술 : 사실 게임의 구조상 플레이 필드 자체가 큰건 아니다. 가장 쉬운 난이도에서 최단루트로는 2시간이 조금 넘을 것이다. 다만 난이도에 따라 그 동선과 구조가 바뀌므로 그로 인해 많은 변수가 생긴다. 오리지널 버전의 '왕리얼 모드' 같은 느낌이다.

기존의 동선, 퍼즐을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수위나 귀신 등장 등 패턴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있고, 여기에 접목한 콜렉션 요소 등으로 기존보다 많은 플레이타임을 보장할 것이다. 또 3배 가량 늘어난 귀신과 멀티 엔딩도 준비되어 있다.



Q. 아직 본편도 출시 안된 시점이긴 하지만, 후속작의 계획에 대해서 들려줄 수 있는지?

이원술 : 물론 계획은 있다. 하지만 사업적인 부분의 고려가 있어야 하는 만큼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정한게 없다. 다만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화이트데이' 리메이크의 경우 3부작 트릴로지로 구상된 물건이란 것이다. 애초에 초창기 계획도 리메이크가 아닌 후속작이었던 만큼, 당연한 부분이다.



Q. 로이 게임즈가 작년 창설되었는데, 이렇게 '화이트데이'로 큰 주목을 받게 됐다. 20년 경력의 개발자 '이원술' 이 아닌 신생 게임사 '로이 게임즈' 로서의 출사표를 던진다면?

이원술 : 우선 우리의 관계사인 로이 비주얼에 많은 감사를 보내고 싶다. 로이 비주얼이 아니라면 '화이트데이'를 다시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퍼블리싱, 게임 개발 등을 다른 회사들과 함께 해왔다면 '화이트데이'는 만들기 어려웠을거라 생각한다. 수익을 확실히 보장할 수 없는 모험적인 시도이기 때문이다.

로이 비주얼은 애니메이션 회사고, 콘텐츠나 캐릭터 등을 통해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감동을 주는 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회사다. 그만큼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도 알고 있고, 대문에 국내 게임계에 그런 게임이, 그런 개발사가 없다는 것에 상당히 아쉬워 했다. 로이 비주얼의 대표와 그런 이야기를 많이 주고 받았다. 그리고 작년에 제가 기존의 회사를 나오면서 같이 하게 되었다.

로이 게임즈로서는,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고, 그 게임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회사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첫 게임을 '화이트데이'로 한 것은 상당히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Q. 그렇다면 유저들이 '화이트데이'를 어떻게 즐겼으면, 또 하고 나서 어떤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가?

이원술 : '화이트데이'는 매우 직관적이다. 유저가 플레이하는 순간마다 재미를 직접 준다. 요즘 다른 게임들은 이런저런 다른 보상을 통해 성취감을 주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이상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게임을 하고나서, "그래, 이런게 게임이었지!" 하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잃어버린 게임의 재미를 찾아주고 싶달까. 그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가격에 비해 절대적으로 '혜자'스러운 게임이라 자신한다. 가격도 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싸지 않나.(웃음)



Q. 요즘 모바일에서도 불법 복제는 심각한 이슈다. 과거에도 불법 복제와 싸워왔는데, 어떤 대책이 있을까?

이원술 : 근본적으로는 유저들의 인식 문제라고 생각한다. 불법 복제라는게 막는다고 해서 다 막을 수 있는게 아니다. 아무리 이중 삼중의 락을 걸어도 뚫어낼 사람은 있다. 결국 이 문제에 있어서 마지노선은 유저다.

그만큼 모든 것에 앞서서 유저들이 할만한 게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유저들이 돈을 지불한다. 유저들을 믿는 것은 기본이고, 그에 더해 할 수 있는 기술적 노력을 더하는게 현실적이다.



Q. '화이트데이' 이후로 제작, 출시할 게임들을 계획하는데 생각하고 있는 기준, 원칙 같은게 있다면 무엇인가?

이원술 : 로이 게임즈는 어찌됐건 게임사다. 다양한 것들을 고려하고 있다. 플랫폼도 모바일, PC, 콘솔 등 가리지 않고, 장르도 제한할 생각이 없다. 중요한 것은 결국 유저가 느끼는 재미다. 앞으로 다양한 회사들과 협력하여 여러 게임들이 나올 것이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Q. 마지막으로, 이원술과 '화이트데이'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이원술 : 개발자로서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이르다. 아직 더 하고 싶은 것들이 많고, 그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 게임, '화이트데이'가 성공하고 나서 말하고 싶다. 지금의 게임에 최선을 다하는게 우선이다.

'화이트데이'는 잘만들었다 이전에 우리가 최선을 다해 만든 작품이고, 게이머 여러분도 꼭 정품으로 구입해 그만큼 가치있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한정판을 만들었는데, 가격 이전에 '화이트데이'를 기억하는 유저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선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곧 판매될 예정이고, 그만큼 모두가 열심으로 자신과 유저분들의 추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결국 결과물은 유저가 판단하는 것이지만, 그만큼 충분한 가치를 담았다. 한 번 해보시고, 그 가치를 느껴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