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2016년 무수히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기대되는 건 해외 거대 행사다. 개인적으로 현장에 나가 있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갈고 닦은 것을 시험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선호하는 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인벤은 취잿거리가 있다면 세계 각국 어디든지 날아갔다. 미국, 중국, 일본, 폴란드, 대만, 호주, 독일, 러시아 등을 다녔다. 그중 크고 아름다운 행사를 꼽으라면 단연, 세계 3대 게임쇼인 'E3 EXPO', '동경 게임쇼', '게임스컴'과 함께 중국 최대규모의 '차이나조이'를 꼽을 수 있다. 또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GDC'도 빼놓을 수 없다.

한 명의 게이머로 참가하는 것과 한 명의 기자로 참가하는 것은 천양지차다. 항상 기자의 입장에서 정보와 감상을 전달했지만, 오늘은 기자가 아닌 게이머 입장에서 경험한 해외 게임쇼 경험을 담았다. 이름하여 기사에는 쓸 수 없었던 이야기.

* 본 기사는 여러 취재 기자의 에피소드를 한 사람의 시선으로 재구성했습니다.



GDC 고난이도 어휘에 멘붕, 행복감으로 회복

- 게임 개발 업계 최고의 지성들과 인재들이 업계의 당면 문제와 발전적인 주제에 관해 탐구하는 자리.
2015년 3월 2일~ 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



올해 봄은 유난히 맑은 날이 많았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2015년의 봄은 '언제나 맑음'이었다. 아마 캘리포니아 기후가, 꽤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작년 3월, 나는 맑은 날씨를 자랑하는 샌프란시스코 땅을 밟았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개발자 컨퍼런스인 'GDC2015 (Game Developers Conference2015)'. 작년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는 우리만 취재했다. '존 카맥'이나 '시드 마이어' 등 업계의 전설들이 직접 강단에 서는 행사인 만큼 참가비만으로도 비교를 불허하는 행사다.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강연장만 세 개 건물에 300세션에 달하는 세션 수, 출발 전 회의조차 마라톤처럼 이어졌다. 그저 강연 내용을 훑어보고 뭘 들을 것인지 정하는 것뿐인데도. 내가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고 위풍당당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금방 사라질 위풍당당함이었지만….

▲ 샌프란시스코의 하늘

GDC는 첫날부터 우리에게 지옥을 보여줬다. 강연을 듣고 기사로 전달하면 되는 단순한 과정의 반복일 뿐이지만, 영어로 진행되는 '초 고수준'의 강연은 나에게 귀머거리의 시련을 안겨줬다. 토익, 토스 등 점수 부심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16년의 학창시절과 취업 전쟁의 전리품은 정말 별거 아니었다. 물론 세계 각국에서 온 기자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기자라고 부르기도 낯간지러운 수습 시절부터 강연은 어려운 기사 종류였다. 그냥 듣고, 이해해서, 완전한 문장을 만들어서 옮기면 되는 건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키노트나 컨퍼런스에 참여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보통은 구어체이기 때문에 완전한 문장이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고급 어휘들과 고유 명사들이 난무하는 다른 나라말. 대충은 알아듣지만, 이걸 지면에 옮기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다양한 편법을 동원했다. 정 모르는 단어는 한글로 적고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다. 문자 중계를 하는 외신 기사를 보면서 못 들은 내용을 보강하는 한편, 애플리케이션을 보면서 외국인들의 감상을 참고하기도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편법은 편법인지라 약간의 도움만 받을 뿐, 완전히 기댈 수는 없었다.

▲ PPL 같은거 아니다. 체력 회복을 위한 한국발 음식이다.

결국, 첫 날부터 우린 에너지드링크를 물처럼 마셔가면서 기사를 생산했다. 짜디짠 샌드위치가 세 끼를 넘어가자 위장이 비명을 질렀고, 새벽 늦게 잠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정은 사람을 점점 초췌한 몰골로 만들어갔다.

여러모로 GDC는 업계인으로서 감격스러운 행사였던 것 같다. 어느 요일이었던가, 행사장인 모스콘 센터 앞을 지나가는데, GDC 자원봉사자들이 주섬주섬 모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문명4'의 주제곡인 '바바예투'.

나도 모르게 이끌린 듯 서서 그들의 노래를 끝까지 들었다. 노래가 끝나고, 박수갈채가 쏟아질 무렵까지 멍하니 서 있다가 그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가 "내가 들어 본 최고의 바바예투였다."라고 말해 주었다. 인도계 미국인이었던 그는 환히 웃으며 악수를 청했고, 그 손을 맞잡는 순간 비로소 내가 게임 업계에 와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것에 전율했다.

그리고 노래 듣느라 강연에 늦을 뻔했다.

▲ 바바 예투 예투 울리에 음빙우니 예투 예투 아미나 ~♬



E3 X약 있냐? 어...없는데요...

- 세계 3대 게임쇼.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2015년 6월 16일~ 1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모스콘 센터



인벤은 보통 해외 취재는 자유 취재로 간다. 게임사에서 기자를 데리고 가는 프레스 투어와는 다르게 모든 걸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숙소, 식사, 인터뷰, 부스 취재, 네트워크파티 등등 다 우리가 결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이번 E3 취재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스콘 센터에만 일정이 있는 게 아니라 현지 게임사 탐방 등도 함께 해야 하기에 렌트를 했다. 인피니티 SUV. 아주 고급진 차량이라 만족스러웠다. 뽐내면서 타고 다녔다. 사실 취재보다도 이 차를 몰고 다녔다는 게 좋았다.


일정이 시작되는 첫날, 베데스다 컨퍼런스가 있었다. 컨퍼런스가 열리는 헐리우드거리로 가서 동료 기자를 행사장으로 보내고 나는 잠시 차 안에서 눈을 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철판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니 흑인 세명이 차에다가 '인디언 밥'을 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 깬 나의 모습을 본 흑인들이 깔깔 웃으면서 도망갔다. 한국 같으면 괘씸해서 쫓아가서 사단을 냈을 텐데 감히 차 밖으로 내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아, 목숨 건져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 GTA5 같은 형님들이 가고 나니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EA 컨퍼런스를 가는 길이었다.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주위를 서둘러 둘러봤다. 앞에 큰 건물이 보이길래 급한 마음에 들어갔더니, 어깨 넓은 흑인 남자들과 에어로빅하는 백인 여자들이 쫘~악 있었다.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웬 흑인이 오더니 "왜 왔냐"라고 묻길래 "화장실을 찾고 있다."라고 하니 어디론가 나를 데려다줬다. 조금 구석진 곳이었는데 무서운 생각보다는 급한불을 꺼야겠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문을 열어보니 흑인 여러 명이 샤워를 하고 있었다. 너무 급해서 변기부터 찾아 일을 봤다. 오래 참아서인지 상당히 오래 나왔다. 일을 보고 도망치듯 나왔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미식축구 라커룸이었다. 난 이름 모를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 나의 흔적을 남기고 왔다.

▲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본격적인 E3는 저런 일을 겪고 나서 개막했다. 일반인이 들어오기 어려운 E3라 사람은 예상보다 적었다. 쾌적하게 시연할 수 있어 매우 좋았다. 게임쇼의 꽃은 시연 아니겠는가!

기자실은 한국과 많이 달랐다.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누워서 기사 쓰는 사람이 절반이나 됐다. 폴란드 여기자 옆에 눕고 싶었지만, 국격을 생각해서 참았다.

잠깐 쉬러 나왔는데 흑인 둘이 오더니 나한테 귓속말로 "X약 있냐"라고 물어봤다.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 하며,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없다고 하니 깔깔 웃으면서 "농담이고 담배 있냨"라고 했다. 그래서 담배 한 대를 주니 "너 완전 쿨한 녀석이구나"라며 어깨 인사를 걸어왔다. 웃으며 어깨 인사를 했지만, 다리는 떨고 있었다. GTA5의 라마가 생각났다. 기자실로 돌아오는데 근처 주차장의 히스패닉 계열의 아르바이트가 "마이 쁘랜!"이라고 했다. 무서웠다.

체류 마지막 날 기획기사 소재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향했다. GTA5에 나왔던 그곳과 99% 일치했다. 날씨도 좋고 관광객도 많아 기분이 매우 좋았다.

아무거나 잘 먹는 타입이지만, 미국 음식은 입맛에 잘 맞지 않았다. 미국 음식들은 대체로 너무 짰다. 물마저도 짠 것 같았다. 숙소 근처의 한인타운에서 먹은 밥이 7일간 일정 중 가장 맛있었다. 난 영락없는 한국 사람인가 보다.

▲ GTA5 아니다. 진짜다.



차이나조이 니헌피아오량

- 대륙의 물량공세, 무슨 상상을 하든 그 이상을 볼지어니.
2015년 7월 30일~ 8월 2일, 중국 상하이 신국제엑스포센터



가기 전부터 호재는 없었다. 선배들은 상하이는 덥고 덥고 덥다고 했다. 공항에서 내리는 순간 습식 사우나에 들어가는 거라고. 더구나 중국 정부의 쇼걸 노출 규제로 게임쇼 기대감마저 바닥으로 떨어졌다.

차이나조이는 다른 게임쇼들과 다르게 많은 준비를 해갈 수가 없다. 정말 뚜껑이 열리기까진 모르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회사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게임을 내놓는다.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취잿거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용한 중국 항공사는 어김없이 연착했다. 상하이 푸둥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예정돼있는 SCEC 컨퍼런스 행사장으로 향했다. 택시기사가 너무 무섭게 생겨 겁났다.

▲ 생각보다(?) 덥지는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상하이 택시는 두 종류가 있다. 진짜 택시랑 가짜(?) 택시. 진짜 택시는 보통 90년대 폭스바겐으로 운행한다. 가짜 택시는 요즘의 좋은 차지만, 택시 마크도 없고 미터기도 없다. 흥정하고 타는 거다. 불법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38도가 넘는 날씨에 택시를 잡다 보면 법은 멀다.

다행히 돌지 않고 소니 행사장에 늦지 않게 도착해 일정을 소화할 수가 있었다. 소니컨퍼런스가 끝나고 나와서 쉬고 있는데 레드5스튜디오의 파이어폴 PD가 같은 곳에서 쉬고 있었다. 반쯤 장난으로 말을 걸었고 반쯤 장난으로 "우리 한국에서 제일 큰 게임 전문지인데 인터뷰할래?"라고 했더니 흔쾌히 웃으며 허락해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청나게 빡빡한 일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마웠다.

차이나조이가 열리는 신국제엑스포센터는 엄청나게 크다. 지스타가 열리는 벡스코 같은 건물이 10개 넘게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운행하는 걸 본 적은 없으나 행사장 내에 셔틀버스 운행 표지판도 있다. 특이하게 차이나조이는 프레스증을 받기 위해 돈을 담보로 맡겨야 한다. 우리는 차이나조이 공식 미디어 파트너이기 때문에 어디든 입장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의 출입증이 제공됐다. 그래도 B2B관은 하루 3번으로 제한됐다. 특이했다.

▲ 프레스증을 받으려면 돈을 담보로 내놓아라!

나는 행사가 열리자마자 'GDC 차이나'컨퍼런스로 갔다. '레이야크'의 유밍양 강연이었는데 당연히 영어로 말하거나 영어 통역이 준비된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냥 중국어로 했다. 일단 급한 대로 프리젠테이션 화면을 모두 찍으면서 내용을 녹음했다. 일정 종료 후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동료 기자가 한국어로 거칠게 번역을 해줬고 나는 겨우 기사를 쓸 수 있었다. 'GDC 차이나'는 한국에서 우리만 들어갔는데 기사를 내지 못할까 봐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이었다.

참, 중국어를 전혀 못 하는 나는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기자에게 딱 한마디의 중국어만 배웠다. '니헌피아오량(你很漂亮).' 한국말로 '당신 예뻐요.'라는 말이다. 다들 알다시피 차이나조이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쇼걸들이 등장해 홍보에 열을 올린다. 정말 쇼걸들이 많아 상하이에 처음 갔을 땐 진짜 미녀의 도시인지 알았다. 그만큼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많다.

쇼걸들의 역할은 부스에서 게임 시연을 도와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역할이다.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라 그 더운 날씨에 힘들어서 지쳐있다가도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느냐고 물으면 바로 웃으며 포즈를 취해준다. 쇼걸들 간의 경쟁도 치열해서 한국과 달리 굉장히 적극적이기도 하다.

샨다 쇼걸이었다. 사진을 찍고 나니 자기 사진을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중국어를 몰랐고 그쪽은 영어를 몰랐다. 손짓 발짓으로 QQ ID와 메일을 교환했다. 그 상황이 굉장히 웃겼는지 중국어와 영어, 한국어가 뒤섞인 이상한 대화는 5분여간 이어졌다. 중국어라고 해봤자, 배운 문장 하나 밖에 없지만. 그녀는 나에게 전화번호를 달라고 그랬고 나는 명함을 줬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메일로 대화하는 사이다. 여전히 영어와 중국어가 섞인 이상한 대화지만.

▲ 쇼걸들은 쉴 곳이 없어 계단 밑에서 쉬곤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서머레슨. 서머레슨을 처음해보는 자리였는데, 주위 기자들 즐거우라고 조금 오버하면서 시연을 했다. 기기를 사용하고 있어서 몰랐지만 SCEC 관계자들이 나의 사진을 찍어갔다. 이렇게 역동적으로 '서머레슨'을 즐기는 사람은 처음이라면서...

MS 부스에서 댄스 센트럴을 동료기자와 신나게 하고 있었는데 분명 시작할 때는 황량했던 부스가 우리를 구경하고자하는 관람객으로 채워졌다. 부끄러웠지만 부끄럽지 않은 척 했다. MS 쇼걸이 웃으며 다가와 온갖 열쇠고리를 선물이라고 줬다. 뿌듯했다. 해외에서도 한 건 했다.

▲ MS 부스에서 댄스에 눈을 떴다.



게임스컴 차붐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 한국에 관심이 지대한 게임쇼. 다양한 비디오게임과 하드웨어 정보를 다룬다.
2015년 8월 5일~ 8월 9일, 독일 퀄린 퀄른메세



독일은 먼 나라다. 몇 편의 영화를 보고 몇 잔의 술을 마셔 억지로 잠을 청하고서야 독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12시간 정도의 긴 비행을 마치고 맥주와 축구의 나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난 외쳤다. "차붐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아무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 불쌍했는지 사탕도 두고 갔다.

체크인하고 숙소에 도착했는데 방이 한국에서 볼 때랑 너무 달랐다. 침대는 더블 침대 하나였다. 가장 짬이 낮은 기자는 조용히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씁쓸하고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그는 며칠 동안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뭐... 잠잘 시간도 없었지마는. 우리가 취재하러 나갔을 때 청소하러 들어온 종업원이 불쌍해 보였는지 바닥 이불을 매일 새것으로 바꿔주며 친절하게 사탕도 챙겨줬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하기 전 'GDC 유럽'을 취재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라 그런지 영어가 매우 듣기 쉬웠다. GDC에 비하면 정말 다행이다. 무난하게 컨퍼런스를 클리어하나 싶었는데 카메라에 문제가 생겼다. 한 컷 찍을 때마다 조리개가 닫히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한국에 있는 사진 전문 기자에게 조언을 청했다. 그리고 그가 답변했을 때 한국 가서 꼭 때리리라 마음먹었다.

▲ 꼭 때리리라 마음먹었다.

게임스컴 1, 2일 차는 일반인이 입장할 수 없는 비즈니스 데이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차이나조이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일반 참관 가능일에는 지옥이었다. 출근 시간 신도림역 같았다.

이번 게임스컴에서는 '군단'이 공개됐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쏟아지는 정보에 정신이 없었다. 어차피 컨퍼런스야 한국 내부에서 처리해줄 테니 난 현장 기사와 인터뷰 등을 하러 뛰어다녔다. 다른 게임쇼와 마찬가지로 게임쇼 인터뷰는 굉장히 산만하고, 정신없고, 시끄러운 곳에서 진행한다.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아 녹음 파일을 한국 내부 대기조에 바로 보냈다. 숙소에 들어가서 내가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기사는 시간 싸움이다. 내부 대기조들에 고맙다. 내부 대기조의 한 기자는 야간 대기 때문에 여자친구와 놀지 못하자 여자친구에게 "너는 능력이 부족해서 못 가니?"라는 말을 듣고 싸우다가 컨퍼런스 스트리밍 기사 작성에 바로 투입됐다고 한다. 미안하고 고맙다.

빡빡하게 잡은 취재 일정은 오히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완벽하게 확정된 일정을 제외하고는 전부 자율 취재로 돌렸다. 어차피 해외 취재는 정신만 바로 잡으면 지스타랑 크게 다를 바 없다. 어쩌면 신속성과 정확성에서 엄청난 경쟁을 해야만 하는 지스타가 더 힘들지도.

온종일 행사장에서 단내날 정도로 뛰어다닌 후엔 길 건너 쾰른 대성당 주변에서 식사했다. 먹을 건 고기와 고기와 고기밖에 없었지만, 맥주가 천상의 맛이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칼로리 걱정이 됐지만, 하루 3만 보를 넘게 걸어 다녀야 해서 오히려 살이 빠졌다. 게다가 기사 작성을 해야 하니까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고.

고기만 먹을 수 없어서 스튜를 시켰더니 이상한 된장찌개 같은 모습의 숭늉이 나왔다. 보기보단 괜찮은 맛이었지만, 독일에 가면 얌전히 고기만 먹자고 다짐했다. 혼자 죽을순 없지 하는 마음에 보기보다 괜찮고 맛있다고 약을 팔아봤지만, 동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 고기와 고기와 고기밖에 없어서 된장찌개(?) 숭늉을 시켰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라인강변을 살짝 걷고 나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엄청나게 바쁜 가운데 작은 여백. 주전부리를 사러 주변에 돌아다니기도 했다. 현지인이랑 어쩌다가 이야기를 하게 돼서 "차붐의 나라에서 왔다"라고 했는데 못 알아들었다.

그렇게 바닥에 누워서 기사를 쓰는 생활이 며칠 이어졌을 무렵, 방안 에어컨이 터져서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졌다. 데스크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더니 미안하다고 무려 '스위트룸'으로 교체해줬다. 방바닥에서 자던 동료 기자는 잽싸게 짐을 던지고 침대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시무룩한 표정으로 얌전히 기사 작성을 시작했다. 참, 난 이때 스위트룸이 suite room이란 걸 알았다. 좋은 거니까 달콤한 건지 알았다….

▲ 바쁜 일정 속에 여백을 찾는 맛도 쏠쏠하다.



동경게임쇼 부탁한 물품을 사러간 그 곳엔...

- 약 20년의 역사를 가졌으며 세계 3대 게임쇼로 꼽힌다. 동경게임쇼지만 동경에서 하지는 않는다.
2015년 9월 17일~ 9월 20일, 일본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



올해 동경게임쇼는 유난히 취재 일정이 빡빡했다. 도쿄 나리타 공항에 1시에 도착했는데 3시 30분부터 스퀘어에닉스 취재가 잡혔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도쿄역으로 향하는 NEX를 바로 타고 짐은 도쿄역 코인락커에 넣으면 어떻게든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10분 단위로 예상해서 만든 완벽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는데, 큰일 났다. 비행기가 연착된 것이다. 30분가량이 지나고 나서야 비행기는 인천공항에서 멀어졌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레이싱 게임을 하듯 매우 빠른 속도로 입국 심사를 거치고 캐리어를 찾고 기차표를 끊으러 갔다.

▲ 살짝 늦었지만 무사히(?)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아뿔싸. NEX는 맞는 시간이 없었다. 표 끊는 시간에서 2분 뒤 출발하는 것 외에는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가격은 가장 비싸고 가장 빠른 스카이라이너 열차를 타고 우에노 역까지 36분 만에 끊었다. 드넓은 지하철역을 샅샅이 뒤져 코인락커를 발견하고는 짐을 쑤셔 넣었고, 곧바로 스퀘어에닉스가 있는 히가시신주쿠로 향했다. 신주쿠에서 내려 택시를 탔지만 기사 아저씨가 묘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결국 5분 늦게 도착했다.

첫날을 그렇게 무사히(?) 넘기고 다음 날 '파이널 판타지14 카페' 취재를 갔다. 1부터 쭉 플레이해온 파이널 판타지의 프랜차이즈 팬으로서 기대됐다. 절대 메이드 때문이 아니다. 아키하바라에 위치한 카페는 원래 11시에 여는데 취재를 위해 사전 양해를 구해 10시에 입장하는 것으로 약속을 잡아두었다. 그런데 기쁜 마음에 너무 일찍 가버렸다. 그래서 카페 1층에서 판매하는 카피바라 빵을 사 먹었다. 카피바라상은 사랑이다.

'극 이프리트의 광휘의 불기둥'이라는 '~의'를 두 번이나 사용하는 일본식 언어로 포장한 피자도 있었고 뚱보 초코보 카레라이스도 있었다.

▲ 으헣헣헣헣 심쿵해.

올해 도쿄게임쇼는 사람이 참 많았다. 1, 2일차는 비즈니스 데이여서 체감하지는 못했지만, 일반 공개일인 3, 4일째는 시연은 물론이고 게임 상품 구매도 힘들었다. 아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중에 행사 종료 후 나온 집계를 보니 역대 방문객 2위였다고.

세계 3대 게임쇼로 분류되는 게임쇼답게 일본 게임들이 대거 출품된다. 일본 게임회사들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실제 가보면 여전히 건재하기에 실질적으로 취재해야 하는 게임 수는 다른 게임쇼보다 많은 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스키야'에 들려 덮밥을 먹고, 마쿠하리 메세 행사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새벽 3~4시까지 기사를 쓰다가 기절한다.

그렇게 덮밥-기절 테크를 반복하다가 '네트워크 파티'를 방문했다. 롯폰기에서 열린 네트워크 파티를 갔는데 네 개의 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1층에서 접수를 하고 2층에 짐을 맡기고 3층에서 식사를 하며, 지하 1층에서는 클럽 스타일로 음악과 함께 춤을 추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었다. 남자 기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여자 기자 두 명만 자리에 남았다. 여자 두 명만 있어서였는지 더 많은 사람들이 인사하고 싶다고 명함을 들고 찾아왔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꽃이 나풀거리고 있었다고. 우리는 모두 믿지 않았다.

▲ 다 사람이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쳤고 마지막 날에는 잠깐 여유 시간이 생겨 아키하바라와 도쿄역을 방문했다. 일본의 게임문화를 직접 체감하고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본의 고이즈미 전 총리가 자주 들렸다는 '큐슈 장가라 라멘'집에도 갔다. 동행한 여기자는 기사 작성을 도와줄 카피바라 인형도 구매했다. 이 기자는 카피바라 덕후다.

나는 '부탁'받은 물품을 사기 위해 '돈키호테'에 갔다. 돈키호테는 다양한 물건을 모아놓고 파는 곳인데 한쪽 구석 커튼이 처져 있는 곳이 내가 찾는 곳이다. 이 커튼을 걷어내면 온갖 성인용품과 성인 DVD들이 있다. 하지만 입국 심사가 두려워 구입하지는 않았다.

이런 물품은 아키하바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5층 이상의 건물 전체가 통째로 성인용품점인 건물도 있었다. 1층은 DVD, 2층은 여성 용품, 3층은 남성 용품, 4층은 코스프레 등으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쇼핑몰이었다. 문화 충격이었다. 어쨌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해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물론 볼도 신선한 고기마냥 발그레 붉어졌다.

▲ 대신 기사 좀 써주렴 카피바라야...



블리즈컨 한국인은 모두 게임을 잘하는 줄 안다.

- 9회째 블리자드 게임쇼. 영화 워크래프트와 공허의 유산을 만났다.
2015년 11월 7일~ 11월 8일, 미국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



블리즈컨에 대한 기억이라면, 3일 밤낮 동안 사무실에서 스트리밍을 지켜보며 막대한 양의 정보를 처리하던 것뿐이다. 분명 단 '한' 회사가 자사의 게임으로만 여는 행사인데, 일을 해도 해도 뒤틀린 어미처럼 저기 너머에서 뭔가가 더 튀어나온다.

애너하임에 도착한 첫날, 모든 취재기자가 한 데 모여 한국식 고기 구이집에 갔다. 완전히 현지화된, 메이드인 유에스에이 식 고기 불판을 만날 수 있었다. 자동차 바퀴만 한 불판 위에 5분마다 6인분은 될법한 양의 고기가 '부어'졌다. 이게 현지화구나 싶었다. 인앤아웃 같은 유명한 햄버거집도 들렸다. 미국에서 확실히 느낀 건데 난 육식주의자인가 보다.

▲ 육식주의 성지를 다녀왔다.

본격적인 블리즈컨 행사가 시작됐다. 블리즈컨은 사실 '해외 취재' 중에서는 가장 '해외'에 대한 요구치가 낮다. 워낙 블리자드코리아에서 관리를 해주기도 하지만, 모든 세션에 통역이 붙고, 한국의 인지도도 높기 때문이다. 취재 환경만 따지면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살인적인 일정 때문에 거의 매일, 게임마다 최소 한두 개씩은 인터뷰 일정이 있다 보니 게임당 하나씩만 인터뷰를 해도 다섯 개가 쌓이는 셈이다.

각 세션은 한국에서 대기 중인 기자들이 처리한다. 그들의 모습이 선하다. 0시 즈음 출근해서 트레이닝복처럼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수명을 갈아 넣으며 밤새 기사를 '뽑아'내는 모습이.

블리즈컨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블리즈컨 스토어다. 어떤 식이냐면, 먼저 디스플레이에 전시된 물건을 살펴보고 의류 견본을 입어보고 입장 대기 줄로 들어간다. 미로 같은 통로가 끝나면 약 40여 개의 판매대가 있다. 여기서 스태프가 상품을 뿌려주는 방식이다. 나는 330불 정도 샀다.

물건을 주문한 뒤 기다리면서 판매원과 잡담을 나눴는데 그 사람도 나도 둘 다 이번 블리즈컨이 첫 경험이었다. 이 행사가 얼마나 멋지고 놀라운 것인지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앞길에 행운을 빌어주고 헤어졌다. 게임 업계에 들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출국하기 전부터 정말 매우 무척 진짜 체험해보고 싶었던 게임이 있었다. '오버워치'. 그중에서도 우리 송하나를. 기자실 옆에는 기자 전용 시연실이 있었고, 최대 12명이 한 매치씩 돌아가며 2판을 할 수 있었다. 블리즈컨에 참가하는 기자들 수가 대충 봐도 200명쯤 된다는 게 문제였지만….

처음으로 송하나를 플레이했을 때 느낌이 왔다. 일단 예쁘장했다. 그러면서 짐승 같은 면이 있었다. 25킬 4데스를 하자 미국 기자가 매우 놀란 눈치였다. 어떻게 이렇게 잘하느냐고 물어보길래 그냥 웃으면서 몇 마디 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길래 한국이라고 답했더니 "오, 한국사람이라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을 한국인 종족 특성 쯤으로 생각하나 보다.

블리즈컨 3일째, 지스타와 일정이 맞물려 '린킨파크'의 공연을 보지도 못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만 했다. 아마 한국에 있는 대기조들도 공연 소리만 켜놓고 바닥에 뻗어있겠지. 내한 공연을 가지 못해 참으로 아쉬웠는데 이번에도 보지 못했다. 나랑은 인연이 아닌가 보다.

▲ 일반 대기 줄이 아니라... 전부 기자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기자들이 진짜 많다.



2016년 올해도 열심히! 잘!



인벤은 2016년에도 GDC를 시작으로 3대 게임쇼와 차이나조이, 블리즈컨은 물론이고 취잿거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날아가 다양한 해외 게임쇼 기사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계획입니다. 더 풍성한 기사로 찾아가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