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월정액 9,900원' 또는 '무공해 RPG'라는 문구를 잡지에서 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이미 20대 중반을 넘은 유저일 것이다. 그리고 각별한 기억이 있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추억으로. 다른 누군가에겐 인생게임으로 남아 있는 존재. 세상에 태어난 지 17년이 지난 IP로 새로운 게임을 제작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사람들의 과거를 건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

2015년 8월 21일 갑작스러운 서비스 종료를 맞이한 지 약 10개월여. 스톤에이지라는 게임에 애착이 강했던 유저들은 그동안 다른 국가에서 서비스하는 게임들을 찾아보거나, 음성적으로 플레이를 즐기기도 했다. 서비스를 종료했음에도 팬들은 '스톤에이지의 부활'을 바라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바일로 다시 태어난 스톤에이지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까? 원작에 강한 애착이 남은 유저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었을까? PC에서 모바일로 자리를 옮기며 변화한 점들 몇 가지. 그리고 아쉬웠던 점들을 정리했다.




모바일로 플랫폼을 옮기면서 가장 많은 변화가 찾아왔던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랜덤 인카운터에 기반을 뒀던 게임이 스테이지 기반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예전의 PC판 스톤에이지 그대로'의 느낌을 바라던 유저들은 이에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필드가 사라졌다는 것은 원작의 퀘스트와 NPC도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작 그대로의 시스템을 기대했던 유저들은 어색함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1 레벨 펫이 등장하는 곳에서 이동을 반복하거나, 채팅창에 '아부의 성스러운 물이여 나에게 광채나는 힘을' 같은 문장들을 입력할 일이 없어졌다.

▲ 퀘스트를 주던 NPC들도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지도 모른다. 모바일 기기에서 원작만큼의 필드, 랜덤 인카운터를 구현하는 것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았으리란 판단으로 보인다. 원작에서도 목적지 전까지 전투 조우 -> 도망을 반복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를 모바일 기기에 그대로 옮겼다간 피로감을 늘릴 가능성만 남는다.

따라서 원작의 필드와 랜덤 인카운터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게임이 개발됐다. 턴제 전투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전투에 돌입하는 과정을 스테이지와 라운드로 대체했다. 원작의 자루 / 사이너스 / 가우린 섬은 스테이지의 지역으로, 랜덤 인카운터는 라운드마다 진행되는 전투로 변했다.

▲ 섬마다 지역으로 나뉘고, 스토리에 따라서 스테이지로 나뉘는 방식.



모바일에선 파티 플레이 중심의 원작에서 솔로 플레이 중심으로 콘텐츠 구성이 변했다. 필드에서 스테이지로 바뀐 것도 솔로 플레이를 강화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과거의 파티 위주 게임 플레이는 생각해보면 불편한 것이기도 했다. 혼자서 사냥 및 레벨업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였으므로, 다른 이들과 항상 파티를 맺어야만 콘텐츠를 즐길 수 있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과 사냥을 하려면 능력치를 비슷하게 투자하는 것까지 강요됐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 유저 간의 협력과 커뮤니티가 강화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바일 플랫폼에서는 파티 위주의 콘텐츠를 즐기기에 무리가 따른다. 불안정한 통신 환경, 한정된 배터리 용량 때문에 과거처럼 몇 시간씩 파티 사냥을 하기는 어렵다. 이런 게임 내/외적인 제한들이 콘텐츠 전체의 개편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 전투는 펫 3마리를 꺼내서 진행한다. 적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콘텐츠 위주로 재편됐다.

솔로 플레이로 방향을 선회하며 큰 변화를 맞이한 것은 '전투'다. 원작의 1인당 1마리만 전투에 내보냈던 것과 달리, 1인 3마리까지 전투에 투입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펫 간의 속성이나 조합까지 고려해야 하는 등 혼자서 파고들며 즐길 수 있는 콘텐츠들이 강화됐다.

또한, 스토리를 강조한 것도 솔로 플레이 콘텐츠를 강화하며 탄생했다 볼 수 있다. 튜토리얼부터 시작해서 스테이지를 진행할 때마다 자연스레 흘러가는 이야기는 '꽤나 공들인 티'가 난다. 원작에서 퀘스트를 주던 NPC들이 등장하기도 하며, 원작의 이야기 흐름을 차용하기도 했다.

게임 초반부터 주어지는 이상한 조개라던가, 적으로 등장하는 어설픈 산적 툰가, 몽환의 동굴에 있던 꿈의 신령같이 과거의 추억을 자극할만한 요소들을 스토리를 통해서 전달한다. 모든 대사에 성우들을 기용하여 목소리를 입히는 등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썼다.

▲ 원작의 NPC들도 스토리에서 등장한다.



원작의 저해상도 2D 그래픽은 시대에 맞는 3D 그래픽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원작 특유의 동화적인 분위기와 색감도 그대로 이어졌다. 스톤에이지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도 친숙하게 적응할 수 있을 정도다. 과거 저해상도의 도트 그래픽을 버리고 3D로 전환한 것이 어색하지는 않다.

펫과 캐릭터들의 모델링은 준수한 수준. 그리고 단순히 해상도가 올라간 것이 아니라 스테이지 지역에 따라 배경이 달라지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막, 초원, 밀림, 설원 등 원작에 등장한 바 있는 배경들이 한층 아름답게 표현된다.

▲ 2D 펫들의 3D화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래픽이 변하면서 가능한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연출'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스킬을 사용할 때나 치명타가 터졌을 때의 연출들은 원작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고정된 줄만 알았던 전투 시의 시점이 펫이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달라지는 것은 새롭게 느껴진 부분이다.

원작에서는 순서대로 적을 선택하고 몰려가 때리는 연출에 쾌감을 느꼈다면, 이번엔 펫들만의 다양한 연출을 감상해 볼 수 있다. 같은 계열 펫들의 공격 모션이 달라진 것은 아주 아쉽지만, 카메라 활용과 스킬 연출로 재미를 준 것은 높게 평가할 수 있을듯하다.

▲ 카메라 각도를 이리저리 움직여 다양한 연출을 보여준다.



사실, 원작의 성장률 시스템 자체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만한 시스템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1레벨부터 무작위로 설정되던 초기 능력치부터 레벨 업 시 무작위로 성장하는 능력치 등은 반복 플레이가 강요되던 요소였다. 성장률 수치로 유저끼리 등급을 나누고, 그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 달라지기도 했다.

유저마다 다른 능력치의 공룡을 육성했던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는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좋은 펫을 얻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 시간을 들여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오랜 시간 육성한 펫이 한순간에 성장률이 떨어지는 경험은 누군가에겐 즐거움이 될 수 있었을 테지만, 어떤 이에겐 스트레스로만 남았을 가능성도 있다.

▲ 원작을 플레이했던 사람이라면 써봤을 '성장률 계산기'

성장률이 원작을 대표하는 특징적인 시스템이었던 만큼, 모바일에서도 성장률 개념을 게임 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모바일 플랫폼에 어울리도록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다. 획득 시의 초기치는 무조건 같으며 진화 시마다 성장률에 변화가 생긴다. 게다가 성장률이 하락하지 않으므로 최소한 '전보다는 높은 성장률'을 얻을 수 있다. 전반적으로 원작보다는 실패 시의 위험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등급과 별, 진화로 대표되는 모바일 게임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 점에선 비판할 여지를 남긴다. 모바일 시장 BM 모델의 스테레오 타입을 그대로 차용한 모습은 추억을 기대하고 게임에 접속한 유저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기 충분했다. 때문에 게임에서 별과 색색의 등급을 본 유저들은 '일반적인 모바일 게임에 스톤에이지 스킨을 씌웠다.'고 평하기도 했다.

▲ 등급 그리고 별.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든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반면, CBT 마지막까지 플레이한 유저들은 첫인상과 다르게 별과 등급이 크게 의미가 없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등급에 따라서 육성에 필요한 요구 경험치와 비용이 큰 차이가 있는데다, 초월과 성장률, 성격 시스템으로 등급 차이를 보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등급이 높고 과금으로 얻을 수 있는 펫일수록 최대 성장률이 조금 높고 스킬 구성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대 레벨까지 육성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 2배에서 최대 6배까지 차이를 뒀다. 게다가 성장률 시스템까지 적용되므로 '등급이 높다 = 강하다' 공식이 성립되기는 어렵다. 좋은 등급이라도 성장률이 낮으면 실제 성능을 기대하기 어렵게 구조를 짜놓았다.

▲ 등급이 높다고 꼭 강한 것만은 아니다.

또한, 초월 시스템으로 성장률을 올릴 수 있도록 해뒀으니 등급 간의 차이는 더욱 좁혀진다. 고등급 펫들이 가진 '육성의 어려움'과 '초월 시스템' 덕에 저등급 펫만의 장점이 두드러진다. 심지어 CBT 기간에는 포획으로 얻을 수 있는 펫이나 초반에 주어지는 펫들이 아주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시간이 흐르면 고등급 펫들이 강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테지만, 적어도 '과금과 무과금 사이의 밸런스'를 시스템을 통해 보완하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원작의 무작위 확률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보완할 수 있는 요소를 챙겨둔 것은 긍정적으로 볼 만한 것들이다. 애정을 들여 육성한 펫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유한 스킬을 부여하는 등 사용처를 마련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모바일에서 개편된 시스템들은 펫 육성에 깊이를 부여했다.

▲ CBT에선 초월 시스템 덕에 '고급 등급이 오버 밸런스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플랫폼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예전과 똑같은 콘텐츠와 재미를 바라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았나 스스로 생각해본다. PC 원작을 그대로 모바일에 옮기는 것과 이것이 요즘 입맛에 맞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CBT를 마친 뒤, 실망과 기대가 혼재하고 있으므로 과거 팬으로서는 이렇다 할 명확한 평가를 내리긴 어려울 것 같다. 이는 어릴 적 영웅이었던 태권V가 사실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많은 요소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감정과도 비슷할지도 모른다. 소위 말하는 추억 보정 탓에 어느새 특별한 게임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감정 섞인 의문이 남기도 한다.

어찌 생각해보면 저작권 문제로 흩어져버린 IP를 모아 '새로운 사람들의 손에서 탄생한, 새로운 게임'이나 마찬가지. 부제를 버리고 '스톤에이지'라는 단어 하나만을 사용한 것은, 원작을 그대로 옮기기는 이식작이 아니라 새로운 신작이자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에 가깝다.

▲ 기자 간담회에서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뒀음을 알리기도 했고...

그런 의미에서 모바일 스톤에이지가 겪은 변화는 요즘 추세에 맞춘 결과물이라고 본다. CBT임에도 짜임새 있는 시스템과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한 것은 놀랍다. 원작과는 달라진 모습들에 부푼 기대감이 사그라든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정식 서비스가 된다면 계속해서 플레이할 것 같다.

가방을 방 구석에 던져놓고 무이굴로 달려가던 그 시절의 스톤에이지는 아니겠지만, 어찌 됐거나 스톤에이지는 스톤에이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