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뒤바뀔 수도 있는 꿈의 무대, 디 인터내셔널(The International, 이하 TI).

서버도 없고 대회도 없는 나라 한국의 단 하나 뿐인 도타2 프로 팀 MVP 피닉스는 전 세계 모든 팀들 중 단 6개 팀만 받을 수 있는 TI6 초청장을 받게 됐다. 기적이란 말 외엔 표현할 길이 없는 대단한 업적이다. 2016년 이후 랜 토너먼트 2회 우승에 4위 1회, 공동5위 1회까지. 성적만 놓고 보면 현존 최강 OG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MVP 피닉스는 6개 팀 중 가장 불안정한 팀으로 꼽히기도 한다. 세계 최강 팀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다가도 동남아 2티어 팀한테 맥없이 무너지는 등 경기력이 춤을 춘다. 최근 펼쳐졌던 마닐라 메이저에서 MVP 피닉스는 엄청난 가능성과 동시에 반드시 고쳐야 할 단점도 극명하게 드러냈다.

그렇다면 MVP 피닉스가 TI6에서 더 뛰어난 성적을 거두려면 무엇을 고쳐야할까?



■ 네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 때로는 독이 되는 공격성

MVP 피닉스는 대단히 공격적인, 극한의 하이리스크 하이리턴형 팀이다. 이미 여러 번의 랜 토너먼트를 통해 이제는 전 세계의 도타2 팀과 팬들이 MVP 피닉스의 색깔을 알고 있다. MVP 피닉스처럼 공격적인 팀은 그 색깔을 안다고 해서 마냥 막기 쉬운 건 아니지만 전략이 파훼당할 경우 알아서 자멸한다는 단점도 있다.

MVP 피닉스의 공격적인 성향의 단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경기는 상하이 메이저 당시 팀 리퀴드전, 마닐라 메이저에서의 OG, LGD전이다. 세 팀은 모두 두 서포터로 철저하게 미드를 포함한 아군 레인의 뒤를 봐주면서 상대 공격을 맞받아치는 운영을 했다. 어차피 MVP 피닉스가 할 것은 초반부터 공격적인 움직임 밖에 없을 것이라는 확신 하에 내린 판단이었다.

강팀들의 덫에 MVP 피닉스는 제대로 걸려들었다. 서포터가 로밍을 시도했지만 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상대 역공에 맞아 사망하기를 반복했다. 서포터가 자리를 비우면서 세이프레인도, 오프레인도 주도권을 잡지 못했고 서포터 레벨 차이가 극심하게 벌어지면서 MVP 피닉스는 일방적으로 패배했다. OG전에서는 레인전마저 완파당하면서 0:24라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 DAC 1-14에 이어 두 번째 굴욕이 된 0:24

MVP 피닉스의 공격적인 운영은 분명 그들만의 특징이고, 큰 장점이다. 하지만 이는 때로는 크나큰 단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주먹으로 바위를 쳤을 때 바위가 너무 단단하다면 이를 깨뜨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MVP 피닉스의 스타일은 주먹이 상하거나 바위가 부서지거나 둘 중 하나로, 결과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동남아 예선에서 프나틱이 보여주는 안정감을 MVP 피닉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자신들의 스타일이 먹히지 않았을 때 MVP 피닉스는 WG 등 동남아 1티어 미만으로 분류되는 팀에게도 패배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격적인 모습은 좋다. 실제로도 MVP 피닉스만의 스타일로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공격적인 색채를 받아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팀을 만난다면 주먹을 거둘 줄 알아야 한다. 호랑이가 뻔히 입을 벌리고 있는데 거기로 머리를 집어넣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상하이 메이저와 마닐라 메이저에서 탈락했을 때의 MVP 피닉스는 모두 주먹을 거둬야 할 때 그러지 못하고 내지르기만 하다가 무너졌다. 때로는 팀 리퀴드나 OG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받아치는 입장에서 게임을 할 필요도 있다. 역지사지로 상대 입장에서 플레이를 해야 자신들의 공격성이 더욱 더 빛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 서포터에게 인권을! 초반 레벨링과 시야 싸움

▲ 서포터 레벨 차이가 벌어지면서 초반 싸움에서도 밀렸다

MVP 피닉스의 경기 중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서포터, 특히 '두부' 김두영의 레벨이 극단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수입이 낮은 것은 와드, 연막 물약 등 온갖 소모품을 사느라 어쩔 수 없다 쳐도 크게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도 레벨이 너무 낮을 때가 많다.

물론 이해는 간다. MVP 피닉스의 서포터들은 쉴 새 없이 온 맵을 돌아다니면서 갱킹 루트를 찾고, 상대 진영의 시야를 확보하러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밍을 다니느라 뒤떨어진 경험치는 상대 영웅을 잡으면서 만회하기 때문에 경기가 잘 풀리면 나름대로 레벨을 따라잡는 편이다.

문제는 그런 초반 갱킹이나 공격적인 움직임이 통하지 않았을 때다. 모든 걸 포기하고 상대 영웅을 잡는 데 힘을 쏟았는데, 적 서포터들의 지원 때문에 킬을 내지 못하거나 오히려 역으로 킬을 당할 경우 MVP 피닉스는 다른 팀에 비해 훨씬 심대한 대미지를 입는다. 그렇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서포터 레벨이 상대 팀에 비해 뒤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만회할 유일한 수단인 킬을 내지 못한다면 그 격차를 좁힐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주요 랜 토너먼트에서 MVP 피닉스를 무너뜨린 팀들은 공통적으로 서포터 레벨에서 엄청난 우위를 점하면서 MVP 피닉스를 몰아붙였다.

▲ MVP 피닉스의 시야(위)와 OG의 시야(아래). 차이가 많이 난다

또, MVP 피닉스는 초반 시야 싸움에서 지고 들어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마닐라 메이저에서 OG는 MVP 피닉스의 첫 와드 2개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시작하자마자 디와딩을 한 반면 MVP 피닉스는 OG의 와딩 위치를 찾아내지 못했다. 시야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OG는 MVP 피닉스의 공격에 한 번도 당해주지 않고 완승을 거뒀다.

MVP 피닉스가 주도권을 잡았을 때의 와딩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밀리고 있을 때는 시야 싸움에서도 밀리는 게 당연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극초반처럼 팽팽한 상황일 때 MVP 피닉스는 강팀과의 시야 싸움에서 밀릴 때가 많았다. 공격적인 스타일로 경기를 풀어 나가는 스타일인데, 시야가 받쳐주지 않으면 상대의 함정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한 채 도박수를 던질 수 밖에 없다.

상대가 예측을 잘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MVP 피닉스의 와드 위치가 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초반부터 시야 싸움에서 완패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는 마닐라 메이저 OG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매를 한 번 심하게 맞은 만큼 MVP 피닉스가 시야 싸움이나 서포터 레벨링에서 어떤 변화를 줄지 기대해보자.



■ 초청이라고 방심은 금물! 실전 감각 익혀둬야

▲ 초청은 받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6개 밖에 되지 않는 TI6 초청팀 중 MVP 피닉스가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MVP 피닉스는 마닐라 메이저가 펼쳐지기 전에 진행됐던 수많은 해외 대회 동남아 예선에서 모조리 탈락했고, 유일하게 하나 남은 난양 챔피언십까지 약팀에게 패해 떨어지면서 대회가 하나도 없는 상태다.

물론 형제 팀의 연습 경기나 타 팀과의 스크림은 계속 하겠지만 2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실전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대회에 하나도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은 적지 않은 타격이다. 2개월은 긴 시간도, 그렇다고 짧은 시간도 아니다. 초청받았다는 사실에 안주해 2개월 동안 뭔가 다른 카드를 더 발굴하지 못하면 팀은 정체된다. 정체된 팀은 결코 TI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정체된 팀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는 1년 4개월 전 펼쳐진 DAC에서 본인들이 가장 뼈저리게 느꼈을 터. 현재 메타에서 쓸 만한 영웅 뿐만 아니라 상대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깜짝 전략까지 준비해야 TI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마닐라 메이저에서 보여줬던 리키 서포터와 같은 전략을 여럿 준비해둬야 한다.



위플레이 시즌3를 제외하면 지금껏 초청받은 대회에서 MVP 피닉스는 대부분 성적이 좋지 못했지만 TI만큼은 예외가 돼야 한다. 1티어 팀을 잡다가도 뜬금없이 2티어 팀에게 속절없이 무너지는 불안정함은 버리고 탄탄한 기본기와 안정성을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MVP 피닉스를 기대해 본다.

인생이 뒤바뀔 수 있는 TI무대.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여러 번의 대회를 통해 본인들이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면, 한국 e스포츠 최고의 팀이 MVP가 되는 것도 꿈이 아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