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부터 6일까지 진행된 블리즈컨 e스포츠 리그에서 열린 다섯 개의 프로게임 종목 중 무려 세 개를 한국인 또는 한국팀이 석권하는 'Korean Overlord(한국인 지배)' 현상이 일어났다.

2015년 블리즈컨에서 '빅가이' 김유진 혼자 스타크래프트2 종목 우승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2016년 블리즈컨은 그야말로 한국 잔치였다. 기존 강세 종목인 스타크래프트2는 그렇다 치더라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나 신규 종목인 오버워치까지 1위를 석권했다.


■ FPS 게임 오버워치, 한국은 불모지가 아니었다  




특히 중요하게 보아야 할 부분은 '한국은 FPS 불모지다'라고 알고 있었던 기존 상식을 완벽히 깨버린 오버워치 월드컵의 우승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던 카운터 스트라이크나 콜 오브 듀티, 언리얼 토너먼트 등 FPS 게임의 인기가 그리 좋지 않았고, 프로팀도 매우 적었으며, 세계적인 대회에 입상한 경력이 매우 적었다.

자연스레 세계 FPS의 흐름은 북미와 유럽 쪽으로 흘러갔다. 유럽에선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북미에선 콜 오브 듀티 리그가 쉴 새 없이 열리며 수준 높은 경기가 펼쳐졌다. 프로게이머 상금 랭킹에서도 LoL, 도타2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큰 상금의 대회도 열렸다.

한국도 FPS 리그가 없었던 건 아니다. 넥슨의 서든어택이나 드래곤플라이의 스페셜 포스 리그가 꾸준히 열렸지만, 세계적인 인기를 끌진 못했다.

2016년 블리자드의 야심작인 오버워치가 출시됐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프로게임단들도 계속 창단을 이어갔다. 이 와중에 블리자드는 블리즈컨에서 세계 최고를 가리는 오버워치 월드컵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FPS 리그에 익숙하고 좋은 성적을 거뒀던 서구권 유저들은 이번 오버워치 월드컵도 당연히 그들이 우승할 것이라는 당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전 세트 무실점 경기를 펼치며 압도적인 우승을 따냈다. 한국이 FPS에 약한 게 아니라,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걸 전 세계 앞에서 공표했다.


■ 혹시나 했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RTS 강국, KOREA



대한민국은 RTS(Real-Time Strategy)장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 강국이다. e스포츠와 프로게이머라는 신종어가 생겨나게 된 계기인 스타크래프트1 시절부터 이상할 만큼 우리나라 선수들은 해외 그 어떤 나라의 선수들에 비해 압도적인 기량차이를 보여줬다.

게임 올림픽으로 불렸던 WCG(World Cyber Games)에서는 세계대회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한국 대표 선발전의 난이도가 훨씬 높으니까. 이런 현상은 자연스레 스타크래프트2로도 이어졌다. 물론, 스타2에서는 한국 선수들과도 경쟁력이 있는 외국인 선수가 꽤 있긴 했다.

이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A급 이상 한국 선수들과는 '갭'이 생겼고, 2014 WCS 글로벌 파이널에서는 16강 전원이 한국 선수, 2015에는 프랑스의 'Lilbow' 한 명만이 해외 선수로 16강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2016은 조금 달랐다.

한국 스타크래프트2의 힘이었던 프로리그 폐지가 발표되고, 인프라의 주축인 스타2 기업팀들이 게임단 해체를 선언했다. 그로 인해 어수선해서였을까? 지난 10월 펼쳐진 KeSPA Cup에서 해외 선수 최초로 국내 대회에서 미국의 'Neeblet'이 우승을 차지했고, 그 여파인지 2016 WCS 글로벌 파이널에서도 8강에 한국인 5명, 해외 선수 3명으로 꽤 비등했다.

그러나 이는 기우였다. 한국인은 RTS에서 여전히 강력했다. 박령우는 4강 중 유일한 해외 생존자인 폴란드의 'Elazer'를 상대로 압도적인 기량차이로 3:0 완승을 거뒀고, 결승전에서 박령우와 변현우가 보여준 경기력은 현장에 있던,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생중계로 지켜보던 모든 팬들을 열광시켰다.

국내 굵직한 기업팀들이 스타2 게임단 운영을 포기하면서 당장 2017 시즌에 대한 불안감이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이 여전히 RTS 최강의 나라인 점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2017 시즌에 대한 WCS 방안이 발표되진 않았지만, 국내 선수들이 이와 같이 멋진 경기력을 뽐낼 수 있고, 개인으로도 게이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긍정적인 인프라가 구축되길 바란다.


■ 히어로즈, 이렇게 재밌는 게임입니다



히어로즈가 이렇게 재밌는 게임이었던가. 결승전에서 열린 발리스틱스와 프나틱의 대결은 히어로즈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이자, 히어로즈를 재미없는 게임, 인기 없는 게임으로 인식하던 사람들의 관념을 완벽히 깬 경기였다.

LoL과 도타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캐릭터 풀을 가진 게임이지만, 꽤 많은 캐릭터 구성을 자랑했다. 스킬 트리를 변형해 궁극기로 난사를 선택하는 발라라던지, 좋지 않은 캐릭터로 분류되는 트레이서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재미를 선사했다.

특히 기존 AOS와 다른 '목적이 있는 맵'들은 선수들이 어디서 싸우게 될 것인지, 언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것인지 예측하며 보게 되는 묘한 집중감도 가져다줬다. 결승전 3세트인 핵탄두 격전지는 핵탄두를 한타에 서로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진풍경을 관객 모두가 즐겼다. 새벽 시간에도 불구하고, 경기 시청자 수도 평소의 1.5배가 늘었다.

한국인이 제일 잘하는 게임에, 역대급 '꿀잼' 결승전, 게다가 블리즈컨에서 발표된 바리안 린과 라그나로스의 추가는 지쳐가던 한국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음을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