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기덕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남기덕 책임연구원은 게임 업계에서 PD, 총괄 PM, 개발 팀장,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로 지내며 제네럴리스트로서 조직의 전체 그림을 그리는 전략가 역할을 주로 하였고, 현재는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에서 게임학 전공으로 게임 디자인과 프로젝트 매니징에 대한 연구,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남기덕 책임연구원은 게임을 중심으로 게이머, 업계, 학계 등 3가지 분야의 경험과 지식을 모두 가진 독특한 게임 덕후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갤러그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꾸준히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로서의 삶을 살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프로듀서, 총괄 PM, 개발 팀장,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 등의 직책을 경험했다고 했다. 학계 쪽으로는 박사 과정에 있으면서 대학원이나 기업에서 게임과 관련된 강의나 개발자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상담 등을 하고 있었다.

강단에서 선 남기덕 책임연구원은 게임 테마라는 큰 골자를 가지고, 매력적인 주제인 심리학과 게임 디자인을 접목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강연을 펼쳤다. 꼬박 1시간을 알차게 채운 남기덕 책임연구원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 내용 전달 및 편집의 용이성을 위해 남기덕 책임연구원의 시점에서 서술합니다.


■ 강연주제 : 게임 디자인을 위한 심리학

⊙ 자신의 테마를 찾기 위한 여행


게임 업계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이 고민은 '과연 게임에 대해서 얼마나 깊게 알고 있는가'로 바뀌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게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게임을 하는가? 나는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은가?

이런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내리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게임을 답습하기만 하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나만의 테마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 것이다. 게임학을 중심으로 심리학, 미술, 건축학 등 관심 있는 분야를 하나씩 접목하면서 테마를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PM이었을 때의 경험을 살려 게임 디자인 프로세스를 통해 게임을 연구하자고 생각했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먼저 컨셉 디자인 단계에서 PD가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디자이너 그룹이 회의를 한다. 이를 무한 반복하는데, 그 과정에서 산출물로 게임 컨셉 디자인 문서가 나온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개발자와 경영진에서 보여줄 컨셉 문서는 그들의 관점에 맞춰 다른 버전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이 프로젝트가 사장이나 경영진의 승인을 받으면 게임 상세 디자인 단계로 넘어간다. PD와 각각의 게임 디자이너가 상세 디자인 문서를 작성하는 과정이다. 세 번째로는 QA와 테스트 단계인데, 이를 통과하면 게임이 출시되고 라이브 개발 프로세스로 전환된다. 오늘 강연에서는 여러 심리학을 활용한 게임 디자인 개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테마와 목적


모비딕의 저자 허먼 멜빌은 "위대한 책을 쓰려면 위대한 테마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책뿐만 아니라 게임, 미디어, 심지어 구멍가게에서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게임의 테마는 과연 무엇일까? 세계적인 PD, 디자이너들은 자신만의 테마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으며, 개발하는 작품마다 일관되게 부여하고 있다.

윌 라이트의 심시티 시리즈, 심즈 시리즈, 스포어 등은 소통이라는 테마를, 사카구치 히로노부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로스트 오디세이는 삶과 죽음이라는 테마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게임의 테마란 게임 디자이너가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디자이너의 가치관을 일관되게 공감할 수 있도록 게임의 모든 요소를 통합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성격심리학을 먼저 예로 들겠다. 페르소나라는 개념이 있다. 그리스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로, 심리학에서는 타인에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용어다. 그리고 방어기제라는 개념이 있다. 마음의 평정을 깨트리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불안을 처리하고 평정을 회복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성숙한 인격일수록 상황에 맞게 다양한 방어기제를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방어 기제에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는데 중요한 점은 낮은 단계의 방어기제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며, 상황에 맞게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페르소나를 테마로 게임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페르소나 시리즈'라는 게임이 있다. 페르소나 시리즈의 주인공이 동료들과 가장 다른 점은 주인공만이 다양한 페르소나를 바꿔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인공은 다양한 방어기제를 상황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주인공을 보고 성숙한 인격이라고 느끼게 된다.

자신만의 테마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자. 테마는 누가 던져주는 것이 아니다. PD와 게임 디자이너 스스로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인생을 경험하면서 얻어야만 한다. 학술적 연구가 아니더라도 뭐든지 자신의 테마가 될 수 있는 것을 찾아 깊이 있게 파고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테마와 목적은 단순히 기능적인 것보다 인간에 대한 고민과 가치관이 담겨야 게임도 깊이가 깊다.

⊙ 타겟층과 장르

컨셉 디자인에서 타겟층과 장르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에 따라 소비자의 성격과 규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소비자와 관련된다는 말은 돈과 관련된다는 것이고, 경영진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 중에 하나다. 타겟층 설정은 최대한 범위를 작게 해야 하며, 범위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이 해당 타겟층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라 매출이 된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타겟층, 즉 소비자의 나이와 성별에 대한 심리적인 이해부터 필요하다. 타겟층은 핵심 타겟층과 확장 타겟층으로 나누어 설계하는 것이 좋다.



발달 심리학에는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가 있다. 이 이론에 나온 나이에 따라 심리적으로 다르게 발달하는 부분이 타켓층의 공략 포인트가 된다. 다음으로 진화 심리학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진화 심리학의 키워드는 생존과 번식이다. 남녀를 나누어 설명하면 위의 그림과 같다. 남녀의 진화적인 차이를 모른 채 남녀 각각의 소비자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 또한, 남녀의 진화적 차이를 고려해 게임 장르를 설정할 수도 있다.

⊙ BM과 차별성

진화 심리학을 BM과 차별성에 활용해보자. 앞서 말했다시피 게임의 주 타겟층인 남성은 사냥에서 시작했다. 현대 사회에서 사냥터를 잃은 사냥꾼들은 정치, 증권, 도박, 게임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증권과 도박은 돈을 벌 수 있어도 과시하기 어렵다. 반면 정치와 게임은 많은 사람이 모이므로 과시하기 유리하다. 그중에서도 게임은 가장 안전한 사냥터다. 게임 자체를 즐기게 하는 목적도 있어야 하지만, 경쟁에서 이기는 것과 과시할 수 있는 환경과 공간을 어떻게 제공해주는지에 따라 차별성이 생기고 새로운 BM이 생기게 된다. 랭킹과 등급이 디자인하기 편하긴 하나 차별성을 가지는 어렵다.


인간의 자기 과시 방식은 노골적인 방식에서 점차 은근한 방식으로 바뀌어 왔다. 때문에 은근한 자기 과시 제공이 돈이 된다. 명품 산업과 광고 산업이 이미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는 노골적인 자기 과시 방식은 주변을 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은근한 자기 과시는 주변을 팬으로 만든다. 자기 과시의 욕구 분출 방식조차 경쟁과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은 왜 아직도 초급 수준의 노골적인 자기 과시를 주로 제공하고 있는가. 앞으로의 게임은 노골적인 자기 과시에 더해 은근한 자기 과시 방식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 게임 플레이, 레벨 디자인, 밸런스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가장 몰입하게 되는 상황은 죽음이다. 죽음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며, 때문에 인간이 가장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미디어에서 죽음은 가장 많이 활용되는 주제 중 하나이며, 게임에서도 몰입을 위해 자주 활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게임에서는 크게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 이 2가지 분류로 죽음을 활용한다. 게임 플레이에서는 캐릭터 삭제, 게임 오버, 패널티, 다시 시작 등으로, 스토리에서는 캐릭터의 죽음으로 죽음을 활용하고 있다. 한 단계 더 들어가 보자. 플레이어는 죽음의 과정 중 언제 가장 몰입할까. 게임 플레이에서는 실제로 내가 죽었느냐에 상관없이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몰입도가 가장 높다. 스토리에서는 감정이입 된 캐릭터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 가장 몰입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죽음을 인지한 그 순간에 가장 몰입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 디자이너는 단순한 플레이어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상태를 조절하며 몰입을 유도해야 한다. 즉, 플레이어의 죽음이 아닌 몰입을 컨트롤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각 이론을 레벨 디자인과 밸런스에 활용할 수도 있다. 지각 이론에는 베버의 법칙과 최소 식별 차이가 있다. 베버의 법칙은 자극 변화 탐지를 위한 변화의 최솟값은 해당 자극의 원래 강도에 비례한다는 것이며, 최소 식별 차이는 자극 강도의 탐지가 절대량이 아닌 기준 자극의 변화량에 따른다는 뜻이다. 게임 레벨 디자인과 밸런스에 있어 매우 중요한 법칙이다.

다음으로 감각 순응이란 일정한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자극에 대한 민감도가 낮아지는 현상이다. 게임에서도 이미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레벨 디잔인, UI 이펙트 등을 통해 다양하게 경험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지던 난이도도 감각 순응이 될 만큼 지속적으로 노출해주면 익숙하게 변한다.

감각 순응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지 여부에 따라 레벨 디자인과 밸런스는 변한다. 한번에 난이도를 크게 올리는 것보다 난이도에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반복적으로 올리면 게임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강도만으로 난이도 조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감각 순응을 알고 있다면 시간으로도 난이도의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화 이론을 레벨 디자인에 활용할 수도 있다. 고전적 조건화를 살펴보자. 처음에는 어떤 기능도 하지 않았던 자극이 특정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파블로프의 개가 그 예다. 조건화에도 단계가 존재한다.

먼저 개를 대상으로 종을 치고 밥을 주면,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게 되는 게 고전적 조건화다. 종소리가 조건 자극이 된 다음에는 종소리 이전에 문 여는 소리만을 듣고도 침을 흘리게 된다. 이게 이차적 조건화다. 이런 조건 자극이 한 단계씩 앞으로 가는 것이 고차적 조건화다. 마지막은 자극 일반화인데, 어떤 자극이 조건 자극으로 형성되어 버리면 해당 자극이 아닌 경험 해보지 않은 유사한 경험에도 조건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게임 디자이너는 감각 순응, 고차적 조건화, 자극 일반화를 어떤 몬스터나 장치에 의해 줄 것이며, 어느 시점에 어떤 자극 방법으로 줄지 미리 디자인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감각 순응하게 만들어 놓고 중요한 시기에 기존 규칙을 깨면 플레이어들은 지금까지 학습한 모든 것에 신뢰를 잃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고 더욱 큰 공포감을 느낄 것이다.

⊙ 캐릭터, 세계관, 스토리 설정


성격심리학에서 봤을 때 내적 요소와 외적 요소라는 것이 존재한다. 선천적인 심리 요소와 후천적인 심리 요소를 뜻한다. 캐릭터 설정을 할 때 내적 요소와 외적 요소 항목을 구분해서 디자인해보자. 캐릭터를 설정할 때부터 상세하고 매력적으로 설정한다면 스토리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특히, 외적 요소의 일부 항목에서 캐릭터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특정 상황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 방어기제를 통해 상세히 기술하면 스토리가 쉽게 나온다. 주의해야 할 점은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일부 항목을 미설정하는 것도 상상을 유도하기 위한 중요한 설정 방법이라는 것이다.

자기 결정 이론이 있다. 인간의 기본 심리 욕구와 개인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왜 그 행동을 선택했는지를 설명하는 동기 이론이다. 이를 스토리 설정에 활용해보자. 게임에서는 많은 선택지가 존재한다. 플레이어에게 몇 가지 선택지를 주어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택에 따른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면 플레이어는 자율성을 침해받았다고 생각하고, 점차 앞으로의 선택을 불신하게 된다.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자율성도 힘을 발휘한다.